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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46화

아이콘 강철안개
댓글: 4 개
조회: 1396
2020-03-24 03:16:51


#. 데마시아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가 싶더니 잭스의 눈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다녀오셨습니까, 잭스 님.”
 “…….”

 …정말 몇 번을 봐도 낯선 풍경이었다.

 딱 봐도 지체 높은 귀족 집안의 메이드들이 나란히 허리를 굽히며 그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순간이동 관리국이야 이용객들이 귀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니(특히 데마시아는 더더욱) 그리 못 볼 풍경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 메이드들이 지체 높은 부벨르 공작가의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공작가의 메이드들이 누군가를 향해 일제히 허리를 굽히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보기 힘든 장면의 원인 되시는 잭스는 그에게 꽂히는 몇몇 시선을 무시하기 위해 정말 무진 애를 다 쓰고 있었다.

 “다, 다녀왔소.” 잭스가 애써 평정을 가장하며 말했다. “정말 수고들이 많으시구려. 그…….”
 “아가씨와 레오나 님이시라면 마차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

 그가 뭐라 말을 잇기도 전에 대여섯 명의 메이드들은 그의 뒤에 섰고, 한 명은 그의 앞에 서서 살짝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그가 실제로 하려던 말은 ‘수고가 정말 많긴 한데 그만 좀 해주면 안 되겠소?’였지만 그녀들의 움직임은 그의 말을 원천 봉쇄하고 있었다. 잭스는 우물쭈물하다 ‘이번에도’ 어쩌지 못하고 체념한 듯 발을 옮겼다. 한덩치 하는 용병 뒤로 고급스런 복장의 수행원이 뒤따르는 그 광경은 뭐랄까, 구리 반지에 다이아몬드를 박아놓은 것처럼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어쩌다 부벨르 가문으로부터 이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인가. 

 그 이유는 잭스가 예의 그 ‘협곡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움과 동시에 소나를 헌신적으로 보호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은 아니었으나 아주 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소문에 살이 붙어 별별 희한한 설정이 줄줄이 따라붙고 있었지만 그에게 그런 뜬소문 따윈 아무래도 좋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소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부벨르 공작가의 소나 부벨르가 그의 신원을 직접 보증했다는 사실이었다. 공작가의 영애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차고 넘칠 지경인데 음악가로서의 그녀의 명성이나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한다면 그녀의 보증은 신용도 백 프로의 백지수표와도 같았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가문의 하녀와 마차까지 빌려주는 것도 모자라 저택에서 머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그를 가문의 정식 손님으로 인정한다고 대놓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거기엔 ‘손님’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불편하게 하면 부벨르 가문과 재미없는 관계가 될 거라는 무언의 암시도 끼어 있었다. 

 요 몇 년, 아니 몇 십 년을 통틀어 봐도 공작가나 되는 곳쯤에서 이 정도로 극진하게 대접받는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잭스라는 용병에 대한 이야기는 며칠 동안 사람들의 입도마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어찌나 잭스에 대해 추측과 열기가 난무했던지 마찬가지로 솔라리 여사제단이 부벨르 저택에서 묵고 있다는 사실은 자연스레 묻힐 정도였다.

 이 파격적인 혜택 중에서 굳이 단점(?)을 꼽자면 부담스러울 정도로 메이드들이 따라다닌다는 점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남들이 보기엔 복에 겨워 배불러 터진 꼴이었다. 소나 부벨르가 워낙에 아름다워서 그렇지 그 휘하의 메이드들도 다들 상당한 미녀였으니 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생각만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걸 입 밖으로 내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네가 내 꼴이 되어 보라며 잭스의 울분 섞인 황동 가로등 강타를 맛봤어야 할 테니까.

 잭스는 마차에 다가가자마자 거의 도약하듯 안으로 들어갔다. 등 뒤로 안내해준 하녀의 따가운 시선이 꽂혔지만 그는 무시했다. 메이드들을 주렁주렁 거느리고 걷는 꼴을 그만둘 수만 있다면 그까짓 눈총이야 수백 번은 더 받을 수도 있었다. 그가 올라타자마자 마차는 미끄러지듯 출발했고, 난감함과 부끄러움으로 숨을 푹 내쉬는 그의 등 뒤에선 봄바람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디리리링

 -어서오세요, 잭스 님.
 소나가 물결처럼 에트왈의 현을 어루만지며 인사를 건넸고,
 “품위가 떨어지십니다, 루암.”
 레오나가 읽고 있던 책을 탁 덮으며 핀잔 겸 인사를 건넸다.

 단아한 하얀 사제복을 입고 있는 레오나와, 그에 맞춘 듯 수수한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소나의 모습은 햇빛을 받아 황홀하리만치 빛나고 있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발가벗고 있지만 않으면 뭘 입고 있든 상관없는 불세출의 남자 잭스는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출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안녕하시오, 두 분. 오늘도 볼거리를 제공해드려서 성은이 망극할 지경이외다.”
 -어머나, 볼거리라니 실례에요, 잭스 님. 당당하게 걸어오시는 모습이 위풍당당한 기사 같으셨는걸요.
 “맞습니다. 아주 멋지시더군요. 몸이 많이 회복되신 것 같아 기쁩니다, 루암.”

 두 아리따운 아가씨들은 잭스의 악의 없는 투덜거림을 멋지게 맞받아쳤다. 대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건지 레오나는 소나 특유의 수화도 다른 하녀의 별다른 통역 없이 술술 알아듣고 있었다. 처음에야 비슷한 또래라서 그런가보다 하고 별 생각 없이 넘어갔는데, 이게 점점 둘이서 자신을 가지고 노는 지경까지 오니 죽을 맛이었다. 그는 큼큼 헛기침을 하는 걸로 못내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나 소나와 레오나는 그런 잭스의 투덜거림도 즐기는 것처럼 느긋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
 “하지만 몸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다는 건 진심입니다. 움직이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완전히 나았으니 네 쪽이나 걱정하거라. 미스 부벨르도 마찬가지요.”
 -거짓말 하지 마세요, 잭스 님. 아직 몸 불편하신 거 알아요.

 소나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감정을 듣는 능력을 제외하고서라도 그녀의 귀는 매우 예민했다. 가끔씩 잭스가 낮게 침음성을 내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저희는 그냥 약간의 화상과 탈진이었지만 루암께선 불덩어리가 되었다 살아나셨습니다. 급이 다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다친 것도 전부…….”
 -잭스 님.
 “…아니, 크게 다치지들 않아서 다행이오.”

 소나가 경고의 의미로 그의 이름을 부르자 잭스는 못미더운 듯 말을 돌렸다. 그날 밤 이후로 소나는 그가 자기 탓으로 돌리는 말버릇이 튀어나오면 더 말을 못하게 제지하곤 했다. 분명 연약하기 그지없는 제지임에도 불구하고 잭스는 그녀를 당해내지 못했다. 소나는 그날 밤 내면세계에서 만났던 이후로 한없이 부드럽고 살갑다가도 이렇게 강철같이 단호해질 때가 있었다. 내면세계에서의 일은 잠깐 꿨던 꿈처럼 흐릿했지만 부분부분 기억나는 것만으로도 그의 얼굴을 벌겋게 하기엔 충분했다. 모두에게 목숨을 빚졌다. 특히 소나와 베사리아에겐 더욱 더.

 …베사리아, 그녀의 이름이 다시 떠오르자 잭스는 저도 모르게 슬며시 손을 그러쥐었다.

 “상태는 좀 어떠셨습니까?”
 “맨드레이크 말이더냐?” 베사리아를 애써 지우기라도 하려는 듯, 약간 과장스러울 정도로 퉁명스런 목소리가 그의 가면에서 흘러나왔다. “협곡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겠다고 이를 득득 갈더구나. 거기에 남 괴롭힐 정신까지 있는 모양이니 아마 살아도 백 년은 더 살 정도로 건강해졌을 게다.”
 “…콜민예 의원님 말입니다.”
 “…….”

 잠깐 정적이 돌았다. 잭스는 아픈 곳을 찔린 느낌이었다.

 베사리아 얘기는 가능하면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보면 이 둘은 베사리아의 마음속 상처를 여과 없이 본 사이 아니던가. 그래서 일부러 베사리아가 필트오버 쪽으로 이송되었단 얘기도 하지 않았고, 이 둘과 같이 있을 땐 그쪽에 대한 얘기도 최대한 피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별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말투로 봐서 베사리아에 대한 건 다 알고 있는 듯 했으니 말이다.

 “루암께서 일부러 말씀 안 하시기에 저도 나중에 여쭤보려 했습니다만, 계속 그렇게 불안해하시면 싫어도 알게 됩니다.” 
 “불안해하다니, 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진 몰라도 옆에서 보기엔 그렇습니다.”

 레오나는 걱정 반 미안함 반이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레오나를 잠깐 멍하니 보다가 문득 팔뚝에 와닿는 부드러운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소나가 가만히 그의 팔뚝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예의 그 단호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베사리아 님이 긴급 이송되었단 소식을 듣고 너무 걱정스러웠어요. 게다가 잭스 님, 계속 간호하러 가셨잖아요. 낮에는 계속 여기저기 다니시고, 밤에는 슬쩍 아무 말도 없이 나가시고……. 그러다 또 몸 상하실까봐 정말 걱정했어요.
 “…….”

 …진짜 별 소용이 없었던 모양인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머쓱하리만큼 낱낱이 드러나 있었다. 유감스러운 건 이 둘의 말이 전부 맞다는 점이었다. 잭스는 고민하다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늘 정신을 차렸소. 팔도 마법 공학 의수로 붙였고. 아마 요양만 좀 하면 일상엔 지장 없을 거요.”
 “그라티 아드 솔리스(‘태양께 축복을’이라는 의미의 솔라리 고어). 정말 다행입니다, 루암.”

 레오나는 기도문을 읊으며 가슴을 쓸어내렸고, 소나는 차분한 느낌으로 에트왈을 뜯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의 표정에도 깊은 안도가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대들도 봤겠지만…베사리아는 상처가 너무 많은 사람이오. 그것 때문에 늘 미안한데…정말 오래 묵은 흉터를 지우는 게 쉽지가 않구려.” 잭스는 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다음엔 절대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겠소. 내 약속…컥!.”
 -잭스 님. 두 번째에요.

 소나가 그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으스스하게 말했다. 과연 여자는 웃는 얼굴이 무섭다더니 소나는 분노의 미소를 띤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희들에게 약속해야 하는 건 저희들을 휘말리지 않겠다고 하시는 게 아니라, 무리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아시겠죠?
 “아, 알겠소.”
 -정말이죠?

 소나의 눈매가 한층 가늘어지자 잭스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기세도 기세였지만 꼬집힌 허벅지가 무진장 아팠기 때문이었다. 소나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뿜어져 나오는 이 괴력은 그에게 있어 영원히 풀지 못할 미지의 세계였다. 그런 그를 보며 소나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선 꼬집던 손을 땠다.

 -전 잭스 님의 그런 모습, 다신 보기 싫어요.
 “…….”
 -상처 입는 게 익숙하다고 해서 상처가 아프지 않다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그런 일이 있을 땐 도와달라고 하면 돼요. 참는 게 아니라.

 도와달라고 하라, 인가. 소나의 걱정은 알지만, 그 말만큼 잭스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도 없었다. 

 생애 딱 한 번, 남에게 도와달라고 했고,
 생애 딱 한 번,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겼다.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 세월 속에 잊고 있었던 그 상처를, 그가 도움을 청했던 사람의 모습을 그는 불과 몇 시간 전에 목도했다. 소나가 그를 위하면 위할수록, 주변에서 그를 아껴주는 사람이 있으면 있을수록, 언제나 그 광경의 끝에는 베사리아가 겹쳤다. 그 역시 헤어 나오기 힘든 과거를 안고 있었다. 

 쉽게 열리지 않는 마음의 문을, 소나는 다시 한 번 상냥하게 두드렸다.

 -언젠가 당신이 제게 기댈 수 있도록, 제가 노력할게요. 그치만 잭스 님은 상냥하고 여린 분이신 걸요.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요. 꼭 커다란 아기 곰 같아서.

 세상에 잭스를 보고 ‘상냥하고 여리다’라든가 ‘커다란 아기 곰’이라든가 하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소나밖에 없을 터였다. 잭스는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고,

 “기대하겠소.”

 진심을 담아서 그렇게 말했다. 소나가 웃었다. 그 미소는 봄날에 핀 크로커스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던 레오나는 소나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칭찬했다.

 “잘 하셨습니다, 소나 양. 보는 제가 다 속이 시원하군요. 질투가 날 정도로요.” 레오나가 놀리는 눈빛으로 잭스를 보며 말했다. “봄날이군요, 루암. 그렇지 않습니까?”
 “무슨 미스 부벨르의 말이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소나가 귀까지 빨개지며 시선을 돌렸지만 잭스는 애써 평정을 가장하며 말했다. 사실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그의 얼굴도 소나 못지않게 빨개져 있을 터였다.
 “들리지도 않지만 들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루암. 무리하지 말아달라고 했겠죠. 그 외의 말도 했겠지만, 그런 낯간지러운 말까지 추측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정답이었다. 잭스는 진심으로 레오나가 무슨 독심술이라도 연마하고 있나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것보다 일정 쪽도 신경 쓰셔야 할 겁니다. 내일은 자르반 왕세자와 만나는 날이니까요. 청문회라 해도 장소를 용기의 전당 쪽으로 잡은 걸로 봐선 루암을 이번 사건의 진짜 용의자로 보는 것 같진 않습니다. 아니, 조언을 구한다는 쪽에 가깝겠군요.”

 레오나가 작은 책을 다시 펼치며 말했다. 시집이라도 읽는 줄 알았더니 일정이 적힌 수첩인 모양이었다. 왠지 모르게 ‘관리’당하는 것만 같은 기묘한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이번엔 소나가 반대편에서 싱긋 웃으며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옷도 맞추셔야 해요. 잭스 님은 체구가 좋으시니까 분명 아주 멋질 거예요!
 “옷?” 잭스가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무슨 옷 말이오?”
 -그야 연회에서 입을 정장이죠. 설마 그 차림으로 참석하실 생각은 아니시죠, 잭스 님? 

 소나는 로브 자락을 슬쩍 들어 보이며 말했다. 관리가 비교적 잘 되어 있긴 했지만 세월의 여파로 여기저기 찢어지고 바랜 그것은 빈말로라도 고급진 장소에 어울릴 차림새는 아니었다.

 “연회라니? 미스 부벨르, 그런 말은 없었잖소.”

 그러나 그는 생각지도 않던 소나의 깜짝 발언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하긴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부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소나는 그가 당황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머, 어머닐 만나 뵙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거기다 내일 레오나 님과 사제분들께서 돌아가신다는데 어떻게 아무 것도 안할 수 있겠어요. 다들 힘쓰고 있으니까, 저희도 거기에 지지 않도록 잘 꾸며야 해요. 물론 잭스 님도요!

 기분 탓일까, 소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꼭 그를 놀리는 것만 같이 들렸다. 세상에, 연회라니. 그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어떻게든 핑계를 찾아내려 애를 썼다.

 “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음식 안 먹소.”
 -얼굴 때문에 그러시죠? 걱정 마세요, 제가 다 대책을 세워뒀으니까요!

 걱정 따윈 조금도 안했는데. 잭스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는 소나의 모습이 사랑스러워서는 아니었고 연회에 대한 기대감 따위는 더더욱 당연히 아니었다. 그의 의사 따윈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이 상황에 기가 막혀서였다. 싸울 땐 비상하게 굴러가는 머리가 이럴 땐 조금의 쓸모도 없었다. 

 때마침 그를 놀리듯 때마침 마차가 멈춰 섰고, 메이드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아가씨, 아드리아나 부티크입니다.”

 마차 문이 열리자 입이 쩍 벌어질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고급스러운 붉은 융단이 좍 펼쳐져 있는 것만 해도 숨이 다 막힐 지경인데 대체 어디서 어떻게 등장했는데 아까의 그 메이드들이 가지런히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으어어어어.’ 

 잭스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씨알도 안 먹힐 시도였다. 레오나와 소나의 손에 이끌려 마차에서 내리는 그의 모습은 거의 살기를 체념한 사형수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자존심 따윈 개나 주라지. 그는 최후의 몸부림을 쳤다.

 “…난 이런 데 올만한 돈 없소, 미스 부벨르.”
 “루암, 안 보이십니까? 여기 부벨르 가문 겁니다.”

 소나가 뭐라 하기도 전에 레오나의 한심해하는 목소리가 그의 고개를 들게 했다. 정말이었다. 아드 뭐시기라고 한 건물 외벽엔 부벨르 가문의 하프 문양이 떡하니 걸려 있었다. 잭스는 끼기긱 기계음이 들릴 것만 같이 고개를 돌려 소나를 바라봤다. 소나는 순수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의 기분과는 달리 참으로 좋은 날씨였다.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화려한 두 아가씨,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꾀죄죄한 용병.

 “루암께 어떤 옷이 맞으실지 정말 기대되는군요.”
 -갈아입혀드리는 재미가…아니 보람이 있을 것 같아요.
 “…….”

 사형 선고같은 두 아가씨의 화사한 웃음소리와 함께, 부티크의 문은 그의 등 뒤에서 닫혔다.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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