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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8화

아이콘 강철안개
댓글: 2 개
조회: 3836
추천: 7
2016-07-19 23:22:30

#. 베사리아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선 순간, 베사리아는 ‘방이 터질 것만 같다’라는 멘드레이크의 표현을 뼛속 깊이까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좁은 방 안에 들어선 대여섯명의 사람들과 그들의 발밑에서 무참히 구겨지고 있는 보고서란 이름의 양피지 더미들, 그리고 커다란 집무용 책상 위에 해로윙(매년 늦가을에 열리는 발로란 대륙의 축제) 잔칫상을 연상시킬 정도로 푸짐하게 쌓여있는 보고서, 보고서, 보고서……. 그 빌어먹을 보고서 더미만 봐도 욕지기가 목까지 차오르는 판국인데 하필이면 그녀의 집무실에 들어찬 사람들의 조합마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총 다섯 명. 


 세 명은 데마시아 측의 사절, 나머지 두 명은 녹서스 측의 사절이었다. 그래, 자국의 챔피언들이 협곡 안에 갇힌 채 리그가 중단되었으니 양 국가에서 사절을 파견하는거야 당연하지만서도…하필 왜 이 사람들이고, 하필 왜 내 방이냐는 말이에요. 베사리아는 속으로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보고서도 보고서였지만, 그놈의 사절이란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내뿜는 살기 때문에 방 안은 문자 그대로 ‘곧 터질 것만 같은’ 용광로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아쉽군. 여기가 전장이었다면 네놈의 머리는 진작에 두 쪽이 났을거다.”

 “예전에 그렇게 말하던 녹서스 놈이 하나 있었는데…자네도 알거야, 사이온이라고. 자네도 그런 꼴이 나고싶은가보군.”


 데마시아의 가렌, 녹서스의 다리우스를 필두로 양 쪽의 사절들이 대립하고 있었다. 자르반 왕세자와 스웨인 대장군의 상황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말이 없는건 왕실 집사인 신 짜오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었다고 시위하듯 창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저놈들 전부 이케시아 지역에 처넣어버리고 싶다-그게 지금 베사리아가 느끼는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불쾌감을 꾹 참고선 그 ‘무뢰배’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어서오세요 여러분.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찾아뵙게 해서 죄송합니다. 일단…….” 그녀가 슬쩍 손가락을 휘두르자 신 짜오의 창을 필두로 가렌의 대검과 다리우스의 전투용 도끼, 각자 몸에 지니고 있던 단검, 화약, 작은 권총부터 소형 폭탄 몇 알까지 온갖 무기들이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그녀 앞으로 모여들었다. 세상에, 보안 담당 경비들은 대체 뭘 한거야?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면서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 “이것들은 학회 보관품 센터에 보내두겠습니다. 설마 제 집무실에 싸우러 오신건 아니죠?”


 베사리아가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휘두르자-양 측의 사절들은 그녀의 마법에 반쯤 얼이 빠져있었다-공중에 떠 있던 무기들은 뿅 하고 사라져버렸고 사절들의 앞엔 팔걸이에 따뜻한 차가 올려진 나무의자가 나타나있었다.


 “앉으시죠, 여러분.” 베사리아는 대강 보고서 더미를 방 한쪽으로 날려버리고 자신의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무슨 일로 오셨죠?”

 “지금 무슨 일로 왔냐고 물으셨습니까? 지금 그 말이 나오십니까, 콜민예 의원님!”


 성질 급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가렌이 팔걸이를 탕 치며 격앙된 목소리로 대들었다. 그거 비싼 의잔데. 베사리아의 눈길이 살짝 찌푸려졌다.


 “협곡 안에 갇힌 챔피언들 때문입니다, 콜민예 의원님.”


 자르반 왕자가 황급히 가렌을 만류하며 나섰다. 좀 전까진 스웨인과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댔지만 주위를 둘러볼만한 이성을 회복하자 자신들이 지금 얼마나 무례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전쟁학회의 실수를 따지러 찾아온 것이긴 했지만, 학회를 대표하는 상임의원의 기분을 수틀리게 해서 좋을거 하나 없다는 사실을 자르반 왕자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거라면 리그에 약간 문제가 생겨서 협곡이 일시적으로 폐쇄가 되었다고 공문이 전해졌을 텐데요.”


 “네, 보내주신 공문은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협곡 안에 갇혀있는 챔피언들은 챔피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라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벌써 리그가 갑자기 중단된 지 만 하루가 지났습니다. 겨우 공문 한 장만 믿고 마냥 기다릴 순 없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길래 리그를 중단하고, 챔피언들이 있는 채로 협곡을 폐쇄시켰는지 저희는 알아야겠습니다.”


 가장 난감한 질문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베사리아는 일단 차 한 모금 마시는걸로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다시 상처가 욱신거리자 진통제 생각이 간절해졌지만 그녀는 애써 참았다.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자-어떻게 한다. 이렇게 직접 찾아온 이상 뭐라도 답변을 쥐어줘서 보내야했다.


 “핑곗거리를 만들어 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안쓰럽구만, 콜민예 의원.”


 베사리아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목소리의 발원지를 향해 눈을 살짝 흘겼다. 제리코 스웨인. 녹서스의 실질적인 지배자. 세간에야 능구렁이처럼 교활한 지배자로밖에 알려져있지 않겠지만 베사리아는 그 교활함 뒤엔 데마시아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심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챔피언으로서 그의 심판을 주도했던 소환사는 다름아닌 베사리아 본인이었으니까.


 “핑곗거리라뇨?”

 “이미 전쟁학회에 습격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소. 당신네들이 사태를 수습하느라 어제부터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빠르기도 하셔라, 베사리아는 속으로 혀를 찼다. 스웨인의 눈과 귀가 학회 내부에 심어져 있다는 사실은 베사리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깊숙하게 심어져 있을 줄은, 그건 의외였다. 학회가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아직 원로원과 상임의원만 아는 사항이었다. 스웨인은 베사리아가 이를 악무는 모습을 음미하기라도 하는 듯 지긋이 바라봤다.


 “그래서 말이오, 콜민예 의원. 이쯤해서 리그의 가치에 대해 다 같이 논의해봐야 할 것 같지 않소? 리그가 그동안 대리 전쟁으로서 가치가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전쟁학회가 이 대륙의 절대자였기 때문이었지. 근데 말야, 이번 사건으로 그게 깨져버렸단거지. 간 크게 전쟁학회에 손을 뻗쳐 소환사들을 모조리 죽이고, 심지어 상임의원인 당신과 멘드레이크에게 상처 입힌 그 집단 덕분에 말야!”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거지? 베사리아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르반 왕자가 흥분해서 뭐라고 말을 하려는 것과 동시에 스웨인이 벌떡 일어나더니 등을 돌렸다.


 “아무튼 이번 일을 부디 잘 풀길 빌겠소, 콜민예 의원. 되도록 빨리 리그 시스템을 정상화하고 협곡 내의 챔피언들을 구출하는게 좋을거요. 하지만 만약에, 협곡 내부에 있는 챔피언들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스웨인이 씩 웃었다. “그땐 우리 녹서스의 리그 참전에 대해 아주 깊이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겠군.”


 “스웨인, 네놈이구나! 네놈이 이번 일을 꾸몄지? 전쟁학회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뒤에 다시 룬 전쟁을 선포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

가렌 역시 벌떡 일어나더니 스웨인을 잡아먹을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스웨인이 잠시 가렌을 쳐다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투로 피식 웃었다.

 “이봐 자르반, 자네 부하 관리 좀 하길 권장하는 바네. 정말 포로만큼이나 멍청하군. 저런 놈이 장군이라니 데마시아의 미래도 참 밝구만.”


 문 닫는 소리와 스웨인의 웃음소리가 유난히도 거슬렸다. 베사리아는 이마를 짚은 채 아무 말도 없었고, 자르반 왕자는 잠시 그런 베사리아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입니까, 콜민예 의원님?”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여러분들을 속이게 되었군요.”

 “혹시라도 스웨인이 이번 일을…….”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베사리아가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음지에서 일을 꾸몄으면 꾸몄지 이렇게 대놓고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닙니다. 너무 위험부담이 커요. 큰일이에요. 이대로 상황을 질질 끌다간 전쟁학회와 리그는 둘째 치더라도 양 국에 치명적인 타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전 전쟁학회와 리그 시스템에 마수를 뻗칠 수 있는 집단이 겨우 리그의 시스템 하나 망가뜨릴려고 이러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베사리아가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리그의 시스템을 망가뜨린건 1차적 수단에 불과합니다. 분명 그 뒤로 뭔가를 더 꾸미고 있어요.”


 대륙 최강의 전쟁학회를 위협할 정도의 힘을 가진 미지의 적. 자르반 왕자는 수면 위로 서서히 부상하는 바다 괴물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침묵이 흘렀다. 가진 정보는 너무나도 부족했고 미지의 적은 조금씩 자신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베사리아는 머리를 감싸쥐고선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있던 소환실에선 수정구 하나가 폭탄으로 변했고 멘드레이크와 그 소환사들은 공허의 괴물에게 습격을 받았다. 동시에 챔피언들이 소환된 채로 협곡은 봉쇄되어 버렸다. 전쟁학회 최악의 위기, 전쟁학회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그 순간 멘드레이크의 말이 베사리아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도 믿어선 안된다.

그것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일지라도.


 베사리아는 머리가 확 트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다. 외부 세력이 어떤 식으로 학회에 마수를 뻗쳤든, 이렇게 조용하고 갑작스럽게 일을 벌일 순 없었다. 처음엔 단순히 미지의 적의 힘이 대단하다고 여기고 말았지만 그건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다.


 “진정한 적은 그대 안에 있나니.”

베사리아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콜민예 의원님?”


 자르반 왕자가 베사리아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그래, 그 경로라면 굳이 소환실에 들어오지 않고도 주문을……. 하지만 그건, 그렇다면 그는……? 아니, 그럴 리가, 하지만 그 사람밖에 생각할 수가 없는데.”


 베사리아는 자리를 박차듯 일어나더니 갖가지 마법물품들을 가방에 쓸어넣으며 자르반을 향해 외쳤다.


 “자르반 왕자, 데마시아의 정예 기동대원을 1개 중대만 지원해 줄 수 있나요? 마법사를 상대한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로만요.”

 “네?”

 “해 줄 수 있어요, 해 줄 수 없어요?”


 베사리아가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으르렁거리자 자르반 왕자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용까지 때려잡았던 자르반 왕자마저 누르는 기세가 그녀에게서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아주 좋아요. 당장 본국에 연락해서 중대를 데려오세요, 자르반 왕자. 빨리요!”

베사리아는 자기 할 말만 마치고선 서둘러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제발 자신의 예감이 틀렸길 빌면서, 서둘러 대회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시가 급했다.


 ‘서둘러야해.’


 그녀는 욱신거리는 상처를 진통제로 달래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제발 자신의 예감이 틀렸기를 빌며. 제발 그 사람이 아니길 빌면서.




#. 스웨인



 그 주인에 그 개로군. 둘 다 멍청하기 짝이 없어.


 스웨인은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물론 이 대리전쟁을 명목으로 하는 리그가 맘에 안드는건 사실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리그가 없어지는건 그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각하, 정말로 전쟁을 일으키실 생각이십니까?”

 “자네도 그 바보들에게 멍청함이 옮기라도 했나, 다리우스? 콜민예 의원에게 했던건 단순히 일을 빨리 해결하라는 위협이었어. 녹서스의 군대를 이끌 장군급의 전력이 모두 협곡 안에 처박혀있는데 뭐하러 전쟁을 일으키겠나?”


 스웨인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학회에 심어놓은 눈과 귀의 보고에 따르면 학회 내부엔 수정구가 변형된 폭탄이 있고 리그에 참가했던 소환사들은 모조리 죽었으며 상임의원들은 심한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도대체 그런 짓을 저지를만한 세력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럴 정도의 실력자라면 실종된 레지널드 애쉬람이나…….

 아니, 잠깐만. 스웨인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설마 그가? 하지만 왜? 하지만 스웨인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쿵!


 전혀 의외의 각도에서 날아온 주먹에, 스웨인은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해본 채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단 한 방에 기절한 듯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그를 습격한 사람이 새를 향해 움직이더니 새가 채 한 번 울기도 전에 목을 비틀어버렸다. 이 모든 과정이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자네도 그리 둔하진 않은 모양이군, 제리코 스웨인. 하지만 방비가 너무 어설펐다네.”


 다리우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니, 분명 다리우스였지만 뭔가가 좀 이상했다. 그의 눈은 사이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목소리 역시 다리우스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다리우스는 마치 몸을 처음 가져보기라도 한 듯 자신의 손을 쥐락펴락하며 신기한 듯 바라봤다.


“베인은 실패해서 그 계집애를 놓쳐버렸지만 이놈은 성공했군. 참 재미있는 느낌이야……. 미안하지만 제리코 스웨인. 당신은 전쟁을 일으켜줘야겠어. 전쟁을 일으키고, 그리고 이 대륙에 다시 한번 룬 전쟁을 일으키는거지. 자, 벌써부터 눈에 선하지 않나? 전쟁의 불길이? 멍청하게 평화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불구덩이에 처넣어지는 모습이…?”


다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스웨인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불길한 색의 불꽃이 그의 손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씩 되찾으리라.”


다리우스의 얼굴에 광기로 가득찬 미소가 걸렸다.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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