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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80화(챕터2 완)

아이콘 강철안개 | 댓글: 1 개 | 조회: 1211 | 추천: 1 |

#. 새벽빛

 산들바람 같은 목소리가 그의 머리를 조용히 울렸다.

 -아이오니아에는 어떻게 가실 생각이신가요?
 “달리 방법이 있겠소? 배 타고 가야지. 잘 아는 선주에게 기별 넣어놨으니 내일이나 모레쯤 곧바로 출발할 수 있을 거요.”
 -어머, 학회 차원문은 사용 안 하시고요? 그게 훨씬 더 편하시지 않나요?

 그 소리는 때때로 물방울 튀듯 경쾌했고,

 “차원문 한 번 이용할 돈이면 아이오니아로 가는 배편을 서른 번을 잡고도 남소. 학회 쪽에서 부를 때나 공짜로 쓰는 거지, 개인적으로 쓴 적은 한 번도 없소.”
 -어머나, 전 잭스 님이 학회 시설은 당연히 다 이용하실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한 떨기 들꽃처럼 우아했으며,

 “허, 설마 베사리아나 맨드레이크와 친하다고 시설까지 맘대로 사용할 거라 생각했던 거요? 공은 공이고 사는 사요. 챔피언 계약 항목에도 차원문 무료 이용 혜택 같은 건 없소.”

 -그래도……. 하긴, 그래야 잭스 님답죠.
 “…좋은 뜻으로 알아듣겠소.”
 -좋은 뜻이에요, 후후.

 언제나처럼, 잔잔한 햇살과도 같은 미소로 잭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그것도 끝을 고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었다.

 “…….”
 -…….

 차원문 앞에서, 그들은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말을 멈췄다. 소나는 차원문을 등지고 서있었다. 그것은 잭스에게 인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헤어지기 싫은 몸부림처럼 보였다. 

 “…소나.”
 -조금만 더요.

 달래는 듯한 그의 말은 내용을 채 말하기도 전에 막혀버렸다. 소나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강철의 꽃과도 같은 단아한 눈빛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잭스 님과 같이 있고 싶어요.

 소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눈빛엔 아쉽다는 감정과 이제 정말 헤어져야 한다는 이성이 섞여 있었다. 안타깝고도 그윽한 눈으로 소나는 잭스의 모습을 꼼꼼히 눈에 새겼다. 그의 숨소리, 옷자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심장 소리를 가슴에 새겼다.

 -아주 오랫동안 같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거의 반 년 가까이 있었지. 다른 곳에서 이렇게 오래 머물러보긴 나도 처음이오.”

 그 역시 조용히 말했다. 소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진한 아쉬움이 들려오자 아쉬운 와중에도 기쁨의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이라는 게 너무나 행복했다.

 -평소엔 어디 계시는데요? 그러고 보니 저, 잭스 님이 어디서 살고 계시는 지도 몰라요.

 조금만 더, 이 시간이 조금만 더 지속되기를. 가면 밑에서 들려오는 그의 묵직한 저음이 좋았다. 그가 자신을 위해 얘기해주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쇠가시 산맥 쪽에 작은 오두막이 있소. 보통은 거기서 많이 지내지. 좋은 곳이오. 주변에 널찍한 호수도 있어서 풍경도 좋고, 낚시하기도 안성맞춤이라오.”


 잭스는 시시콜콜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을철엔 사냥하기에 아주 좋지. 그래서 가을만 되면 리그가 없는 날엔 꼭 사냥을 나간다오. 사냥감들 잡아서 훈제로 만들고, 근처 마을에 가서 가죽도 팔고, 생필품도 보충해놔야 하오. 산골짜기에선 겨울이 빨리 오는 법이거든. 뭐든 부지런해서 나쁠 건 없소.”

 그렇기에 소나는 잭스가 그렇게 말해주는 게 너무 기뻤다. 그는 자길 억지로 숨기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먼저 자기 얘길 주절주절 늘어놓는 성격 역시 아니었다. 그 역시 그녀와 헤어지기 아쉬워서 없는 말주변 최대한 짜내 얘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그의 목소리에서, 그의 고동 소리에서 감정들이 아스라이 그녀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그 모든 애정이, 모든 감사가 한데 어우러지며 그녀의 입가에 미소로 번져 갔다. 잭스를 바라보는 소나의 눈빛엔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 

 -멋진 곳이네요. 나중에 저도 한번 초대해주실 수 있을까요? 모든 일이 다 끝난 다음에요.
 “…….”

 소나는 깊은 소망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잭스 님의 몸이 다 낫고, 에트왈과 다시 만나고, 에스트렐들과의 문제도 해결된 뒤에 잭스 님의 오두막에 가보고 싶어요. 가서 잭스 님이 해주시는 음식도 먹고 싶고, 잭스 님의 일도 한번 거들어드리고 싶어요. 잭스 님의 일상을 느껴보고 싶어요.

 그녀는 지위나 명예 따윌 원하지 않았다. 부도 원하지 않았다. 소나의 소망은 아주 소박했다. 그저 조용한 곳에서, 잭스 곁에서 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에트왈을 튕기고 싶었다. 그를 위한 노래를 연주하며 같이 노을 지는 호숫가를 바라보고 싶었다. 

 “기꺼이 그러겠소.”

 그런 그녀에게 시선을 맞추며, 그는 장담하듯 말했다.

 “대신 경치 좋은 거 말곤 정말 아무 것도 없으니 괜한 기대는 마시오.”
 -후훗, 정말 그날이 기다려지네요.

 꼭 툴툴거리는 말을 덧붙이는 건 역시 그답다고나 해야 할까, 소나는 커다란 곰의 투정을 보는 것 같아 푸근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그 광경은 꿈만 같을 정도로 황홀하겠지. 소나의 안에선 이미 그 광경이 하나의 음계로 그려지고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 정말 이 곡을 잭스에게 연주해줄 수 있도록 소중히 마음속에 갈무리해뒀다.

 그리고 마침내 한 발짝 그에게서 물러섰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아까와 달리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언제 이뤄질지도 모를 그 약속 하나가 그녀와 그의 사이를 단단히 연결해주고 있는 것만 같아 안심이 됐다.

 -전 가는 데에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알겠소. 먼저 가 있으리다.”
 -도착하면 꼭 연락 주세요. 아니 도착하자마자, 항구에 내리자마자 바로 연락부터 주셔야 해요. 아시겠죠?
 “무슨 호들갑은…….”

 어차피 곧 만날 텐데, 라는 그의 뒷말은 소나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속으로 수그러들었다.

 -저뿐만이 아니라 베사리아 님께도요. 말했죠? 너무 걱정시키지 말아달라고.
 “…알겠소.”

 가면 너머로 한마디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꾹 참는 그의 얼굴이 훤히 그려지는 소나였다. 잭스의 좋은 점은 입 밖으로 낸 말은 지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살짝 굳었던 그녀의 얼굴은 그의 대답을 듣고 다시 부드럽게 풀어졌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푹 파묻고 싶었다. 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가 당황해서 숨을 들이키기라도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짜릿할 것 같았다. 주변에 사람만 없었어도 정말 그랬겠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예민한 귀엔 간간히 지나다니는 발걸음 소리가 포착되고 있었다. 차원문 관리 구역이니까 사람들이 

 헤어지는 게 아쉽지 않다면 그거야말로 거짓말이리라. 곧 만날 수 있을 텐데도, 실제로 정말 곧 만날 텐데도 소나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기운차게 이별해야 할 때였다. 아쉬운 만큼 더 당당하게 그와 마주해야 할 때였다.

 …기나긴 새벽이 끝나고,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는 듯했다.

 -곧 다시 만나요, 잭스 님.
 “살펴 가시오.”

 잠깐 스친 서로의 눈길. 진향 아쉬움의 향기를 남기며 소나는 차원문 속으로 들어갔다. 흐려지는 빛무리 사이로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소나는 왠지 모르게 그가 웃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빛이 그녀를 감쌌다.

 세상이 하얗게 변하더니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저 멀리 데마시아 특유의 드높고 하얀 성벽이 보였다. 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라, 은은하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리고 차원문은 그녀 뒤에서 닫히고 있었다. 그녀가 딱 마지막 이용자였던 모양이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아가씨.”

 흐트러짐 하나 없이 대여섯 명의 메이드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소나가 가볍게 에트왈의 현을 뜯어 감사를 전하자 그녀들은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마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가씨.”
 [알겠어요. 고마워요, 조이.]

 레이디스 메이드인 조이가 옆에서 살짝 속삭여주자 소나는 웃으며 수화로 말을 전했다. 할 일이 많았다. 아이오니아로 갈 채비도 해야 했고, 그 전에 우선 어머니를 설득해야 했다. 직접적으로 잭스와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진 않겠지만 분명 신경이 곤두서있으실 테니 말이다. 조이가 귀띔을 해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녀에게서 약간의 불안감과 걱정이 들려오자 소나는 자신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로소 잭스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온 실감이 났다. 이제 그는 없었다. 곧 다시 만나자고 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일만 남아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어머니를 설득해야 했다. 그와의 약속을 자신 쪽에서 먼저 깨는 건 정말 생각하기 싫었다.

 하나의 일이 끝났고, 새로운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특별했다. 손에는 아직 그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귓가엔 그의 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그의 숨결이, 너털웃음이, 골난 듯 툴툴대는 목소리가, 어쩔 줄 모르고 우물쭈물하는 목소리가 전부 소나의 안에 소중하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온기 역시, 아직도 그녀의 손에 남아 있는 듯했다. 소나는 가만히 손을 들어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끄응, 내가 귀족 예법 같은 걸 알 리가 없지 않소.]
 ‘후훗.’

 그것만으로도 잭스의 멋쩍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메이드들의 시선은 느껴졌지만 별다른 의심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긴 세상에 누가 손바닥에 키스를 받았다고 생각이나 할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잭스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밌었다. 그녀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행복한 미소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아이오니아에서도 분명 여러 일들이 있을 터였다.

 잭스의 건강, 자신의 과거, 에트왈과의 재회, 그리고 에스트렐 일족의 비밀. 그 중엔 위험한 일도 생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그 모든 일을 잭스와 헤쳐나간다면 분명 할 수 있었다. 이번엔 자신이 그를 지켜 줄 차례였다. 소나는 똑바로 앞을 바라봤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혼자서 걱정거리에 매몰되기만 하는 연약한 소녀가 아니었다. 

 잭스가 믿어 준 소중한 자신을, 스스로가 부정해서야 안 될 일이었다.

 ‘…힘내자.’

 소나는 부드럽게 결의를 다지며 에트왈의 현을 어루만졌다. 천천히 그녀의 두 손이 에트왈 위에서 춤을 췄다. 새벽녘의 안개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단아한 그녀의 의지가 하나의 연주가 되어 주변으로 아스라이 퍼져 나갔다.


 속삭이듯, 잔잔하게.

 다시 만날 날을 노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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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및 잡설>

1. 챕터2: 새벽빛이 끝났습니다. 지지부진하게 끌고 있던 걸 마침내 끝내니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2. 안 쓴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꽤 오래 썼는데, 그동안 봐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3. 부제인 '새벽빛'은 아침이 밝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라는 말에서 따왔습니다.

4. 등장인물 모두에게 정말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느낌의 엔딩을 내고 싶었습니다.

5. 하지만 새로운 아침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니,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야겠죠.

6. 아이오니아로 이제 무대가 옮겨가겠군요. 기대가 됩니다.

7. 봐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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