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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산다이바나시-단풍나무의 크리스마스

아이콘 냥마루
댓글: 6 개
조회: 6479
2017-11-23 20:21:45

 당신은 가을의 단풍나무를 좋아하는가?

 내가 감히 예상하건대, 붉게 물든 잎새는 장관이요, 한데 모이면 마치 불타는 것 같다고 당신은 말할 것이다. 특히,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잎의 향연은―맑으면서도 반항 없는 매끄러운 소리는 여름 풍경 같은 따스한 노래이고, 바람을 커튼 삼아 장난치면서 바닥으로 내려오는 낙엽과 바닥을 나뒹구는 낙엽은, 영락없는 사람을 반기는 개구쟁이이지 않을까―당신의 심금까지도 같이 흔든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붉은 단풍잎이 꼼꼼하게 바닥을 색칠하는 길은 당신으로 하여금 레드카펫을 연상시킬지도 모른다. 그래, 자신을 영화제에 등장하는 세련된 영화배우처럼 느끼게 해줄지도 모르는 일이고, 자신이 아주 멋들어진 영화 속에 출현하고 있다고 농담 삼아 얘기하게 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이해한다. 단풍나무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단풍나무가 좋다고 해도.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묻겠다. 나는 과연 단풍나무를 좋아하겠는가?

 이렇게 말한다면, 대강 눈치챘을 거로 생각한다. 뉘앙스에서부터 풍겨왔듯, 나는 단풍나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단정 짓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 나도 이전까지는 단풍나무를 정말 좋아했다.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아내와 단둘이 떠난 나들이에서의 단풍나무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아직도 간간이 되새겨질 정도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추억은 시시한 소설처럼 현실과 동떨어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에게서 만들어진 작은 잎사귀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커다란 나무기둥이 단풍나무라는 사실을 깨우쳤는데 어찌 좋아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라, 단풍잎의 마지막을 꾸며주는 조촐한 송별회에서조차도 자신들의 몸을 부대끼지 못하면 죽어가는 자신을 위로해줄 수도 없는, 그저 모든 것을 나무기둥에게만 주는 심정을.

 다시 한번 말하겠다. 나는 잎새를 지키지 못하는 단풍나무의 기둥을 마음속 깊이 원망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1년 365일 중에서 딱 하루 있는 정말 소중한 10월의 크리스마스.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 석양이 진 조금 늦은 시각이라도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려고 한다.

 그걸 위해 나는 한 손에, 이날을 위해 맞춤 제작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나머지 한 손에는 까끌까끌한 갈색 봉투를 들고 있다. 물론, 봉투 속에는 예쁘게 포장된 선물상자가 담겨있다
.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봉투 속에서 느껴지는 선물상자의 묵직한 무게감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과연 선물을 받고서 기뻐해 줄까? 아니면, 선물보다는 케이크가 더 마음에 들어서 개구쟁이처럼 장난을 칠까. 설마, 그것도 아니라면, 선물과 케이크 때문에 침울해져서 훌쩍일 수도 있고, 이딴 거 필요 없다고 짜증을 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기적인 나는 이 모든 일말의 상상에도 단지 만난다는 사실 하나로도 들떠있었다. 단지 만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정말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파티를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의 입구에서부터 대략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여기까지, 붉게 물든 단풍나무로 이뤄진 가로수 길이 이어지고, 그 틈새로 초록색의 십자가가 온통 하얀 건물 벽을 후광 삼아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거기에 건물까지 걸어가는 길은 보도블록이 말끔하게 깔린 인도에서부터 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까지 붉은 낙엽이 잠에서 막 깨어난 가로등을 대신해서 군데군데 색을 입혀주고 있었다.

 그리고 자동차나 사람이 붉은 낙엽을 밟으면서 지나가는 이 길목이 나는 굉장히 비참하게 느껴진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나는 곧장 5층의 6인실 방에서 쉬고 있는 딸아이를 데리고, 같은 층의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의 문은 건물 특성상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고려하여 밤늦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시 열려있는 채로 고정되어 있고, 바로 문을 지나가면 연갈색의 둥근 테이블 3개가 서로에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배치된 게 보인다. 그리고 한 테이블당 4개씩 배치된 의자가 서로 다른 개성적인 색깔로 물들어있어서는, 하얀 페인트의 벽과 세 개의 사각 창문, 음료수 자판기, 저소음 벽걸이 시계, 쓰레기통으로 단조로운 휴게소 안을 나름대로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무도 없어요!”

 오늘따라 더욱 활기찬 딸아이가 갈색빛이 감도는 검은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면서 나를 앞지르고는, 제일 가까이에 배치되어 있는 테이블의 의자에 의기양양해 하며 앉았다. 하지만, 콧방귀까지 뀌는 딸아이의 모양새와는 다르게 의자 다리보다 짤막한 딸아이의 다리는 공중에서 갈 곳을 잃은 채 작은 원을 그리며 우스꽝스럽게 움직였고, 그 상태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딸아이의 모습은, 마치 하염없이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 같았다.

 나는 딸아이를 따라 딸아이가 앉은 테이블까지 가서 여태까지 들고 있었던 케이크 상자를 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에 들고 있는 봉투마저도 딸아이의 반대편 의자에 내려놓았다.

 그러는 사이 딸아이는 별이라도 삼킨 듯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탐색하듯이 갈색봉투를 바라보며 갈색봉투가 움직이는 대로 얼굴 전체가―삐죽이는 입부터 코, 눈, 턱까지똑같이 움직였다.

 “아빠, 아빠!”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딸아이가 나를 불렀다. “선물은 언제 열어봐요?”

 “먼저 케이크부터 꺼낸 이후에.” 내가 딸아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케이크……. 맞아요, 케이크!” 하고, 이제야 케이크 상자로 목표를 바꾼 딸아이가 사자를 들어 올리는 어느 원숭이처럼 케이크 상자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렇게 좋니?” 내가 웃으면서 물었다.

 “네!” 콧방귀까지 뀌면서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는 귀여운 딸아이.

 나는 딸아이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주고는 딸아이 손에 번쩍 들린 상태 그대로 케이크 상자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케이크 상자를 테이블 위에 놓은 뒤, 상자를 열어 케이크를 꺼냈다.

 상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케이크는 성인 남성의 손 하나 정도 되는 작은 크기였다. 상단은 부풀린 크림 뭉치로 테두리를 울타리처럼 빼곡히 감쌌고, 한쪽 면에 치우쳐져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중심으로, 선물을 들고 있는 산타클로스와 붉은 코의 루돌프가 사이좋게 서 있었다, 그리고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장식의 발밑으로 놀고 있던 마당이라는 듯이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영어 단어를 빨간색의 딸기 시럽으로 아무렇지 않게 휘갈겨 적혀있고, 그 위에 바닐라 초콜릿 가루가 뿌려져서는 함박눈이 내렸던 것처럼 멋들어지게 꾸며놓았다.

 “예쁘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꺼내는 과정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던 딸아이가 상기된 얼굴로 감탄했다.
 특히, “아빠, 루돌프, 루돌프!”하고 루돌프가 나오는 순간부터 표정이 눈에 띄게 확 밝아진 딸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 그에 전염된 것처럼 얼굴이 느슨해졌다.

 이렇게 나와 딸아이, 단 둘 뿐인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가 끝났다. 케이크에 꽂을 초는 냄새 때문에 피울 수가 없고,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해줄 폭죽은 너무 시끄러워서 터트릴 수가 없다. 그렇기에 준비되어 있지 않은 괴상한 파티. 더군다나 음식은 딸아이는 입도 댈 수 없는―보기 좋은 그림이랑 다를 바 없는 희한한 케이크뿐. 하지만 해맑게 웃고 있는 딸아이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나는 정말 그거 하나만으로도 정말 충분한 걸까?








 “있잖아요, 아빠.” 딸아이가 루돌프를 손끝으로 어루만져주면서 말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준비하신 거예요? 거기다가 지금은 12월도 아니잖아요.”

 “그렇지.” 나는 딸아이를 옆자리에서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오늘은 네 생일이잖니.”

 그 말에 딸아이가 루돌프에게 두었던 시선만을 돌려 힘없이 나를 응시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다른 사람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케이크잖아요. 제 생일이 아니고요…….”

 “그렇지 않아.” 나는 침울해하는 딸아이와 시선을 맞추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분명 다른 사람의 생일을 기념하는 케이크이지만, 사람마다 생각하고 있는 의미는 다르거든.”

 “의미요?” 딸아이가 루돌프를 만지던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니까…….” 나는 너무 어렵게 말했다는 것을 깨닫고 반성하며 신중히 말했다. “예를 들면, 어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자신의 애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기념하고, 어느 아이에게는 가족과 화목하게 보내는 시간을 기념한단다. 아, 그리고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에게는 가족 모두와 만나는 아주 기쁜 시간을 기념하고.”

 “그러면 아빠는요?” 딸아이가 다시 루돌프를 좌우로 크게 기울어질 정도로 만져대며 물었다.

 “당연하잖니.” 나는 딸아이가 태어난 날을 떠올렸다. “우리 딸이 태어난 축복 받은 날을 기념하지.”

 “우우…….”하고 볼을 부풀린 채 루돌프를 만지던 손을 거두는 딸아이.

 나는 케이크 위에서 딸아이의 손에 의해 오뚝이처럼 다뤄졌던 루돌프를 케이크에서 빼내어 딸아이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 딸은 루돌프를 정말 좋아하잖니. 아빠가 알기로는 루돌프가 나오는 케이크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밖에 없는데, 아니니?”

 딸아이가 내가 내밀은 루돌프를 두 손으로 받아들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맞아요! 루돌프 정말정말 좋아해요. 게다가 있죠! 저는 나중에 크면 꼭 루돌프처럼 되고 싶어요!”

 “루돌프?”

 “네! 엄마가 읽어준 책에서 루돌프는 처음에는 친구가 없었지만, 나중엔 밝고 건강해져서 친구도 많이 생긴다고 했어요. 저도 꼭 루돌프처럼 밝고 건강해져서 친구도 많이 사귈 거예요.”

 “그렇니?”

 “네!” 그러고는 손에 쥔 루돌프를 만지작거리며 장난치던 딸아이가 갑자기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요, 아빠. 아빠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세요?”

 “아빠 말이니?”하고 물음에 힘차게 주억거리는 딸아이를 바라보고, 나는 케이크에 꽂혀있던 크리스마스트리를 빼내어 딸아이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아빠는 이 크리스마스트리이려나? 멋은 없지만, 언제나 잎이 붙어있는 게 좋거든.”

 “…….” 하지만, 내 대답에 딸아이는 어째서인지 나를 뚫어지게 바라만 봤다. 정확히는 내가 아닌, 내가 들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있었다. 잠시 동안 딸아이가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있다가 이제는 자기 손에 들린 루돌프랑 번갈아 바라보더니 “앗!”하면서 “아빠, 잠시만 가져갈게요.”하고 내 손에 들린 크리스마스트리를 냉큼 가져가 버렸다.

 그리고 딸아이는 루돌프랑 크리스마스트리를 케이크 상자 안에 집어넣더니, 이내 무언가를 꼼지락거리며 몰두하기 시작했고, 그러다가도 뭔가 마음대로 안 되는지 볼을 뾰로통하게 부풀리고서, “아빠는 너무 연약해요.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정말 크기만 해! 정말 힘 좀 기르셔야겠어요.”라고 나를 나무라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지 고심하는 듯 자신의 턱을 터프하게 매만지는 딸아이가 고개와 눈동자만 살며시 굴리며 무언가 탐색에 들어갔고, 뭔가 발견했는지 씩 웃으며, 나머지 장식품 중 하나인 산타클로스를 케이크에서 빼내서 다시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아빠, 아빠!” 그렇게 산타클로스로 문제가 해결됐는지 딸아이가 가슴을 펴고, 힘차게 케이크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한번 봐보세요!”

 “무슨 일이니?” 나는 딸아이의 말대로 상자 안을(케이크에 닿지 않게 조심하며) 들여다봤다.

 케이크 상자 속에는 루돌프와 산타클로스가 나란히 서 있고, 케이크에 고정시키는 하나뿐인 다리 탓에 제대로 서지 못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산타클로스와 루돌프가 받쳐주면서, 마치 제 모습처럼 우뚝 솟아있었다. 얼핏 보면 산타클로스와 루돌프가 크리스마스트리 밑에서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었다. 이 밖에 상자 안은 하얀 면만이 있는 평범한 상자였다.

 “그…….” 나는 감도 잡히지 않아서 고심하다가, 끝내 딸아이의 의도를 물었다. “그, 뭐니?”

 “우우…….” 내 말을 들은 딸아이는 다시 뾰로통해진 채로 케이크 상자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일일이 가리키며 설명해줬다. “하얀 상자가 이곳 같았어요. 그래서 크리스마스트리는 아빠고, 여기 루돌프는 저니까……. 아빠가 연약해서 세우기 정말 힘들었는데…….”

 나는 딸아이의 사랑스러운 발상에 무의식적으로 딸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과도할 정도로 큰 몸짓을 취해서 상자 안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보니까 아빠는 연약해도 좋은 거 같네. 보렴. 연약하니까 이렇게 양옆에 딸이랑……. 그러니까…….”

 “산타클로스!” 내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자, 그 행동이 우스꽝스러운지 기분이 풀린 듯한 딸아이가 신나서 얘기해줬다.

 “맞아, 산타클로스까지. 아빠가 연약하니까 모두가 더 가까이 붙어있을 수 있잖니. 그러니까 아빠는 연약한 게, 오히려 강한 거보다 훨씬 더 좋아.” 그리고서 덧붙였다. “그런데 딸.”

 딸아이가 나를 올려다보면서 나와 시선을 맞췄다.

 “아빠가 전나무고, 루돌프가 딸이면, 산타클로스는 뭐니?”

 “음.........” 생각도 못 했는지 고민하는 듯 신음하던 딸아이가 곧장 활기차게 답했다. “나한테 선물 주는 사람!”

 “선물?”

 “응! 간호사 언니나 병실 아주머니 분들처럼 정말 친절한 사람! 그리고 엄마!”

 “딸에게 있어서 엄마는 선물 주는 사람이니?” 나는 아내의 안쓰러운 처지를 깊이 애도했다.

 내 말을 듣고, 그저 헤실헤실 짓는 딸아이의 미소는 언제나처럼 나를 구원해주고 있다.








 조촐한 파티를 끝마쳤다. 딸아이가 먹지 못하는 케이크는 딸아이가 직접 파티 도중에 휴게소로 쉬러온 한 분과 당직 근무를 준비 중인 간호사 두 분, 딸아이와 같은 방을 쓰시는 다섯 분에게 각각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러고서 딸아이를 재우기 위해 딸아이의 침대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운 딸아이는 지금까지 풀어보지 않은 선물 상자를 소중한 듯 품 안에 안고 있었다.

 “딸, 선물 안 열어보니?” 내가 딸아이의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주면서 물었다.

 “내일 수술 끝나고 열어볼 거예요.” 선물 상자를 바라보며 그리 말하던 딸아이가 뭔가 떠올랐는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자신의 베개 밑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이내 “찾았다.”하고 말하면서, 베개 밑에서 하얗고 어딘지 모양이 삐뚤삐뚤한 작은 상자를 내게 내밀었다. “아빠, 여기요! 제가 아빠한테 주는 선물이에요! 헤헤…….”

 “선물이라니?”하고 딸아이가 내미는, 한 손에 다 들어가는 작은 상자를 받아들면서 물었다.

 내가 받은 것에 안심한 듯이 풀어진 미소로 딸아이가 말했다. “어제 간호사 언니랑 입구에 있는 단풍나무 잎으로 책갈피를 만들었어요. 거기다가, 그 상자도 제가 직접 만들었다구요!”

 그렇게 신나서 얘기하던 딸아이가 갑자기 몸을 움찔 떨더니,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로막았다. “앗!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 우우……. 아빠가 갑자기 물어봐서 그렇잖아요.”

 나는 딸아이의 실수가 너무나도 대견스러워서 딸아이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고는 딸아이가 볼을 부풀린 채로 누울 때 다시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주었다.

 “아빠, 선물 안 열어보세요?” 딸아이가 누운 채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도 내일 딸이랑 같이 열어보려고.”하고 답하면서 바지 주머니에 작은 상자를 넣었다.

 “그런데 아빠.” 딸아이가 어깨까지 덮어놓은 이불을 살며시 끌어 올려 떨리는 눈동자만 나온 채로 속삭이듯 말했다. “……내일 제 수술하기 전에 오실 수 있나요? 못 오시는 건 아니죠?”

 “당연히 와야지.”

 “정말이요?!” 딸아이가 이불 안에 감췄던 얼굴을 드러내면서 활짝 웃었다. “그리고 아빠! 아직 제 생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선물로 제가 다 나으면 엄마랑 다 같이 단풍놀이가요!”

 “우리 딸이 원하는데 그것도 못 해주겠니? 어디든 같이 가줄게.” 나는 딸아이를 쓰다듬으며 약속했다. “그러려면 이제 그만 자야지?”

 “네!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하고 웃으면서 과장되게 눈을 꼭 감는 딸아이.

 딸아이는 함께한다는 말에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딸아이가 새근새근 숨을 고르는 것을 몇 분 더 지켜보다가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건물을 빠져나오자 보이는 가로수 길의 단풍나무는, 밤하늘 아래에서 환해진 가로등을 무대조명처럼 다루며, 마치 무대 위의 아이돌처럼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 한적한 거리에는 아까 전과는 다르게 떨어진 낙엽 하나 없이 깔끔했었다.

 “아, 산타클로스.” 딸아이의 말이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진다.

 깔끔해진 인도를 걸어가면서, 반짝이는 단풍나무를 올려다보며 떠올렸다.

 ‘나중에 애가 태어나고, 걸어 다니고, 얘기할 수 있을 때 또 오죠. 다 같이 웃으면서.’

 아내와 단풍나무 아래에서 나눴던 약속. 이제는 딸아이와 나누게 된 약속이 되었다.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이파리가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단풍나무를, 어린 나이에 치루는 큰 수술을 무사히 이겨낸 딸아이와 함께 볼 수 있다면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지금은 도저히 알 수가 없지만, 그때가 온다면 분명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가로수 길로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단풍나무의 가지는 바람의 심술궂음에 거세게 흔들렸지만, 단풍나무가 단단히 부여잡은 잎새는 그저 바람을 타고 춤추고 즐겁다는 듯이 노래 부를 뿐이었다.

 “…….” 나는 행복해 보이는 단풍잎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선물 상자의 가벼운 무게감이 나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숨죽여 떨고 있는, 이 울퉁불퉁하고 순수하면서도 어설픈 선물상자를 지키기 위해 손으로 조용히 감싸 안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이 상자에 담겨진 딸아이의 꿈이, 염원이 악몽으로 바뀌지 않기를, 자식의 고통을 나누려는 어느 어머니보다도, 창밖의 잎새를 그리는 어느 어르신보다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 이번 애게 작문 이벤트 중 하나였던 산다이바나시 이벤트에 참가했던 소설입니다. 주제는 가을/악몽/상자를 선택했어요.

 원래 이 작문 이벤트에 참가했던 것 자체가 쓰고, 상품을 받는 것에 초점을 둔 게 아니라, 쓰고, 올리며, 같이 (흑역사를) 읽으면서 재미있게 쓰고자 했었어요. 그래서 올려봐요~~~~.

 그런데 아마도 보시면서, 제가 찾지 못한 오탈자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어느 정도 반복해서 읽는 순간 오탈자가 안 보이는 영역에 도달하는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한계예요오......... 데헷~☆

 암튼, 아무래도 부족한 게 많은 소설이지만, 이 부족한 게 많은 소설로 당첨될 수 있었어요. 다행이에요!!

 앗! 재미있게 읽어주셨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재미있었기를 빌어봐요.

 참고로, 곁에 있어주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많이 의식하고 작성했지만, 어떻게 읽고 느끼셨는지 살짝 궁금하네요. ㅎㅎ.....

인벤러

Lv78 냥마루

네이버 블로그 운영 중: https://blog.naver.com/zkdls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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