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주문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고 거기에 맞는 설정을 짜서 완벽하게 만드는 건 '필요한 작업'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그레이엄 맥닐이 오기 이전에도 애초에 구멍이 숭숭 뚫린 설정은 많았고
여러모로 맞지 않는 퍼즐을 억지로 끼워 맞추다가 많은 비판을 받아 왔었기도 했구요.
좀 개인적인 썰을 풀자면,
바루스보다 솔직히 오리아나 설정 변경때 가장 충격이 컸습니다.
애초에 제가 오리아나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캐릭터를 아우르는 근간 설정,
즉 딸의 죽음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가 만들어낸 비극적인 창조물이자
창조주의 자식처럼 행동하려고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는 로봇의 이야기가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죠.
설정이 변경되고도 여전히 오리아나를(쉬바나와 함께) 최애캐로 생각하느냐고요?
아뇨.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더군요.
지금의 오리아나는 조금씩 기계로 바뀌어서 인간적인 부분을 잃어버린 로봇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많은 팬픽을 양산해 내던 캐릭터의 스토리를 굳이, 왜, 송두리째 엎어버렸을까요.
글쎄요. 아마도 인체개조의 영역까지 마법공학이 발달한 필트오버의 세계관을 보여 주면서-
당시에 새로 등장할 '카밀'이란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둘 다 똑같은 마법공학의 극한으로 인체가 개조된 인간이지만,
기계몸이면서도 그나마 남아있는 인간성을 꾸준히 유지하려 차를 마시는 버릇을 놓지 않는 카밀에 비해
그 끝까지 도달하여 아예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존재가 필요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네. 전 그런 이유로 오리아나의 기존 스토리가 희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비슷한 이유로 많은 챔피언들의 이야기가 수정되고 있습니다.
그게 세계관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설정을 보다 단단하게 해주는 장점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기존의 챔피언이 가진 매력을 좋아하고 즐기던 팬층에겐 큰 혼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챔피언 일러스트를 라이엇에서 스플래쉬 아트(Splash Art)로 부르면서 까지 '그 캐릭터의 이미지를 한 번에 와닿을 수 있도록 보여주는 그림'이라 중요하게 여기면서, 왜 그 이미지를 이루는 근간의 이야기, 매력이 만들어지는 다른 한 부분인 캐릭터의 배경설정을 바꾸는 걸 그렇게 가볍게 여기냐는거죠.
오죽하면 스토리 하나 바뀔때 마다 "응, 그래서 이 스토리는 몇 년 짜린데?"란 댓글이 달리는 게 아닙니다.
챔피언 새로 만들 때에야 젠더가 어찌됬든, 성별이 5분 단위로 바뀌든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기존의 챔피언을 변경할 때에는 이미 그 챔피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를 바랄 뿐이죠.
어제까지 악당이었다가 오늘 갑자기 국가를 지키는 히어로로 바뀌어 버리면 팬픽 만드는 사람들 기분은 어떻겠어요.
(딱히 제드라고 콕 찝어서 말하는 건 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