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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66화

아이콘 강철안개
댓글: 1 개
조회: 2333
2020-10-01 17:36:16

 물론 잭스는 자기 꼴이 우스꽝스럽건 뭐건 간에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릴 뿐이었다. 그의 속은 혹시나 저 모퉁이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면 어쩔까 바짝바짝 말라만 가고 있었다. 그런 잭스를 소나는 여유로우면서도 애정 어린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그녀는 그 뛰어난 귀로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상태였다. 

 그녀는 즐기고 있었다.

 -이럴 때 너무 귀여운 거 아세요, 잭스 님?
 “…나보고 귀엽다는 사람은 그대밖에 없을 거요.”
 -후후, 칭찬이라고 생각할게요.
 “큼.”

 결국 잭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날 밤 말하지 않았소. 그것도 잊었다고 할 셈이오?”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걸요. 심지어 그날 밤 들려왔던 티티새 소리까지도요.
 “…….”

 눈을 반짝이는 걸 보니 그냥 하는 소린 아닌 것 같고 정말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감수성이 남다르다 해야 할까, 아니면 청각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당연히 그는 그날 밤 티티새인지 뭔지 하는 새의 소리가 들렸는지 뻐꾸기 소리가 들렸는지 기억조차 못하고 있었다. 끽해야 벌레 소리 정도만 그가 기억하는 배경음 전부였다. 하긴 그까짓 새소리가 중요하겠는가? 그에겐 소나와의 입맞춤 쪽이 백만 배는 더 강렬한 기억이었다. 어이가 없어 멍청히 서 있는 잭스는 눈앞에 두고 소나는 그의 손등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잭스 님은 제게 무척 소중한 분이세요. 특별한 분이기도 하고요. 
 “…고맙소.”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해진답니다. 잭스 님은 누구에게나 다정하시니까, 금방 다른 분들을 따라가 버리실 것 같아요.
 “그건 레오나가 농담으로 한 말 아니오.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지금도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른 분 얘기가 나오잖아요. 
 “…….”

 가볍게 넘기려 했지만 소나가 쓴웃음을 짓자 난감해지는 잭스였다. 아무래도 이 상황에서 레오나 얘길 꺼낸 건 좋은 선택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기적이란 건 알아요. 조금, 비겁하다는 것도 알고요. 
 “…내 미적지근한 태도 때문에 불안한 거라면 사과하리다. 하지만 어줍잖은 생각으로 그대 곁에 있는 건 아니라오.”
 -알아요, 잭스 님께서 저에 대해 많이 생각하시고 또 고민해주시고 있다는 거. 그게 한편으론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요. 

 소나는 여전히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올려다봤지만 잭스는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늙은 개는 제 버릇 못 고친다고 했던가. 그렇게 교정(?) 작업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자기를 좀 저평가하는 구석이 있었다.

 “소나, 몇 번이고 말했지만 난 그대가 그렇게 저자세로 나올 정도로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오.”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잭스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날 비하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서 그렇다는 거요. 그대처럼 기품 있고, 험, 그리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주눅이 들 이유가 뭐가 있겠소?”
 -흥, 그 ‘기품 있고 아름다운 아가씨들’에게서 탄원서를 가장한 러브레터를 한 무더기나 받으셨잖아요. 그런 걸 보고 불안해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심지어 보물 상자까지 받으셨으면서!
 “그게 불편하다면 다 돌려보내겠소. 보물도 그대에게 드리리다.”
 -필요 없어요!

 소나는 딱 잘라 말하며 으르렁거렸다. 속으로 참 눈치 없는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잭스가 보물 상자를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금박 입힌 솔라리의 탄원서에 언제 아는 사이가 된 건지도 모르겠는 로렌트 가문에서의 탄원서, 저 멀리 아이오니아에서부터 온 탄원서, 인어라는 들어볼까 말까한 종족에게서 온 뇌물까지 전부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단순히 아는 사이니까 그 정도는 보낼 수 있지 않냐고? 적어도 이 잭스라는 남자에 한해서만큼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잭스는 인간관계는 좁으나 한번 이은 인연을 깊게 생각하는 스타일이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 탄원서들을 단순한 호의의 표시로만 보는 건 지나친 낙관주의적 사고방식이었다. 세상에 어느 사람들이 그냥 아는 사이랍시고 금박 입힌 탄원서를 보내겠는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눈앞의 이 남자가 여자만 보면 헬렐레하는 난봉꾼이나 그에 준할 정도로 행실이 안 좋았다면 그나마 이해라도 갔을 터였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뭔가. 레오나나 베사리아야 두세 발짝 양보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나 경쟁자가 많았다니. 심지어 소나에겐 그 경쟁자들 중에서 스스로가 우세하다고 생각할 만한 거리도 딱히 없었다. 그녀가 불안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런 그녀 맘을 몰라도 너무 몰라 줬다! 

 소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터져 나올 듯 물기가 그렁그렁 잡혀 있었다. 각오한 바였다. 그래도 그녀는 이런 사소한 일에 불안해하는 자기 모습이 너무 싫었다.

 “소나.”
 -꺅?!

 갑자기 어깨에 느껴지는 강인한 손길에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잭스의 억센 손길에 놀란 탓도 있었지만 그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볼레로 춤곡의 작은북처럼 통통 뛰기 시작했다. 정말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랑에 빠진 게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소나, 그대에게 애매하게 거리를 두고 있는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오. 그거에 대해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소.”

 잭스가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하자 소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녀는 잭스의 목소리와 숨소리, 가까이서 느껴지는 그의 깊은 심장 소리에 반쯤 홀려 있어서 아마 잭스가 무슨 말을 해도 고개를 끄덕였을 터였다.

 “하지만 내 분명히 말하건대, 만약 그대를 다른 사람들처럼 대했다면 이렇게 우스운 핑계 따윌 대가며 그대 곁에 있으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요.” 스스로 말하고도 한심스러운지, 잭스는 푹 한숨을 쉬었다. “지금도 그렇소. 분명히 레스타라 부인에게 그대와 만나지 말라고 한소리 단단히 들었는데도 여전히 그대를 만나고 있지 않소.”
 -그야, 마침 베사리아 님이 저도 같이 불렀고, 또 잭스 님이 오늘 마침 떠나신다니까 배웅 겸 해서 나온 것뿐이에요. 제가 선택한 거예요. 그러니 잭스 님 잘못이 아니에요.
 “그래, 그렇게 그대가 말해줄 거라 생각했소. 결국 난 그대에 대한 마음 때문에 그대의 상냥함을 핑계로 대고 있는 거지, 하하.”
 -그게 나쁜 건가요?

 허탈하게 웃던 잭스가 뚝 멈췄다. 소나는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은 그의 손을 가만히 만지며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야 비겁하지 않소. 그대의 감정을 이용하는 건데.”
 -그렇게 따지면 저도 비겁한 걸요. 잭스 님의 상냥하신 점을 매번 이용하니까요. 후후, 잭스 님의 곤란한 표정은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얼굴도 안 보일 텐데 표정은 무슨.”
 -어머, 제가 말씀 안 드렸어요? 전 귀로 세상을 본답니다. 잭스 님의 숨결, 목소리, 심장 소리, 움직이는 소리……. 그 모든 게 제겐 잭스 님의 표정이에요.

 그러면서 소나는 그의 양손을 마주 잡아 귀중한 물건 다루듯 가슴에 품었다. 그러고선 발그스름하게 물든 얼굴로 가만히 속삭였다.

 -지금도, 가면이 달아오를 정도로 얼굴을 붉히고 계시잖아요.
 “아니, 그, 손이…….”

 잭스는 소나의 비단결 같은 살결에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면서도 황급히 손을 빼려 했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부드럽게, 하지만 단단히 품에 안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가슴팍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작은북 같은 고동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잭스 님도 들리시죠? 제 소리가. 이 고동이 멈추지 않는 한 저는 계속해서 질투하고, 불안해하고, 그리고 잭스 님을 사랑할 거예요.

 지금껏 여러 번 말한 단어였지만, 이 ‘사랑’이라는 단어는 말할 때마다 소나의 가슴을 새롭게 울렸다. 콘트라베이스처럼 묵직한 잭스의 목소리가 등을 타고 찌르르 울리는 듯했다. 

 잭스는 뭔가를 말할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의 목소리가 간신히 입술을 비집고 나온 건 손이 겨우 소나의 품에서 떨어졌을 때였다.

 “소나, 그럼 내 어리광 하나만 받아주겠소?”
 -얼마든지요, 잭스 님.

 그러자 잭스는 소나의 한쪽 손을 조심스레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소나의 얼굴에 놀라움이 퍼져나갔다. 잭스 쪽에서 그녀 손을 잡아준 건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소나의 손을 잡은 채로 가면을 벗었다. 가면 사이로 푸른 안개가 새어 나왔다. 소나는 그가 자신의 손을 잡아줬다는 사실에 한번 놀랐고, 그가 이렇게 밖에서 스스럼없이 가면을 벗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그렇게 그는 그녀의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

 침묵이 흘렀다. 달콤한 침묵이었다. 소나는 손을 타고 느껴지는 그의 아스라한 입술에, 숨결에, 그리고 거칠고 투박한 손길에 취한 듯 멍하기만 했다. 

 “소나.” 그가 그녀의 손을 놓아주며 조용히 말했다. “참고 있는 건 그대만이 아니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소.”
 -아, 음, 저기…….
 “이걸로 아까의 대답을 대신할 수 있겠소?”
 -네…….

 소나는 멍하니 중얼거리며 손을 끌어안았다. 잭스는 이미 가면을 고쳐 쓴지 오래였지만, 소나는 아직도 손에 그의 감촉이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왜 하필 손바닥일까. 손등도 아니고. 의외성을 노린 걸까? 소나는 분홍색 부끄러운 마음만큼이나 호기심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잭스 님, 그런데 왜 손바닥에 그 이, 입맞춤을 해주신 건가요?
 “귀족들 인사치레라고 곁귀로 들은 적이 있어서 그래 봤는데……. 그, 내가 혹시 뭐 잘못했소?”
 -풉.

 세상에, 소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꾹 앙다물어야 했다. 잠깐이나마 호기심을 가졌던 자기가 너무 바보 같이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잭스가 이 이상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매사에 진지한 게, 심지어 실수할 때마저도 진지한 게 바로 그의 매력적인 면이었다.

 -풉, 후후, 어머, 정말 잭스 님……. 너무 귀여우세요.
 “실수한 모양이군.”

 어찌나 웃었던지 그녀의 눈가엔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잭스 님, 손에 입을 맞춰 주실 땐 손등에 해주시는 거예요. 후후, 저 뭔가 더 다른 뜻이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랐지 뭐에요.
 “끄응. 내가 귀족 예법 같은 걸 알 리가 없지 않소.”
 -어머, 그 정도는 아시는 줄 알았어요. 아무도 안 가르쳐 주셨어요? 베사리아 님이라 솔라리에서…….
 “베사리아? 하하, 가끔 연회 같은 곳에 다녀오면 진절머리 난다고 푸념하기 바빴는데 그런 건 무슨. 그리고 솔라리에서 난 어디까지나 외부인이니 적당히 존댓말 할 자리에서만 해주면 다들 그러려니 하는 눈치였소.”

 그건 잭스가 외부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그를 존중해주는 뜻에서 그런 거였겠지만, 소나는 굳이 그 말을 또 하진 않았다. 레오나가 들었다면 진저리를 쳤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서서히 바꿔야지, 말실수 하나 할 때마다 지적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잭스 님도 못 하시는 게 있네요? 전 잭스 님이 뭐든 능수능란하게 다 잘하실 줄 알았어요. 
 “…왜 이렇게 날 과대평가하는 거요? 싸움질이라면 모를까 그 외에는 잘해봐야 일반인 정도의 상식밖에 없소. 귀족 사회에 대해선 그보다 훨씬 아래고.”
 -후후, 잘 됐네요! 제가 나중에 시간 들여서 천천히 가르쳐 드릴게요. 가르쳐 드릴 게 아주 많아요.
 “딱히 필요는 없을 것 같소만…….”
 -어머니를 꺾으시고 저와의 관계를 승낙 받으시려면 필요하시겠죠?
 “…….”
 -최선을 다 하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죠? 그 정돈 할 수 있으실 거라 믿어요.

 소나가 스산하게 말하자 잭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가 눈치가 없다 한들 여기서 고개를 젓는다면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의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건 자명한 일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소나의 입가엔 다시 미소가 걸렸다.

 -그러니까 다음에 해주실 땐 제대로 해주실 거죠?
 “끙, 늦었군. 가기나 갑시다. 베사리아가 기다리겠소.”
 -어머, 말 돌리시긴!

 결국 잭스가 할 수 있는 반항은 툴툴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 게 전부였다. 그의 머릿속에선 오직 그만이 들을 수 있는 감미로운 웃음소리가 화사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는 애써 소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했다. 이미 얼굴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잭스 뒤에서, 소나는 몰래 자기 손바닥에 입술을 포개며 그의 등을 바라봤다. 한없이 듬직하고 한없이 사랑스러운, 그런 남자의 등을.

 넓디넓은 전쟁학회의 복도에서 때아닌 봄바람이 살랑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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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1. 해피 추석!

2. 알콩달콩 새콤달콤 끈적한 진도는 기회 될 때마다 빼야 하는 법

3. 다음은 베사리아와의 재밌고 조금 무거운 꽁트!

4. 쪼금만 무겁게...흐흐..쪼끔만...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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