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치자면 뇌가 날아간 거랑 같아. 그녀의 내부에 있는 마인드맵의 핵심코어가 약 90% 손상되었어. 정상적이라면 손상된 그 즉시 기능이 정지되었어야 해. 솔직히.....”
지금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페르시카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멍하니 스프링필드를 돌아보았다.
* * *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5분 남짓 하다고 한다. 페르시카의 말은 알아듣기 편하도록 천천히 들려왔지만 나는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인드 맵이 날아갔다고? 사람으로 치자면 뇌가 날아간 거다. 기계니까 그나마 지금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거지 보통 사람이었으면 이미 즉사다. 못해도 식물인간 상태라는 거지. 근데 그게 누구 때문에 일어난 거지?
“젠장! 멍청한 놈!”
스스로에게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하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멍청하게 포격이 날아올 위치에 있다니! 그런 멍청한 놈 때문에 그녀가 이런 상태로 누워있었다.
“대체 코어는 얼마든지 있어요. 그걸 이용하면 마인드맵을 대체할 수....”
“있기는 해. 하지만 그건 새로운 기억을 씌운 ‘새로운 스프링필드’야. 지금 거기에 누워있는 그녀는..... 지금까지 모든 기억을 잃어야 해.”
그녀의 말이 마치 사형선고처럼 들려온다. 도저히 그녀가 소생할 방법이 보이지 않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 내 고민에 답을 해주는 이가 있었다.
“새로 만들어 주시겠어요?”
“괜찮아?”
뒤에서 들리는 스프링필드의 목소리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하였다.
“일단 말하지 말고 쉬어.”
“페르시카씨. 상관없으니 코어를 이용해서 새로 만들어 주시겠어요? 지휘관? 괜찮으시다면...”
“젠장. 쉬라니까. 곧 페르시카씨가.... 그녀가....”
수복할 수 없다. 망할! 수복실도 있고 자원도 충분히 있다. 몇날 며칠이고 수복기계를 돌릴 자원이 넘치도록 있는데...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안해.”
결국 스스로의 한심함에 할 수 있는 건 사과뿐이었다.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한숨만 튀어나온다.
“나 때문이야. 그때 나를 감싸지만 않았어도.....”
“아니에요, 지휘관. 이건 당신 탓이 아니에요.”
그녀의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기에 더 괴로웠다. 이 일련의 사태가 나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서 그녀가 다친 것을 알기에 그런데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원망하지 않아?"
"원망....인가요?"
"응. 멋대로 총을 쥐어주고 목숨 걸고 전장에 내몬 건 나야. 그런 주제에 멍청하게도 포격 위치에 있다가 네가 죽게 생겼는데...... 죽는 게 안 무서워? 원망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지휘관. 제가 처음 군에 왔을 때 어땠는지 아시나요?”
그녀의 말에 내가 고개를 기울여 의문을 표했다. 나의 행동에 스프링필드는 웃었다.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이내 입을 열었다.
“모든 게 낯설었어요. 단순한 민수용 인형이었다가 갑자기 군수용으로 개조되고서 전장에 내몰렸을 때는 무섭다기보다는 얼떨떨했어요. 그러다 총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프로그램대로 싸우기 시작하면서 느꼈죠.
아, 이제 한번 잘못 하면 죽겠구나. 명령대로 싸우면서도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 죽는게 안 무섭냐고 물으셨죠?는데 안 무섭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네. 무서웠어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어요. 군에 온지 일주일 후엔 정말 그렇게 하려고 계획까지 짰었죠. 하지만.....
그녀가 잠시 숨을 멈춘다. 말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게 눈에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았던 건 당신이 있었던 덕분이었어요. 인형에 불과한 우리들에게 인간만이 느낄 수 있다던 정이 무엇인지 알려준 당신이 있었기에 저는 도망치지 않았어요. 가끔 엉큼한 짓을 하기도 하고 실수도 해서 화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녀가 즐겁다는 듯 웃는다. 그녀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인형인 우리를 사람으로 대해주는 자는 얼마 없어요, 그저 인력 대체품으로만 여기지요. 그렇기에 당신께는 감사하고 있었어요. 지휘관. 바보 같을 정도로 상냥한 사람.
당신 같은 사람의 곁에 있었기에 저는 도망치지 않고 싸울 수 있었어요. 우리를 인형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주는 당신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싸울 수 있었어요. 그렇기에 웃으며 지낼 수 있었죠.”
“...난 한 게 아무것도 없어.”
당연한 진실이 씁쓸한 위액이 넘어오는 것 마냥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래. 난 한 게 아무것도 없다. 두려움을 극복한 것은 전적으로 그녀들의 몫이다.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 않아요.”
이윽고 그녀가 몸을 일으킨다. 옆에 있던 페르시카가 무리하지 말라며 말리려 했지만 내가 제지한다. 그녀의 몸에서 스파크가 튀기며 이상 증세를 보였지만 스프링필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휘관....”
“응.”
“지휘관......”
“왜 그래?”
“울지 말아요. 지휘관. 말했잖아요? 당신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고, 그런데 당신이 울면 안 되죠.”
“........”
무리한 걸 요구하는 인형이다. 나는 웃으려 했지만 입 근육이 마비된 듯 그녀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녀가 내게 손을 뻗었다.
“입가에 빵가루가 묻었네요. 후후후 가만히 계세요, 제가 떼어드릴 테니.”
그리 말하며 망가진 양손을 들어 올려 내 입가에 가져간다. 그녀의 손가락에 의해 억지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 모습을 보며 스프링필드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