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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39화

아이콘 강철안개 | 조회: 1192 |

 #. 소나

 소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분명 기세 좋게 에트왈을 끌어안고 저택을 뛰쳐나온 것까진 좋았는데, 갑자기 하늘이 거꾸로 돌더니 정신을 차려보니까 누군가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베사리아란 걸 알아차리기까진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당황해서가 아니었다. 
 이 공간을 가득 채운, 끔찍한 소음 때문이었다.

 -베…사리아님?

 그녀는 자기가 말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잊은 채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베사리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니, 표정이 없었다. 베사리아가 그녀에게 뭔가를 말했지만, 소음에 막혀 들리지 않았다. 소나는 뒤를 돌아봤다.

 이 시끄러운 소음 한가운데, 공허하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곳. 깊은 어둠처럼 가라앉은 곳. 그곳에 잭스가 있었다. 침대 위에 사슬에 묶인 채, 예의 그 파란 잔불을 일으키며 죽은 듯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레오나와 여사제들이 기도하듯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잭스의 불꽃은, 그녀들의 힘이 분명해 보이는 황금빛 장막에 가로막혀 약하게 타오를 뿐이었다. 다른 한편에선 맨드레이크가 탁자 위에 양피지를 펼쳐놓고 뭔가를 정신없이 휘갈기고 있었다. 그게 소나의 눈에 비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이 아니라, ‘귀로 세상을 보는’ 쪽이 훨씬 익숙했다.

 …토할 것만 같은 절망의 소리가, 소나의 고막을 터뜨릴 기세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레오나나 사제들, 그리고 맨드레이크에게서도 다급함과 걱정의 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마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작은북부터 큰북까지 아무렇게나, 있는 힘껏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그 밑에는 슬픔과 약간의 좌절이 섞인 어두운 음색이 더러운 구정물 속에서 스멀거리는 물풀처럼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소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소리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여기, 베사리아에게 들려오는 절망과 공포의 소리에 비한다면 그들의 소리는 바다의 잔물결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었다. 소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베사리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공포와 긴장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사람에게서 들려올 수 없는 소리였다. 

 깊은, 아주 깊은 심연 속에서 무언가가 질척이고 있는 것만 같은 끔찍한 소리였다. 그 속에서 가느다란 비명소리가 고장 난 메트로놈 울리듯 음산하게 들려왔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 깊디깊은 골짜기 아래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처럼 괴기스러웠다. 한 발짝만 삐끗하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깊은 어둠이 들렸다.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악을 쓰는 듯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소나는 베사리아의 아름다운 겉모습 아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장에 커다란 얼음덩이가 쑤셔 박히는 것처럼 소름이 쫙 돋았다. 단 하나의 소리만 없었다면,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베사리아를 밀쳐냈을 것이었다.

 [도와줘요…….]

 그 폭풍과도 같은 소리 속에서 흐느끼는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도와줘요, 잭스. 제발 도와줘요. 나 너무 힘들어요.]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작은 소리인데, 이 끔찍한 소음 속에서도 그 가느다란 목소리는 똑똑히 들려왔다. 

 [살아줘요. 당신 없으면 난 죽어요. 당신 없이는 이 세상을 견딜 수 없어요.]

 속삭이듯 그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것이 이 감정의 격류 속에서 베사리아를 지탱하고 있는 단 하나의 파편이라는 걸 알아차리기까진,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차라리 시원하게 우는 소리라면 그나마 나았을 터였다. 하지만 안간힘을 다해 참는 그 흐느낌은 마치 마지막 선만은 도저히 넘을 수 없다는 것처럼 처량하게 느껴졌다. 구하고 싶은 대상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모순의 감정, 그리고 그럴 능력이 부족한 자신에 대한 무력감, 그 모든 것이 죄책감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졌다. 슬프고 부서진 감정의 소리였다.

 그것은 우정이라기보다는 사랑에 가까웠고,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부서지고 어긋난 화음이 너무 많았다. 그것은 집착이었다. 잭스를 위한다기보다도 자신을 위하는 집착.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도 그 집착의 방향을 모르는 집착. 부서지고, 깨져서 어떻게든 얼기설기 이으려고 애를 쓴 듯한 베사리아의 본심이었다. 소나의 눈에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그녀는 이렇게 부서지고, 이렇게 안타까운, 이렇게 처량하게 남을 부르는 감정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소나는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베사리아가 그녀의 어깨를 꽉 잡고 일으켜 세웠다. 소나는 좀 전과는 다른 종류의 어지럼증을 느꼈다. 마치 향수로 가득 찬 작은 방에 들어서는 것처럼 아찔한 기분이었다. 그 정도로 베사리아의 감정은 진했고, 독했다. 

 소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약에 취한 것처럼 그녀의 머리는 흐늘흐늘 흔들렸다. 소나는 지금 여기에 왜 불려왔는지 생각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잭스. 그래, 잭스를 구하기 위해 왔지 않는가. 소나는 정신을 추스르려고 노력했다. 이 뒤틀린 소음의 공간 속에서 유일하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곳. 잭스가 누워 있는 바로 그곳으로 온 정신을 집중했다. 

 파랗게 타오르는 황야.
 타다 남은 잿더미의 땅.
 마모되어 새까맣게 죽어버린, 생기 없는 눈빛.

 꿈속에서 봤던 그 풍경이 보이는 듯했다. 잭스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죽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고통스러운 줄도 죽어가는 줄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었다. 감정의 소음에 휘둘리던 그녀의 내면이 순식간에 꽉 조인 바이올린 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됐다. 지금은 더욱 더 그랬다.

 “잭스가 죽어가요.”

 이제야 베사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도와주세요, 소나 양.”

 소나는 눈물을 훔치며 끄덕였다. 베사리아는 그런 소나를 데리고 잭스에게로 다가갔다. 파란 잔불에 휩싸인 그의 주위로 은은한 황금빛 빛무리가 서려 있었다. 레오나와 여사제들이 열과 성의를 다해 기도 중이었다.

 “레오나, 잭스 몸 상태는 좀 괜찮나요?”
 “아까보다야 낫지만, 불이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뭘 하시려거든 빨리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레오나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날이 서있었다. 지친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소나는 그녀의 목소리 안에서 베사리아를 향한 적대감과 슬픔을 들을 수 있었다. 레오나가 소나를 힐끗 보더니 눈짓으로 슬쩍 베사리아의 손을 가리켰다. 소매에 슬쩍 가려진 그녀의 왼손을 보자 소나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잭스와 똑같은 파란색의, 그것도 훨씬 진한 파란 불꽃이 그녀의 왼손을 태우고 있었다. 베사리아가 내뿜는 감정의 소리에 가려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소나 양, 잭스와는 아직도 정신이 연결되어 있나요?”
 베사리아는 소나의 시선을 무시하며 가만히 말했다. 소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꿈속에서 봤던 그 광경은 분명 잭스의 내면이었다. 꿈속에서 상대방의 내면을 볼 정도라면 아직 그와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터였다.

 “좋아요. 맨드레이크, 주문은요?” 
 “완성됐네. 하지만 여기는 ‘심판의 방’같은 설비가 없어. 정신을 연결시킬 순 있어도 내면을 구체화시킨다거나 그런 건 못 할 걸세.”
 “방아쇠 역할만 제대로 해 준다면 충분해요. 제가 불꽃을 최대한 이쪽으로 옮길 테니 그 사이에 우리들에게 주문을 걸어주세요. 그다음 주도권만 넘겨주시면, 나머진 제가 알아서 조율할게요.”
 “우리라니, 누구 말인가?”
 “뻔하지 않나요?” 베사리아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저와 소나 양, 그리고 잭스에요.”
 “자네야 그렇다 쳐도 부벨르 양은 안 되네. 가뜩이나 위험한 주문인데 생사람 잡을 일 있는 겐가?”
 “어머, 제가 세 명분의 주문을 짜달라고 했을 때 눈치 못 챘나요? 전 저와 소나 양을 말했던 거였어요.”
 “…난 자네와 내가 대상인 줄 알았네.”

 맨드레이크가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실 따져보면 그의 생각이 더 신빙성이 있었다. 정신 속으로 들어가는 마법을 사용하는데 당연히 전문가들이 들어가야 할 테니까. 하지만 베사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안 돼요. 지금 여기서 잭스와 가장 강한 패스(Pass, 마법적인 연결을 뜻하는 단어)를 가진 사람은 소나 양이니까요. 이 일엔 소나 양이 반드시 필요해요.”
 “난 성공 가능성도 희박한 모험에 관련 없는 사람까지 던져 넣고 싶지 않네, 콜민예 의원.”
 “관련이 왜 없어요? 잭스와 소나 양은 정신이 이어져 있는데. 정신이 이어진 상태에서 한쪽이 죽는다면 과연 다른 쪽에 영향이 없을까요? 결국 잭스를 구하는 게 소나 양을 구하는 길이기도 해요. 게다가,” 베사리아는 소나를 보며 말했다. “소나 양도 잭스를 구하고 싶을 거고요. 그렇죠, 소나 양?”

 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광경을 떠올리는 건 무서웠지만, 그 속에서 고통 받고 있을 잭스를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그러자 맨드레이크가 소나를 향해 말했다.

 “부벨르 양, 잘 생각하시오.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여기 있는 모두가 잭스를 구하고 싶어 하오. 좀 유별나게 튀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가 베사리아를 슬쩍 노려보며 말했다. “허나 이 방법은 안전을 장담할 수 없소.”
 ‘…….’
 “그대가 잭스에게 이런저런 일로 신경 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소. 하지만 이건 동정심이나 연민의 감정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목숨은 다른 문제요. 죽거나, 그보다 더한 꼴이 될 수도 있소.” 
 “찬물 끼얹지 마세요, 맨드레이크.” 베사리아가 짜증스럽고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없다고요.”
 “자네 목숨을 거는 거야 자네 것이니 그렇다 치세. 하지만 거기에 다른 사람 목숨을 수단으로 삼지 말란 말이네. 내가 협력하기로 한 것과 부벨르 양의 안전은 별개의 문제일세. 경고하는데, 콜민예 의원. 이 이상 멋대로 행동한다면 난 손 떼겠네.”
 “그러지 말아요!” 베사리아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알겠어요. 알겠,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그러지 말아요, 맨드레이크. 부탁이에요. 내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그러지 말아요, 제발…….”

 베사리아의 눈동자에 절박함과 공포가 서렸다. 말하다 혀를 씹은 것도 모른 채 그녀는 ‘제발’이라는 단어만 발작적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오른손은 피가 배어나올 정도로 꽉 쥐어져 있었고, 다리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맨드레이크는 금방 자기 발언을 후회했다. 주도권을 밀리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말한 것뿐이었다. 가뜩이나 얇은 얼음장 위에 서있는 것처럼 불안한 베사리아를 더 불안하게 할 의도는 없었다.

 “소나 양, 부탁해요. 부탁드려요, 네? 우리들이 같이 잭스를 구하는 거예요. 당신과 나라면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다고요. 그러니 제발,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도와주세요.”

 베사리아는 남은 한 손으로 소나의 어깨를 으스러져라 움켜쥐며 말했다. 아팠지만, 소나는 얼굴을 찡그리기보다 슬픈 눈으로 베사리아를 바라봤다. 소나는 베사리아가 그 모든 불안감과 절망을 오직 잭스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 아래에 버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나는 잭스를 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와 동등하게, 이 가련하고 부서진 여인도 구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나 양…!”

 베사리아의 얼굴에 어둠 속에서 한줄기 광명을 찾은 방랑자처럼 화색이 돌았다. 맨드레이크가 낮게 한숨을 쉬는 건 덤이었다. 

 “부벨르 양, 난 분명히 말했소. ‘어줍잖은’ 동정심은 오히려 독이 될 거라고. 정말 각오한 거요?”

 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분명히 자신의 기분을 전하기 위해 병실 한구석에 떨어져 있는 에트왈로 손을 뻗었다. 에트왈을 연주해 감정을 표현하는 건 그녀의 오랜 습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뻗은 손이 무색하게 에트왈은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
 “……?”
 ‘아…….’

 그제서야 아까 전부터 에트왈이 반응이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소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맨드레이크와 베사리아가, 심지어 기도 중이던 레오나마저 잠시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다 소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수그리고선 번개처럼 에트왈을 집어 왔다. 소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들려오는 감정은 안 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꽂히는 황당함의 감정을 듣지 않으려 무진, 정말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큼! 준비하시오, 콜민예 의원.”

 맨드레이크가 애써 어색함을 잊으려는 듯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물론 베사리아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토록 싫어하던 맨드레이크의 트롤 피 영약까지 단숨에 들이켰으니 말이다. 갑자기 공급된 마력에 반응하는 듯 오만상을 찌푸리는 베사리아의 왼손에서 푸른 불꽃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그와는 반대로 잭스의 몸에선 불꽃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금이에요, 레오나!”

 베사리아의 외침에 레오나와 사제단이 남은 힘을 모조리 긁어내 기도에 집중했다. 순간 눈부신 황금빛이 잭스에게 작렬했고, 순간적이나마 잭스의 몸에서 푸른 불꽃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기회를 놓칠 맨드레이크가 아니었다. 그 역시 남은 힘을 모조리 짜내서 베사리아와 잭스, 그리고 소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한 명의 정신에 두 사람이 들어간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10초 안에 정확한 간격으로 세 개의 동심원을 그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맨드레이크는 그 어려운 작업을 정확하게, 그리고 빠르게 해냈다. 황금빛 빛무리와 마법이 발현될 때의 빛이 만나 병실 안에는 순간 엄청난 빛이 작렬했다. 맨드레이크는 순간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쿨럭! 정신 붙어있는 사람 있나?”

 잠시 뒤 빛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휩쓸고 간 마력의 여파와 무리한 체력 소모로 맨드레이크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기절하지 않는 건 마지막까지 모두의 안전을 확인하려는 초인적인 의지 덕분이었다. 

 “어떻게든…전 괜찮습니다. 하지만 자매 분들이…….”

 레오나 역시 상당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기도하던 여사제들은 전부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나마 다들 숨은 쉬는 걸 확인하자 레오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잭스의 병상에 쓰러져 있는 베사리아와 소나를 보자 레오나의 표정은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 ‘실패’라는 글자가 그녀의 뇌리에서 점멸하고 있었다.

 “걱정 말게, 실패한 건 아니니까.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네.”

 맨드레이크가 안심하라는 듯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그들을 가리켰다. 자세히 보자 베사리아는 잭스의 왼손을, 소나는 잭스의 오른손을 잡고 쓰러져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세 개의 원을 기점으로 하는 황금빛의 마법진이 느릿하게 돌고 있었다.

 “…성공한 겁니까?”
 “일단은. 둘을 들여보내는 데까진 성공했네. 나머진 이제 콜민예 의원과 부벨르 양에게 달려있지. 물러나게. 여사제들도 옮기는 게 좋겠군. 괜히 마법진 잘못 건드렸다가 술식 꼬이면 그땐 정말 답도 없을 테니 말이야.”

 레오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여사제들을 한 명 한 명 옮기기 시작했다. 죄책감이 만만치 않았다. 자진해서 자신을 희생한 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여사제들을 옮길 동안 맨드레이크는 몸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마법진의 이곳저곳을 강화하고 있었다.

 “…정말 고생 많았네. 내, 콜민예 의원을 대신해 사과하지. 콜민예 의원의 행동은…이해해달라곤 하지 않겠네만, 너무 탓하진 말아 주게. 상처가 많은 사람이야.”
 “…….”
 레오나는 못 들은 척 여사제들을 간호하는 데만 열중했다. 지금 그 말에 답하기엔 그녀 자신도 너무 많은 감정에 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뒤늦은 눈물이 그녀의 두 볼을 타고 떨어졌다. 불안과 걱정, 약간의 희망과 두려움……. 그 모든 것이 섞인 눈물을 흘리며 레오나는 조용히 흐느꼈다. 강인한 솔라리의 전사도 결국 그 내면은 여린 소녀였다.

 등 뒤로 작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맨드레이크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법진을 점검하며 병상에 있는 세 명의 상태도 꼼꼼히 확인했다. 잭스의 몸에선 더 이상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지 않았지만, 베사리아의 왼손에는 아직도 푸른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맨드레이크는 침울한 기색으로 그녀의 왼손을 내려다봤다. 손 부분은 이미 재가 되어 부스러져 있었고, 불꽃은 팔꿈치 쪽을 삼킬 듯 널름거렸다. 그나마 잭스의 오른손을 꼭 잡은 채 깊이 잠들어 있는 소나의 표정이 편안하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정말 오만 사람 고생시키는구먼, 잭스.”
 그가 대체 몇 번인지도 모를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얼른 일어나게. 내 자네에게 욕이라도 한바탕 퍼부어주지 않으면 속이 안 풀릴 성 싶으니까.”
 짜증 반 걱정 반의 감정을 담아 맨드레이크는 말했다. 말하면서도 그는 마법진을 좀 더 튼튼하게 보수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달빛이 은은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아직 새벽은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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