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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애니메이션과 공포

아이콘 작은찻집
댓글: 12 개
조회: 14935
추천: 6
2017-06-25 14:34:28

 

 시작은 궁금증을 떼어내기 위해서였다.

 호러 애니메이션이 갑자기 끌려서 구글에게 호러 애니메이션 추천을 물어본 적이 있다. 많은 애니메이션 블로그와 게시글이 나왔다. 하나하나 읽으며 볼 만한 것을 고르는 동안 궁금증이 들었다. 어느정도 겹치는 작품이 두 세개 있었지만 나머지는 작성자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사이코패스>를 추천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각양각색 곤충으로 가정집에서 프로틴을 훔쳐먹고 자란 바퀴벌레를 훅훅 잡아내는 <테라포마스>를 호러로 추천하기도 했다. 넓게 보면 호러가 맞긴 하지만 마치 한 여름철에 밟은 껌딱지처럼 끈적하고 더럽고 등골이 서늘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안겨주는 작품을 찾고 있던 나에게는 저 작품들은 '호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궁금증은 껌딱지가 되어서 그때부터 줄곧 머리 한 구석에 붙어있었고 오늘 그걸 떼어내기 위해 이런 글을 적었다. 왜 호러 애니메이션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작품이 차이가 나고, 호러 애니메이션이라 이름붙일만한 작품은 드물게 나오는지에 대한 생각을 완성된 하나의 글로 떼어내기 위해서이다. 



 공포는 늘상 곁에 붙어있다.

 어떨 때 공포를 느끼냐고 물어보면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번개가 치고 태풍이 불 때 생기는 원초적인 공포부터, 미지의 공포, 이 글을 쓴 사람처럼 어릴 적에 강가에서 잡았던 물고기를 자랑하기 위해 두 손으로 꼭 쥐고 가다가 물고기가 죽어가기 직전의 미미한 경련과 손바닥에 남아있는 비늘들을 본 이후로 물고기를 먹기 꺼려하는 인지적인 공포까지.. 모든게 호러블하다. 

 대개 공포는 두렵고 불안하며 섬뜩하게 우리의 그늘에서 손톱으로 등허리를 살살 긁어내리지만 그와 동시에 그 공포를 바라보고 싶기도 하고 그걸 빛 밖으로 끌어내고 싶기도 하며, 공포를 통해 도리어 자신을 되돌아보고 평온함과 안정감이 가지는 가치를 다시 확인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호러적인 것이 우리를 그저 막다른 길로만 내모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살아온 우리 삶에 대한 근본적인 거절이자 관계들에 대한 파멸적인 거부로, 수동적으로 살아오던 것들을 능동적으로 부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포 중 하나인 원초적인 공포의 시작도 자신을 지키고 죽음으로부터 피해 살아나가기 위한 대책이었으니 말이다. 이 글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바로 저 공포의 긍정적인 면이다.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무섭긴하다. 매우.

 위에서 든 예시는 현실의 공포와 관련된 경우였다. 그렇다면 영화와 만화같은 경우에는 어떨까? 죠스 시리즈의 식인 상어인 죠스나 나이트메어 시리즈의 프레디 크루거 같은 경우는 스크린 밖의 현실과 비슷하게 만든 세트장에서 배우들의 열연과 제작진들의 연출로 만든 '진짜같은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공포감을 안겨준다. 이런 호러 작품들을 보는 사람들도 자기가 돈을 내고 영화관에 자리잡아 팝콘을 아작아작 먹으며 '공포 영화'를 본다는 인식을 하고 본다. 그런데도 이런 작품들이 근근이 나오고 공포를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애니메이션의 공포 이전에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들을 관객들은 왜 무서워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왔고 영화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많은 의견을 내놓았었다. 그중에서도 여기서는 애니메이션의 공포를 이야기하기 위해 '감각경험'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감각경험에서 전제로 잡는건 인지적으로 고등사고를 하는 과정과 달리 감각적으로 외부 정보를 수용하는 과정이 독립적로 수행된다고 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전제를 보충하기 위해서 착시현상을 예로 든다. 위 착시현상에서 A와 B는 같은 색이지만 B가 훨씬 밝아보인다. 그 이유는 원기둥의 그림자와 B주변의 진한 회색의 사각형들이 B의 색깔을 파악하는 감각과정에 간섭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포이드로 찍어 A와 B가 같은 색임을 '인지'한 이후에도 저 두 도형이 같은 색인가 '두 눈'으로 의심을 하게 된다.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건 평면이지만 그걸 현실적인 입체로 인식하는 과정은 고등 과정의 인지이기 떄문이다. 

 저 예시를 공포 영화로 확장한다면 아무리 죠스가 현실적으로 꾸민 가짜 세트장의 상어라고 인지해도, 두 귀로 들려오는 피해자의 비명소리와 죠스 시리즈의 대표적인 배경음악, 피해자와 스크린을 향해 유유히 헤엄쳐오는 지느러미 등 감각경험들이 식인상어 '죠스'의 존재감을 강화시킨다. 아무리 이성이 '난 여기 공포영화를 보러 왔고 저기 있는 건 평면의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진짜같은 가짜 연출'이라고 엄격 근엄 진지하게 말해도, 감정은 설레발을 동동 떨며 '저렇게 날카로운 이빨이 많고, 피해자가 소리를 꺅꺅 지르고, 점점 피해자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는 배경음악이 울리는데 안 무서워?'라면서 이성의 어깨를 흔듭니다.

 거기에 고등적이고 똑똑한 인지과정도 점점 흔들리기 시작해요. 평온하게 지내던 가족의 가장이 좀비가 되어 가족을 물어뜯는 장면이나, 죠스가 떠나간 자리에 보글보글 올라오는 피거품과 육편 몇 조각을 보면서 인지과정도 '위협'을 느낍니다. 물리적인 위협이든, 자기가 살아가던 사회의 파괴이든 공포 영화의 상징들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아무리 진짜같은 가짜이지만' 저런 상황이 일어나면 무섭겠네라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짜지만 무섭다는 말이 나옵니다. 두 귀와 눈을 통해 충분히 얻은 괴물들의 존재감이 인지에게 '위협'이라는 단서를 쥐어주어서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이 감각경험에 대한 설명은 다른 공포에 대한 분석보다 애니메이션의 공포에 적용하기 쉬운 점이 저에게 있어선 가장 좋았습니다.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들의 죽음과 귀로 들려주는 둔탁한 흉기의 소리나 비명들이 분석 과정을 통해 다양한 위협을 주고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거든요. 하지만 여기서 '만화'라는 점이 또 다른 발목을 잡게 됩니다.



 만화는 어린애나 보는거야

 진짜같은 가짜인 영화와 달리, 애니메이션은 완벽하게 가짜입니다. 저렇게 눈이 반짝이고 몸매가 이상적인 캐릭터가 실존해있으면 작성자도 구미를 데려와서 노래를 들으며 같이 커피도 마시고 즐겁게 지냈을 텐데, 가짜입니다! 가짜에요. 위에서 설명한 이성과 감정 중에서, 감정이 두드려야 할 이성의 벽이 더 두꺼워 지는 것이죠. 물론 애니메이션에서도 갑자기 망가진 얼굴을 훅 드러내는 '깜놀' 장면이나 사지 절단 등은 공포를 자아내긴 하지만 애초에 애니메이션이고 만화이기 때문에 그다지 무섭지가 않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호러 애니메이션'이란 장르는 장르만의 특징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사람마다 추천하는 애니메이션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영화였으면 고어하고 19금 딱지를 받았을 신체 훼손이나 괴물, 유령은 평범한 표현 양식으로 코믹하게 등장합니다. 톰과 제리에서 다리미에 꼬리가 짓이겨지고 난간에서 굴러 떨어지는 걸 보고 깔깔깔 웃었으며, 심심찮게 남주를 고기덩이로 만드는 박살천사 도쿠로 같은 경우가 그렇다. 애초에 사실이 아니다는 인식으로 시작하다보니 위에 거창하게 설명 한 것들도, 애니메이션에서 공포를 체험하는 것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코믹한 고어성에 영향을 받은 스플래터 장르나, 사람을 어설프게 닮은 등장인물들로 알 수 없는 혐오감을 안겨주는 등 흔히 생각하는 '공포'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포를 안겨준다. 바로 어제, 이 글을 적기 위해 <퍼펙트 블루>를 다시 보았다. 어떤 사람은 이 작품이 실사 영화였으면 애니메이션 만큼 매력이 없다는 평을 여기저기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애초에 가짜이기 때문에 비춰주는 사물들이나 움직이는 인물들이 어떤 의미로 움직이는지 보기 쉬울 것 같다는 건 제 생각입니다. 아이돌 미마를 버리고 배우 미마로 시작하면서 방 구석에 치운 브로마이드, 선정적인 장면을 촬영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미마 앞에 배를 까고 죽어있는 물고기들, 미마의 심리를 대변하는 말들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드라마, 그리고 작품에서 수없이 미마의 얼굴을 비추고 거울 안 세계를 보여주는 거울까지. 영화보다 더 생각하기 용이하게 사물과 인물들의 행동, 성격이 모여 작품을 꿰뚫는 주제를 비추는 상징들로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현대인의 상황에 따라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하는 고통과 거기서 몇몇 사람들이 잃어버리는 자기 본래의 얼굴, 자기 분열과 광기, 그리고 성공한 사람에게 자아를 투영하는 것들까지.. 괴물이 사람을 물어뜯는 공포와는 다른 현대적인 공포들을 우리는 작품에서 느낍니다. 

 동시에 이 애니메이션은 가짜라는 두꺼운 인식의 벽 덕분에, 엔딩 크레딧을 보고나면 잠깐 고개를 돌려 가짜인 애니메이션과 비슷하게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짓는 사람을 보거나 감정노동에 지친 자기를 보면서 작품의 주제에 꿰뚫린 자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요. 도리어 가짜이기 때문에 현실을 자유롭게 비틀고, 뭉쳐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상징의 덩어리들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애니메이션만이 가지는 공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치유물 낚시는 언제나 옳지 않습니다.


 제일 처음에 공포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죠. 공포에 떨고 무기력하게 있는 것 보다 능동적으로 그것을 해결하는 순간 또다른 길이 보이고 더 넓은 시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 애니메이션의 공포는 장르적인 흥미에 현실의 이면을 뒤틀고 왜곡해서 애니메이션만의 연출로 담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표현해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무서웠을 공포들이 애니메이션에선 '애초에 가짜이기에 정면으로 볼 수 있는 공포'가 되고 그만큼 공포가 가지는 긍정적인 면이 부각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저도 상당한 겁쟁이입니다. 위에 적은 물고기 이야기도 그렇고, 평소의 작은 소음들에도 등허리를 곧게 일으키고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요. 찐한 공포 영화 한 편을 보면 그 소리와 장면들이 생각을 거쳐 차곡차곡 이성의 영역으로 정리되지 않고 감정의 영역에 남아 마치 눈알에 들어간 눈썹처럼 불편한 두려움을 안겨줘요. 그래도 애니메이션은 상당히 좋아하는 장르이고 애착이 있어서 이런 글을 적어보았네여. 쓰다보니 생각났는데, 꼬마 유령 캐스퍼가 실사 배우에 실사 영화였으면 겁나 무서웠을거 같은데 말이에요.


 여전히 용두사미같은 글이지만 여기서 마무리 지어보겠습니다. 

 
 
  
 

Lv79 작은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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