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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도시락 발 마사지 해주는 이야기

Erkenia
댓글: 2 개
조회: 1437
추천: 5
2018-08-15 19:37:49
 부관 인형, 아니 부관 자리가 지휘부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남는 건, 부관 인형에게 떨어지곤 하는 작은 권력 따위의 콩고물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들이 군수 지원과 자율 작전 따위의 대외 업무를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부관 업무와 겹치는 걸 지휘관이 배려해주기 때문인지, 지휘관이 그녀를 아끼기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인형들이 수근대곤 하는 '그렇고 그런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녀들도 순수한 기계가 아닌지라 땀을 흘리고 불쾌해한다. 더욱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 여름 뙤약볕, 군수 지원 혹은 자율 작전을 나가는 그녀들의 표정에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라. 그러니 이렇게 더운 날에는 쾌적함이 보장되는 지휘실은 그야말로 꿀이 떨어지는 자리라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거기다가 아예 뙤약볕에 나갈 일 없는 부관 자리는 더더욱.

 이 지휘부도 그 부분은 다르지 않았다. 부관 지원에 있어서 꽤나 까탈스러운 조건을 걸고 있고, 업무도 꽤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부관 자리에 앉게 되는 인형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날이 더워지면 더워질수록 부관 자리는 이미 하나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었다. 보다못한 지휘관은, 그는 인형을 자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전 숙소의 냉방기를 교체해주었지만 부관 자리는 종교에서 숭배의 대상 즈음으로 등급이 떨어진 것에 그 효과는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녀들이 그의 배려에 만족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만 결국 이 더운 날씨에 작전을 나가야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숙소의 신형 에어컨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부관 자리는 언제나 지원하는 인형들이 넘쳐났다. 덕분에 지휘관의 일에 부관 면접이라는 일이 하나 더 늘어났지만, 지원자가 없는 것보단 낫겠지, 지휘관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머릿속 한 구석, 그 역시도 이 더운 여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것이었다.


 제복이란 물건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후텁지근한 여름 날씨에 맞지 않는 물건이다. 일부러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나섰지만 그마저 헛수고인 듯 했다. 지휘관은 배어나온 땀을 슬쩍 훔치며 지휘실로 잰걸음을 재촉했다. 빨리 지휘실로 들어가 냉방기를 켜고 그 시원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어머, 일찍 왔네."

 지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들리는 목소리는, 평범한 말투임에도 묘하게 색기가 묻어나왔다. 지휘관의 의자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던 그녀─DSR-50이 빙글, 하고 의자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또 제 의자에 앉아있었나요." 
 "따뜻하게 데워둔거야."
 "이 날씨에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능청스레 그리 말했다. 그가 어이없다는 듯 대꾸하자 그녀는 쿡쿡 웃었다. 여전히 사람 놀려먹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모자와 재킷을 벗자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그녀는 자연스레 그의 옷가지를 받아 옷걸이에 걸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자 옷 안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에 가벼운 한숨이 나왔다.

 "좀 가볍게 입고 와도 될텐데."
 "부하들의 시선이 있는지라."
 "그런거 싫지 않아."

 의자에 앉자, 의자에 살짝 남은 향수 냄새가 은근히 흘러왔다. 어제와는 다른 향.

 "향수 바꿨나보네요?"
 "금방 눈치챘네?"
 "매일 같이 맡다보면 말이죠."
 "어머, 내 냄새를 언제나 그렇게 맡은거야?"
 "남 듣기 안좋은 말을."
 "농담도 안 받아주네, 쌀쌀 맞아졌어."

 처음엔 그런 그녀의 농담에 쩔쩔맸는데, 이젠 웃어 넘길 수 있게 되어버린만큼 익숙해져버렸다.

 DSR-50은 그런 그가 재미없다는 듯이 입을 비죽 내밀었다. "순진했을 때가 재밌었는데." "저도 성장하는지라." 지휘관이 그리 받아쳤다. 그녀가 처음 부관으로 왔을 때 쩔쩔매던 걸 생각해본다면 장족의 발전이리라. 

 지휘관 놀려먹기를 좋아하는 그녀가 부관에 지원한 이유는 '재밌어 보여서' 였다. 시종일관 자신의 재미를 찾아나서는 그녀다운 이유라 할 것이었지만, 그녀의 능력은 어디 비할데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니, 문제려나. 적어도 부관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그는 아직도 마이크로 우지가 임시 부관으로 있을 때를 잊지 못한다─ 것보다는 훨씬 낫긴 하겠지만.

 그도 주도권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가 부관에 임명된지 얼마 안됐을 때 즈음이었다. 툭하면 지휘관을 놀려먹곤 하는 그녀에게 반발하여, 지휘관의 위엄이란게 있지, 라는 생각으로 무언가 트집 잡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제 할 일도 모자라 그의 업무까지 끝내버린 그녀는 정리가 끝난 서류를 들이밀며 지휘관이 편한 업무인지 상사의 위엄인지를 저울질하게끔 만들었다.

 비겁하기 그지 없었다.

 "무슨 생각해?"
 "어떻게하면 제 위엄을 살릴 수 있을까, 하고."

 그녀는 그때 그의 얼굴이 기억난다는 듯이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지휘관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 속 저울이 어디로 기울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시계가 8시를 가리켰다. 업무 시작 시간이었다. 소소한 잡담을 멈추고 지휘관은 펜대를 잡았다. DSR-50도 익숙한 듯 책상 한 구석에 밀어두었던 일정표를 손에 들었다.

 "오늘 업무 내용은요?"
 "평시 업무. 별건 없네."
 "한가하네요. 하긴 이 날씨에 뭔가 있었으면 땀으로 범벅이 됐겠죠. 생각만해도 끔찍하네요."
 "그러게 말이야. 으음, 간만에 산책이나 나가볼까?"

 일정표를 슥 훑어본 그녀가 말했다. 이 더운 날에? 방금 그 대화를 하고도? 날씨 때문에 인형들도 지칠까 오전에 일정을 모두 몰아넣고 오후부터는 휴식을 주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황당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는 지휘관의 모습을 본 그녀가 입꼬리를 미끄러트렸다.

 묘하게 소름 돋는 웃음이었다. 또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끔 더운 날에도 걷고 싶은 날이 있는 걸."
 "……업무에는 지장 안가는 선에서 해주세요."

 말리는 건 글렀다, 그렇게 생각한 지휘관이 말했다.  또 어떤 일을 끌고 올지, 적어도 저번처럼 지휘부를 발칵 뒤집은 스캔들이 되지 않길 바라는 수 밖에. "선처할게." 그렇게 말한 그녀를 바라보며 지휘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원받는 이들도 이 더운 날 오후에 일하고 싶진 않은지 일정 변경은 순조로웠다. 지휘부에 일정 변경을 알리고 더운 날씨에 투덜대는 군수지원 제대원들을 어르고 달래 모두 보낸 후였다. 마지막 군수지원 제대 투입 때였다.

 "어머, 산책시간?"

 시계를 바라본 DSR-50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 군수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녀가 지휘실 한 구석에 거치되어있던 총기를 집어들자 타이밍 맞게 노크 소리가 울렸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벙쪄있자니, DSR-50이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설마 고작 그의 벙찐 얼굴을 보기 위해서 이 더운 날씨에 산책을 나간단 말인가. 

 그럴 리는 없을 터였다. 이번엔 또 뭔 짓을 저지르려고. 그녀가 대체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 머리를 쥐어싸맨 지휘관을 보며 웃던 그녀가 지휘관 대신 "들어오렴." 하고 제대원들에게 답했다.

 쭈뼛쭈뼛 들어온 제대원들은 부관이 직접 군수지원 제대장을 맡는다는 사실이 어색하기 그지 없는 듯 했다. 이 더운 날에 시원한 냉방기 바람이 보장되는 지휘실을 버리고 군수지원을 나간다니? 그런 인형들의 모습을 보며 또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은 그녀가 뒤돌아서서 나긋한 목소리로 출발 보고를 시작했다. 

 "이상, 9제대, 군수지원 출발하겠습니다."

 처음 해보는 보고일터인데도 버벅임 없이 말하는 모습은 미려해보이기까지 했다. 눈썹께, 경례하고 있는 긴 손가락에 무심코 눈이 갔다. 평소와는 다른 존댓말로 보고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나서야 지휘관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허둥지둥 마주 경례하는 손이 제 위치를 찾는 과정은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었다. 뒤에 선 인형들이 웃음을 참느라 부들대는 것이 보였다. 크흠흠,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날 더운데 무리하지 않도록 하시고, 특이사항 있으면 바로 연락하세요."

 그 역시 으레하곤 하는 답변을 끝내고, 문을 나서는 제대원의 뒷모습을 보며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관의 위엄은 어디로 갔는지. 아니, 위엄을 찾겠다는 아침의 그 발언때문에 그녀는 그랬던걸까. 남들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녀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나중에 불평불만 한 사발을 쏟아부어야겠다는 벼를 때 였다. 마지막, 그녀가 나서며 문을 닫기 전, DSR-50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을. 찌푸려진 그의 눈살을 바라보며 그녀가 살짝 눈웃음지었다. 

 찰나의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반쯤 뜬 게슴츠레한 눈. 장난기 넘치는 모습의 갑작스런 변화에 지휘관이 침을 삼켰다. 그녀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입을 벙긋했다.

 돌아오면. 얇은 입술의 움직임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상상되는 그 요염한 목소리.

 아직 그녀의 장난은 끝나지 않은 듯 했다. 달칵하고 문이 닫겼다. 지휘관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서있었다.

 흐릿하게 남은 그녀의 향수의 향기에 남은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꾸역꾸역 해치운 공문들의 내용이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으니 그 심각성은 쉬이 짐작이 갈 것이다. 카리나가 보면 한 소리할 지도.

 시계는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되어가고 있었다. 슬슬 마지막 군수지원 제대─그러니까 DSR-50이 인솔하는 제대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복귀한 제대원들이 잠깐이라도 시원한 공기를 맛볼 수 있게 지휘관은 잠시 꺼두었던 에어컨을 다시 켰다. 

 잠깐 껐는데도 금세 온도가 올라가 땀이 베어나오고 있었다. 실내에 있어도 그런데 밖에 나가서 직접 몸을 움직이는 제대원들은 오죽할까. 안쓰럽기 그지 없지만 내려온 임무가 있으니 마냥 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매일 땀에 절어오는 모습을 보다보면 더더욱.

 그나저나 굳이 이 날씨에 그녀─DSR-50이 군수지원을 자처한 것을 왜일까. 그는 꽤나 많은 업무를 분담해주고 있는 부관에게는 최소한의 배려로 군수지원과 자율작전을 면제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재미를 추구한들 사람 하나 골려먹기 위해서 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나갈 일은 아닐텐데.

 ─그러고보면 그녀가 땀을 흘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가 땀을 흘리는 모습이라. 그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살인적인 더위. 이 날씨에 살짝 거친 숨을 내쉬며 한쪽 뺨에는 달라붙은 몇 가닥의 머리카락. 턱 끝에 맺힌 작은 땀방울이 목을 타고 내려가 그 옷 속으로 흘러내려 보이지 않을 쇄골을 타고. 침을 꿀꺽 삼켰다. 쇄골을 타고 내려간 그 땀방울이, 옷 너머로도 알 수 있는 그 거대한 둔덕 사이로…….

 지휘관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당최 무슨 생각을. 아무리 장난기 넘치고 그를 곤란하게 하는때가 많더라도, 항상 그의 옆에서 그의 업무를 덜어주고 같이 지휘부를 이끌어가는 부관 인형을 향해 그런 파렴치한 상상을 하다니. 여성 뿐이 없는 곳이라 쌓일대로 쌓였다지만. 머리를 쥐어싸맸다.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군수지원 제대가 복귀한 모양이었다. "들어와요." 어떻게든 평정을 가장하며 지휘관이 대답했다.

 "아─ 지쳤다."

 주욱 기지개를 펴며 DSR-50이 지휘실로 들어왔다. 더운듯 살짝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뺨에 붙은 한 가닥 긴 머리칼도, 살짝 촉촉한 어깨와 팔도. 끌려가는 눈길을 애써 돌리며 지휘관이 물었다.

 "다른 제대원은요?"
 "먼저 보냈어. 부관에게 그정도 권한은 있잖아?"

 걸친 망토를 벗으며 그녀가 에어컨 앞으로 다가왔다. 땀에 젖은 셔츠 너머로 속옷의 자국이 드러나있었다. 무심코 그 궤적을 좆아버린 것은 남자란 생물의 본능일 것이라.

 "하아, 이제야 살 것 같네."
 "그러게 누가 더운 날에 군수지원을 자처하래요?"

 그녀가 자신의 시선을 눈치채지 않았기를 바라며 지휘관은 애꿎은 펜을 딸각거리며 그리 빈정거렸다.

 "안 그래도 후회 중인 걸. 이정도일지는 몰랐어. 정말, 가슴골까지 땀이 차서 불쾌해."
 "……아무리 그래도 남사스럽게 그런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어머,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속옷의 라인을 시선으로 더듬던게 들킨걸까. 지휘관이 헛기침을 했다. 빙글빙글 웃고 있을 그녀의 얼굴이 선했다.

 "날이 덥잖아? 고생하는 제대원 하나쯤 내 몸 바쳐 구해낼 수 있다면 이득인 장사 아닐까?"

 그녀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말하는 바는 고귀한 희생정신이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니 다른 의미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그러고보니 그녀가 돌아오면, 이라고 말했었지. 또 어떤 일을 저지르려고. "그러니까." DSR-50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지휘관, 고생한 나를 위해 상을 줄래?"
 "……제가 가능한 정도라면."

 숨기는 것이 있는 듯한 말투. 꾸미는게 있는게 분명했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후후, 별거 아냐." 또각, 또각, 또각. 힐 소리가 괜시리 크게 들렸다. 부관 자리에 앉은 그녀가 허리를 숙였다. 긴 손가락이 발끝을 향하고, 신고 있었던 힐을 벗으며 그녀가 웃었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랫동안 힐을 신고 걸으니 피곤하거든. 발 마사지 좀 해주지 않을래?"
 "지금 말인가요?"

 씻지도 않은 채 그대로. 스타킹에 감싸여있는 그 발끝, 스타킹도 아마 땀에 젖어있겠지. 평소에는 시선조차 가지 않던 그녀의 다리에 눈이 갔다. 습기에 차 평소보다 조금 진해진 갈색의 스타킹으로 감싸여있는. 살집 좋은 허벅지와 그 아래 알맞게 부푼 종아리, 그리고 생각외로 얇은 발목과 그 끝에 있을, 지휘관의 시선을 즐기듯 그녀가 다리를 꼬았다, 그 끝에 있을, 살짝 허공에 뜬 그녀의 발.

 "잠깐이면 되니까."

 그녀가 홀리듯 그리 말했다. "잠깐, 이죠." 이 더운 날 한참을 돌아다니고 씻지도 않은 발. 본래라면 건드리는 것은 커녕 아마 꺼내자마자 질색을 해도 모자라겠지. 하지만,

 "고생한 부관을 위한 상이잖아?"

 세뇌하는 것처럼 파고드는 그녀의 말에 지휘관이 침을 꿀꺽 삼켰다.

 "고작 마사지인걸. 가볍게 어루만져주는 마사지."

 별 것 아닌 일처럼.

 스읍, 하. 지휘관이 깊게 심호흡했다. 정말로 홀릴 뻔 했다.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놀려먹기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이 뒤늦게 생각났다. 아마 그를 가지고 장난치기 좋은 소재가 생각났던 것이겠지. 이정도 사고 유도 능력이면 전술인형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해도 먹고 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휘관은 자리에서 축 늘어졌다. 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휘관을 보자, 한껏 유혹하는 미소를 짓고 있던 DSR-50이 표정을 풀었다.

 "어머, 아쉽네."

 그녀가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놀리고 있는게 분명했다. 상관을 가지고 노는게 그렇게 재밌을까. 당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괜시리 오기가 솟아올랐다. 가만두지 않겠다.

 ─이번엔 그의 차례였다.

 "좋아요, 뭐 까짓것."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약간의 찝찝함 쯤이야, 그녀를 되려 놀려먹을 수 있다면 참을 수 있었다. 하물며 세상 못만질 것도 아니잖는가. 고작 전술 인형의 발이다. 한껏 놀려주고 꼼꼼히 손을 씻으면 될 일이다!

 "고생하는 부관의 발 좀 주물러주도록 하죠."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며 이번엔 그녀가 당황했다. 항상 여유만만한 표정을 띄우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드는 모습은 꽤나 유쾌했다. 과연, 이래서 자꾸 장난을 치는건가.

 팔을 걷어부친 지휘관이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미끈한 자태를 자신만만하게 뽐내고 있던 그녀의 다리는 어느새 부끄러운 듯 꼭 오므려져 있었다. 손으로 발목을 가볍게 받치고 들어올렸다. 손 끝에 닿자마자 느껴지는 제법 높은 체온과 약간의 습기. 부끄러워졌지만 여기서 멈추기엔 그녀의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 너무 아쉬웠다.

 가볍게 발등을 문지르자 간지러운 듯 그녀가 움찔했다. 더듬더듬 살짝 힘을 주어가며 발등 전체를 마사지한다. 그녀가 자꾸 발을 빼내려하지만 발목을 잡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단단히 잡았다. 발목에서 발등으로, 손가락 끝에 신경을 집중해 꾹, 꾹. 힘을 줄때마다 부르르 떠는 그녀의 반응이 재밌어 무심코 더 집중하게 된다.

 "잠까안, 지휘관…….!"
 "좀 아플 수도 있어요."

 발바닥을 꾸욱.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은 스타킹의 감촉을 더듬으며 그녀의 발을 괴롭힌다. 서툰 아마추어의 손길, 들쭉날쭉한 힘조절에 그녀의 다리가 이리저리 비틀렸다. 지휘관은 아랑곳 않고 그녀의 발을 주물렀다. 발바닥을 꾹꾹 누르다가, 다시 발목을, 그리고 이번엔 위로 올라가 뭉친 종아리까지.

 지휘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녀는 입술을 짓이기며 흐릿하게 신음을 흘려온다. 항상 그를 골려먹는 그녀를 오히려 괴롭힌다는 묘한 쾌감.

 스타킹 위로 그의 손길이 지나치고 예기치 않게 꾹꾹 눌러온다. 배어나온 땀도 신경쓰지 않고. 항상 펜대를 잡고 있는 것과 달리 두텁고 조금은 거친 손이 그녀의 발과 다리께를 스칠 때마다 그녀의 몸이 자그맣게 튀었다. 생소한 감각이다. 항상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노는 줄 알았던 지휘관의 반격에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며 그저 움찔댈 뿐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 아마 오분여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 지나서야 그의 손길이 멈췄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도 지휘관의 이마엔 땀이 배어나와 있었고, DSR-50의 숨소리는 조금 거칠었다.

 의자에 축 늘어져 다리를 한껏 오므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눈이 갔다. 상기된 볼, 조금 가쁘게 내뱉는 숨, 빠르게 오르내리는 거대한 둔덕, 그리고 긴장한 하체. 하나하나가 색기를 품고 있었다. 지휘관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지나쳤나, 라고 뒤늦게 후회해보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하아, 그녀가 숨을 고르며 달큰한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지휘관과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지휘관의 시선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DSR-50의 시선. 숨을 삼켰다. 시선에는 열기가 담겨있었다. 그녀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다시 그녀의 차례였다.

 "다른 쪽도, 해줘야지?"

 허리를 숙여 스타킹을 벗어낸 그녀가 직접 반대편 다리를 들어올렸다. 아까 만졌던 촉촉한 스타킹의 감촉이 다시 떠올랐다. 매끈하고, 따스한. 어루만질때마다 그녀의 몸이 튀어올랐던. 그리고 그 안쪽에 있을, 발갛게 상기된 맨발. 집중할 때는 몰랐던 향수내와 섞인 땀냄새가 묘하게 다가왔다. 

 ─불쾌한 것은 아니었다.

 홀린 듯 그는 그녀의 발에 손을 가져다댔다. 섬유의 촉감과는 다른 습기찬 촉감. 그녀의 몸이 움찔했다. 이번엔 그 맨발의 촉감을 느끼듯이 지휘관의 손이 발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발등에서 발목으로, 발목에서 종아리로. 그 모양 좋은 종아리가 살짝 모양을 잃을 정도로 꾹, 꾹. 때로는 일부러 힘을 들여서 아프게, 때로는 일부러 힘을 빼서 부족하게. 그때마다 그녀의 자그만 신음이 그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아플 때는 조금 높은 목소리로, 간지러울 때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마사지라기보다는 점점 더 연인의 행위에 가까워지는 것은 필연일 것이다.

 바로 눈 앞, 모양 좋게 뻗은 발가락을 지휘관은 충동적으로 입에 물었다. 사람의 것과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그 오묘한 짠맛은 분명히 고생한 그녀의 발에 맺힌 땀일 것이다. 다시 한번 향수내와 섞인 시큰한 땀내가 풍겨왔다. 본래라면 눈살이 찌푸려져야 정상일 그것이 향기롭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갑작스레 한층 더 축축한 곳으로 삼켜진 발가락의 감촉에 그녀가 살짝 새된 신음을 흘렸다. 크고 단단하게 어루만지던 손가락이 아닌 타액에 젖은 말캉한 혀가 그녀의 발가락을 감쌌다. 형언할 수 없는 감각에 등골에 전류가 달리는 기분이었다. 발가락 사이를 혀가 건드릴 때마다 그녀가 색기 어린 한숨을 내뱉었다.

 발가락에서 멈추지 않았다. 발등을 타고 올라가는 혀의 감촉에 그녀가 히읏, 하고 답지 않은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발목까지 오는 짧은 스타킹 아래 배어나오고 있던 땀을 음미하듯 혀가 기어갔다. 적응될 듯 적응되지 않는 감각에 그녀가 팔걸이를 부여잡았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각은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며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발등에서 시작한 타액의 길은 어느새 정강이에 이어 무릎에 다달았다. 민감할 것도 없는 곳일터인데, 온 몸의 감각이 몇배로 확장된 것처럼 타액의 감촉이 여운을 남긴다. 천천히, 천천히. 애태우듯이 기어가는 지휘관의 혀에 그녀의 숨이 점점 더 거칠어져갔다. 의자를 부여잡은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허리가 절로 들썩였다.

 오므려져있던 다리는 힘이 풀려 살짝 벌어져있었다. 타액이 만든 길을 손이 따라오고 있었다. 다다른 끝에는. 지휘관은 반대쪽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혀로 허벅지 안쪽을 핥았다. 그녀의 허리가 크게 휘며 그의 머리를 다리로 끌어안았다. 다리 깊숙히, 순간 풍겨오는 여체의 향기. 땀내와는 다른 그 향기에 순간 잃어버릴 것 같은 한가닥 이성의 끈을 그는 간신히 부여잡았다.

 미미한 경련. 그를 꼭 죄던 다리가 힘없이 풀려 축 처졌다. 다리에 남은 번들번들한 길과 그녀의 속옷을 짙게 물들인 것은 땀은 아니리라.

 지휘관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DSR-50도 다르지 않았다. 가녀린 팔로 눈을 가리고 가쁘게 숨을 내쉬는 모습은 더없이 선정적이었다. 그 입술 끝에서 미처 삼키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타액 또한.

 더 이상의 말은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거칠게 그녀의 입술을 탐하려던 그의 입술을 그녀의 손이 막아섰다. 초점을 잃은 눈이 흐릿하게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울렸다.

 "지휘관 님? 점심식사 시간입니다만."

 시계는 어느새 12시를 훌쩍 넘어있었다. 열중한 나머지 시간이 지나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는 급히 숨을 고르고 밖에 서있을 M590에게 대답했다.

 "지금 나갈게요."

 시선을 돌려 DSR-50을 바라보자 방금까지 흐트러진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빚 하나, 라고 자그맣게 말하며 윙크하는 언제나의 그녀의 모습. 제 모습을 찾은 그녀가 그를 일으켜세웠다. 방금까지는 꿈이었다는 듯 바뀐 분위기. 살짝 상기된 그녀의 뺨만이 방금까지의 행위를 증명하고 있었다.

 멍청하게 서있는 지휘관은 그녀의 손에 이끌리듯 문을 나서고, 후텁지근한 공기를 마주치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흐트러진 모습에 방금까지 자고 있었다고 착각한듯, 조금 한심한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M590을 향해 그는 멋쩍게 웃어보였다. 실제로 꿈을 꾼 것 같았다. M590이 선두하듯 앞으로 나서자 DSR-50이 그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자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휘관이 더 원한다면 밤에, 내 방에 놀러 와. ……단, 혼자서."

 적어도, 꿈은 아닌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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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짤리려나

Lv3 Erke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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