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 팬아트/카툰 게시판
전체보기 

[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79화

아이콘 강철안개 | 조회: 902 | 추천: 1 |

 “흠, 그건 처음 듣는구려.”

 하지만 잭스는 무슨 술집에서 어쩌다 지나가던 소식이라도 들은 양 무덤덤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사실 그는 어느 상황에서도 크게 감정이 동요하지 않았다. 거의 유이하게 그를 흔들어놓을 수 있는 건 베사리아가 사고 쳤을 때 싹싹 비는 거랑 소나가 화내는 것뿐이었다. 좋게 말하면 침착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뚝뚝한 것이었다.

 사정이 어째 됐건 자신의 여러 예상보다 훨씬 그 이하의 반응이 나오자 놀라는 쪽은 소나였다. 잭스가 놀라거나, 솔직히 그런 걸 왜 말 안했냐고 화를 내는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오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벼, 별로 안 놀라세요? 화나지 않으세요? 기분…나쁘지 않으세요?

 소나는 조심스럽게 잭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사실 그게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누구도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에게조차, 평생 자신을 돌봐 준 메이드들에게조차 이걸 밝히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자신이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그녀들이 자기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은……. 그 가능성만으로도 소나의 숨통을 쥐어짜는 고통을 줬다.

 하지만 잭스는 여전히 뭘 그게 대수냐는 듯 시큰둥할 뿐이었다.

 “그대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는 걸로도 이미 충분히 놀랄 일인데 뭘 또 새삼스럽게.”
 -…….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소나는 할말을 잃고 잭스를 바라봤다. 너무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지금껏 망각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대는 문자 그대로 내 내면에 한번 들어갔다 나왔으면서 뭘 그러시오. 이제 숨길 것도 없다오.”
 -…그렇긴 하네요.

 잭스가 그렇게 말하며 양 팔을 휘적이자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나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그는 피식 웃었다.

 “허나 신기하긴 하군. 감정이란 게 대체 어떻게 들릴지 궁금하긴 하오. 솔직히 어떤 소리일지 짐작도 안 간다오.”

 그가 털털하게 웃자 소나는 그와의 연결에서 스며드는 감정을 들을 수 있었다. 메마르기만 했던 황야 위로 솜털 같은 잔디가 올라오는 것만 같은 느낌의 소리였다.

 그의 내면에 들어갔다 온 뒤로 소나는 잭스의 감정을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잘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듣는’다는 느낌이라면 잭스의 감정은 ‘흘러들어온’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 그의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훨씬 더 그녀의 내면을 울렸다.

 그것 또한 잭스와의 유대가 깊어진 것 같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 소나였다.

 -제가 나중에 많이 들려드릴게요. 후후, 다행이에요. 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요……. 
 “경우에 따라선 말하기 껄끄러울 수도 있겠군. 그런데 왜 굳이 그 얘길 지금 하는 거요? 아까 베사리아가 있는 데서 얘기했어도 됐을 텐데. 베사리아도 크게 신경 안 썼을 거요. 일단 친구라고 인식한 사람들에겐 한없이 물러지는 게 그녀 성격이니까.”

 잭스는 툴툴거리듯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사실 그렇긴 했다. 베사리아는 안 그런 것처럼 보여도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선을 긋는 성격이었다.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아무리 컨디션이 극악이라 할지라도 틈새 하나 보이는 법이 없었다. 그 반대로 가까운 사람들만 곁에 있다면 방금 전에 봤던 것처럼 열 살 먹은 떼쟁이보다 더 심술궂게 굴었지만 말이다.

 -맞아요, 그러셨을 거예요.
 “그럼 왜…….”
 -…겉으로는요.

 소나가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리자 가면 속 잭스의 얼굴도 조금 굳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에게 악의가 있거나, 베사리아를 뒤에서 욕하려는 의도 따위가 없다는 것 정도는 그도 잘 알았다. 하지만 그건 이성의 문제고 불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잭스의 기색을, 그리고 자신이 어떤 말을 하는지 모를 소나가 아니었기에 그녀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잭스 님. 오해 말고 들어주세요. 맹세컨대 절대 베사리아 님을 폄하하려는 의도로 그런 말씀을 드린 건 아니에요.
 “…알고 있소. 계속 말해주시오.”

 그렇게 말하며 잭스는 조금 발걸음을 늦췄다. 데마시아 쪽 차원문까진 좀 돌아가는 복도로 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좀 더 느리게 걸어야 가기 전에 얘기가 끝날 성싶었다. 그런 잭스의 뇌리로 다시 소나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아련하게 울리고 있었다.

 -전 늘 다른 분들에게서 두 가지 모습을 봐요.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고, 나머지 하나는 제가 귀로 듣는 그분의 내면의 모습이에요. 저는 지금껏 그 두 가지가 다른 분들을 너무나도 많이 만나왔어요. 겉으로 보기엔 정숙하고 기품 있는 분이셨지만, 속은 주변에 대한 열등감과 분노로 가득 차있는 분도 계셨어요.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음탕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소나는 거의 고해성사를 하듯 줄줄이 과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당황하면 말이 많아진다지만 소나는 그 정도가 좀 심했다. 하긴 평생 동안 말 한 마디 못해보다가 겨우 대화 비슷한 걸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난 게 고작해야 반년도 안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잭스는 참을성 있게 그녀의 말을 들어줬다. 소나에게 음탕한 생각을 품었다는 그 얼굴도 모를 귀족 나부랭이들에겐 화가 치솟았지만, 이렇게 과거 얘기부터 시작하는 것도 소나가 베사리아에 대한 얘기를 무척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베사리아 님은……. 그분은 제가 지금껏 만나왔던 그 어떤 분과도 다른 내면을 지니고 계셨어요.

 소나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토해내듯 말했다.

 -…나쁜 의미로요.
 “…….”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잭스는 알고 있었다. 소나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그는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멈추게 할 수 있다.

 그런 시커먼 생각이 그의 마음속을 느릿하게 맴돌았다. 소나에게 말할 수 있었다. 이건 나와 베사리아 사이의 문제라고, 나도 알고 있다고,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고.

 …끼어들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다.

 허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베사리아의 내면을 스스로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후회 가득한 그 과거를 열기엔 그는 너무나도 연약했다. 그래서 그는 침묵했다. 지금 소나가 대신 그 후회를 꺼내게끔 미루고 있었다.

 비겁하고도 비열한 행동이었다.

 -그렇지 않아요.

 소나가 양손으로 그의 손을 잡더니 말했다. 잭스는 자기가 주먹을 꽉 쥐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절대 비겁하거나 비열하지 않아요. 제가 선택해서, 제가 판단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니 자신을 책망하실 필요 없어요.

 소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단호하고 맑은 눈빛이 그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꿰뚫듯이 꽂히고 있었다. 항상 소나의 눈빛은 그를 안정시켜줬다. 점차 혼란이 가라앉고…이윽고 완전히 진정이 됐다. 그는 꽉 쥐었던 손을 풀고 소나의 가녀린 손을 한번 잡았다가 놨다.

 “난 괜찮소. 계속 말해주시오.”
 -…그분은 망가져 계세요. 이 이상 없을 정도로요. 저는…저는, 살면서 그렇게 뒤틀리고, 그렇게 슬픈, 그렇게 부서진 내면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겉으로는 괜찮아보여도 속은 썩을 대로 썩어 문드러져 있어요. 후회와 절망이라는 그 시커먼 진흙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면서도, 정작 그곳에서 벗어날 기회가 오면 움츠러드는 늪에 빠져 있으세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엔 바로 잭스 님이 계세요. 잭스 님의 존재만이, 그분의 세계에 색을 입혀요.
 “…어느 정도로 말이오?”
 -아마, 잭스 님이 없으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적으로 돌릴 수 있을 정도로요.

 아니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요. 소나는 그 뒷말을 삼켰다. 그것은 짐작이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차라리 자신의 능력이 틀리길 바랄 정도로 명확한 확신이었다.

 -잭스 님이 없는 세상이란 그분에겐 종잇조각 따위의 가치마저도 없을 거예요. 전 그날 밤 그걸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베사리아 님을 그냥 둘 수가 없었어요.
 “데마시아가 반쯤 없어질 수도 있었겠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잭스의 그 말은 불행히도 빈말이 아니었다. 베사리아 같은 강력한 소환사가 정말 마음만 먹는다면 대륙급 재앙을 몰고 오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때 선택지가 없었을 터였다. 막말로 자신을 구하다 잘못돼서 죽나, 자신의 죽음으로 완전히 이성을 잃은 베사리아 손에 죽나 결국 죽긴 매한가지일 터였다.

 하지만 그의 감정을 또렷하게 들은 소나는 살래살래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 잭스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그날 밤 베사리아가 폭주하기 반 보 직전이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때 단 한 순간도 목숨이 아까워서 베사리아에게 협력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거창한 이유 때문에 베사리아 님을 도운 게 아니에요, 잭스 님. 전 그때 두려웠어요. 베사리아 님이, 그 깊은 심연에 먹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못하실 것 같았어요. 너무 가엾고 불쌍했어요. 그분은 우시지 않았지만…울고 계셨어요. 마음속으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눈물조차 메말라 피눈물이 흐를 정도로 절망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분을 도와드렸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그분이 그 절망에서 헤어 나오시길 바랐어요.

 그 상처 입은 내면의 소리는 지금도 또렷이 소나의 안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 소리를 다시 한 번 떠올리자 소나는 감정이 북받치는 걸 느꼈다.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참았다. 그녀는 울 수 없었다. 잭스의 힘이 되어줘야 하는 자신이 울어버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죄송해요. 이걸 베사리아 님 앞에서 말씀드릴 순 없었어요. 분명 상처 입으실 테니까, 말할 수가 없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잭스 님에게만은 알리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

 침묵 속에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나가 조심스러웠던 것도 이해가 되는 그였다. 자존심 강한 베사리아라면 아무리 소나라 해도 이런 걸 그에게 말해주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터였다. 심지어 그게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상처에 대한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베사리아는 잭스가 행복해지길 그 누구보다도 바랐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바라면서 그 옆에 자신의 자리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깊은 죄책감. 그 모순. 그 모순의 덩어리야말로 베사리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었다.

 지독한 모순. 그것이 뭐가 문제인지조차 잊어버린 채 후회와 절망만이 남은 과거 속에 갇힌 그녀가 간신히 내놓을 수 있는 답이었다. 소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전 감정만 들을 수 있어요. 그러니 과거에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몰라요.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어요. 두 분 사이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요. 
 “…….”

 겨우 회복된 그에게 다시 짐을 지우는 꼴이었다. 소나는 마음이 쇠갈고리로 후비는 것처럼 아팠다. 그의 내면에서부터 들려오는 얕은 슬픔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 잘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어줍잖은 위로의 말 따윌 건네려고 상처를 들쑤실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랬다면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베사리아 님을 구해주세요, 잭스 님. 

 피가 배어나올 정도로 이를 악무는 기분으로, 그녀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어느새 그녀의 여린 두 손은 손마디가 새하얘질 정도로 잭스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오직 잭스 님만이 베사리아 님을 구할 수 있어요. 잭스 님은, 그분에게 있어 영웅이시니까요.
 “난 영웅 따위가 아니오.” 잭스가 씹어뱉듯 말했다. “베사리아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그분의 내면은 어둡고 슬펐지만, 그래도 딱 하나 잔잔하고 아름다운 음색을 내는 부분이 있었어요. 바로 잭스 님을 향한 감정이었어요. 그분의 내면이 겉으로나마 평온한 봄날의 들판 같은 음색을 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잭스 님의 존재 덕분이었어요.

 베사리아의 내면을 처음 마주할 때, 소나는 그 심연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감정에 압도당해 두려움과 연만만 가졌을 뿐이었다. 평온한 들판 아래 시커먼 진흙이 꿈틀거리는 듯한 그녀의 내면은 분명 소나가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유형의 공포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의 내면이 그나마 겉으로 보기에라도 멀쩡해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잭스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녀의 부서진 내면을 둘러싸고 있는 평온한 봄날의 언덕. 부드럽고도 활기찬 희망의 소리.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때로 폭풍이 몰아쳐도 당사자에게 안식과 평화를 줄 수 있는 곳. 그곳의 모든 감정은 잭스에게 향해 있었다. 잭스는 베사리아의 이 세상 유일한 안식처였다.

 비록 그와의 과거로 인해 부서졌다 해도, 지금 그가 그녀 자신의 삶의 이유이자 원천이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사람을…….

 -그런 사람을, 어떻게 영웅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어요?

 상냥하게, 어루만지듯 소나는 말했다. 바이스처럼 꽉 조이던 그녀의 손은 어느새 부드럽게 잭스의 팔뚝을 잡고 있었다. 잭스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래도 소나는 다그치지 않고 상냥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를 보는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온화하고 잔잔했다.

 -제가 두 분의 상처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알아요. 이렇게 몰래 말씀드리는 것도 베사리아 님께 죄송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두 분이서 과거에 얽매여서 괴로워하시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어요.
 “…….”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잭스 님이 괴로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아요. 하지만 괜찮다고만 다독이면 안 되겠죠? 그럼 전 잭스 님 곁에 나란히 설 수 없을 거예요. 저는 잭스 님의 뒤를 따라가고 싶지 않아요. 당신 옆에 서서, 당신과 똑같은 경치를 바라보고 싶어요. 당신에게 보호 받는 존재가 아닌 대등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머릿속에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이른 아침 이끼 위로 방울져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잔잔하게 그의 마음을 울리고 있었다. 그는 소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촉촉하게 젖은 눈빛, 그러나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은 채로 그녀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없이 상냥하지만 단호한 눈빛이었다.

 그를 믿는 눈빛이었다.

 잭스는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가면 뒤에, 푸른 안개 뒤에 숨겨진 그의 연약한 면을 살며시 쓰다듬는 듯했다. 소나가 그렇게 바라볼 때마다 그는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었다.

 소나의 그런 눈빛을 받을 때마다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선 희망이 샘솟았다. 그는 절대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법이 없었다. 전쟁터에서 그따위 짓을 했다간 목숨이 아홉 개라도 모자랐으니 말이다. 그런데 소나와 있으면, 소나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볼 때면 문자 그대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으니 그 신기한 감각에 잭스는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정말 그대에겐 못 당하겠소.”
 -후후, 칭찬이라고 생각할게요.

 소나가 방긋 웃으며 그의 팔을 꼭 껴안았다. 그는 조금 움찔 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지금 그에겐 그녀의 따스한 온기가 무엇보다도 필요했다.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나 베사리아나 모두 힘든 시간을 거쳐 왔소.”
 -네.
 “의견이 엇갈린 적이 많았소. 맞는 적이 드물었지. 충돌도 있고 마찰도 많았지만 서로에 대해 이해하며 잘 넘겼다오. 하지만 그때 일은, 그때 일만큼은……. 난 그 일이 베사리아에게 너무나 큰 상처라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다시 건드릴 자신이 없소.”

 그때 일이 뭘까, 소나는 몰랐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언젠가 잭스가 스스로 이야기해줄 때까지 기다릴 셈이었다. 그런 방면으론 그녀는 아주 참을성이 많았다.

 “난 지나온 과거를 후회하지 않기로 수없이 맹세했소. 하지만 그 일만큼은, 베사리아에게 끝도 없이 깊은 상처를 줬던 그 일만큼은……. 도저히 얘기를 꺼낼 수가 없소. 소나, 나는……. 나는 내가 후회하게 될까봐 두렵소.”

 불.
 비명.
 탈색이 될 정도로 새하얀 비명소리.
 그리고 베사리아.
 그 한 마디.

 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잭스 님.

 그리고 소나는 상냥하게 그의 주먹 쥔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조금씩 마주보면 돼요. 급할 것 없어요. 전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소나의 속삭이는 목소리는 그의 마음을 잔잔히 적시고 있었다.

 -힘드시면 어깨를 빌려드릴게요. 괴로우시면 제가 연주를 해드릴게요. 온기가 필요하시면 꼭 안아드릴게요. 잭스 님께서 스스로 상처를 마주보실 때까지 전 기다릴 거예요. 잭스 님이 절 포기하시지 않은 것처럼, 저도 잭스 님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서 소나는 그의 손을 끌어올리더니, 잭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소…!”

 그가 이름을 채 부르기도 전에 짧은 입맞춤은 끝나 있었다. 작은 새가 살짝 내려앉았다가 지나간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 작은 느낌에서 온기가, 아니 열기가 확 퍼져서 온 몸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그는 얼굴에 열이 달아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소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향한 그녀의 얼굴은 연분홍빛으로 발그스름 물들어 있었다.

 -그게 사랑이니까요. 그렇죠, 잭스 님?
 “…심장에 좋지 않으니 다음부턴 이러지 말아 주시오.”
 -후훗, 싫어요.
 “…그럼 적어도 예고라도 하고 해주시오.”
 -어머나, 그러면 깜짝 놀래켜 드리는 의미가 없는 걸요?
 “그 깜짝 놀라게 하는 걸 하지 말아달란 얘기요.”
 -흐응.

 소나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굳이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그의 심장 소리를 통해 들려오는 그 수많은 감정들이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짜릿하게 두드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쩜 이렇게 귀여우실까? 어쩜 이렇게 순진하신 면이 있을까? 그를 올려다보는 소나의 눈빛엔 한없는 애정이 가득했고…….

 -싫어요!

 산뜻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연약한 요청을 시원스럽게 거절해버렸다.

 “………….”

 그저 느는 게 한숨뿐인 잭스였다.




----------




<잡담>

달달 쌉싸름의 비율을 잘 맞췄나 모르겠네여

어쨌든 다음화가 챕터2 마지막입니다. 진짜로요.



Lv74 강철안개

메뉴 인장보기 EXP 38%

코멘트

새로고침
새로고침
LoL 팬아트/카툰 게시판
전체보기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