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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마비노기 영웅전 - 엑스트라 에피소드1 : 여명으로

아이콘 템페스트엔젤
댓글: 11 개
조회: 2198
추천: 6
2015-01-17 00:09:55

(사실 이거 야설입니다. 씬 부분만 커팅해서 올려요)



여명으로

 오르텔 성 옆으로 길게 뻗은 산맥은 울창한 상록수로 인해 사계절 내내 푸르렀다. 삼월의 온화한 햇살은 지난달 하늘에서 쏟아졌던 새하얀 눈을 서서히 녹여가고 있었고, 그 눈 더미 위로 겨울내 웅크리고 지냈던 새하얀 토끼 한 마리가 고개를 치켜든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스락. 나뭇잎이 흔들리는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리자 토끼는 귀를 쫑긋거린 후 재빨리 풀 속으로 몸을 던졌다. 수풀 속으로 몸을 숨긴 토끼는 잠시 숨을 죽이고 있다 고개를 배꼼 내밀었다. 곧 반대편 수풀에서 작은 장난꾸러기 위습 하나가 초록색 몸체를 빙글빙글 돌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서야 위험한 포식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토끼는 긴장을 풀고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부스럭. 이번에는 조금 더 인기척이 수풀을 흔들었다. 그러나 긴장을 풀었기 때문일까, 토끼는 점점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위습이 뭔가를 보고 겁에 질려 도망치는데도 태평하게 풀을 뜯던 토끼는 잠시 후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크르륵! 린간! 내가 잡는다! 거기 서라 린간!"

작은 토끼의 눈앞으로 육중하고 튼실한 두 다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몸을 숨겨주던 수풀이 갈라지며 모습이 드러나자 토끼는 입에 물고 있던 풀잎을 툭 떨어뜨렸다. 
떡 벌어진 어깨와 초록색 피부, 그리고 울퉁불퉁한 근육. 덧니가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 오거 하나가 수풀을 헤집으며 미친 듯이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한 손에 쥔 나무를 깎아만든 둔기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누군가를 쫒아 가고 있었는데, 그가 둔기를 휘두를 때 마다 주변의 작은 나뭇가지들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갔다.

"린간! 서라 린가안!"

오거의 앞에는 가벼운 레더 아머를 걸친 금발의 인간 남성이 잘려나간 나무 밑동을 뛰어 넘으며 도주하고 있었다. 남성은 제법 체력에 자신이 있는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숲속을 내달렸다.

"읏차!"

사내가 상체를 숙임과 동시에 그의 머리 위로 오거의 커다란 둔기가 부웅 휘둘러졌다. 다시 고개를 든 사내의 앞에는 쓰러진 고목이 진로를 막고 있었다. 남자는 가볍게 고목을 뛰어넘어 지면에 착지했다. 그러나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등 뒤의 고목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나는 것이었다.

"린-가안!"

오거가 그 육중한 몸체를 앞세워 고목을 뚫고 달려왔다. 사내가 볼을 홀쭉하게 하며 놀란 표정을 짓더니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고목을 박살내며 순식간에 다가온 오거가 다시 한 번 둔기를 빠르게 휘둘렀다.
쉬이익! 마치 뱀이 빠르게 지나가듯, 어쩌면 바람 소리와도 같은 소리가 그의 허리춤에서 흘러나왔다. 그의 몸이 오거를 향해 빠른 속도로 쏘아져갔다. 마치 무언가에 끌려가듯, 몸을 최대한 낮춘 그가 오거의 다리 사이를 통과해 저 뒤쪽으로 멀어졌다.

"후."

사내가 허리춤의 와이어와 연결된 바닥의 고정 핀을 회수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순식간에 그와의 거리가 벌어지자 약이 바짝 오른 오거가 둔기로 바닥을 몇 번 강하게 내려친 후 울부짖었다. 오거가 콧김을 내뿜더니 다시 사내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내가 허공을 향해 외쳤다.

"아벨!"

그의 목소리가 숲에 울려 퍼짐과 동시의 일이었다. 사내를 향해 달려오던 오거의 주변에서 흙먼지가 치솟았다. 당황한 오거가 그 자리에 멈춰서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그 순간 바닥의 흙 밑에서 수십개의 쇠사슬이 솟구치며 가운데 서있던 오거의 전신에 감겼다. 깜짝 놀란 오거가 그 거대한 덩치를 마구 흔들어대며 쇠사슬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쇠사슬은 오히려 빠른 속도로 오거의 몸에 감겨왔다. 모든 쇠사슬의 시작점은 한 점으로 동일했다. 오거가 쇠사슬이 시작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 할 때,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날카로운 안쪽면이 외부로 돌출되었다.

"갸아아아악! 그아악!"

오거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고, 그와 동시에 쇠사슬이 드르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오거의 전신을 갈아버릴 기세로 강하게 당겨졌다. 새빨간 오거의 혈액이 허공을 수놓으며 흩뿌려졌다. 오거의 전신에 날카로운 금속이 긋고지나간 상흔이 선명했다.

"그악! 그아악!"

전신이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을 때, 오거는 볼 수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자신이 쫒던 인간 수컷이 수발의 화살을 활에 먹이고 있었다.
우수수수수…. 마치 폭우가 내리는 듯한 굉음이었다. 순식간에 예기를 머금은 열댓 발의 화살이 온몸에 박힌 오거가 상체를 비틀거리며 고통에 찬 신음을 터트렷다.

"아저씨!"

어디선가 카랑카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사내가 쓰러져있는 오거를 향해 와이어를 던졌다. 와이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거의 목에 휘감겼고, 사내는 곧바로 그 와이어를 이용해 재빨리 오거에게 쇄도해 그 거대한 등 위에 올라탔다.
끼이이익…. 오거의 등 위에 올라탄 사내가 활이 구부러질 정도로 잔뜩 시위를 당겼다. 오거가 마지막 발악을 하듯 괴성을 지르며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나 그것 뿐. 곧 화살이 그의 손을 떠나 두개골을 깨부수며 머릿속에 박히자 그 발악도 잠잠해졌다. 눈과 코, 귀에서 피를 주륵 흘려내던 오거가 서서히 옆으로 쓰러졌다.


.
.
.



"으으, 싫다. 싫어!"

붉은 와인색 머리카락의 여성이 투덜거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오거의 머리통은 잘라내어져 검은색 보자기 안에 싸매진 채 남자의 허리에 묶여 있었다.
금발의 사내는 언뜻 보기에 삼십대 초중반쯤으로 보였는데, 그 뒤를 따라오는 와인색 머리의 여성은 아직 십대 후반이거나 이십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내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벨, 앞으로는 가능하면 얼굴 쪽은 찢어버리지 말아 줘. 이렇게 되면 토벌 대상이 맞는지 의뢰자가 확인 할 수가 없으니까."
"음? 그래도 못 알아 볼 정도는 아닌걸."
"충분히 알아보기 힘들어."

아벨이 도톰한 입술을 쭉 내밀고 작게 투덜거렸다. 이들의 이름은 아벨과 카이. 이 근방에서는 제법 이름난 부부 용병단이었다. 인원은 단 둘 뿐이라 용병단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지만, 정식 등록 절차까지 무사히 통과한 그들이었다.
둘의 나이가 띠 동갑이라는 것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고, 카이와 아벨을 아는 사람들은 장난삼아 카이를 '도둑놈'이라 부르기도 했다. 물론 실상은 다소 무겁고 조용한 성격의 카이를 항상 밝고 활기찬, 가끔은 대범하기까지 한 아벨이 쫒아 다니는 구도였다.

"아벨. 뛰지 마."
"혼자 그렇게 앞서 가지마."
"아벨?"

물론 카이 또한 이렇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 때 둘은 땔래야 땔 수 없는 한 쌍인 것이 분명했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식을 올린지 반년 차… 아벨의 뱃속에 카이의 아기씨가 자리 잡았다. 그 사실을 알게된 후 지금처럼 이렇게 대부분의 일은 카이가 도맡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직 용병 생활엔 전혀 지장이 없다며 고집을 부리던 아벨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카이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으음… 아저씨. 육포가 다 떨어졌어."
"…아저씨라니. 뭐, 어차피 이 녀석도 처리했겠다, 돌아가기만 하면 되니 오늘은 근처 마을에서 머물면 되겠군."

아벨이 내보인 주머니는 텅텅 비어있었다. 삼일 째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토벌을 진행했으니 식량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벨이 걸음을 옮기며 카이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이 주변에 마을이 있어?"

카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품속에서 주섬주섬 낡은 지도를 하나 꺼냈다. 그가 지도를 펼치더니 손으로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 있고, 조금만 더 이동하면 아율른이 나오지. 호박으로 유명한 마을이야. 내가 한때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고…."
"흐음, 아율른?"
"언젠가 너를 데리고 꼭 돌아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지."

아벨이 살며시 뺨을 붉히며 어설프게 웃었다. 카이는 가끔 이런 식으로 툭툭 애정이 담긴 말을 던지곤 했다. 물론 그것에 반해서 그를 쫒아 다니는 아벨은 좋을 뿐이었다. 카이가 품 속으로 지도를 집어넣으며 계속 말했다.

"거의 십 년 만인가. 아율른으로 돌아가는 건 말야. 페넬라 누님은 잘 지내고 있나 모르겠군. 후후…."

카이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아벨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이가 피식 웃으며 계속 말했다.

"그 누님과 내기를 하나 했었지."
"뭔데?"
"내가 돌아올 때는 신부를 데리고 오겠다고. 그땐 누가 보더라도 결혼을 못할 것만 같았거든."
"…뭐, 그럼 내기는 이긴 거네. 쿡쿡."

아벨이 입을 가리지도 않은 채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호박이 아름다운 마을, 아율른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
.


"어, 어?"

툭. 샛노랗고 작은 호박 하나가 땅을 굴렀다. 덩굴에 앉아 있던 잠자리 한마리가 깜짝 놀라 날아올랐다. 싱싱한 호박꽃 사이로 호박들이 가득했다. 땅에 떨어진 호박은 누군가의 발 앞까지 때구르 굴러갔다.

"누님, 안녕하십니까."
"카, 카이?"

초록색 두건을 머리에 두른 중년의 여성, 페넬라가 놀란 듯 '어머머' 하며 자신의 입을 가렸다. 페넬라는 치마폭에 거둔 호박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도 뒤로 한 채 카이와 아벨을 향해 한 걸음에 달려왔다. 그녀가 말했다.

"이게 얼마만이야. 카이 맞지? 십년 만인가? 많이 변해버렸어."

카이가 멋쩍게 웃었다. 페넬라는 오랜만에 만난 카이가 반가운 듯 연신 싱글벙글 거리며 계속해서 말을 쏟아냈다. 그러다 문득 카이의 옆에 서 있는 젊은, 혹은 아직 어린 여성을 인식하고는 카이를 향해 말했다.

"카이, 그런데 여기 이…아이는?"
"제 아내입니다."
"아, 아는 동생이라… 뭐?"

페넬라가 깜짝 놀란 듯 또 다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아내?"
"제 아내 아벨입니다."

아벨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페넬라는 아직도 놀란 얼굴로 아벨의 인사를 받았다.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카이가 자신의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누님도 결혼은 하셨는지?"
"아… 나, 나야 뭐… 음음. 뭐, 어쨌건 아율른에 돌아온 걸 환영해. 오래 머무르다 갈거니?"
"아뇨. 아마 바로 내일 떠날 겁니다."
"아쉽네… 나도 오늘은 다른 마을로 잠시 나가봐야 해서… 잘못하면 얼굴도 못볼뻔 했어."

페넬라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후에도 카이와 페넬라의 대화는 계속 되었다. 아벨이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짓자 그제야 눈치챈 카이가 대화를 끝내려는 듯 말했다.

"예전에 제가 머물던 그 여관은 아직도 있습니까?"
"물론. 아직도 있지. 증축공사까지 해서 더 커졌는걸. 한번 가보도록 해."
"그럼 실례하고 먼저 가보도록 하지요. 가자, 아벨."
"그래그래."

카이와 아벨은 페넬라의 옆을 지나쳐 마을로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카이가 고개를 돌려 페넬라를 향해 말했다.

"누님, 오늘 그 '창고'를 잠시 써도 되겠습니까?"
"아… 뭐 그 정도야. 그런데 나도 사용한지는 꽤 되었는데…."
"감사합니다."

카이와 아벨은 페넬라를 뒤로하고 여관으로 향했다.



.
.
.



"아아아…. 개운해에…."

방금 목욕을 끝내 물기가 촉촉하게 남아있는 아벨이 기지개를 펴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새하얀 가운 하나만으로 몸을 가린 그녀의 피부는 또래의 여성들처럼 새하얗고 깨끗했다. 임신한 후 한동안 직접 전투에 노출되지 않다보니 상처도 하나 없었다.
그녀보다 먼저 씻었던 카이는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아벨이 입술을 삐죽 내밀으며 탁자에 올려져 있던 음료를 한 모금 삼켰다. 시원하고 달달한 호박 쥬스의 향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카이는… 어디로 갔나?"

아벨이 얼굴을 붉히며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워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오랜만에 마을에 들어왔으니… 거기다 편안한 침대도 있는 여관이니까….

"꺄악."

그녀가 작게 비명을 지르고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부비작거렸다. 그녀와 카이는 아직까지는 신혼이라는 분위기가 강했으니…. 아벨이 혼자 호들갑을 떨며 이불에 얼굴을 비벼댈 때였다.

"…아벨?"

카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벨은 이불에 얼굴을 묻고 몸을 베베 꼬아대던 것을 멈추었다. 그녀가 확 상체를 일으키며 옷을 정리 한 후 작게 헛기침을 했다.

"왔어?"
"응."

평상복 차림의 카이가 테이블 위에 방 열쇠를 놓아두고는 침대를 향해 다가와 아벨의 옆에 앉았다. 아벨은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을 느꼈다. 혹시 그에게까지 들리지 않을까 크게 콩닥거리는 심장박동이었다. 카이가 말했다.

"아벨. 눈 감아봐."
"으응? 응…."

카이의 말에 아벨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실눈을 뜬 채로.

"완전히 감아."
"…."

이제는 완전히 감게 되었지만.
아벨은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가만히 그의 행동을 기다렸다. 카이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 손은 점차 아래로 내려와 아벨의 귓가를 어루만지고… 턱선을 훑고 내려왔다. 카이가 말했다.

"이제 눈 떠도 돼."
"응?"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뭔가가 자신의 목에 걸려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의 목에 걸려 은색으로 반짝거리고 있는 것은 목걸이였다. 목걸이에는 'A V E L L'이라는 작은 알파벳 장식이 끼워져 있었다. 아벨이 조심스럽게 카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건… 카이…."

꽤나 감동받은 듯 눈시울을 그렁거리는 아벨의 모습에 카이가 멋쩍게 볼을 긁적였다.

"그, 뭐… 그냥 선물. 페넬라 누님의 창고에는 그런 재료가 많으니까. 사는 것보단 직접 만드는게 더 좋을것 같아서 말이지."

카이가 그 답지 않게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아벨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벨이 카이를 올려다보았다. 카이가 아벨을 내려다 보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서서히 아벨이 카이에게, 카이가 아벨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손과 손이 마주 잡혔다. 그들의 몸이 침대위로 천천히 넘어갔다.

"아벨…."

카이가 아벨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얼굴을 밀착했다. 그녀의 부드럽고 도톰한 입술이 그의 입술과 겹쳐졌다. 아벨의 팔이 카이의 목을 감았다. 그녀의 도톰한 입술이 살짝 벌어지자 카이의 혀가 그녀의 입 속으로 침범해 들어갔다. 카이는 서둘러 자신의 옷을 벗어내었다. 옷이 침대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혀와 혀가 엮인다. 혀가 치열을 핥는다. 서로의 타액이 교환된다. 뜨거운 열기가 두 사람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달아오른 숨결이 서로의 몸을 데운다. 어느새 후끈한 분위기가 방안을 가득 매웠다.





.
.
.





쿵….  쿵….

"카이…? 카이, 일어나 봐!"

카이는 자신을 깨우는 다급한 아벨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아직도 사방은 어두웠다. 카이가 팔등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비다 손으로 문질렀다. 그가 상체를 일으키며 아벨을 바라보았다. 그가 말했다.

"무슨 일…?"

그러자 아벨이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카이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아율른 마을의 중앙 쪽에서 묘하게 불길한… 마치 빛 속에 어둠이 전류처럼 뿜어져 나오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카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게 무슨? 무슨 일이지?"

쿵! 방이 크게 흔들리며 탁자 위의 물건들이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니, 방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 마을 전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쿵, 쿵쿵! 점점 더 원인 모를 진동은 더욱 심해졌다.
카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곧바로 옷을 챙겨 입었다. 그가 아벨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어. 나오면 안 돼."
"카이!"

카이는 그녀를 뒤로하고 곧바로 자신의 활을 집어 든 채 여관 밖으로 뛰쳐 나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되가는…."

여관 밖으로 뛰쳐나와 바라본 마을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어째서인지 싱그럽던 호박밭의 꽃잎들이 전부 시들어 있었다. 심지어 공기마저도 탁한 것 같았다. 저 멀리서 발산되는 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불길해졌다. 그때였다.

"히히히히힝!"

어디선가 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카이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자 말 두 마리가 이끄는 마차가 빠른 속도로 마을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 마차에 그려져있는 문양은 카이 역시 언젠가 본적이 있는 문양이었다.

"법…황청? 법황청이 왜?"

쿵! 또 다시 마을이 크게 흔들렸다. 카이는 고개를 돌려 마을 중앙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마을 이곳저곳의 공간이 뒤틀리고 있었다. 차원이 찢어지듯 색체가 일그러지며 기현상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그때 누군가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아아악!"

카이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집 안에서 뛰쳐나오는 마을의 주민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해괴망측하게 생긴, 로브를 입은 바짝 마른 해골이 빠르게 따라나왔다. 해골은 순식간에 비명을 지르는 주민에게 달라붙어 그 날카로운 송곳니로 희생양의 목덜미를 찢어발겨 놓았다.

"…."

카이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난생 처음 보는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쿵! 쿵! 또 다시 마을이 크게 흔들렸다. 마을의 중앙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빛이 이번에는 폭풍을 만들어 내듯 거칠게 바람이 일었다. 그 바람 속에서도 해골들은 멀쩡한 듯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살려줘!"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다. 카이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그러진 차원의 균열이 발생하면 그곳에서는 반드시 저 해괴한 해골들이 튀어 나왔다.
휘몰아치는 바람이 강해졌다. 바람은 급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카이는 순간 자신의 몸이 휘청하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강해진 바람은 이것저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큰 호박이 눈앞을 날아 저 멀리 날아갔다. 잠시 후엔 빈 수레가 마을 중앙을 향해 끌려가듯 날았다.

"젠장!"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카이가 욕설을 내뱉으며 곧바로 아벨이 있을 여관 안으로 서둘러 뛰어 들어갔다. 그가 여관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여관 안에 아벨의 짧은 비명이 울려퍼졌다.

"아벨!"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은 카이가 서둘러 방으로 뛰어갔다. 그가 방문을 거칠게 열며 외쳤다.

"아벨! 빨리 나가야…!"

카이의 두 눈동자가 커졌다. 아벨이 쓰러져 있다. 그 뒤에는 빨간 로브의 해골 하나가 각기를 틀듯 머리를 좌우로 뚝뚝 꺾으며 카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벨의 목덜미에는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다.

"으아아! 개새끼야!"

카이가 순식간에 활에 화살을 먹이고 녀석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빠르게 날아간 화살이 단번에 해골의 머리를 뚫었다. 해골이 쓰러지자 카이가 서둘러 아벨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카이는 아벨에게 닿지 못했다. 여관 전체가 크게 흔들리더니 강풍이 여관 안까지 몰아쳤다. 이윽고 여관의 한쪽 벽이 통째로 뜯겨져 날아갔다.

"안 돼!"

힘없이 늘어져 있던 아벨의 몸이 바람에 의해 아무렇게나 떠올랐다. 카이가 몸을 내 던지며 아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아주 약간의, 약간의 차이로 그의 손은 아벨에게 닿지 못했다. 아벨은 곧 강풍에 휩쓸려 여관 밖으로 빨려 나갔다. 카이의 몸은 바닥에 고정해둔 핀에 의해 와이어에 단단히 붙잡혀 간신히 날아가지 않았다. 카이는 자신조차 빨려나갈 듯한 강풍 속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마을 중앙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벨ㅡㅡㅡ!"  

카이의 절규는 강풍 속으로 사라졌다.






.
.
.
.



"이봐요, 정신 차려요."

해변가의 아침은 평화로웠다. 따뜻하고 밝은 햇볕이 쏘아져 내렸다.
쏴아아…. 바다 파도가 모래사장을 부드럽게 덮었다가 빠져나갔다. 그런 평화로운 풍경 속에 한 사내가 허리를 숙인 채 뭔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봐요, 아가씨. 정신 차려 봐요."

그가 쭈그리고 앉아 눈앞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여성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와인색 머리카락과 흰 피부의 그녀는 작게 부르르 떤 후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가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며 상체를 일으켰다.

"여긴… 어디…."

그녀가 힘겹게 주변을 둘러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죽은 줄 알았다고요. 바닷물에 떠내려 온 것 같지는 않은데 대체 어디서 오신건가요. 설마 하늘에서 떨어진 건가? 하하핫!"

그가 재밌다는 듯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아직도 멍한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요? 아가씨? 이름이 뭐에요?"
"…이름?"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자신의 이름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도. 그녀는 멍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았다. 저것이 하늘. 이것이 바다. 그리고 자신은 여성. 눈앞의 남자는 남성. 모든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왜지?

"저기요? 아가씨?"

혼자 자문을 하던 그녀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아래를 보았다. 그녀는 문득 자신의 목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이건…."

그녀는 자신의 목걸이를 손바닥에 올리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 V E L L A…. 제 이름은 벨라…일거에요."









(본격 벨라 낙태설..)
본편은 혼자 소장할거에용 :D 여기에 19씬 그대로 올리면 저는 맞아 죽습니다.
혹시나 원하시는 분은 슬쩍 쪽지를.


총 분량 : 24KB, 1만 4천자.
원고지 100장, 줄수 672줄

Lv74 템페스트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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