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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시 쓰는 마영전]별의 불꽃. 3

그락란라우
댓글: 1 개
조회: 495
추천: 2
2014-11-24 20:01:16

  한껏 팽창된 근육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어디 하나 빠진 곳 없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조밀하게 발달한 근육은 세상의 그 어떤 창칼이 다가와도 찢기지 않을 것만 같다.
  육체에서 느껴지는 강인함은 이미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인간이 지니고 있기에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울 법한 두껍고 무거운 근육을 가지고 있는 사내는 숯에 비견될 만큼 새까만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몸을 구성하는 근육과 어우러진 피부는 사내의 존재를 아주 단단한 쇳덩어리처럼 보이게 한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내는 미동조차 없이 조용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눈꺼풀은 무게 있는 추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얼핏 보면 잠을 자는 것 같이 보이지만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근육의 움직임이 말해준다. 사내는 자고 있지 않다. 그는 지금 온 몸의 모든 근육이 최고의 힘을 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마치 지금부터 겨룰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지면이 울렸다.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던 눈꺼풀이 올라간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두 개로 나누어 박아 넣은 것처럼 불타오르는 새빨간 눈동자가 정명을 응시했다.
  대지는 주기적으로 울렸다. 뭔가가 걸어오는 듯했다. 검은 피부와 새빨간 눈을 가진 사내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가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기세는 마치 산이 움직이는 착각을 준다.
  다부지다는 말로는 부족한, 쇳덩어리 같은 몸과 그에 걸맞게 떡 벌어진 어깨는 마치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 같다. 그리고 사내의 2미터를 가볍게 뛰어넘는 신장은, 수천 년을 살아온 대지에 강직하게 뿌리내린 나무에 비교해보아도 부족함이 없다. 사내는 사람의 머리통도 움켜쥘 만큼 커다란 손을 주먹 쥐었다.
  사내에게서 풍겨지는 무쇠 같은 투기는 단 한 존재에게 쏘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는 우거진 수풀을 망가뜨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인간도, 마족도 아니었다.
  멧돼지였다. 집채보다도 더 거대한 몸집을 가진 멧돼지.
  하늘을 둘로 쪼개버릴 듯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상아는 수많은 격정을 치룬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사내는 피부를 저리게 하는 강인한 투기를 가진 멧돼지와 눈을 마주쳤다. 멧돼지의 한쪽 눈은 두껍고 날카로운 것에 맞았는지 깊은 흉터가 남아있다. 눈은 하나뿐이지만, 하나 남은 눈에서 나오는 황금빛 안광은 생물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자연을 마주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멧돼지의 황금색 눈동자는 사내의 붉은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강인함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한쪽 눈을 앗아간 그놈보다도 위험한 적수가 될 것이라는 것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검은 피부의 사내와 거대한 몸집을 가진 멧돼지는 서로를 향해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두 마리의 짐승이 내지르는 포효소리는 그들이 발판삼아 서 있는 대지를 찢어놓을 것처럼 흔들었다.
  지금껏 강철 같은 육체를 목표라 하며 달려왔다. 실제로 그 어떤 창칼도 사내의 육체에 상처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멈출 생각은 없었기에 사내는 더욱 정진했다. 그래서 지금은 조그만 상처마저 입는 걸 거부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내는 지금 육체 곳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사내는 출혈이 심한 왼쪽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멧돼지의 커다란 상아가 훑고 지나간 흔적이다. 사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힘의 대결에서 밀리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압도했지만 무기에서 밀렸다. 사내가 가진 무기는 언제나 자랑스러워하는 육체. 그건 멧돼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멧돼지는 상아가 있었다. 지금까지 봐온 생물 중 ‘그 남자’의 두 칼만큼 예리한 물건은 처음이었다.
  사내가 멧돼지와의 사투 끝에 얻은 건 상처와 더 정진해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사내는 가슴팍에 힘을 주었다. 멈추지 않던 출혈이 멈췄다. 아물기 시작한 상처를 확인한 사내는 커다란 상아가 남긴 흔적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자, 그럼…….”
  사내는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편지봉투를 꺼냈다. 사내는 받은 뒤로 뜯은 적이 없던 편지를 뜯었다.
  느긋하게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사내는 편지를 봉투 속에 집어넣었다. 발신인을 볼 필요는 없었다. 봉투에 찍힌 인장만 보면 알 수 있다. 사내는 깨끗하게 민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산의 주인한테 도전도 끝냈으니, 본업으로 돌아가 볼까.”
  수신인에 ‘카록’이라 적혀있는 편지를 허리춤에 잘 끼워 넣은 사내는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안 보이시네요.”
  검은 로브를 후드까지 깊게 눌러 쓴 자가 말했다. 그러자 곁을 그림자처럼 맴돌던 적갈색 머리를 가진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자는 아쉬운 듯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 집회에 참석한 이유는 만나야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후드를 쓴 자가 왼손을 들었다. 가늘고 곧게 뻗은 여자의 손이다. 그리고 그의 손등에는 붉은 빛을 띠는 둥근 구슬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구슬은 제법 탁한 빛을 띠고 있다.
  “점점 힘을 제어하는 게 어려워지고 있어요. 놀웬 님께 몇 번이고 말씀드려도 네베레스님을 찾아가라는 말밖에 해주시지 않네요. 어디 있는지는 가르쳐주시지 않고요.”
  그는 손등에 박힌 붉은 구슬을 붙잡았다. 구슬은 점차 청명한 빛을 띠나 싶더니 이내 더 탁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사내는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는다는 걸 직감했다.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는 사내를 보며 후드를 쓴 자가 말을 이었다.
  “여덟 자루의 검. 모두 뛰어난 사람들이지만 그중에서 제 힘에 대한 해답을 가진 건 같은 힘을 사용하는 네베레스님뿐이지요. 그분도 우리가 가진 힘이 정확히 어떤 건진 잘 알지 못하시지만요.”
  사내는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하늘은 거무튀튀한 비구름으로 가득 차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 사내는 비구름이 몰고 온 습기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아무래도 비가 내릴 듯했다. 사내는 며칠 숙면을 취하지 못한 사람처럼 퀭한 눈을 비볐다. 그는 검은 로브를 입은 자를 바라보았다.  
  신장은 170센티미터 후반. 하지만 신고 있는 높은 굽을 가진 힐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실제 신장은 170센티미터 초반 혹은 160센티미터 후반이라 예상된다. 검은 로브로 몸과 얼굴을 가리고 있어 정확한 인상착의는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몸짓과 높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미루어 보건데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언제든지 잡을 수 있는 위치에 놓아둔 그녀의 키만 한 장검은 그녀가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는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등을 돌렸다. 로브의 여자는 등을 돌린 사내를 쳐다봤다. 사내가 말했다.
  “참 아쉬운 일입니다.”
  여자는 뭐가 아쉽냐고 되묻지는 않았다. 말뜻을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사내는 회색 로브의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그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사내를 바라본 채 답했다.
  “그러네요.”
  “놀웬 님께서 네베레스의 소재를 알려주지 않으신 걸 보면 다 뜻이 있으신 걸 겁니다. 예를 들어, 그 작은 용병단에 소속되는 말리지 않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어조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내는 그녀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퉁명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사내는 돌처럼 굳어있던 얼굴에 미소를 걸었다. 보기 드문 모습이었지만 사내가 등을 돌린 터라 여자는 변화를 알아보지 못했다. 사내가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시지요. 네베레스 한 명 찾자고 미래를 낭비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여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먼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두커니 선 채 서로를 향해 등지고 있던 여자와 사내는 한동안 찾아온 침묵에 동조했다. 침묵의 연속이 한참일 즈음 사내는 침묵을 깰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검은 성으로……, 뭔가가 오는 군요.”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깜깜한 하늘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내는 그녀가 가리키고 있는 곳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 것처럼 뭔가가 다가오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사내는 다가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편지군요.”
  여자는 사내를 한번 돌아본 뒤 다시 깜깜한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사내의 말대로 발목에 종이를 묶은 덩치 큰 독수리가 날아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사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곳으로 소실을 전할 수 있는 자는 기껏해야 지금 바깥에 나가 있는 네베레스 뿐이다. 하지만 네베레스는 직접 찾아올지언정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 상념에 차있던 와중 여자가 구슬이 박힌 왼팔을 들어 올리며 구부렸다. 여자의 손등에 박힌 구슬이 점차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곧 덩치 큰 독수리는 여자의 손등에서 발하는 붉은 빛을 이정표 삼아 내려오기 시작했다.
  독수리가 차가운 돌바닥에 내려앉았다. 독수리는 날개를 접고 여자를 주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수리의 덩치가 얼마나 큰지 여자와 독수리의 눈높이가 맞았다. 여자는 독수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실버레이’군요. 이 녀석이 따라는 사람은 세상에 한 명밖에 없는데…….”
  “네베레스는 아닐 테고, 그게 누구입니까?”
  네베레스는 아니다. 네베레스는 조련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여자는 독수리를 보며 빙긋 웃었다.
  독수리는 이름 같은 은빛 광선을 만들어내는 백은색의 깃털을 쓰다듬는 여자를 녹색 고리가 둘러진 푸른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독수리는 발에 묶여 있는 편지를 빨리 가져가라는 듯 날개를 퍼덕였다. 독수리의 날갯짓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발목에 묶여 있던 편지를 풀었다. 편지가 사라지자마자 실버레이는 커다란 한 쌍의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엄청 크군.”
  사내는 실버레이의 날갯짓이 만들어낸 돌풍에 퍽 놀란 듯했다. 그러나 여자는 한두 번 겪었던 게 아닌 것처럼 멀어져가는 실버레이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실버레이가 보이지 않게 되자 여자는 편지를 살펴보았다. 발신인을 보고 편지를 뜯어보던 여자가 말했다. 
  “집회도 끝났으니 이제 가봐야겠네요. 실버레이가 찾아왔다는 건 ‘그분’도 복귀하시는 것 같으니까요.”
  “그분?”
  사내는 궁금하다는 듯 되물었지만 여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그녀는 편지를 로브 안주머니에 넣고 성벽에 비스듬히 세워놓았던 장검을 집었다.
  장검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등허리에 수평으로 연결한 여자는 성벽 난간으로 다가가 올라섰다.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여자를 향해 사내가 말했다.
  “여신의 축복이 있기를……, 아리샤.”
  아리샤는 후드 사이로 흘러내린 금은색의 머리카락을 치우며 답했다.“
  “당신께도 여신님의 은총이 있기를, 발카서스.”
  성벽 아래로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는 아시랴를 쳐다보던 발카서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Lv36 그락란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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