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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56화

아이콘 강철안개
조회: 1607
추천: 1
2020-06-30 14:02:43

“하지만 이번만큼은 루암의 손을 들어드릴 수밖에 없는 것 같군요. 소나 양이 잘못하셨습니다.”
 소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선 레오나를 바라봤다. 방금의 발언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건 잭스도 그랬다. 둘의 차이점은 표정이 보이냐 보이지 않냐 정도밖에 없었다. 소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놀렸다. 이번엔 되물을 정도의 정신은 있는 모양이었다.

 [저, 저요?]
 “네.”
 [하지만 방금은 잭스 님이 잘못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고 말했지, 잘못이라고는 안 했습니다.”
 […이해가 안 가요.]

 소나가 부루퉁한 얼굴로 레오나를 바라봤다. 레오나는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선 입을 열었다. 모양새가 꼭 심술 난 여동생 달래주는 언니였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주변 사람들의 눈이 적어서 망정이었지 안 그랬으면 들켰을 겁니다. 루암께선 가면이라도 쓰고 있지만 소나 양은 그러지 않잖습니까. 정말 모르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는 건데, 소나 양은 감정이 그대로 표정에 다 드러납니다.”

 레오나는 ‘아닌 척하고 있는 모습이 꼭 머리만 굴속에 처박고 자기는 숨었다고 생각하는 칠면조 같습니다’라는 말을 아주아주 순화시켜서 말했다.

 [하, 하지만…….]

 “소나 양은 주변의 시선 따위야 무슨 상관이겠냐는 생각이시겠죠. 저도 그 기분이 어떤 건지는 압니다. 다른 의도 없이 순수하게 호감만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물론 저나, 그리고 루암을 아시는 분들은 소나 양의 생각을 존중해 줄 겁니다. 루암께 핀잔을 준다 해도 농담으로 끝내고, 진심으로 축하를 전하시겠죠. 하지만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
 “그리고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훨씬.”

 레오나가 잔잔하게 타이르자 소나가 뭐라 할 말을 잊은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레오나의 말은 어젯밤 잭스가 했던 말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소나는 다시 반박을 하려고 했다. 

 “소나 양, 소나 양과 루암의 관계가 드러났을 때 과연 누가 표적이 될 것 같습니까?”

 하지만 뒤이어진 레오나의 말이 소나의 반박을 틀어막았다. 과연 거기까진 생각해보지 않은 터라, 소나는 멍하니 손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

 […잭스 님이요.]
 “맞습니다. 소나 양이 먼저 유혹했든 하지 않았든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안 될 겁니다. 어쨌든 소나 양을 보호하기 위해선 루암 쪽으로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워야 일이 편해지는 건 사실일 테니까요. 소나 양이 루암에 대해 걱정하고 있으실 동안 일은 그렇게 처리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소나 양이 직접 그 소식을 들을 때쯤이면 루암은 이미 천인공노할 범죄자로 낙인찍혀 있겠죠.”

 레오나가 워낙에 담담하게 말하니 꼭 실제로 일어난 일만 같아서, 소나의 표정이 삽시간에 딱딱해졌다. 사실 그녀의 말에 틀린 거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맹점을 지적해줬으니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너무 진지하게 고민하는 소나를 보고 레오나는 피식 웃었다. 좀 질투가 나는 거야 사실이지만, 자신이 경애하는 스승이 누군가에게 이토록 사랑받는다는 걸 눈앞에서 확인하고 있는데 기분이 안 좋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가 걸렸다.

 “뭐, 루암께선 자신에 대해 어떤 소문이 나도 별 신경 쓰지 않으실 겁니다. 범죄자든 뭐든, 여자애를 두들겨 패는 걸 좋아하는 소아성애자든…….”
 “레오나.”

 잭스가 난처하게 이름을 부르자 오히려 더 재밌다는 듯 레오나의 미소가 짙어졌다.

 “왜 그러십니까? 예전엔 분명 별 신경 안 쓰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땐, 나도 머리에 열이 올라서, 그러니까…….” 잭스가 뭐라 할 말을 잊은 듯 버벅거리다 한숨을 푹 쉬었다. “오해하지 마시오, 미스 부벨르. 어디까지나 훈련의 일환이었소.”
 [?]

 갑자기 훅 들어오는 레오나의 말에 쩔쩔매는 잭스까지. 소나의 얼굴에 다른 의미로 멍한 표정이 걸렸다. 레오나에게서 악의의 감정이 들리지 않는 걸로 보아 물론 농담이겠지만, 잭스가 쩔쩔매는 꼴이 좀 수상하긴 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생각이고 감정의 경우는 달랐다. 어느새 잭스를 향한 소나의 눈매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레오나 님, 나중에 그 일 꼭 좀 알려주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선 이 주제부터 마무리 짓도록 하죠.” 레오나가 다시 약간 진지한 투로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소나 양과 루암의 관계가 이대로 알려지면 루암께서 표적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높습니다. 소나 양께서 스스로의 신념을 관철하시는 거야 좋지만, 무턱대고 들이미는 게 능사는 아닐 겁니다.”

 레오나는 잠시 말을 끊고 소나를 바라봤다. 소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시선 안에서 레오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여린 꽃잎 속에 숨겨진 강철 같은 의지를. 적어도 잭스에 대한 마음이 진심인 것 같기는 했다…일단은 말이다. 

 조금 뒤 담담한 한 마디가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그러니 루암을 좋아하신다면, 부디 그런 면에서도 루암을 배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탓하려고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레오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기에……. 어떻게 하면 잘 잘 전달할까 고민했습니다만 기우였던 모양입니다. 소나 양은 정말 얘기를 나눠보면 나눠볼수록 좋은 분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루암께 아까울 정도로요.”
 “큼.”

 잭스가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이제 그만해 달라는 의미인지 헛기침을 하자 레오나와 소나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그를 향했다. 놀랍게도 그를 바라보는 둘의 시선은 비슷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이 남자가 조금 더 처신을 잘 했다면 연애 문제로 이런 쓸데없는 충고 따위로 필요 없었으니 말이다. 소나의 눈매가 다시 가늘어졌고, 레오나의 얼굴엔 분노의 미소가 걸렸다.

 “이게 다 어디 큰 세력에 속해 있지 않으셔서 그런 겁니다. 그러니 솔라리로 오라는 말 좀 들으셨음 좋았을 것을. 지금이라도 좋으니 솔라리에 들어오시겠다는 말씀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바로 전서구를 날려서 장로 직위에 추천드리겠습니다.”
 “리그 챔피언 세력도 꼬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구나.” 잭스가 가볍게 빈정거렸다. “예전부터 말했던 거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게다. 너희 솔라리가 외부인을 받아들여 준 전례가 없다는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더냐?”
 “시대는 바뀌는 법입니다, 루암.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군요. 저희가 솔라리의 고대 방언으로 누군가를 부르는 의미를 잊으셨습니까?”
 “…이런.”

 가면에 가려 안 보이는 잭스의 얼굴에서 슬쩍 핏기가 빠져 나갔다. 너무 어물쩍 지나갔던 일이라 까먹고 있었는데, 솔라리에선 그들의 고대 방언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터라 외부 유출을 절대 금지시키고 있었다. 뜻을 알려주는 건 물론이고 외부인 앞에서는 가능한 한 발음도 자제할 정도로 폐쇄적이었다. 솔라리는 그만큼 폐쇄적인 집단이었다. 

 근데 그 말은 거꾸로 한다면 솔라리의 일원들에겐 방언을 사용해도 된다는 의미였다. 즉 외부인을 솔라리의 방언을 사용한 호칭으로 부른다는 건 그를 존경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지만, 암묵적으로 그를 솔라리의 일원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레오나가 지적한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끙, 속였구나.”
 “속이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르시는 걸 가르쳐드리지 않은 것뿐입니다.”
 “어쨌든 내가 솔라리에 들어가겠단 의사 표시는 안 했으니 네 고집은 의미 없다. 게다가 너희가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조건은 하나 더 있지 않더냐?”

 잭스는 절대 솔라리의 일원 따위가 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로 한 말이었건만, 그게 바로 레오나의 노림수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레오나는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애를 쓰면서 짐짓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렇죠. 아무래도 솔라리의 일원을 배우자로 맞이해야 한다는 조건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루암? 마침 여기 온 여사제들 전부가 루암께 대단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혼례를 요청만 한다면 감격에 겨워 그 자리에서 승낙할 텐데……. 어디, 한번 저로 연습해보시겠습니까?”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거라.”
 “세상에, 농담이라니 너무하십니다. 아무래도 제가 정말 한꺼풀 벗어야 진심을 보여드릴 수 있겠군요.”
 -잭스 니이이임…….

 그제야 사태를 어느 정도 파악한 소나가 거의 바득바득 이 가는 목소리로 으스스하게 그를 불렀다. 이쯤 되면 잭스는 억울함을 넘어 거의 울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어째 오랜만에 만난 이 제자는 자기 스승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란 말이던가. 헌신적으로 챙겨주는 것 같으면서도 이럴 땐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갔다 내려오길 자유자재로 하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그 옆에선 잭스를 곤란하게 하면서 소나를 열 받게 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아챈 레오나가 빙글거리며 악동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벌써부터 레냐 가문의 쌍둥이들이 황금 한 수레씩 지참금으로 가져오면서 신부로 맞이해 달라는 광경이 눈에 그려지는 것만 같군요. 정말 봄날이십니다, 루암. 더울 지경이군요.”
 “레냐? 그 이안달과 에안달이라 하는 애들 말이냐? 아서라, 그 철딱서니 없는 쌍둥이들이 무슨…….”
 “이웬딜과 아웬딜 자매입니다. 솔라리 병법서 외우는 암기력의 10분의 1이라도 좋으니 사람 이름 외우는 거에 할애해 주십시오.” 레오나가 얼굴을 찌푸리며 딱딱거렸다. “그 ‘철딱서니 없는 쌍둥이’들이 올해로 딱 17살 성년이 된 건 아시나 모르겠습니다.”
 -후후, 정말 좋으시겠어요, 잭스 님. 쌍둥이 자매한테 동시에 사랑도 받으시고, 레오나 님도 부인 자리를 노리고 계시고. 솔라리로 가시면 그야말로 꽃밭처럼 아름다운 미녀들 속에서 사실 수 있겠네요.
 “…….”

 일부다처부터 이미 곤두서있던 소나의 기분은 신부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구절에서 정점을 찍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잭스를 향해 사납게 고정되어 있었고, 양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걸로 보아 혹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드는 낌새가 있다면 진짜 가만두지 않을 모양새였다. 물론 잭스는 혹하는 마음은 고사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소나의 서슬 퍼런 눈길을 외면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둘 사이에 폭탄을 떨어뜨린 레오나는 그 모습을 즐기며 화룡점정의 한 마디를 툭 하고 내뱉었다.

 “마음 놓으시면 안 됩니다, 소나 양. 분명 루암을 낚아채려는 아가씨들은 비단 솔라리에만 있는 게 아닐 테니까요. 여기저기 은혜를 염가로 뿌리고 다니는 루암의 성격상 분명 다른 데서도 비슷한 경쟁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잭스 님의 이런 모습에 끌린 게 제가 처음이 아니겠네요?]
 “그리고 마지막도 아닐 겁니다. 어디 잘 싸워보시기 바랍니다. 루암께선 여성들에게 약하시니까, 앗 하다가 다른 분 뒤를 촐랑촐랑 따라가실 게 뻔합니다.”
 “날 무슨 열 살 난 꼬맹이 취급하는구나.” 

 잭스가 기가 막힌다는 투로 반박했지만 이미 그쪽으로 겪을 만큼 겪어 본 레오나나 소나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지 산들바람처럼 가볍게 무시당하고 지나갔다.

 “적어도 연애 면에서는 열 살짜리 꼬맹이도 루암보단 나을 겁니다.”
 [그게 농담으로 안 들린다는 게 더 놀랍다는 거죠…….]
 “그러니 힘내십시오, 소나 양. 갈 길이 매우 험하십니다. 포기하신다면야 얼마든지 포기하실 수도 있을 테지만.”

 레오나가 걱정 반 은근히 기대 반의 투로 말했다. 소나는 애교 넘치게 레오나를 흘겨보며 손을 놀렸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지금 대화를 나누는 두 명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포기라뇨, 설마 그럴 리가요. 꼭 잭스 님 스스로 제게 고백하도록 만들 거니까 두고 보세요. 아, 물론 아까 레오나 님께서 말씀하신 그 ‘배려’도 확실하게 생각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가뜩이나 잭스 님께 적응하는 것도 힘든데 또 하나 어려운 관문이 추가됐네요.]
 “그래서 의욕이 떨어지십니까?”
 [후후, 오히려 불타오르는데요?]
 “좋습니다. 아주 훌륭하군요.”

 만족스러운 듯 화사하게 피어나는 레오나의 웃음소리가 마차 안을 울렸다. 덧붙여서 잭스의 머릿속에는 소나의 웃음소리까지 이중창으로 울리고 있었다. 잭스 역시 저 웃음소리에 낄 수만 있다면야 좋겠지만, 불행히도 그의 얼굴은 찌그러지고만 있었다. 물론 그는 소나의 수화를 아직 몰랐다. 하지만 왜, 추측이라는 게 있지 않던가. 레오나의 말만으로도 소나가 도전의식을 불태우고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었다. 

 “…내 의사는 안 물어보는 거요?”
 -전혀요.
 “루암께선 때때로 복에 겨운 말씀을 하신다는 걸 알아주셨음 합니다. 저도 솔라리에선 나름 알아주는 신붓감인데.”
 “…….”

 레오나의 경우는 외모의 여부를 떠나 제자와 스승 관계라는 윤리적 족쇄가 틀어막고 있는 형편이었지만, 잭스는 침묵으로 그 답을 대신했다. 잠시 뒤 그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음울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왕세자와 면담부터 끝내고 얘기합시다. 지금은 그게 더 중요하니.”
 -호호, 잭스 님과 연애 문제를 생각하니 면담은 하나도 안 어렵게 느껴져요. 좋은 거겠죠?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루암. 신분과 직위는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거니까요.”
 “…맘대로들 하시오.”

 누가 보면 어디 소풍이라도 나가는 것만 같은 화사한 분위기 속에서 잭스 혼자만 속앓이를 하며 속으로만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선 적어도 이 둘을 붙여 놓지는 말거나, 이 둘 사이에 끼어 있지는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굳게굳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침부터 참 힘든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정말로. 잭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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