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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10화

아이콘 강철안개
댓글: 3 개
조회: 3217
추천: 9
2016-07-30 04:07:21

#. 소나



 에뜨왈은 소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었다. 그녀의 출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이자, 소나의 연주를 마법으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물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말을 못하는 소나는 에뜨왈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잦았다. 에뜨왈은 그녀의 반려자나 다름없었다.


 아무 음악이나 연주한다고 해서 모두 마법의 효과를 지니는건 아니었다. 우선 마법을 발동시키려는 그녀의 의지가 없다면 에뜨왈은 단순히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현악기에 불과했다.


 소나가 원하는 마법을 발동시키려면 그 마법에 맞는 곡을 연주해야 했다. 곡의 종류나 길이, 그리고 소나의 연주 실력에 따라 에뜨왈로 구현되는 마법의 힘은 천차만별이었다. 연주가 짧고 간단하면 마법의 위력도 약해졌고, 복잡하고 길수록 마법의 위력 역시 강했다. 적어도 소나가 지금까지 에뜨왈을 만져오면서 확인한 바로는 그랬다. 철이 들 무렵부터 10년이 넘게 에뜨왈을 만져온 그녀였지만 아직도 이 신비로운 악기에 숨겨진 비밀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연주를 마법으로 바꿔주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소나는 언제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소나는 에뜨왈을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에뜨왈을 경계했다.


 ‘때때로 에뜨왈을 연주하기가 망설여질 때가 있어. 에뜨왈의 비밀을 한가지 더 알아갈 수록, 에뜨왈을 더 잘 다루게 될수록,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


 “정신이 드는 모양이군.”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소나의 의식이 천천히 수면으로 부상했다.


 처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여러개의 구멍이 뚫린 이상한 모양의 철판이었다. 몇 초가 흐른 뒤 그녀는 그게 가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다시 약간의 시간이 흘러 그 가면을 쓴 누군가의 무릎을 베고 자신이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주위가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어둡다는 걸 알아차리고선…소나는 용수철이 튕기듯 일어났다.


-잭스 님!


 날이 다 저물어가는 듯 하늘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주변은 고요했다. 잭스는 한쪽 팔로 가로등을 끌어안은 채, 그 고요함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 듯 나무에 등을 기대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한 자루 낡은 장검같다-소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름난 도공이 만든 명검도 전설을 가진 신검도 아니지만 오랜 세월동안 전장에서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 온 이름없는 한 자루의 검. 비록 세월이라는 녹이 곳곳을 좀먹고 여기저기 덧대고 갈아끼워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날이 곧게 서 있고, 여전히, 칼날에 빛을 잃지 않은-


 “좀 더 쉬시오. 아직 출발까진 조금 시간이 있으니.”


 잭스가 자신에게 손을 뻗자 소나는 내심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 하지만 그는 소나가 일어나는 바람에 흘러내린 여행용 망토를 다시 걸쳐주려고 손을 뻗었을 뿐,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알 수 없는 아쉬움을 살짝 느끼며 소나는 어깨에 걸친 잭스의 망토자락을 다시 매만졌다. 거칠고 두꺼운 천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까 생각하다 만, 잭스에 대한 악상이 떠오를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 그녀를 감쌌지만 소나는 에뜨왈의 현을 살짝 만지며 그 기분을 눌렀다. 오직 소나만이 들을 수 있는 미약한 음파가 주변으로 퍼져나가자 소나의 머릿속에 주변 환경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눈을 뜰 때마다 에뜨왈로 주변 상황을 알아보는 건 소나의 오래된 습관 중 하나였다.


 한쪽에서 카타리나가 탈론에게 안겨 잠들어 있었다. 탈론의 상태는 소나의 치료 뒤로 상당히 호전되어서 잭스 왈, 저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한 사람 몫 정도는 할 수 있겠군-이라고 평가했다. 단지 비교적 안락한 휴식을 취했던 소나나 잭스와는 달리 그 둘은 상당한 피로를 쌓아놓고 있던 터라 휴식은 필수적인 선택지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잭스는 좀 더 쉬라고 했지만 소나는 이미 잠이 싹 달아난 뒤였다.


 -잭스 님은 안 주무신 건가요?

 “살짝살짝 선잠 정도는 잤소. 아, 그쪽으로 손 뻗지 마시오. 불 피워놨으니까.”


 잭스의 말에 소나는 바닥을 짚으려던 손을 다시 망토 속으로 가져왔다. 어쩐지 주변이 따뜻하다 싶었더니 잭스가 또 예의 그 흐릿한 불을 피워놓은 모양이었다. 소나는 잠시 망설이는 듯 망토 속에서 손가락을 꼬다가 잭스에게 기대서 앉았다. 무릎까지 베고 잤는데 이 정도도 못하겠어, 그녀는 꽤나 큰 용기를 내고 한 행동이었지만 잭스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오늘 밤에 보라색 진영으로 쳐들어가실 건가요?

 “그렇소.”


 잭스는 간단하게 대꾸했다. 유일하게 그의 감정만은 들을 수 없는 소나는 그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상대의 감정의 소리를 들으며 그에 따라 대처를 하는 인간관계를 유지해온 소나에게 잭스와의 대화는 신기한 현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주 불편하기도 했다.


 소나는 무릎을 끌어안고선 고개를 파묻었다. 탈론을 치료한 직후 잭스는 밤이 되면 이쪽에서 먼저 쳐들어가자고 선제공격을 주장했다. 목표는 보라색 진영의 넥서스. 소환사의 협곡에서 한쪽의 넥서스가 터지면 자동으로 경기가 끝나면서 소환이 풀리는 점을 이용해 협곡을 탈출하자는 계획이었다. 물론 처음에야 카타리나와 소나 둘 다 반대했지만,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쪽은 우리들이라오.]


 라는 잭스의 말 한마디에 둘의 의견은 가볍게 일축되었다. 하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리 치료했다 한들 탈론은 여전히 중상자였고 일행에겐 먹을 것도 없었다. 게다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날고 기어봤자 협곡 내부가 전부였으니 그나마 싸울 체력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기습을 하자는 잭스의 의견은 현 상황에서 가장 타당한 의견이라 할 수 있었다. 전쟁학회에서 구조를 와준다면야 또 모르지만. 하지만 언제 올지도 모를 구조를 기다리기엔 일행이 처한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게다가…다들 말은 하지 않아도 어렴풋이(잭스는 거의 확신에 가깝게) 전쟁학회에도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게 지금에 있어 최선-그리고 거의 유일한-방법이란 것은 소나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이 소나의 마음에 맴도는 공포심을 몰아내주지는 않았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여전히 소나는 베인이 자신을 습격하던 그 순간의 모든 소리를 기억할 수 있었다. 석궁의 톱니가 맞물리는 소리,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던 소리, 화살이 바람을 가르던 소리…….


 -빨리 여기서 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잭스 님.


 소나는 그 불안한 마음을 애써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넣으며 잭스를 향해 미소지었다.


 “행여나 계약 내용이 걱정되는 거라면 안심해도 좋소. 용병들에게 있어서 계약은 절대적인 약속이니까.”

 -…네, 믿고 있어요.


 소나는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잭스의 말에 화답하고선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은 그녀의 얼굴엔 더 이상 웃음기가 서려있지 않았다.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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