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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68화

아이콘 강철안개 | 댓글: 1 개 | 조회: 1075 | 추천: 1 |

***

 잭스의 요리 실력은 소나의 상상 이상이었다. 다행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자, 변변찮지만 어서들 드시오.”

 잭스가 마지막으로 커다란 솥단지를 탁 내려놓자 테이블엔 세 명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따끈한 점심상이 차려져 있었다. 투박하고 되는 대로 준비한 것 같으면서도 먹음직스러운, 그야말로 잭스다운(?) 차림새라 할 수 있었다.

 -어머나…….

 소나가 감탄의 눈빛으로 테이블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팬케이크가 잔뜩 쌓인 커다란 접시 하나, 반숙과 완숙 계란 프라이가 담긴 접시 하나, 그리고 뽀얀 빛의 스튜가 담긴 커다란 솥단지 하나. 뭐니뭐니 해도 역시 가장 맛있는 음식은 갓 만든 음식이라는 불변의 진리 덕일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들은 없던 식욕도 돋게 할 정도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정말 맛있어 보여요.
 “그…입에 맞을진 모르겠소. 그대가 평소에 먹던 거랑은 좀 다를 것 같아서.”
 -잭스 님, 저 그렇게 입맛 까다롭지 않아요.
 “험, 그럼 다행이고.”

 소나가 곱게 흘겨보자 잭스는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솔직히 잭스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부벨르 저택에 머물면서 대접받았던 음식들은 전부 상당한 수준의 요리들뿐이었으니 말이다. 소나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더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잭스가 또 자기와의 사이에 선을 긋는 것 같아 눈빛이 좋진 않았다.

 “어때요. 소나 양? 잭스 보기보다 요리 잘하죠? 옛날에 야영 같은 거 할 땐 요리만큼은 이 사람이 전담할 정도였어요.”

 베사리아가 무슨 자기가 차린 거라도 되는 양 자신만만한 투로 소나에게 자랑했다. 기가 막히는 건 오롯이 잭스의 몫이었다.

 “요리만큼은? 요리‘도’겠지, 베사리아. 그 시절에 저녁거리로 사슴 사냥해오겠다고 큰소리 탕탕 쳐놓고선 숲 하나 태워먹을 뻔했던 거 벌써 까먹었소?”
 “좀스럽긴. 그런 걸 아직도 기억해요?”

 베사리아가 뭘 그게 대수냐는 듯 대꾸했지만 숲 하나가 사라질 뻔했다는 건 그 일에 관해 전혀 모르는 소나가 듣기에도 상당히 큰일이었다. 당연히 잭스는 거의 발작 직전의 목소리로 손을 부들부들 떨 지경이었다.

 “좀? 그때 불 끄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닌 거 생각하면 아직도 자다가 일어날 정돈데 지금 좀이라고 했소?”
 “어머,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죠!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요? 그때 불도 결국 내가 껐는데!”
 “…….”

 잭스는 입을 꾹 닫더니 신경질적으로 발을 구르며 주방으로 갔다. 아무래도 더 하면 싸우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다시 온 그의 손에는 식기며 개인 접시가 들려 있었다. 말은 안 해도 잔뜩 골이 난 모양인지 식기를 나눠주는 그의 손길은 조금 거칠었다. 소나는 그의 가면 속에서 입을 삐죽이는 표정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잭스를 보며, 그리고 그런 잭스를 보는 베사리아를 보며 소나의 눈매가 조금 아련해졌다. 이제 추억으로 남은 과거의 기억들. 그걸 회상하며 기억 속으로 잦아드는 듯 베사리아의 감정은 깊은 물속의 물방울처럼 잔잔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베사리아는 잭스가 자신에게 신경 쓰는 걸 원치 않았다. 자신의 팔 따위에 신경 써주길 원치 않았다. 그녀가 잭스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시시콜콜한 과거 얘기를 꺼내며 자신 옆에 평범하게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녀 자신의 팔 정도야 우습게 지불할 수 있었다. 아니, 그 이상도 가능했다. 

 그의 존재만이 그녀의 세계에 색을 입혔다. 그의 존재가, 체취가, 그가 만든 음식이, 그의 짜증이 전부 베사리아 콜민예라는 여자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

 소나는, 어쩌면 베사리아가 보여주는 이런 덜떨어진 모습들도 잭스를 붙들어두기 위한 연극이 아닌가 하는 희미한 의심이 들었다. 

 ‘나도 참…….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물론 소나는 그 희미한 의심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베사리아에게도 상처가 많다는 건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던가. 소나는 잭스가 자신을 용서하길 바라는 것만큼, 베사리아도 스스로를 용서하길 바랐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잠시나마 있는 이 잔잔한 일상을 만끽해야 할 때였다. 베사리아도 그걸 바랄 터였다. 

 “삐졌어요?”

 바랄 터인데…….

 “안 삐졌소.”
 “에이, 삐졌죠? 삐돌이 잭스, 호호.”
 “…….”

 진짜 바라는 걸까? 정말 바라는 사람이 저렇게 잠자는 곰에게 귀싸대기 날리듯 밉살스레 구는 걸까? 소나는 방금 전까지 베사리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던 자기를 바보 같다고 느끼지 않기 위해 오만 애를 다 써야 했다.

 “…음식 식겠소. 식사나 합시다.”

 결국 잭스는 넌덜머리 난다는 듯 한숨을 쉬며 국자를 들었다. 베사리아의 말이 맞다고 인정해서가 아니라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잭스에게 있어 베사리아의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파훼하는 건 한 끼 식사보다 가치가 없었다.

 그리고 표현이 그 정도로 거칠진 않지만 소나의 생각도 잭스와 꽤 비슷했다. 그녀는 잭스에게 빙그레 미소 짓고선 스푼을 들었다. 왠지 여기서 식사라도 맛있게 못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기묘한 감정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잘 먹을게요, 잭스 님.
 “잘 먹을게요. 후훗, 오랜만에 당신이 해준 거 먹어보네요.”
 “…맛있게들 드시오.”

 어쨌든, 정신 사나운 악동도 입에 뭘 물려놓으면 얌전해지는 것처럼 베사리아도 먹을 때만큼은 차려진 음식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곧 그들은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긴 채 약간 느지막한 점심을 즐기기 시작했다.

 테이블 가운데에 있는 솥단지에서 원하는 만큼 스튜를 퍼다 먹어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테이블 한쪽에 늘어져 있는 소스며 시럽으로 팬케이크에 원하는 대로 토핑을 해서 먹는 것이었다. 자기 취향 따라 맞춰 먹을 수 있는 것만큼 맛있는 식사도 없었다. 곧 잭스의 앞엔 맥주가 한가득 든 커다란 잔이, 소나와 베사리아 앞엔 물 한 잔이 놓였다.

 잭스는 평범하게 시럽을 약간 뿌린 팬케이크에 계란 프라이, 그리고 스튜 한 그릇 떠놓고 묵묵히 먹었다. 가면도 벗고 두건도 벗어서 예의 그 파란 안개가 피어오르는 머리가 드러났지만, 소나나 베사리아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광경일 뿐이었다. 소나 역시 잭스와 크게 다르지 않게 먹었다. 차이점이라면 잭스처럼 큼직큼직 베어 먹진 못하고 조금씩 오물오물 뜯어먹는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넘어가나 했는데, 갑자기 잭스가 베사리아의 손에서 뭔가를 휙 낚아챘다.

 “거, 시럽 좀 작작 뿌리시오. 당뇨 걸리게 해달라고 기도라도 드리는 거요? 말년에 약 달고 살고 싶소?”

 그의 입에선 보다 못해 질렸다는 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주 징글징글한 모양이었다. 그 순간 베사리아는 팬케이크 위에 단풍 시럽과 함께 예의 그 초콜릿 잼을 들이부으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꼭 장난감 뺏긴 애처럼 얼굴을 구겼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또 왜 그래요?”
 “개는 무니까 안 건드리는 거요.”
 “어머, 기가 막혀서 정말. 내가 뭐 못 먹을 거 먹어요? 내놔요!”
 “…안 되겠군. 이렇게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베사리아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아무렴 잭스가 베사리아보다 몸놀림이 느릴 리는 없었으니까. 대신 그는 베사리아의 입도 안 댄 스튜 그릇을 가져가더니 새 그릇에 다시 듬뿍 떠서 줬다. 그것도 야채 건더기들만 쏙쏙 골라서 말이다.

 “앞으로 한 달간 초콜릿 잼은 금지요. 꿀도 금지고. 하여간 단 건 다 금지요. 안 그러면 맨드레이크에게 직접 간호하라고 하겠소. 설마 매일 같이 맨드레이크의 특제 수제 약을 마시고 싶지 않겠지, 베사리아?”
 “엑……. 진짜 당신 치사하게 굴래요?”
 “그리고 지금 준 야채 싹싹 비우지 않아도 맨드레이크에게 말하러 갈 거니 그리 아시오.”

 잭스가 딱 잘라 엄포를 놓자 베사리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납빛으로 물들었다. 전쟁학회 내부에서 맨드레이크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맨드레이크의 수제 약을 마셔야 한다고? 매일? 트롤 피며 오우거 피 따위로 만든 그 끔찍한 것들을? 눈 딱 감고 한번이라면 모를까 매일 그짓거리를 하다간 제 명에 못 죽을 게 분명했다. 결국 베사리아는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문자 그대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스튜에 달지 않은 팬케이크만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씨잉……. 진짜 먹을 거 가지고 치사하게……. 밥 한번 만들어 준 거 가지고 오만 생색은 다 내고…….”
 “자꾸 그러면 꿔가서 안 갚은 돈까지 청구할 거요.”
 “…….”

 그 한마디가 결정타인 모양이었는지 베사리아는 그 이상으로 더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잭스의 태도를 보건대 그 결정타마저도 빙산의 일각인 모양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고선 다시 수저를 들었고, 그렇게 집무실엔 수저며 포크 부딪히는 소리만 간간이 울리게 됐다.

 -…….

 그리고 그 광경을 여과 없이 옆에서 다 지켜본 소나는 정말, 정말로 웃지 않기 위해 오만 가지 노력을 다 해야만 했다. 꼭 철부지 딸과 답답해하는 아버지의 모습 같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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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초원의 집>과 <나니아 연대기>를 볼 때마다 음식 묘사가 참 먹음직스럽다고 생각해서 늘 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되네요. 아직도 멀었나 봅니다 ㅋㅋ

2. 다음 화는 아마 작전 회의가 되겠죠.

3.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댓글은 늘 읽고 있습니다.

4. 롤 패러디 쓰면서 정작 롤은 안 한다는 게 유머군요 ㅋㅋ

5. 작중 시간은 이제 겨우 6개월 정도 지났는데, 현실 시간은 무려 6년이나 지났네요. 

6. 언제 끝날진 모르지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쓸 겁니다. 따라와주시는 독자 분들 감사합니다. 댓글도 늘 감사하고요!

7. 그럼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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