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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70화

아이콘 강철안개 | 조회: 983 |

 그러나 베사리아는 미소 짓지 않았다. 

 …미소를 지을 수가 없었다.

 “…숨기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그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소나의 대답은 그녀의 허를 찌르고 있었다. 강인함. 유연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강인함이 베사리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소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잭스와의 관계를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먼저 그를 보듬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베사리아에게 없는 부분이었다. 말로 설명하지 못할 그 무언가가 없었기에, 그녀는 과거에 잭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그것은 베사리아 콜민예라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끔찍한 후회였고, 낙인처럼 찍혀 지울 수조차 없는 과거의 편린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잭스에게 소나 같은 아가씨가 옆에 있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다. 그 자리는 분명 그녀 자신의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베사리아는 자신이 그 자리를 스스로 버리고 떠났다는 걸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그것에 죄책감을 가지든 후회를 하든, 그녀 스스로가 선택해서 잭스를 떠났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소나는 그녀와 달랐다. 그러니 기뻐해야 했다.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그녀 속에선 기쁨 대신 두려움이 솟고 있었다. 더럽고 검은 진흙이.

 자기가 모르는, 소나에게만 보여주는 잭스의 모습이 생기고 있다는, 그 역겨운 진흙이 혐오스럽게 질척이며 솟고 있었다. 그녀는 소나가 부러웠다. 

 잭스와 나란히 설 수 있는 그녀가 참을 수 없이 부러웠다.

 [베사리아 님?]
 “…베사리아.”
 “아아! 네, 네? 네네?”

 베사리아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소나와 잭스가 걱정스런 시선으로 그녀를 보고 있을 때였다. 

 “힘들면 좀 쉬시오. 업무 쪽은 내가 맨드레이크에게 잘 말해놓으리다.” 

 잭스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투로 말하자 베사리아는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손 움직이는 속도가 거의 선풍기 저리가라였다.

 “아니, 아니에요! 진짜 정말 괜찮아요! 잠깐 멍때렸던 것뿐이에요! 생각할 게 있어서!”
 “다 죽어가는 사슴 같은 눈빛이었는데 그게 잠깐 멍때린 거였다고? 헛소리는 꿈나라에서 실컷 하시오. 베개랑 이불 어디 뒀소? 저번엔 냉장고 속에 처박아 뒀더만.”
 “아니, 그걸 왜……! 아 정말 괜찮다고요! 오늘 부른 거 진짜 중요한 얘기 때문이란 말이에요!”
 “중요한 얘기 하다가 그대로 기절할 것 같은데 무슨. 그랬다간 맨드레이크 그 늙은이가 날 가만두지 않을 거요. 산 채로 포르말린 용기에 처넣으려고 이를 갈겠지.”

 잭스가 음울하게 말하자 소나가 흠칫 몸을 떨었다. 물론 정말 그럴 리가 없단 걸 알고 있었지만 그가 그렇게 말하니 도저히 농담처럼 들리질 않았다.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는 베사리아를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엄청나게 끈적이던, 소름끼칠 정도로 어두운 소리는 어느새 사그라져 있었다. 소나의 걱정스런 표정은 비단 베사리아의 표정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감정은 잭스의 목숨이 위험했던 그날 밤, 베사리아에게서 들었던 감정과 똑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너무나 복잡하게, 수십 가지의 감정이 얽히고설킨 그 덩어리진 진흙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복합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감정이 무엇인가에 대해 분석할 시간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분명 때가 아니었다. 잭스가 부산을 떠는 거야 물론 베사리아를 걱정해서 그런 거겠지만, 베사리아에게서 들려오는 당황스러움을 들어보면 그의 배려는 별로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소나는 등 뒤에 있던 에트왈을 불러 현을 어루만졌다.

 디리리링

 “소나?”
 -진정하세요, 잭스 님.

 잔물결처럼 조용한 선율이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는 산속의 조그마한 시냇물 소리 같기도 하고, 잔잔한 호수에 톡 하고 여린 가랑비가 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서로 삐죽 서 있던 신경이 점차 무뎌져 갔다. 하지만 그것은 휴식을 위해서 아니라, 지금 이 일을 미루면 안 된다는 의지를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베사리아 님을 아끼시는 마음은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때로는 과한 배려가 독이 된답니다. 베사리아 님은 저희에게 지금 꼭 해야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아시오?”
 -전 귀가 좋으니까요.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러니 지금은 절 믿어주세요.

 잭스는 소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결국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아직 소나가 타인의 감정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도 믿어주긴 할 모양이었다. 그는 대충 여자들끼리 통하는 뭔가가 있나 보다, 뭐 이렇게 대충 짐작할 뿐이었다.

 소나의 연주가 끝나자 베사리아의 표정이 한결 더 개운해졌다. 꼭 한숨 푹 잔 것처럼 눈동자에 생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와, 소나 양 연주 정말 효과가 끝내주네요. 이런 커피 따위보다 열 배는 더 좋은 거 같아요.”
 “…다음부턴 알아서 끓여 드시오.”

 잭스가 어이 털린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런 베사리아를 보며 소나는 얼른 수정구를 들었다.

 [연주로 마음을 가라앉혀 드린 것뿐이에요. 일시적인 거니까 너무 무리하시면 안 돼요. 저희들에게 말할 거만 말하시고 꼭 쉬세요, 아셨죠?]
 “잭스 말이라면 몰라도 소나 양 말이라면 꼭 들어야죠.” 베사리아가 가볍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아까 레스타라 부인의 편지 건 말인데, 일단 내 쪽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잘 말해뒀어요. 현재 둘의 상태에 관한 것도 설명할 수 있는 선까진 최대한 설명했고요. 그러니 거기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뭔가 이 연결에 알아낸 게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잭스가 시큰둥하게 말하자 베사리아는 얼굴을 조금 굳히고 끄덕였다.

 “이런 현상이 전례가 없어서, 역으로 생각해서 아예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부분부터 조사를 시작했어요. 결론만 따지면 연결 자체는 그리 위험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음, 둘의 궁합이 잘 맞아서 그랬다고나 할까, 뭐 그런 느낌이죠.”
 [어머, 구, 궁합이라니…….]

 이번엔 소나가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하기야 남녀의 궁합이라면 생각하는 게 몇 가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베사리아의 얼굴이 조금 찌그러지는 걸로 보아 소나의 태도는 정답이 아닌 모양이었다.

 “끝까지 들어요, 소나 양. 그런 궁합을 말하는 거 아니니까. 잘 들어요, 생명체들은 모두 마력을 가지고 있어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미생물에서부터, 사람은 물론이고, 저택만 한 고래에게도 마력은 있죠. 하지만 생명체의 크기는 마력의 양을 결정하지 않아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바퀴벌레가 가지고 있는 마력이나 고래가 가지고 있는 마력이나 양적인 면에선 거기서 거기거든요.”
 “또 마법학 강의요?”
 “아, 끝까지 들으라니까요, 좀!” 잭스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베사리아가 딱딱거렸다. “결국 마력의 양을 결정짓는 건 그 생명체의 고유한 ‘파장’이에요. 그리고 인간 같은 고등의 지성체만 자신의 파장을 변형시키거나 성장시킬 수 있죠. 이 ‘파장’은 비유하자면 지문 같은 거라, 피를 나눈 형제라 해도 제각기 다른 파장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특이하게, 정말 예외의 예외의 예외적인 케이스로 파장이 놀랄 정도로 일치하는 경우가 있긴 해요.”

 베사리아가 둘을 흥미로운 듯 쳐다보며 말했다.

 “바로 둘처럼요.”
 “그러니까 당신 말은 나와 소나의, 그 마력의 파장인지 뭔지가 같아서 소환 마법이 풀릴 때 서로의 정신이 연결됐다, 이 말이오?”
 잭스가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실상 어이없는 소리는 맞았다. 하지만 그 어이없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베사리아는 곡를 끄덕였다.
 “그러니 우연이 한 열 번은 겹친 현상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는 거예요. 제가 단순히 말해서 그렇지 소환 마법과 협곡에 걸린 마법은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정밀해요. 챔피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마법만 해도 수십 겹에 이르는 걸요. 소환사와의 정신 연결이 끊어졌을 때 소환 마법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는지는 정말 아무도 몰라요. 그게 방아쇠가 돼서, 아마 둘의 위치에, 시간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파장의 일치 정도에, 재수 없으면 천체 운행이나 그 순간 별들의 위치까지 고려해서…….”
 “핵심만 말하시오, 핵심만.”
 “간단히 결과만 말하면 쉬운데, 원인 분석은 너무 복잡해서 못한다 이 말이에요! 됐어요?!” 베사리아가 설명이 막혀 심통이 났는지 짜증스럽게 딱딱거렸다. “즉 당신이 소나 양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일종의 ‘소환사-챔피언’ 관계가 된 거라서 그렇다, 이 말이죠. 물론 그보다는 훨씬 더 깊은 관계겠죠. 안 그랬으면 소나 양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을 테니까.”
 [그럼 베사리아 님, 그럼 저는 왜 잭스 님의 마음의 소리를 못 듣는 걸까요? 아까 분명 그 파장이란 게 일치하신다고 했는데…….]

 소나는 베사리아의 설명을 아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가 열성적으로 질문했다. 태도가 잭스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아까 말했듯이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개체인 이상 100% 똑같은 관계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게 자연의 법칙이에요. 둘의 파장이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데서 잭스만 소나 양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차이가 발생하겠죠. 어디서 차이가 있어서 그런 건지 원인은 모르지만요.”

 마침내 잭스와 소나의 소환 마법이 엉킨 이유를 설명한 베사리아였지만, 어째 그녀의 표정은 영 개운치가 않았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결국 한 마디를 툭 내뱉고야 말았다.

 “뭐, 가설을 기반으로 한 설명이긴 하지만 말이죠.”
 “가설? 지금까지 그 빌…….”
 -잭스 님, 말 좀 제발 예쁘게 하세요!
 “그…으으 놈의 파장 운운했던 게 전부 가설이란 말이오? 난 또 확신에 차서 말하길래 뭐라도 찾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급선회하다가 고꾸라지려는 마차처럼, 잭스는 소나의 핀잔에 얼굴을 팍 찌그리며 나오는 말을 어찌어찌 완화해야 했다. 하지만 베사리아는 별로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의 신경을 긁는 데에 도가 튼 그녀로선 그 정도 욕지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학회 제한 구역에 있는 금서목록까지 싹 다 뒤져서 가장 현실성 있는 거로 설명한 거예요. 마력 파장설, 그러니까 마법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의 기초 개념이 되는 거에서 따온 거긴 한데……. 거기서 말하는 파장의 개념이 ‘영혼’의 존재가 실재한다는 걸 전제로 삼고 있거든요.”
 “영혼이란 게 왜? 마법이 다 그런 거 아니었소?”

 잭스가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베사리아의 표정이 거의 반쯤 썩은 동물 사체에서 흘러나온 내장 더미를 본 것처럼 찌그러졌기 때문이었다. 베사리아만 그러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는데, 문제는 소나까지 이건 좀 아닌데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

 솔직히 잭스에겐 그게 더 충격이었다. 그는 소나도 일단 교양 과목으로라도 마법 이론을 배운 귀족이란 걸 모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베사리아는 무슨 저능아를 상대하기라도 하는 양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이래서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이 무섭다니까……. 그런 말 맨드레이크에겐 절대 하지 마요. 입에 거품 물고 반론하려 들 테니까. 맨드레이크가 영혼의 존재 따윈 없으니 마력과 그런 허무맹랑한 거 엮지 말라고 거기에 대해서 논문만 여덟 편 쓴 거 모르죠?”
 “…….”

 여덟 편이고 아홉 편이고 그가 알 리가 없었다. 잭스에게 있어 맨드레이크는 그냥 머리가 좀 좋고 마법 잘 쓰는, 베사리아와 동류인 성질 괴팍한 늙은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잭스를 바라보며 베사리아는 딱 잘라 말했다.

 “맨드레이크가 성질 괴팍한 늙은이인 건 저도 아는데 그냥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엄청 좋은 사람이에요. 마법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요.”
 “…뭐 독심술이라도 쓰시오?”
 “흥, 그 정돈 당신 안색만 봐도 알아요.”

 베사리아는 코웃음을 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떻게 가면 쓴 상대에게 안색 운운할 수 있는 걸까? 잭스에겐 정말 그게 영원한 미스터리였다.

 일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정말 베사리아와 맨드레이크는 동류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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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친 듯이 쓰고 있는데 미친 듯이 안 끝나네요 ㅋㅋ 생각보다 얘기가 길어지네요 ㅋㅋ

2. 근데 역시 밑그림 그려놓고 살 붙이는 게 빠르긴 하네요. 설정 푸는 부분이라 빠른 것도 있지만.

3. 드디어 초반에 있었던 떡밥 좀 풀었네요! 

4. 대사들 보면 앞에 있었던 사건들 언급하는 장면들 있습니다. 나름 신경 써서 앞 장면들 연관시키고 있으니 찾아보는 것도 재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5. 사실 전 양자역학 따위 모르니 그냥 어려운 말 나오면 있어보이려고 했는갑다 정도만 알아주심 됩니다.

6. 그럼 다음편에서 만나요!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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