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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48화

아이콘 강철안개 | 댓글: 4 개 | 조회: 859 |
***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둥근 달빛 아래서 딱 좋게 불어오는, 부드러운 미풍. 잘 가꿔진 정원 사이사이에는 으름덩굴 아래로 작은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간간히 풀벌레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속삭이는 것처럼, 작은 그 노래는 정원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멋진 밤이었다. 이대로 정원을 따라 죽 산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잭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여기 온 목적을 생각하면 그럴 수야 없겠지만 말이다.

 “흠.”

 귀족들의 정원과 연이라곤 개미 눈알만큼도 없는 잭스였지만, 부벨르 저택의 뜰은 그의 아둔한 심미안으로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들어진 곳이었다. 단순히 화려하단 의미가 아니라, 한 마리 백조가 잔잔한 수면 위에 떠있는 것처럼 단아하다는 의미였다. 정원이 그 주인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면……. 낯부끄러운 말이지만, 꼭 소나처럼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잭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정원은 마음에 드세요, 잭스 님? 

 잔잔한 울림이 그의 귀를 간질였다. 그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보는 소나의 눈동자엔 애정이 가득했다. 에스코트라 했던가. ‘설마 신사가 여성을 따로 떼어놓고 가시진 않겠죠, 잭스 님?’이라는 핀잔에 그는 한쪽 팔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고, 그 팔엔 소나가 가만히 손을 두르고 있었다. 

 잭스는 자신의 통나무처럼 굵은 팔과 그녀의 가녀린 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소나는 그의 팔이 마음에 드는지 팔뚝을 조심스레 만지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잭스는 그 약하지만 신경이 곤두설 것만 같은 손길과, 그녀에게서 아스라이 느껴지는 기분 좋은 향기에 맘을 뺏기지 않으려 상당히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너무나도.

 옅은 유리색의 드레스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녀의 차림새는 자극적이면서도 동시에 한 떨기 꽃처럼 단아했다. 훤히 드러난 어깨를 얇은 비단이 감싸 안고 있었고, 쇄골의 곡선을 따라 조금만 시선을 올리면 희게 빛나는 목덜미가 보였다. 대리석 조각상만큼이나 유려한 곡선, 투명하고 흰 피부, 그리고 사슴처럼 순진무구한 눈동자. 만지기조차 미안할 정도로 눈부신 그 모습에 잭스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잭스 님?
 “아, 정말 멋진 곳이오.” 소나의 부름에 움찔 놀란 잭스가 말했다. “뭐라 정말 멋지단 말을 해주고 싶은데……. 마땅히 말이 떠오르질 않는구려. 미안하오, 미스 부벨르.”
 -예쁘다고 느끼시면 그걸로 충분해요. 보기 좋으라고 가꾸는 거니까요.

 잭스는 자기 대답이 아주 형편없다고 느꼈지만 소나에겐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으니 뭐라 말해도…가 아니라, 그녀 입장에선 구질구질한 미사여구나 읊는 귀족들보다 솔직담백한 진심이 담긴 잭스의 대답이 훨씬 취향이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 아마 오늘 밤 내내, 이 미소가 지워지긴 어려울 것 같은 예감 드는 소나였다.

 “자리를 피해드릴까요, 루암?”

 반대쪽 팔을 슬쩍 잡아당겨지며, 그쪽에서 장난 반 투정 반이 섞인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때렸다. 레오나였다. 소나가 그의 한쪽 팔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 역시 당연하다는 듯 한쪽 팔을 차지하고 있었다. 

 “미, 미안하구나.”
 “괜찮습니다. 저야 뭐 소나 양처럼 드레스를 입은 것도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토라진 모양이었다. 하긴 옆에서 염장을 질러대는 모양새가 맘에 들지 않는 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대놓고 무시하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대신 머리는 정말 예쁘게 꾸몄구나.”
 “칭찬해주실 점이 하나 더 있지 않으십니까, 루암?”
 “…좋은 향기도 나는구나.”

 엄청 변태처럼 들릴 것 같아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던 건데. 잭스가 그 말까지 하자 비로소 기분이 풀린 듯 레오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소나가 옆에서 수화로 말을 걸었다. 레오나를 따로 떼어 놓게 되어 미안했던 모양인지 그녀의 얼굴은 조금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허나 그 연분홍빛 감정이 비단 미안함 때문만은 아니리라.

 [사제님들은 전부 드레스를 못 입으시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일단 명목상 저희는 의료 봉사 활동으로 밖에 나온 형태입니다. 너무 튀는 짓을 할 순 없습니다. 사실 연회에 참석하는 것도 꽤 모험이긴 합니다만…….” 레오나가 살짝 윙크를 하며 속삭였다. “그 정도 일탈은 저희들끼리의 비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물론이죠!]

 소나가 해맑게 웃으며 잭스의 팔에 매달렸다. 레오나도 만족스러운 듯 그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양손의 꽃이고, 남들이 본다면 피눈물을 흘리며 부러워할 상황이지만 잭스는 오만 인내심을 모조리 짜내야만 했다. 양 옆의 여인들이 엄청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무서운 존재가 저쪽에서 떡하니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소나!”

 레스타라 부인의 외침이 창처럼 날아왔다. 굳이 잴 필요도 없이 엄청난 적의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긴 부인 입장에선 지금 잭스만 봐도 없던 고혈압이 생길 지경인데 레오나에 소나까지 그의 양팔에 매달려 있는 꼴을 봤으니 뭐 하나 날아오지만 않은 것도 용한 일이었다. 부인의 엄청난 분노를 그대로 들은 소나는 재빨리 부인 곁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지금 어머니를 거슬러서 좋을 거 하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잭스라고 합니다, 부인. 오늘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레오나입니다. 마지막까지 융숭한 환대,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잭스가 허리를 숙이자 레오나도 살짝 사제복의 자락을 들며 인사를 했다. 사실 레오나의 행동은 계산된 바였다. 레오나가 뒤이어 인사했는데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녀까지 불청객 취급하는 형국이니 모양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 정도 얕은 술수를 모를 레스타라 부인이 아니었지만, 일단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물론 잭스가 맘에 들었다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제 한 몸 바쳐 잭스를 감싸주려 하는 레오나의 헌신이 갸륵해서였다.

 “두 분 모두 환영합니다. 안쪽에 연회가 마련되어 있으니 우선 음식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엠마? 안내해드리도록 하세요.”
 “네, 부인.”

 아주 자연스럽게 잭스와 레오나는 연회장으로 발길을 옮겨야만 했다. 레오나마저도 여기서 더 토를 달 순 없었다. 잭스는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지금 그의 기분으로는 물 한 잔 먹어도 체할 것 같았다.

 점점 멀어지는 잭스를 보며 소나는 울상을 지었다. 그야 어머니가 분노가 여과 없이 들려오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굳이 그게 아니라도 하녀장의 이름을 대놓고 부를 땐 어머니가 화가 났을 때뿐이란 걸 소나가 모를 리 없었다.

 “얘기 좀 하자꾸나, 소나야.” 부인이 소나를 산울타리 쪽으로 잡아끌며 말했다. “일단 차림새부터 짚고 넘어가야겠구나. 저 우스꽝스러운 꼴은 대체 뭐니?”
 [우스꽝스럽다뇨?]

 소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수화로 되물었다. 레오나를 뜻하는 건 아닐 테고, 정황상 잭스밖에 없을 텐데 그녀의 눈엔 잭스의 모습에서 흠잡을 데가 전혀 없었다. 아니, 장장 5시간을 들여 맞춘 최고급에 최신 유행을 가미한 정장을 입은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멋졌다. 게다가 그 단단한 팔뚝……. 정장 너머로 느껴졌던 그 촉감을 떠올리기만 해도 소나의 얼굴은 자연스레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레스타라 부인의 얼굴도 자연스레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유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옷차림을 말하는 게 아니란다.” 부인이 가까스로 분노를 참아내며 말했다. “머리에 그, 그…….”
 [투구 말씀하시는 거죠? 그거 제 생각이에요!]

 소나가 ‘난 또 뭐라고’ 식의 태도로 방실방실 웃자 레스타라 부인은 맥이 탁 풀리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소나 딴엔 저 ‘꼴’을 나름대로 회심의 역작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객관적으로 보면 옷차림은 나쁘지 않았다. 예의도 나름대로 갖추려 하고 있고, 가식도 없는 것 같고.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적어도 레스타라 부인이 지금껏 세월을 살아오면서 만나 본 사람들 중엔 그 누구도,

 “양복 위에 투구를 쓰는 사람은 없단다, 소나야.”

 연회에 올 때 머리를 다 가리는 투구를 쓰고 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게 아무리 괴짜라 해도 말이다.

 [하지만 머리를 가리면서 음식도 드실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떠오르질 않아서요……. 잭스 님은 남에게 머리를 보이실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넌 저 꼴이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단 말이니? 이거 사제님들께 망신살이 뻗쳐도 단단히 뻗치겠…….”

 -와, 아쉬로(귀한 손님이라는 뜻의 솔라리 고어, 솔라리와 친분이 있는 외부인에게 쓸 수 있는 극존칭에 해당한다) 잭스! 어서오세요! 
 -신세 진 게 많은데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려서 미안합니다, 여러분. 

 구나, 라는 레스타라 부인의 뒷말은 이어질 수가 없었다. 대여섯명의 여사제들이 잭스에게 우르르 달려드는 모습은 뭐랄까, 장관이었다.

 -아쉬로, 몸은 좀 괜찮으신지요? 저희들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특히 저 역시……. 
 -아이리스 자매, 떨어지십시오.

 그중에선 평퍼짐한 사제복으로도 안 가려지는 풍만한 몸으로 대놓고 유혹하다 레오나에게 뒷목 잡히는 여사제들도 있었고,

 -우와, 정장이 엄청 멋지세요! 투구도! 투구는 혹시 레오나 자매님께서 고르신 건가요?
 -제가 안 골랐습니다. 소나 양이 고르셨죠.
 -어쩜! 역시 부벨르 가문 분은 뭔가 달라도 다르군요! 앗, 그럼 저희들과 식사 하실 수 있는 거죠? 어서 이리로 오세요!
 -아니, 그…….
 -여기 앉으시죠, 루암.

 그저 잭스가 자기들하고 식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순진무구한 여사제들도 있었다. 레스타라 부인은 없던 편두통마저 생긴 것처럼 머리가 띵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일부러 다른 손님들 핑계까지 댔는데 웬걸, 저 여사제들은 잭스의 그런 모습이 너무 익숙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슬쩍 보니 잭스를 상석에 앉힌 뒤 다른 하녀들을 제치고 자청해서 음식까지 날라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하녀들이나 하인들의 얼굴엔 벙찐 표정이 지워지질 않았다. 그건 하녀장도 그랬고, 레스타라 부인도 그랬다. 오죽하면 하녀장이 설명과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겠는가. 

 레스타라 부인은 가치관의 혼동을 사력을 다해 억눌러야만 했다. 이거 돌아가는 모양이 어째 자기나 사용인들이 비정상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
 [보세요, 다들 멋지다고 하시잖아요.]

 소나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움직였다. 하긴 잭스에게 익숙한 여사제들이나 마찬가지로 잭스에게 익숙한(그리고 콩깍지까지 씌워진) 소나에게 저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리는 없었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남들 앞에서 얼굴을 보이려 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식사도 어지간하면 혼자 한다는 괴벽을 모를 리 없을 테니까…….

 더욱이 잭스와 솔라리의 관계까지 고려한다면, 지금 여사제들 입장에선 그가 자기들이랑 같이 식사한다는 것만으로도 흥분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솔라리에선 강한 전사의 시중을 드는 게 여사제들에게 있어 일종의 로망이었으니 말이다. 하긴 그가 솔라리에 머물 때마다 그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경쟁이 있을 정돈데, 식사까지 같이 할 기회라니! 여사제들 입장에선 아마 오늘이 태양신의 축복을 무더기로 받은 날처럼 느껴질 터였다. 

 그걸 바라보는 소나의 표정은 참으로 복잡미묘했다. 일단 맘에 드는 분이 다른 여성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까진 좋은데, 뭔가 마음 한 구석에선 질투라는 검은 감정이 부글부글 끓는 그런 표정이었다. 이미 자기 어머니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그게 어찌나 충격이었는지 레스타라 부인은 마음속에 쇳덩이가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저 연주하러 갈게요.]

 소나는 레스타라 부인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손을 뻗어 에트왈을 부르더니, 그대로 둥실둥실 떠서 연회장으로 가버렸다. 아니 아마 뭐라 말해도 못 들은 척 하거나 정말 못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떠나기 직전 봤던 딸의 얼굴엔 분명 질투하는, 그리고 사랑을 하는 소녀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새 그녀 곁으로 다가온 하녀장이 가만히 위로의 말을 건냈다.

 “부인, 아무래도 저희가 진 것 같습니다.”
 “아직 연회 안 끝났습니다, 엠마. 전 아직 그와 얘기도 나눠보지 않았어요.”
 “얘기고 자시고, 아가씨의 저 태도로 봐선 아마…….”
 “헛소리 말고 이따 기회 봐서 저랑 독대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내, 저 사람의 결점을 찾아내고야 말겠습니다.”
 “아가씨가 꼭 같이 얘기하겠다고 하실 텐데요.”
 “그럼 저 아이 몰래 데려오세요!”

 레스타라 부인은 씩씩거리면서도 우아하게 연회장으로 걸어갔다. 어쨌든 모두를 초대한 당사자가 인사도 없으면 안 될 테니 말이었다. 일단 그 뒤를 따라가는 하녀장이었지만, 가만히 한숨이 나오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부인, 저 상황에서 어떻게 아가씨 몰래 데리고 오란 말입니까?’

 하녀장은 그 말을 한숨에 흘려 보내야만 했다. 지엄하신 공작 부인의 명령 아니던가. 오랜 세월 지내며 친구처럼 지낸다 했어도 계급은 계급이었다. 결국 이 골치 아픈 명령에 대한 짜증은 자연스럽게 가장 만만한 상대, 잭스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한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평가가 곤두박칠치기 시작하는 잭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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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먹고 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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