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 팬아트/카툰 게시판

전체보기

모바일 상단 메뉴

본문 페이지

[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외전: 어느 여름날 꿈(1)

아이콘 강철안개
조회: 2385
추천: 2
2021-04-09 13:44:49

#.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

 아스라이, 장미수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잭스는 눈을 떴다.

 “흐응, 흥…….”

 뜻 모를 콧노래를 부르며 머리를 빗고 있는 베사리아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레이스가 달린 하얀 잠옷 위로 황금빛 머리카락이 폭포수 쏟아지듯 흘러내려 있었다. 등잔의 불빛을 받아 그녀의 머리는 정말 윤이 나게 반짝이고 있었다. 매끄럽고도 풍성한 머리카락, 그리고 매일 밤 정성 들여 바르는 향유의 냄새. 그 모든 게 오직 그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살며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베사리아.”
 “어머, 깼어요? 미안해요. 많이 피곤했을 텐데.”
 “차라리 깨우지 그랬소.” 그가 멋쩍은 듯 작게 투덜거렸다. “저녁은 먹었소? 준비 다 해놨었는데.”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베사리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꼭 커다란 곰이 칭얼거리는 것 같은 그의 목소리는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녹서스 쪽 연회에서 실컷 먹고 왔으니 괜찮아요. 저녁은 내일 같이 먹어요. 내일은 일찍 올 테니까. 그런데……. 후훗,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오늘 사냥은 수확이 아주 좋았나 보네요?”
 “그럼. 사이리아가 사슴을 잡았거든. 손질은 아까 다 해놨고, 넓적다리는 소금에 절여놨으니까 내일쯤 훈제를 할 거요. 몇 달간은 맛있는 사슴 고기를 매번 식탁에 올릴 수 있을 거요.”
 “그럼 그 아이, 또 당신 핑계 대고 제가 낸 마법학 숙제는 하나도 안 했겠네요…….”
 “험, 그런 걸 냈었소? 전혀 몰랐군.”
 “진짜 먹히지도 않을 거짓말하는 버릇은 언제 고칠래요?”

 베사리아는 어깨 너머로 그를 살짝 흘겨봤지만, 그렇다고 머리를 빗던 손을 멈추진 않았다. 손가락 사이사이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이 황금으로 짠 실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목소리에 날이 서있었지만 그렇게 기분 나쁜 기색은 아니었다. 어쨌든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애 아빠와도 사이가 좋은데 기분이 나쁠 리는 없었다. 그녀의 걱정거리는 그저 혹시나 애가 아빠 따라 사냥터로 갔다가 다치고 오지나 하진 않을까 하는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많이 옅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렴, 같이 나가는 사람이 대륙 최고의 전사로 추앙받는 인물인데……. 만약 리그에서 진작에 은퇴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보다 그가 더 바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요즘 잭스는 사냥에 한창 맛들린 상태였다. 그동안 못해봤던 취미 생활에 한이라도 맺혔는지, 사냥터에서 문자 그대로 ‘씨가 마르기’ 직전까지 사냥감들을 잡아들이고 있는지라 베사리아는 팔자에도 없던 숲 생태계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다. 사냥터지기 톰 영감에게 제발 주인어른 좀 잡아두면 안 되겠냐고 한소리 들은 건 덤이었다.

 하지만 누가 그를 꺾을 수 있으랴. 고집 질기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잭스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아는 베사리아는 결국 근처에 있던 별장을 저택으로 개조해서 이쪽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차피 순간이동이 있으니 여기가 아니라 대륙 반대편에 있어도 상관없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베사리아는 애가 좋아한다는 점과,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자기 남편이 날이면 날마다 행복에 겨워 한다는 점 두 가지를 참작해서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뭐 솔직히 말해 아주 나쁜 것도 아니었다. 잭스가 손수 잡은 사냥감으로 만든 식사를 매 끼니때마다 할 수 있다는 건 은근한 자랑거리였다. 덕분에 결혼 전까지 불규칙했던 식사 습관도 많이 좋아졌고, 애를 낳은 뒤로도 몸매 망가지는 일 없이 오히려 더 건강해져서 미모를 뽐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 물론 남에게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잭스에게 뽐내기 위한 것이었다. 가끔 연회에 잭스를 데리고 가서 주변 남자들에겐 선망의 눈길을, 잭스에겐 질투의 눈길을 받는 게 그녀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였으니까. 물론 그런 날 밤엔 잭스에게 혼쭐이 났다.

 침대에서.

 “이번 주말에 사냥터에 나가보지 않겠소? 애도 그러고 싶은 눈치던데.”
 “또 애 핑계. 애는 아빠 핑계, 아빠는 애 핑계. 어쩜 부녀가 이렇게 안 좋은 면만 닮았을까요?”
 “험.”

 잭스가 헛기침을 하며 슬며시 그녀의 허리를 만졌다. 얇은 잠옷 너머로 그의 거친 손길이 느껴졌다. 할 말 없지만 애처럼 칭얼거릴 때마다 으레 하는 그의 버릇이었다. 그것이 못미더우면서도 베사리아는 늘 그 애교에 넘어가곤 했다.

 “알겠어요.” 베사리아는 못이기는 척 말했다. “이번 주는 리그도 없으니까요.”
 “음, 그럼 준비하리다.”
 “대신 사이리아한테 이번 주말까지 제가 낸 숙제 다 끝내 놓으라고 하세요.”
 “…아, 알겠소.”
 “당신도 너저분하게 흩어진 사냥 도구며 가죽 같은 거 다 정리해두시고요. 사냥하는 건 좋지만 자제 좀 해요. 저택에서 짐승 노린내 같은 거 나기만 하면 사냥이고 뭐고 싹 다 못하게 할 거예요, 알겠죠?”
 “……알겠소.”

 결혼하고 많이 느슨해지긴 했어도 베사리아는 역시 베사리아였다. 딱 잘라 선결과제 두 개를 던져 준 그녀는 잭스가 어떻게 하면 딸아이 기분 안 상하게 이 소식을 전할까 끙끙거리는 소리를 반주 삼으며 머리 빗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앞에서 자랑이라도 하듯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어때요?”

 얇은 잠옷과 함께 풍성한 금발이 물결처럼 휘날렸다.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사이에서 녹아내린 금처럼 사락사락 흘러내렸다. 잭스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카락에 손을 뻗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부드러운 그 감촉에 그는 정신이 멍할 지경이었다.

 “후후, 어떻냐니까요?”

 그녀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세월 같이 해 온 그녀가. 이전보다 더 밝아진 모습으로.

 희고 고운 턱선. 그 아래로 내려오는 고운 목덜미. 자신의 품속에서 바르르 떨던 그녀의 작은 손. 어떨 때는 눈물 맺힌 채로, 어떨 때는 장난스럽게, 또 어떨 때는 사랑스럽다는 듯 그를 바라보던 깊고 푸른 맑은 눈동자. 그 모든 게 오직 그를 향하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소.”
 “후후.”

 멋대가리 없이 중얼거린 한 마디였지만 베사리아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장미수의 향기가 그의 코를 간질였다.

 “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그녀의 가녀린 두 팔이 어느새 덩굴처럼 그의 목에 꽉 얽혀 있었다. 사랑스러운 입맞춤을 거절할 이유 따윈 없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잠옷 너머로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긴 입맞춤 끝에 살짝 떨어진 베사리아의 눈빛은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비록 푸른 안개로 뒤덮여 보이지 않는 얼굴이라 해도 그녀에겐 이 세상 최고로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그 열기에 잭스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통통통

 [아빠아…….]
 “…….”
 “…….”

 통통통통

 [히잉, 엄마아아…….]

 문밖에서 사랑스런 딸의 칭얼거림을 들으며 베사리아의 눈빛은 급속도로 식어갔다.

 “…잠옷 입어요, 빨리. 애 앞에서 벗고 있지 말고.”
 “…….”

 직전에 멈춰서 갈 데 없는 열기와 함께 그도 베사리아를 따라 일어나야만 했다. 엄마만 부른 것도 아니고 아빠 먼저 불렀는데 그가 어찌 안 일어날 수 있겠는가.

 주섬주섬 가운을 입는 그의 어깨는 좀 전의 반동인 양 축 쳐져 있었다.

***

 [아빠 밖에 있어?]
 “그래, 걱정 말거라.”
 [엄마느은?]
 “엄마도 밖에 있어~”

 일국의 왕세자 앞에서도 고개 빳빳이 세웠던 전적이 있는 용병과, 얼굴 마주치면 일단 고개부터 숙이고 봐야 하는 전쟁학회의 대표. 아마 이 둘에게 화장실 보초를(그것도 동시에) 세울 수 있는 존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운 딸, 사이리아뿐이었다.

 허나 나긋나긋한 목소리와는 달리 잭스를 바라보는 베사리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건 딸이지 남편이 아니었으니까. 그녀의 목소리엔 잔뜩 날이 서있었다.

 “내가 사냥 작작 하라고 했죠?”
 “…….”

 지은 죄가 있는 잭스는 구긴 종이마냥 찌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필 많고 많은 곳 중에서 왜 하필 화장실 근처에 이런 걸 두냔 말이에요, 왜! 눈이 있으면 좀 보라고요!”

 베사리아가 강제로 잭스의 고개를 돌렸다. 달빛을 받아 언뜻언뜻 빛나는 날붙이들 사이로 사나운 맹수들이 어둠 속에서 고개를 디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한  섬뜩한 느낌. 그러나 그걸 보는 베사리아의 표정은 시큰둥했고 잭스는 쩔쩔매고 있을 뿐 긴장감 따윈 전혀 없었다. 하긴 저것의 정체가 잭스의 취미 생활의 ‘부산물’인 걸 알고 있는 그녀에게 저까짓 것들이 무서울 리가 없었다.

 “사이리아가 아무리 당신 따라 사냥터에 간다고 해도 이제 겨우 열 살 넘은 애가 저런 걸 밤중에 본다고 생각해봐요. 엄마아빠를 안 찾고 배기겠어요? 이이가 진짜…….”
 “그, 그렇지만 낮에는 잘만 구경하고 놀던데…….”
 “그래서요?”

 낮에 구경을 하건 가지고 놀건 무슨 상관이냐는 뜻이었다. 베사리아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눈을 치뜨자 잭스는 다시 조용히 찌그러져야 했다. 대륙 전체를 뒤져봐도 그의 고개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았고, 이렇게 단번에 찌그러트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베사리아가 유일할 터였다. 

 그녀는 지금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남편의 멍청한 취미 생활이 돌고 돌아 아까 달아올랐던 분위기에 찬물을 있는 대로 들이부은 형국인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잭스를 향한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었다.

 “내일 당장 저거 다 정리해놔요, 알겠죠? 팔든, 묻든, 태우든, 아니면 지인들한테 선물로 주든 알아서 처리하라고요. 내일 나 돌아올 때까지 저놈의 가죽이나 하여튼 사냥에 관련된 거 눈에 띄기라도 했다간 내가 처리할 거예요. 그리고 두 번 다시 사냥의 ‘ㅅ’자로 못 꺼내게 할 테니까 그리 알고 있어요.”
 “…알겠소.”

 잭스는 맥없이 대답했다. 최후통첩이었다. 베사리아는 한다면 하는 성격이었다. 거기에 한동안 말도 안 하고 심지어 울기까지 해버리니 이 ‘최후통첩’의 뒤끝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는 그로서는 따르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결혼 후 잭스가 베사리아를 울린 적은 지금껏 딱 세 번뿐이었다. 그리고 그 세 번 모두 그가 거의 바닥을 쓸고 다닐 정도로 엎드려 빌고 또 빌어서야 겨우 넘어갔다. 이래저래 잡혀 사는 남자란 피곤한 법이었다.

 그때 쏴아-하고 물 내리는 소리가 나더니 딸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아무래도 애 역시 자기 행동에 부끄러운 감이 없잖아 있는지 얼굴이 약간 빨개져 있었다. 베사리아는 그런 딸의 창피를 감춰주려는 듯 얼른 무릎을 꿇고 귀여운 딸의 볼을 매만졌다.

 “다 했어? 손 깨끗이 씻었고?”
 “응. 밤중에 죄송해요. 근데 너무 무서워서…….”
 “호호, 그건 아빠가 잘못한 거니까 엄마가 나중에 혼내줄 거야. 자, 착한 아이는 이제 자야지? 엄마랑 같이 가자.”

 절대 그냥 넘어가진 않겠단 의지가 뚝뚝 흘러넘치는데 어떻게 딸아이에겐 저렇게 살갑게 굴 수 있을까. 자신과 딸을 향한 어마어마한 온도차에 잭스는 몸을 떨어야 했다. 하지만 사이리아는 망설이는 눈빛으로 잭스의 다리에 찰싹 붙었다.

 “험, 사이리아?”
 “나 무서워, 아빠.”
 “…아빠가 저것들은 내일까지 다 치워 놓으마.”
 “낮에 보면 안 무서운데 밤에 보면 무섭단 말이야. 그러니까 나 오늘 아빠랑 잘래.”
 “…….”

 베사리아가 할 말 잃은 표정을 짓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잭스는 그걸 보며 ‘이런 느낌이군’이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재빨리 잭스에게 곁눈질을 했다. 딸에 대한 사랑과 오붓한 시간에 대한 욕망이 뒤섞인 표정으로 베사리아는 그에게 어떻게든 해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총대를 매야 하는 건 그였다. 그는 딸을 안아들고선 시선을 맞췄다. 아이의 똘망똘망한 눈동자 속에 그의 푸른 안개 같은 머리가 비추고 있었다.

 딸아이는 꼭 엄마를 닮아 있었다.

 천만 다행히도 그와 닮은 구석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적어도 잭스가 생각하기론 그랬다. 손가락 발가락도 정상적이었고 피부도 깨끗한 우윳빛이었다. 베사리아의 미인 유전자를 듬뿍 받은 모양인지 벌써부터 범상치 않을 정도의 매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딱 하나, 베사리아와 닮지 않은 구석이 있다면 눈뿐이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뒤덮고 있는 푸른 안개와 비슷한, 짙푸른 색이었다.

 그걸 볼 때마다 그의 마음 한쪽에선 혹시 아이에게도 자신의 저주가 옮겨간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사랑스러운 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이리아는 이제 열 살이지?”
 “응!”
 “저번에 다 컸다고 아빠 사냥도 따라나섰잖니.”
 “맞아! 나 오늘은 사슴도 잡았어!”

 사이리아는 그 짜릿한(?) 손맛이 기억나는 건지 손뼉까지 짝짝 치며 좋아했다. 그런 딸을 보며 잭스는 옳다구나 하고 쐐기를 박았다.

 “다 큰 아이는 혼자 자는 법을 배워야하는 법이란다.”

 잭스는 최대한 상냥하게, 그리고 애가 납득이 되게끔 이유를 설명했다. 사이리아는 잠깐 말문이 막힌 듯 그를 바라보더니 뚱한 표정을 지었다. 딱 베사리아가 심통이 났을 때랑 똑같았다.

 “그럼 나 다 큰 애 안 할래.”
 “으, 으응?”
 “나 어린애 할 거니까 아빠 오늘 나랑 자, 응? 나 아빠랑 자고 싶단 말이야!”

 빽 소리 지르며 징징거리는 모습이 그야말로 베사리아를 빼다 박은 수준이었다. 잭스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까지 제 엄마를 닮아 똘똘한 딸내미는 서서히 그의 퇴로를 막는 법을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험.”

 결국 잭스는 항복의 뜻으로 베사리아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딸애가 원하는데. 하지만 베사리아의 태도는 잭스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의 무른 태도가 맘에 안 든다는 듯 입을 삐죽이던 그녀는 사이리아를 냉큼 그의 품에서 뺏더니 복도에 내려놨다.

 “사이리아.”
 “응, 엄마?”

 왜일까, 잭스는 베사리아의 그 자애로운 미소에 등줄기를 훑는 섬뜩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저번에 동생 가지고 싶다고 말했잖니?”
 “응! 나도 동생 가질 거야. 나도 동생한테 아빠처럼 사냥 가르쳐 줄 거야!”
 “어머, 마법은?”
 “마법…….” 사이리아가 엄마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맥없이 말했다. “응……. 마법도 가르쳐 줄게.”
 “후후, 기뻐라. 그런데 어쩌지? 우리 사이리아한테 동생 만들어주려면 엄마랑 아빠가 좀 힘든 일을 해야 하거든.”
 “험, 그…….”

 때 아닌 성교육이 시작되자 잭스는 뜨끔한 마음에 제지하려 했다. 노력은 가상했지만, 베사리아의 사나운 눈빛에 한 단어도 뱉기 전에 다시 찌그러져야 했다. 딸은 그저 순진한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볼 뿐이었다.

 “힘들어? 나도 도와주면 안 돼?”
 “사이리아가 도와줄 수 없는 일이에요. 엄마랑 아빠 둘이서만 해야 하거든.”
 “엄청 힘든 거야?”
 “호호, 아빠가 엄청 힘들 거야.”
 “………….”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굉장히 기분이 좋기도 하단다. 사이리아도 아빠랑 사냥할 때 힘들지만 기분 좋잖니?”
 “아, 알 거 같아!”

 짝짝 손뼉을 치며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리아.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잭스는 베사리아의 언변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둘렀다. 

 “그러니까 방엔 엄마랑 가자. 아빠는 준비해야 될 게 있거든.”
 “주, 준비라니 뭘 말이오?”
 “어머, 당신도 차암. 모른 척 하기는!” 베사리아가 상냥하게 웃으며 딸의 손을 잡았다. “가자, 사이리아. 엄마가 이불 덮어 줄게.”
 “응!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그, 그래. 잘 자거라.”

 이불 덮어 준다는 건 재워주진 않는단 뜻이고, 그 말은 곧 돌아온다는 뜻이었다. 베사리아는 그를 지나치며 아주 작은 소리로 슬쩍 속삭였다.

 “씻고 있어요, 알았죠?”
 “……………….”

 뭐를 알라는 걸까.

 잠깐 혹했던 마음뿐이었는데 어느새 가족계획으로 일이 커져버린 오늘 밤 방어전(?)를 앞둔 그의 어깨는 무겁기만 했다.








-----------------



시즌 3 들어가기전 if 스토리 외전입니다.
그냥 베사리아와 평범한 가정 꾸렸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어요.








Lv74 강철안개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지금 뜨는 인벤

더보기+

모바일 갤러리 리스트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글쓰기

모바일 게시판 페이징

최근 HOT한 콘텐츠

  • 견적
  • 게임
  • IT
  • 유머
  •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