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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자작 라노벨] 겨울나기 - P

나나나나난알
댓글: 2 개
조회: 4682
추천: 1
2017-03-21 03:40:04




(유녀전기 좋아욧)



P.


그러나 이 모든 건 결국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콧속까지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벌써 며칠이나 이어지고 있는지 모를 눈보라가 이제는 평상시 날씨처럼 친숙하기만 했다. 이 설산에 떨어진 후로 지겹도록 경험한 추위와, 빗발치듯 떨어지는 눈에는 신물이 날 듯하였으나, 역시 이럴 때는 인간의 생물적 한계를 통감하게 된다. 인간은 자연의 냉혹함에 맞서기에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다.

“흔적이 이어져.”

태진은 고글을 올리더니 손으로 무릎까지 쌓인 눈 표면을 쓸었다. 이 주변만 쌓인 눈의 높이가 달랐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누가 한 번 지나간 것이다.

태진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곧 쌓인 눈 위로 희미하게 발자국이 드러났다. 앞서 간 자들과 서서히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몰아치는 눈보라가 채 흔적을 다 지워버리지는 못했으니 태진에게 있어선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발자국은 총 세 개였다. 그중 두 개는 크기가 비슷비슷 했고, 나머지 하나는 두 개를 합친 것보다 더 컸다. 태진은 또 다시 버릇처럼 혼잣말로 하여금 상황을 추정했다.

“두 사람이 중형 몬스터 하나에게 쫓겨 도망쳤어.”

몬스터. 그것은 이 설산 필드에 존재하는 특수한 생명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요즘 시대엔 인터넷 여가 활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바로 그 단어이기도 하다.

도망쳤다. 그러한 상황의 가정은 발자국의 방향에 따른 것이었다. 크기가 작은 네 개 의 발자국은 크기가 큰 두 개의 발자국보다 훨씬 더 앞서서 가고 있었다. 그리고 발자국은 앞으로 갈수록 선명해졌다. 이는 두 사람이 앞쪽에, 그리고 몬스터가 뒤에서 쫓아가는 구도였음을 확실히 증명했다.

태진은 발자국이 찍힌 곳으로 바싹 다가가 눈을 한 움큼 손으로 떠서 입에 털어 넣었다. 텁텁하고 차가운 물 맛 사이에 비릿한 무언가가 있었다.

피 맛이었다.

퉷 하고 입 안에 넣었던 것을 뱉어낸 태진은 다시금 혼잣말을 했다.

“멀리 가진 못했겠네.”


발자국을 따라 도착한 곳에는 목조 산장이 있었다. 1층 높이에 고작해야 8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의 작은 건물이었다. 게다가 건물 곳곳엔 구멍까지 뚫려있어 안쪽에도 스산한 바람이 그대로 드나들었다.

이 설산에는 이런 장소가 여럿 존재했다. 언뜻 보기에 이것들은 마땅한 피신처를 구하지 못한 이들에겐 몸을 숨기기에 유용한 장소처럼 보일지 모르나, 태진은 이러한 거저 건물들이 대부분 함정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얀 눈의 세상 위에 솟아난 목제 건물은 육안으로 봐도 너무 눈에 띄는데다가, 피난처로서의 역할도 마땅히 수행하지 못한다. 보온 기능은 턱없이 부족하며 적이 공격해 왔을 때 방어하기 좋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적이 바깥쪽에서 불을 지르면 안에 있는 자들은 속수무책으로 타 죽을 수밖에 없다. 아니면 뛰쳐나와 응수하거나. 어느 쪽이든 스스로를 절망적인 상황에 몰아넣기 딱 좋은 행동이다.

태진은 다 떨어진 문짝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으나 분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어두운 곳에서 시력을 향상시켜 주는 나이트 비전 기술을 배워 시스템적으로 보정을 받는 상태였다. 따라서 동굴 깊숙한 곳처럼 아예 빛이 없는 게 아닌 이상은 인지하는 데에 장애가 생기거나 하진 않는다.

안에는 사람이 한 명, 벽에 기대어 주저앉아 있었다. 태진은 바지 뒷주머니에 꽂아둔 나이프를 꺼내들어 천천히 다가갔다. 남자는 피투성이였다. 가슴 언저리부터 옆구리에 이르기까지 대각선으로 상처가 나있었는데, 단두대의 칼날이라도 들고 와서 내려친 게 아닌 이상은 불가능할 크기였다. 허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가 몬스터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미약하지만 숨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아직 살아있는 듯했으나, 이미 흘린 피의 양으로 봐서는 얼마 못 가 숨을 거둘 게 분명했다. 그 증거로서 사내의 체력은 이미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죽음. 이 세계가 결국에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따져봤을 땐 이는 심각하게 와 닿는 말은 아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 세계에서의 죽음은 현실에서의 죽음과 다를 바 없다는 것 뿐. 허나 이 또한 확실치는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태진에게는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내를 되살릴 수단이 있으면서도 그러기를 택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이 단지 게임이기 때문이다.

죄책감도, 양심에 가책이 들 이유도 없다. 이건 말하자면 게임 안에서 옷을 다 벗고 구걸하는 유저에게 돈을 몇 푼 쥐어준다든가, 깡통을 앞에 두고 처량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노숙자에게 지폐를 내미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그런 알량한 선행인 것이다.

대체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그것들은 모두 장난에 불과하다. 한순간의 유흥일 뿐이다. 마치 아이템이 별다른 효력을 지니지 못한 게임에서 가챠를 돌리는 것처럼, 이는 결국 푼돈으로 선행을 사는 행위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것의 본질은, 말하자면 가진 내가 없는 너에게 베푸는 위대한 과시. 자기망상에서 비롯된 뒤틀린 선민사상 같은 것.

그렇기에 태진은 별로 개의치 않고 시체가 되어가는 남자의 품을 뒤져 물건을 챙기는 것을 우선시했다. 어차피 이 게임은 PD(Permadeath)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고, 따라서 죽은 플레이어의 아이템을 그대로 남겨두는 건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가져가서 써 준다면 앞서 탈락한 이들도 일말의 보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

그러나 태진의 예상과는 달리 남자는 깨어있는 상태였다. 그는 곧바로 손을 뻗어 태진의 오른팔 손목을 붙잡았다. 무기를 든 손을 붙잡혔단 사실에 당황하지 않고 태진은 곧바로 허리에 찬 권총을 빼 들었다.

그때, 남자가 힘겹게 입을 열어 말했다.

“너... 총을 갖고 있군.”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을 들어줬음 해. 벌써 총을 가지고 있을 정도라면 넌, 분명히... 실력 있는 플레이어겠지... 지금 이곳에는 없지만 나에겐... 여자 동료가 한 명 있었어. 하지만 우릴 추적하던 몬스터가... 나를 이렇게 만들고는 그녀를 납치해 가 버렸어. 의식이 희미해서, 잘 모르겠지만... 분명 최근의 일이야. 아직, 그녀는 괴물에게 당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부탁해. 그 아가씨를... 구해줘. 당하기 전에 나도 그 괴물한테, 큰 상처를 입혔으니까...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큭.”

남자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무리해서 말을 하는 바람에 몸의 상처가 더 벌어진 것이리라. 이 세계의 고통은 현실의 것만큼이나 리얼하다. 고로 정신을 유지하는 데에만 해도 분명 엄청난 의지가 따랐을 것이다.

“난 그 괴물이 있는 곳을 몰라.”

“동굴이 있었어... 우리가 그 괴물을 처음... 만난 장소였지. 쉴 곳이 필요해서 들어갔다가... 그만 놈을 깨우고 만 거야...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나올 거야...”

남자가 말한 장소를 태진은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이곳으로 오면서 이미 한 번 봤던 장소였다. 동굴 같은 데는 플레이어나 몬스터한테 습격당하기 딱 좋아 일부러 들어가진 않았지만, 이들에겐 그런 지식이 없었던 것이리라.

“안타깝지만, 내겐 널 도울 이유가 없어.”

남자의 표정이 더더욱 어두워졌다.

“그렇겠지. 넌 우리보단 훨씬... 행운아인 셈이군... 이렇게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해서... 이제 나를 죽이면... 넌 이 지독한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더는... 목숨을 걸 이유도 없으니... 널 이해해... 네 입장을 말야. 그러니 널 저주하진 않아... 단지, 네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군...”

남자는 총구 앞으로 이마를 바싹 붙이더니 힘겹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의 이마는 땀방울로 가득했으나, 최후의 말이 될 마지막 마디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현실에서 네게 축복이 따르기를.”

태진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를 쐈을까? 아니면 뒤늦게라도 마음이 바뀌어 부탁을 들어주었을까? 어쩌면 둘 모두를 선택했을지도. 어느 쪽도 분명하진 않으나,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그 순간 태진은 남자의 행동에 이유 모를 혐오감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난 살인은 하지 않아.”

태진은 그 말만을 남긴 채 도망치듯 뒤돌아서 산장을 빠져나왔다.

목이 컬컬했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이 역겨운 무언가의 감정 때문인지. 태진은 퉷 하고 눈밭에 침을 뱉고는 입가를 스윽 닦으면서 기분 나쁜 투로 중얼거렸다.

“...젠장.”


태진은 그 길로 곧장 동굴로 향했다. 그의 양손에는 아까까지만 해도 등에 매고 있었던 샷건이 잡힌 상태였다.

이 세계에선 총기류가 매우 귀한 편에 속했고, 탄약은 그 다음으로 귀중했다. 따라서 총기류를 소유한 플레이어가 무척 드문 건 물론이고 또 갖고 있다 해도 함부로 쓰는 일은 없었다.

지금부터 할 일이 몬스터 사냥이라면 과한 소비는 아니겠으나, 그것이 남에게 부탁받은 일이라는 게 차이점이었다. 태진은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시간이나 자원을 낭비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 만큼은 예외였다. 무엇이 예외인지는 태진 스스로도 알지 못했으나, 적어도 그는 지금 진심이었다.

고작 게임일 뿐인데도.

동굴은 얕았다. 따라서 안쪽까지 도착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입구 쪽에서 들어오는 빛도 적당했기에 나이트 비전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허나 앞이 훤히 보인다 해서 사각지대에서의 매복까지 알아챌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태진은 조심스레,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서 동굴 끝을 향해 나아갔다.

저 앞에 무언가가 보였다. 태진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좀 더 나아가자, 그것이 아까 전 남자가 말했던 그 몬스터임을 알 수 있었다. 거대한 사마귀의 모습을 한 그것은, 배가 갈라져 피를 철철 흘려대고 있었다. HUD를 통해 본 체력도 정확히 0에 도달해 있었다. 더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죽은 상태였다.

그때, 옆쪽에서 빠르게 발소리가 들려 왔다. 태진은 급히 돌아봤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어둠 속에서 뛰쳐나와 달려든 여성은 그대로 태진을 쓰러트리고 위에 올라타더니 손에 든 돌검을 목 위로 겨누었다.

“너...”

태진의 표정이 일순간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습격을 당해서가 아니었다. 이런 일은 이미 몇 번이고 경험해 본 바였다. 그가 놀란 건, 눈앞의 여자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의 삶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지녔었던 누군가와 닮았다. 아니, 판박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었다.

여자는 고뇌에 찬 표정을 한 채, 검을 쥔 양손을 덜덜 떨어대면서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미안해.”

그녀는 검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허나 행동에는 주저가 있었고, 그로 인한 빈틈은 치명적이었다. 태진은 검이 채 목에 도달하기 전에 개머리판을 올려쳐 여자의 턱을 강타했다. 묵직한 충격에 여자가 옆으로 쓰러지자 곧장 일어나 사격 자세를 취했다.

“난 널 해치려고 온 게 아니야.”

여자는 입이 터져 흘러나오는 피를 손등으로 스윽 닦고는 말했다.

“그럼... 얌전히 죽어 주면 되잖아.”

“그럴 순 없어.”

소녀는 다시금 태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엉성한 움직임이었다. 태진은 저것보다 몇 배는 더 빠른 몬스터들을 수없이 상대해 왔다. 아까 전처럼 사각지대에서의 급습이 아니라면 당해줄 리는 만무했다.

태진은 샷건의 개머리판을 방패삼아 소녀가 휘두른 단도를 막아냈다. 그리고는 그대로 오른팔 손목을 휘감고 옆으로 꺾은 뒤 아래로 내렸다. 이어서 왼 팔목으로 턱을 가격한 뒤, 꺾은 손목을 심장부를 향해 돌려 개머리판으로 복부를 강타했다. 깔끔한 동작이었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소년의 무예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당연하게도, 이는 시스템의 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소녀가 충격에 바닥을 구르자 이번에는 태진이 그녀의 위에 우뚝 서서 총구를 겨누었다.

“...죽여.”

“난 살인은 저지르지 않아.”

“하, 그럼 어쩔 건데... 이 세계에서 평생 있을 셈이야?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현실이 더 낫다는 보장이 있어?”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사람을 죽이고 간 천국에, 네 앉을 자리가 있을까?”

태진의 물음에, 여자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처참하게 입술 끝을 으그러뜨릴 뿐이었다.

“네가... 네가 뭘 안다는 건데! 현실에는 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부모님도, 친구들도 날 걱정하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여기고 싶은 거겠지.”

태진은 차갑게 내려보는 시선으로, 조소를 담아 말했다.

“실제로 네 빈자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자 소녀는 태진의 발에 짓밟힌 팔을 들썩거리면서 격정적으로 외쳤다.

“죽이겠어! 널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불가능해. 넌 약하니까. 하지만 괜찮아.”

태진은 총구를 양손으로 감싸 쥐어 개머리판을 정면 아래로 하여 두더니 말했다.

“이제부턴 내가 널 지켜줄게.”

태진은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사육자의 미소였다.

이윽고 소녀의 머리 위로 개머리판이 내리찍혔다.



“널 위해 선물을 하나 준비했어.”

“부디 이번에는 그녀를 상냥하게 대해주렴.”

“또 다시 망가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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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노벨 공모전에 내려고 퇴고 중인 작품입니다.

열심히 썼는데 재밌는지 모르겠네요. 하 ㅠ_ㅠ


Lv0 나나나나난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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