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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40화

아이콘 강철안개 | 조회: 941 |

***

 “너, 너너 너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처음 소나를 맞이하는 것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어하는 에트왈의 목소리였다. 소나는 눈을 떴다.

 [아…….]

 당황하는 에트왈의 모습이 보여도, 은의 다리 너머로 타오르는 푸른 불길이 보여도 소나는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푸른 하늘을 향해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초원에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고,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새와 벌레 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질였다. 그녀는 다시 한 번 탄성을 내뱉다가 깜짝 놀라 입가에 손을 갖다 댔다.

 [말할 수 있어…?]

 “당연하지, 이 멍청아!” 에트왈이 꽥 소리를 질렀다. “여긴 니 마음속인데 니 목소리가 안 들리면 뭐가 들리겠냐? 제길, 막아, 아브릴!”

 라라라라…….

 쾅, 하며 다리 너머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야 소나는 상황의 심각성과 여기 온 목적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꿈틀거리던 불꽃은 낮게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다리 저편으로 사그라졌다.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 같기도 했고, 어딘가 먼 산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기도 했다. 

 “주인아아아아!”

 그때였다. 마차가 달려오는 기세로 누군가가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달려와 소나의 품에 엉겨 붙었다. 진한 녹색 머리칼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였다. 소녀는 그녀의 가슴팍에 마구 얼굴을 부비며 환성과 탄성을 질렀다. 생전 처음 보는 소녀였지만, 소나는 너무 익숙한 이 분위기에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브릴?]
 “응! 주인아, 와줘서 너무 기뻐! 봐봐! 바람노래도 기뻐해!”

 아브릴이 신이 나서 소리치자 부드러운 바람이 소나를 어루만지듯 불어왔다. 그것은 느낌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음색에 가까웠다. 가만가만 내려앉는 꽃잎처럼 고요했고, 햇살 비추는 시냇가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처럼 청명했다. 소나는 빙그레 웃으며 바람을 어루만졌다. 바람은 그녀의 손길을 즐기듯 소나의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다.

 “나 주인이 올 거라 믿었어! 그래서 열심히 막고 있었어! 잘했지? 칭찬해줘!” 
 [그래요, 아브릴. 잘 했어요. 고마워요. 절 믿어줘서.]
 “응! 난 주인을 믿어!”

 소나의 칭찬에 아브릴이 세상 다 가진 듯한 함박웃음을 지었다. 소나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에트왈은 웃지 않았다.

 “소나.”

 에트왈이 그녀를 부르자 소나의 얼굴에서 미소가 조금 사라졌다. 할 말이 많았다. 그것은 서로, 피차 마찬가지였다. 소나는 왜 에트왈이 자신과의 연결을 끊었는지 물어보고 싶었고, 에트왈은 소나가 왜 여기로 왔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둘 모두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지긋지긋한 평행선이었다.

 “네가 여기로 어떻게 왔는지 알아.” 에트왈이 차갑게 말했다. “이년 덕분이겠지, 안 그래?”
 [베사리아 님!]

 소나는 놀라 비명을 질렀다. 에트왈의 손짓에 따라 풀밭에서 떠오른 그것은, 은빛 줄로 꽁꽁 묶인 베사리아였다. 그녀는 몸을 마구 뒤틀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은빛 줄은 쇠줄처럼 감겨 있을 뿐이었다. 

 [에트왈, 베사리아 님을 풀어줘요, 지금 당장!]
 “이거 보면 볼수록 제대로 미쳤네. 세상에 저 불꽃을 지 몸에 옮겨 붙일 생각을 해? 그래서 저 빌어먹을 용병 놈이 이토록 끈덕지게 살아있었던 거구나? 그것도 모자라 내가 겨우 끊어 놓은 소나와의 연결까지 다시 복구하고……. 진짜 놀라운 집념이다.”
 [풀어달라고 했어요, 에트왈!]

 소나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브릴이 그녀의 눈치를 보며 슬슬 뒤로 물러났다. 소나와 에트왈을 번갈아 보는 그녀의 눈빛엔 불안과 공포가 반반씩 섞여 있었다.

 “당장 여기서 나가, 소나.” 에트왈이 슬쩍 베사리아의 목에 손을 대며 말했다. “안 그러면 얜 죽일 거야. 제 몸을 불태울 정도니 제 목숨 걸 각오 정도는 했겠지, 이 마녀야?” 
 [에트왈!]
 “마지막 경고야.”

 순간 소나의 안에서 뭔가 뚝하고 끊어졌다.

 [정말 지긋지긋해!] 

 …짧게. 침묵이 흘렀다.

 [지긋지긋해요! 당신 따윈 지긋지긋하다고요!]

 소나의 목소리가 광풍이 되어 초원에 몰아쳤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무와 풀들이 휘청거렸다. 무시무시한 바람이 그들을 강타했다. 그것은 바람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감정의 덩어리였다. 순수한 분노와 짜증으로 이뤄진 바람은 듣는 이를 섬뜩하게 할 정도로 날선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에트왈이 멍하니 소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소나에겐 에트왈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전 온실 속 화초가 아니에요! 그런 취급도 받고 싶지 않아요! 과보호 따위 지긋지긋해! 안 된다, 하지 마라, 그만 해라! 결정하는 건 나에요! 나란 말이에요!]
 “난, 나는…….”

 에트왈이 얼빠진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소나의 울분이 댐 터지듯 터져 나왔다. 그녀의 분노는 이 공간 전체를 울리는 목소리 이상으로 에트왈의 온몸을 훑고 지나가고 있었다.

 [뭐가 됐든 난 잭스 님을 구할 거예요. 그러니…더 이상 방해하지 말아요!]

 폭풍처럼 분노를 쏟아내고 소나는 숨을 할딱였다. 에트왈이 그녀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의 손은 어느새 힘없이 늘어져 있었고, 베사리아를 묶던 은빛 줄은 연기처럼 사라져 있었다. 털썩, 하고 베사리아가 풀밭 위로 떨어졌다. 목이 졸렸던 모양인지 그녀는 콜록거리며 거칠게 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러던 말던 에트왈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소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방해, 라고.”

 에트왈은 충격 받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나는 아차 했지만 이미 한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난 너를 그저 보호하고 싶을 뿐이었어.”
 […….]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어. 네 부름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 그때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 그러면 네가 이 상황에 처하지도 않았을 텐데. 지금쯤 푹신한 침대에서 잠에 빠져 있었을 텐데. 지금 이 시간도, 그저 평화로운 나날 중 하나였을 텐데.” 

 에트왈이 슬프게 말했다.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하면서, 그의 말 속에는 후회가 질척이는 진흙처럼 묻어 있었다.
 
 “그때 네 부탁을 들어주지 말았어야 했어. 이놈을 살리겠다고, 어떻게든 살려 보겠다고 봉인까지 풀고, 네 일상을 깨뜨릴 단초를 만들어 버렸어. 난 너를 지키고 싶은데…정말 무슨 짓을 해서든 지키고 싶은데, 너의 행복만을 빌 뿐인데……. 네 소원을 들어주면 네 안전을 지킬 수 없고, 네 안전을 지키려고 하면 네가 슬퍼해.”
 [에트왈…….]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에트왈이 꺼지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풀숲 위로 은빛 눈물 몇 방울이 떨어졌다. 

 “이제 지쳤어.”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에트왈은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에트왈!]

 깜짝 놀란 소나가 외쳤을 땐, 이미 에트왈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서 뭔가가 소나를 향해 부드럽게 날아왔다. 악기인 에트왈이 그녀의 앞으로 미끄러지듯 날아와 얌전히 떠있었다. 소나는 반사적으로 에트왈의 현을 퉁겼다. 딩, 하고 그녀가 익히 알던 부드러운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에트왈’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에트왈’을 불러내기 전, 그 전까지의 에트왈이었다. 소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뒤에 있던 아브릴을 돌아봤다.

 “관리자가 가버렸어. 깊이깊이 가버렸어.”
 [가버리다뇨? 어디로요?]

 “네 마음 깊은 곳으로. 슬퍼서 가버렸어. 나도 관리자가 널 너무 아낀다곤 생각했어. 하지만 그가 널 위하는 마음만큼은 정말 진심이었어.”

 소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래도 아직 그는 널 사랑해. 이거 봐, 자기 힘은 남기고 갔어. 에트왈의 도움은 받을 수 없겠지만 쓸 수는 있어. 주인, 우리가 도와줄게. 주인은 잭스를 구하면 행복해?”

 아브릴이 가만히 소나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오직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수함만이 담겨 있었다. 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회는 잠시 접어둘 때였다.

 […네.]
 “그럼 가자. 나랑 바람노래밖에 없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고마워요, 아브릴.]
 “난 주인이 좋아. 주인이 웃는 것도 좋아. 우는 건 싫어. 주인, 주인이 울면 여긴 비가 내려. 아주, 아주 슬픈 소리로 비가 내려. 관리자는 그것도 주인의 감정이라면서 받아들이지만, 나는 그 소리가 너무 싫어. 그러니까 난 주인이 행복해지도록 최선을 다할 거야.”

 아브릴은 그렇게 말하며 한 손을 지휘봉처럼 휘저었다. 상쾌한 선율이 그녀의 손에서 피어나더니 베사리아를 향해 날아갔다. 겨우 진정이 됐는지, 베사리아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괜찮으세요, 베사리아 님?]

 “소나, 당신의 내면은…콜록, 정말 개성적이네요. 싸우기도 하고요. 에트왈이라 부르던데 좀 전의 그…아이가 당신 악기의 정령 비슷한 건가 보네요?”

 베사리아가 미묘하게 호칭을 얼버무리며 말했다. 에트왈의 외모는 소나의 어린 시절과 비슷했지만, 중성적인 이미지가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갔다. 하긴 정령 비슷한 존재니 성별이란 개념 자체가 없을 수도 있었다.

 [네……. 하지만, 자신의 힘은 남겨두고 갔어요.]
 “좋아요. 어쨌든 지금은 잭스를 구하는 것만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우리가 여기 온 거니까요.”
 […네.]

 야박하리만치 냉랭한 말이었지만 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사리아의 감정을 들을 수 있는 그녀로서는 지금 베사리아의 마음속엔 잭스를 구한다는 생각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분명 뒤틀린 감정이었지만, 지금은 베사리아에게 꼭 필요한 원동력이었다.

 “안녕, 마녀야! 몸은 좀 어때?”
 “괜찮…은데 전 마녀가 아니라 마법사에요.”
 “그게 그거지! 주인을 데려다 줘서 고마워, 마녀야!”
 “…….” 

 베사리아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브릴 특유의 활기찬(그리고 직설적인) 모습에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베사리아 님, 그러니까 여기는, 아, 음……. 그러니까 아브릴은…….]
 “아, 괜찮아요. 설명할 필요 없어요. 당신 내면의 자아거나, 아니면 당신의 악기의 정령이거나 그런 거겠죠.”
 [와…바로 맞추시네요. 전 당황하실 줄 알았어요.]
 “당황하긴요. 제가 자아가 있는 물건 정도도 모르고 살았겠어요? 명색이 전쟁학회의 상임의원이라고요.”

 베사리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전쟁학회의 한 장이 자아가 있는 마법 물품 하나 본 적이 없지는 않을 테니.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은의 다리 저편을 바라봤다. 안개처럼 희뿌연 벽에 가려진 그 너머에는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소나 양이 잭스를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그와의 연결을 은으로 만든 다리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나 보군요?”
 […….]

 급박한 상황을 앞두고 있었지만, 소나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사리아는 그런 소나를 복잡한 감정이 담긴 미소로 바라보다 다시 다리 너머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

 “그럼 가죠.”
 [네.]

 소나도 표정을 굳히며 에트왈의 현을 튕겼다. 그녀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어느새 그녀의 어깨 위엔 녹색의 새 한 마리가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었고, 등 뒤엔 방실방실 웃는 소녀가 흐릿하게 떠있었다. 아브릴과 바람노래였다. 

 “그럼 열게! 주인아, 힘내!”

 아브릴이 손가락을 딱 튕기며 경쾌하게 말했다. 순간 안개의 벽이 걷히고 시퍼런 불꽃이 날름거리는 황야가 눈에 들어왔다. 베사리아 소나는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곤, 다리 너머를 향해 나아갔다.

 잭스가, 바로 저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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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정말 감하삽니다. 진짜 열심히 쓰고 있어요 ㅜ

Lv73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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