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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67화

아이콘 강철안개 | 댓글: 1 개 | 조회: 1407 | 추천: 2 |


***

 “부른 지가 언젠데 이제 와요!”

 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날카롭게 쨍 울리는 목소리. 거기엔 짜증과 초조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리고 좀 모순적이긴 하지만 즐거움과 기쁨도 담겨 있었다. 소나는 그 혼돈의 감정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 모순점에 좀 더 신경 썼을 소나였다. 어쨌든 그녀가 세상을 보는 수단은 눈보다는 귀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잭스를 따라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사로잡는 건 귀가 아니라 눈이었다. 그녀는 ‘말문이 막힌’다는 게 문자 그대로 어떤 기분인지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세, 세상에…….

 산, 양피지의 산이었다. 책상과 그 아래까지 빼곡하게 채운 양피지의 산 뒤에서 신경질적으로 깃펜 갈겨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렇게 어질러진 방은 처음 봐요.

 소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잭스의 병실에서 봤던 베사리아의 ‘추태’는 빙산의 일각 중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는 앞으로 베사리아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되리라는 불길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곧 익숙해질 거요. 내가 대신 사과하리다.”

 그는 가면을 쓸어내리며 마치 못난 자식 둬서 속 썩는 부모처럼 한숨을 푹 쉬었다. 그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소나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집무실의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개판 오 분 전, 아니 이미 개판이나 마찬가지였다. 

 문 옆에 있는 옷걸이엔 옷걸이가 위태로울 정도로 옷이 가득 걸려 있었지만 가장 위에 걸쳐진 보랏빛 로브 하나 빼곤 죄다 먼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바닥엔 양피지 서류들이 무슨 각질처럼 되는 대로 널브러져 있었고, 책장에는 책이며 메모지 따위가 들쑥날쑥 엉망진창으로 꼽혀있었다. 심지어 환기도 제대로 안 했는지 옅게 들어오는 햇살은 먼지를 짙게 비추고 있었다.

 “길 잃었어요? 안내원 붙여줘요? 오라고 할 때 재깍 올 것이지 뭐 하다 이렇게 늦게 와요? 바빠 죽겠는데!”
 다시 양피지 더미 너머로 빽 볼멘소리가 들려오자 소나의 얼굴에 자연스레 열이 올랐다. 솔직히 복도에서 잭스와 그렇고 그런……. 어쨌든 늦은 이유의 8할 정도는 자기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잭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무덤덤하게 대꾸하며 책상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소나는 살짝 얼이 빠진 채 그의 뒤를 따라갈 뿐이었다.

 그녀는 아직 베사리아 같은 인물을 대할 땐 꽤나 뻔뻔스럽게 나가야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곱고 예의바르게 자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과연 그게 문제인지, 아니면 베사리아 같은 유형이 별종인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지만 말이다.

 “갑자기 부른 건 그쪽이지 않소. 늦는 거야 당연하지.”
 “그만큼 중요하니까 급하게 부른 거잖아요!”
 “그만큼 중요했으면 그대가 직접 찾아왔겠지. 밀린 서류 처리나 하고 있으면서 바쁘단 건 무슨.”
 -…….

 잭스를 바라보는 소나의 눈동자는 지진 일어난 것마냥 달달 떨리고 있었다. 하긴 이렇게 한 마디도 안 지고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는 잭스는 거의 처음이었으니 충격을 받을 만도 했다.

 “맨드레이크가 나한테 다 떠넘기고 튀어버렸단 말이에요! 그 노망난 영감탱이! 돌아오면 정말 가만 안 둘 거야!”
 “당신 꾀병 부렸던 2주 동안 반쯤 죽어 나갔을 맨드레이크 생각은 안 해봤소?”
 “안 했어요! 왜요!”
 -…….

 소나는, 일단 머리가 좀 어질어질했다. 좋게 말하면 현기증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사고가 도저히 지금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자기 앞에서 등을 보이고 있는 이 남자가 몇 마디 장난에 쩔쩔매던 그 잭스가 맞는지 의심스러웠고, 되는 대로 머리를 묶은 채 양피지 서류에 뭔가를 갈겨쓰는, 그러면서도 손과 눈이 쉴 새 없이 왔다갔다하는 그녀가 진정 자기가 알던 그 베사리아 콜민예 상임의원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소리 지를 기력도 있고 생각보단 팔팔한 거 같아 다행이구려.”
 “빈정댈 거면 커피나 한잔 타 오고 빈정대시죠?”
 “그건 나중에 하지. 팔은 좀 괜찮소?” 
 -!

 잭스는 무덤덤하게 툭 내뱉듯 말했지만 소나는 소스라칠 듯 깜짝 놀랐다. 설마 그 주제를 지금 이런 식으로 꺼낼 줄이야. 베사리아와 만나면 대체 어떤 표정부터 지어야 할까 고민했던 자신이 너무 바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소나는 서둘러 그의 등 뒤에서 나와 베사리아를 바라봤다. 

 아주 찰나의 시간, 그녀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옷매무새며 머리 손질 따윈 얼기설기 대충 한 모습이었지만, 베사리아의 눈동자는 매우 잔잔했다. 감정 역시 잔잔했다. 아니 감정은 오히려 비올라의 경쾌한 춤곡이라도 되는 양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잭스와의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그게 짜증을 내는 투일지라도 말이다. 잭스의 존재가 그녀의 세계에 색을 입히고 있었다. 

 그것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느낀다면 너무 안이한 생각일까. 그런 생각이 소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베사리아는 그런 소나를 잠시 바라보다 슬며시 깃펜을 놨다. 하얀 장갑을 낀 듯한 그녀의 왼손은 의수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쁘지 않아요. 약간 반응이 느린 감이 없잖아 있긴 한데……. 뭐 이 정도면 감지덕지죠.” 베사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소나에게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어서 와요, 소나 양. 불러놓고선 이런 차림이라 미안해요. 우리 차라도 한잔할까요?”
 “잠깐, 베사리아.”
 “어머?”

 기세 좋게 일어나려 했지만, 베사리아는 일어나려던 모양새 그대로 다시 주저앉아야만 했다. 잭스가 그녀의 어깨를 꾹 눌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소나도 그렇고 베사리아도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왜요? 설마 계속 여기 앉아 있으란 건 아니죠? 나도 소파에서 좀 늘어지……. 꺅!”
 “가만히 좀 있어 보시오.”
 -재, 잭스 님!

 소나의 당황스런 목소리도 무시하고 잭스는 베사리아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가면 너머로 느껴지는 숨결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베사리아는 그에게서 익숙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잘은 비유할 수 없지만 오래된 꼭 오래된 떡갈나무를 연상케 하는……. 아, 그러고보니 떡갈나무 꽃의 꽃말이 ‘강건하다’였나? 별 실없는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휙휙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몇 초 정도 지나서야 그녀는 겨우 반응할 수 있었다.

 “뭐, 뭐에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잠 언제 잤소?”
 “네?”

 무슨 생뚱맞은 얘길 하냐는 투로 되물은 베사리아였지만, 잭스는 여전히 그녀의 어깨에 얹은 손에서 힘을 빼지 않고 있었다.

 “잠 말이오, 잠. 마지막으로 언제 잤소?”
 “남 자는 건 왜요? 잘 만큼 잤으니 신경 쓰지 말아요.”
 “이틀 전이군.”
 “윽.” 

 어떻게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에서 ‘이틀’이라는 정확한 시간을 짚어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어쨌든 정답이긴 했는지 베사리아는 뜨끔한 표정이었다.

 “물어보나 마나 같지만 일단 물어는 보겠소. 끼니는 제때 챙기고 있소?”
 “아, 신경 쓰지 말라니까요. 당신이 무슨 내 아빠라도 돼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고지식하게 굴어요? 사람 피곤하게.”

 베사리아는 짜증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리며 그의 손길을 떨치려고 했지만 잭스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책상 한쪽에 양피지 더미를 슬쩍 걷어냈다. 초콜릿 잼과 생크림을 듬뿍 빨아들여 눅눅해질 대로 눅눅해진 팬케이크가 담긴 접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엔 한 번도 안 씻은 것처럼 보이는 꼬질꼬질한 머그 잔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중간하게 놓여 있었다. 무슨 속옷이라도 들킨 것처럼 베사리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또 이런 몸 망치는 거나 먹고 살았군.”
 “가, 간식이라고요, 간식. 머리 많이 쓰려면 당분 필요한 거 몰라요?”
 “간식? 발밑에 있는 거나 치우고 말하시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소나의 시선이 죽 아래로 내려갔다. 베사리아가 재빠르게 다리를 오므렸지만 의미 없었다. 애초에 다리를 오므린다고 해서 가려질 것도 아니었으니. 책상 밑엔 텅텅 빈 초콜릿 잼 병들이 너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줄잡아서 10개. 좀 전부터 느껴지던 기분 나쁜 달콤한 냄새는 비단 접시에서만 풍겨오던 게 아니던 것이었다. 베사리아는 소나와 시선을 마주치려는 걸 피하려는 듯 최대한 고개를 돌렸다. 그건 소나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한 심정으로 지금 베사리아를 바라본다면……. 저절로 한심하단 표정이 드러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좀, 나 창피 주려고 작정했어요? 오늘따라 왜 그래요? 나 이러는 거 알면서!”

 결국 만만한 건 잭스인지라 베사리아의 화살은 잭스를 향했지만 그는 시큰둥할 뿐이었다.

 “예전에야 그나마 건강했을 때고. 지금은 다쳤잖소.”
 “다 나았어요! 진짜에요!”
 “눈 뜨고 잠꼬대를 하는 줄은 몰랐군. 재주가 많소, 베사리아.”
 “아 진짜 좀…꺅! 뭐에요! 아 오늘따라 진짜 왜 이러는 건데요! 네?!”

 재주가 많은 건 베사리아가 아니라 잭스였다. 아무리 여성 한 명이라 해도 다 큰 성인인데 무슨 포대자루 들춰 매는 듯 시원스럽게 들어 올렸으니 말이다. 거기까지만 본다면 소파에 앉히려고 부축이라도 하는 줄 알았겠지만 그 예상은 시원스럽게 깨졌다. 

 “꺄악!”

 그는 소파에 베사리아를 내던지고선 소나를 향해 덤덤히 말했다.

 “소나, 미안하지만 베사리아 좀 감시해주시오. 먹을 만한 것 좀 만들어 올 테니. 음악이라도 들려주면 고맙겠소. 얘기 상대라도 돼주면 더 좋고. 하여튼 저 책상에 다가가지 못하게만 해주시오.”

 “감시? 내가 뭐 죄수라도 돼요?” 
 “이렇게라도 안 해놓으면 또 책상으로 기어들어 갈 것 같아서 말이지. 내 꼭 좀 부탁하리다, 소나.”

 말은 그렇게 해도 그가 그녀를 걱정해서 그런다는 걸 모를 정도로 소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럴 때만이라도 솔직하면 좋을 텐데. 소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염려 마세요, 잭스 님. 제가 잘 모시고 있을게요.
 “음, 고맙소.”
 -그런데 요리를 어떻게……. 서, 설마 잭스 님이 요리하시려고요?

 소나의 얼굴이 대번에 새파래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잭스의 요리는 협곡에서 헤맬 때 간신히 먹었던 물에 불린 육포 죽 비슷한 물건뿐이었으니 말이다. 잭스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인지 좀 언짢은 듯 입을 열었다.

 “…그때야 정 먹을 게 없어서 정말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요. 먹을 만한 것 정돈 만들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시오. 반 시간 내로 돌아오리다.”

 거의 통보하듯 말한 뒤 그는 집무실 옆에 딸린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릴 때 매끄럽게 소리가 반사되는 걸로 보아 타일과 물기가 있는 곳이었다. 아마 거기가 작은 주방 겸 준비실인 모양이었다. 순간 식재료가 있나, 걱정되는 소나였지만 그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어쨌든 그녀 자신보단 잭스 쪽이 여기에 대해 알아도 몇 배는 더 알고 있을 테니까. 

 덧붙여 말하자면 소나는 베사리아가 식재료 하나만큼은 최고급 식재만 가득 사서 주방에 꽉꽉 쟁여놓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쓸데없이 영구보존한다고 시간 정지 마법까지 걸어놓은 건 더더욱 모르고 있었고 말이다. 

 어쨌든 소나는 서둘러 베사리아 곁으로 다가갔다. 소파에 널브러진 그녀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부끄러울 꼴을 보일 것도 없다는 듯 생기가 싹 다 빠져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들려오는 감정도 정말 수치심 가득한 음울한 소리뿐이라 그녀 쪽이 난감할 지경이었다.

 그때, 베사리아가 소리쳤다.

 “잭스!”
 “…왜 그러시오?”

 문이 닫히기 직전, 잭스가 문틈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넌덜머리가 난다는 투로 대꾸하면서 말이다. 헛소리라도 했다간 국물도 없을 거라는 기세가 죽죽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뭐, 의외의 일격을 가할 줄 아는 게 어디 잭스 뿐이겠는가.

 “…계란은 반숙으로 해주세요.”

 베사리아는 그렇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용케도 요구 사항을 달기까지 했다.

 -…….
 “…….”
 “…알겠소.”

 짧은 침묵 끝에 잭스는 문을 닫았다. 그렇게 베사리아와 소나만 남겨진 집무실 안엔 기묘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정말 미묘하게 숨 막히는, 은근히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정적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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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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