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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하반x이세트] 사막 모래 장미. 001

아이콘 소다맛밀키스
댓글: 1 개
조회: 1187
2015-08-20 00:24:38


태초에 빛이 있었다.

찬란하게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사막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땅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향이 타오르는 냄새와 수련 꽃다발의 우아한 향기가 뒤엉켜 코끝으로 풍겨왔다. 워낙 향이 강렬한 탓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라는 눈빛을 가득 품고 곁에 서 계신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지만 아버지께서는 미동도 않고 저만치서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하얀 로브를 입은 키 큰 사람을 바라보고만 계셨다. 그 사람은 로브와 똑같이 새하얀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탓에 어딘지 모르게 무섭게 느껴졌다.

"유모한테 갈래요."

"조용히 해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위압적으로 느껴진 탓에 나는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이 처음 보는 곳이 너무나도 무서워 빨리 내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굳은 표정 때문에 더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 아버지 앞에 섰다. 그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긴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지팡이의 머리 부분에는 사파이어가 박힌 눈의 커다란 코브라가 조각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갖고 계신 홀은 루비 눈의 코브라였는데, 이 사람의 것과 똑같았지만 아버지의 홀에 조각된 코브라가 더 크고 길었다. 더운 바람에 일렁이는 하얀 베일 너머로 그 사람의 얼굴이 언뜻 보이는 것 같았다. 약간 나이가 있는 남자였는데, 그 사람도 제법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아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 사람마저도 화가 난 얼굴이었다면 나는 아마 그 자리에서 울어 버렸을 것이다.

"올해 이세트가 여덟 살이 되었소. 이제 신관들이 이 아이를 돌봐야 할 것이오. 전통대로라면 일곱 살 때부터 돌봤어야 했지만."

아버지는 황금 홀로 내 등을 쿡 찌르며 그 남자에게로 나를 떠미셨다. 나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 그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섰다. 그는 자세를 낮추고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반짝이는 베일 너머로 나를 찬찬히 훑어보는 그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윽고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아버지에게 조용히 물었다.

"왕위를 이을 유일한 혈통인 공주님이십니다. 굳이 공주님을 태양신의 무녀로 만들 필요는..."

태양신의 무녀. 그 말을 듣자마자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감이 나를 에워쌌다. 태양신의 무녀에 대해서는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왕실의 공주들 중 한 명이 무녀가 되는데, 공주가 여럿일 경우 보통은 제사장이 무녀가 될 공주를 택한다. 공주가 외동딸이면 후궁이 낳은 딸이 무녀가 되고, 후궁으로부터 얻은 자식도 없다면 공석으로 두거나 귀족 혹은 평민의 딸 중 제사장이 뽑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예외적인 경우가 없었기에 매 왕조마다 무녀가 된 공주들이 존재했는데, 그들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슬펐다. 왕을 비롯한 자신의 가족들과 자주 만나기 힘들고, 국가의 중대한 사항을 결정하기 위해 신탁을 받을 때마다 엄청난 생명력을 소모하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나는 외동딸이었기 때문에 지금껏 무녀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고 그것을 무척 다행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왜, 그것도 외동딸인 나를 무녀로 만드시려는걸까?

"공주를 태양신의 무녀로 삼는 건 오래된 전통이오. 그 어떤 왕조에서도 지금까지 무녀를 배출하지 않은 적이 없었소. 이세트가 아니면 누가 무녀를 한단 말이오?"

"지금까지는 왕위를 이을 다른 공주나 왕자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귀족의 자녀나 백성들 가운데에서 무녀를 뽑아도 되는 일입니다. 공주님을 무녀로 삼는다면 누가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습니까?"

"오늘 아침 후궁 중 하나가 아이를 뱄다는 전갈이 왔소. 그 아이를 후계자로 삼을 것이오."

"후궁마마께서 만약 딸을 낳으신다면, 작은 공주님을 무녀로 삼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사드라 왕비님의 유일한 혈육을 왜..."

"라니타가 딸을 낳든 아들을 낳든 그 아이가 후계자가 될 것이오. 그리고 출산 후에는 라니타를 왕비로 삼을 것이오."

오늘 아침 작은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찾아오신 일이 기억이 났다. 나는 그때 아버지 앞에서 어제 외웠던 경전의 구절을 읊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작은 어머니가 왔다는 시종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를 뒤로 하고 작은 어머니를 맞이하러 나가셨다. 아버지는 언제나 작은 어머니께 친절하고 다정하셨다. 연회에서는 항상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게 하셨고 진귀한 보석이나 값비싼 옷감을 선물하시는 일도 잦았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나의 친어머니께도 그렇게 사랑을 베푸셨을까 하는 물음이 맴돌았지만, 아버지께서는 친어머니에 대한 것을 여쭐때마다 대답하지 않으셨다. 유모 역시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면 어머니에 대한 것을 묻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마음이 아프셔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친어머니를, 나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면 왕위를 보장할 동생이 태어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나를 신전으로 쫓아버릴 리가 없다. 왜 지금껏 나를 한번도 다정하게 안아주지 않으셨는지, 왜 어머니의 묘소에 꽃 한 송이 조차 보내지 않으셨는지, 왜 공식 석상에서도 나 대신 작은 어머니만 나갈 수 있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가급적이면 신전에서만 지내게 하고, 궁 안쪽으로는 자주 들여보내지 마시오."

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몸을 숙여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셨다. 아버지의 눈빛이 이토록 두렵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얼음으로 만든 창이 나의 심장을 꿰뚫는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두 어깨를 꽉 쥐고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왕위 계승자가 아닌 무녀다. 왕실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해라."

아버지는 말을 마치시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신전 밖으로 떠나셨다.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으시고 떠나는 아버지가 야속해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아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사장임이 분명한 흰 옷의 남자가 나의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주며 나를 일으켜세웠다. 이렇게 하루 아침에 나는 공주에서 무녀로 전락하는 것일까?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어린 나의 삶이 가여워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하루 아침에 나를 버리신 아버지가 원망스러워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Lv65 소다맛밀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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