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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죽은 나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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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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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5 00:35:56

죽은 나비 

1







“엘리사, 자고 있니?”


인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구실 벽 너머로 가벼운 진동이 일고 있었다. 인간의 비명소리와 인형의 고함 소리는 닮아서 구별되지 않았다. 군화를 신은 발소리와 탄창이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문 앞으로 한바탕 지나갔다. 연구실을 못 보고 지나친 모양이었다. 


멀거니 들리는 총성은 억세지 않고 얄팍했다. 실탄을 쏘는 게 아니라 공포탄을 쏘는 것 같았고, 그래서 벽 너머의 총성은 가짜인 양 느껴졌다. 뒤늦게 침입 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다급하고 무거운 소리였지만 가짜 총성과 함께 들리는 사이렌은 설득력이 없어서 누군가의 장난질같이 들렸다. 잠깐 울리던 사이렌은 경고방송도 미처 내보내지 못하고 끊겼다. 대신 지지직거리는 마이크 너머로 총성과 단말마,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들은 현실의 소리였고 사이렌보다 더 사이렌 같았다. 인형 곁에 앉아있던 리코리스가 다시 한 번 인형을 불렀다.


“엘리사. 자고 있니?”

“아니.”


인형은 느긋한 리코리스의 말에 대답하면서 그를 향해 돌아누웠다. 그녀 밑에 깔린 두꺼운 케이블들이 그녀의 몸에 눌려 덜컥거리는 소리를 냈다. 케이블에 눌려 있던 맨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인형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고 리코리스를 쳐다봤고 리코리스는 조용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에 드러난 감정의 기복이 얕았고 잔잔했다. 그래서 감정은 어느 한 쪽으로 튀지 않은 채, 그의 표정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치며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는 왜 대답하지 않았니?”

“나는 잠든 적이 없잖아. 바보 같은 질문이니까. 대답 안 했어.”

“그랬구나.”


리코리스가 한숨 섞인 대답을 마쳤을 때 문 너머로 뭉툭하고 깊은 진동이 들이닥쳤다. 군인들이 작전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수류탄과 유탄을 여기저기에 쏘아대고 있었다. 문틈으로 매연 냄새가 스며들었다. 리코리스가 코를 만지작거렸고 엘리사가 그의 동작을 따라했다. 


“내가 없으면 누가 엘리사랑 놀아주지?”

“안 없어져. 리코는.”

“그래?……저 사람들이 날 가만히 놔둘까?”

“가지 마. 오늘은 유전학을 알려준다고 했잖아.”

“으응. 그랬지.”

“거짓말쟁이.”


유탄의 폭발에 건물이 휘청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폭발에 맞춰 흔들리면서 대화했다. 대화는 흔들림 속에서 이어졌다. 방향이 맞지 않고 마구잡이로 튀는 대화였지만 어찌 됐든 앞으로 나아가는 대화였다. 폭발음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리코리스가 흔들림을 견디지 못하고 반 쯤 쓰러졌을 때 폭발음이 연구실 문을 직격했다. 두꺼운 문이 화염과 매연을 미처 받아내지 못하고 그것들을 연구실 안쪽으로 토해냈다. 리코리스가 폭발의 반대쪽으로 나가떨어졌고 인형은 몸을 반쯤 일으켜 찢어진 입구를 쳐다보았다. 리코리스가 매연 속에서 기침하며 웃었다. 


“네가 왔구나.”

“…….”


인형은 대답하지 않고 인형을 바라보았다. 두 인형은 어떤 의도도 담지 않은 채 서로를 쳐다보았고, 그 시선 사이에는 소리가 흐르지 않았다. 인형 뒤로 검은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이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인형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자신이 안전한 상황임을 알렸다. 


“날 죽일 거니?”

“……자료를 넘겨. 우리는 자료를 가지러 왔다.”

“미안. 그건 좀 힘들겠어.”

“자료는 어디에 있지?”

“페르시카는 잘 있고?”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마. 리코, 나는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싶다고.”

“참……저번에 몰래 훔쳐간 잭다니엘, 설마 다 마셨어?”

“대답해. 불응시 제압사격 후 이 연구실을 수색한다.”


리코리스가 한숨을 쉬면서 일어났다. 엘리사가 그를 따라 일어섰고, M16A1이 총구로 그들의 행동을 쫓았다. 그녀는 엄지를 내밀어 조정간을 단발로 맞췄다. 






지휘통제실은 차분하게 가라앉지 못하고 끊임없이 분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적 없이 제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고 있었다. 카터는 그런 지휘통제실의 소란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조용한 소란이었다. 집단은 항상 자신감이 없을 때 이런 소란을 피웠다. 한참 동안 턱을 쓰다듬으며 제 자리를 돌던 양복쟁이 하나가 그를 쳐다봤다. 카터는 시선을 피했지만 양복쟁이는 정처 없던 발걸음을 정리해 그에게 똑바로 다가갔다.


“그 첩보, 확실하다고 했지요?”

“예. 몇 번이나 말했지 않습니까.”

“불안해서 그럽니다. 자네를 못 믿는 것은 아니고……”


사내가 다시 턱을 쓰다듬었다. 손바닥이 짧은 턱수염에 쓸려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카터는 눈을 감고 코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사내의 중얼거림이 멀어지고 있었다. 여기서 눈을 떠도 이곳의 부산스러움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 얼마나 얼빠지고 한심한 수뇌부란 말인가. 작전이 시작된 지 2시간이 지났다. 초탄이 발사된 후 10여분 만에 철혈제조공단을 모두 점령했다던 작전팀은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쥐새끼 같은 그 남자가 어디로 숨었을까.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짜증이 치밀었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안전국 인형 하나가 놈을 찾았댑니다!”


메인 목소리가 소란 사이로 다급하게 파고들었다. 좁은 지휘실 안의 시선이 모두 그 목소리에 쏠렸고 카터는 슬그머니 눈을 떠 분위기를 살폈다. 스무 명 남짓한 고위 간부들이 일개 통신병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함을 지르듯이 쾌재를 불렀던 통신병은 그 시선들을 그러안으면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다만, 리코리스가 협조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사살해야 했다고……”

“자료는?”


카터를 다그쳤던 사내가 캐묻듯 물었다. 통신병이 송수긴기에 잠깐 귀를 갖다 대더니 금방 입을 열었다. 떨리던 목소리가 진정돼 한결 매끄러운 톤이었다. 


“확보했답니다.”

“확실히 복사한 게 맞나?”

“예. 두 번 확인했습니다.”


누구 하나 소리를 지르거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모두 힘을 풀고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누군가는 지친 듯 의자에 기대 앉았고, 누군가는 책상에 팔을 올린 채 엎드리듯 앉았다. 카터는 미동하지 않았다. 조용히 뜬 눈으로 풀어져 가는 지휘실의 공기를 읽었다. 사내 한 명이 엎드렸던 몸을 일으키면서 웅얼거리듯 외쳤다.


“모두 고생들 했습니다. 마무리 하시죠.”

“예, 고생했습니다.”

“복사한 자료는 내일 보는 걸로 하고.”

“좀 쉽시다. 며칠 동안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긴장이 풀린 양복쟁이들은 한숨 같은 말들을 쓰레기통에 던지듯 내뱉었다. 카터가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워 천천히 출입구 쪽으로 걸었다. 한참을 웅성이던 사내들은 카터가 나갈 때 쯤엔 대화를 매듭짓고 있었다.


“61호 발동 해야죠?”

“61호.”

“그렇죠. 해야죠.”

“담당자 누구였지?”

“준비는 다 돼 있을 겁니다.”


카터가 문을 닫았다. 난방이 닿지 않는 복도는 서늘했다. 어두운 하늘에서 싸래기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은 거센 북풍을 타고 수평으로 내달렸다. 구름 너머가 보이지 않았다. 카터는 그 차가운 하늘을 한참동안 노려보았다. 






인형들이 서버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을 때, UMP45는 그녀들의 눈동자를 보았다. 인형들은 날렵하게 주변을 살폈고 총구와 시선의 방향은 하나로 뭉쳐 뱀처럼 움직였다. UMP40이 UMP45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고 인형들을 보았다. 


인형 다섯 기가 차례대로 서버실로 들어섰다. UMP45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 했을 때 인형 세 기가 UMP45와 UMP40을 향해 총구를 들었다. 인형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UMP40이 UMP45의 머리채를 움켜쥐었고, UMP45의 비명과 소총의 격발음은 동시에 터져나와 허공 한가운데에서 부딪혔다. 두 인형이 숨어든 강철 책상 너머로 탄두가 쇠를 후벼 파는 소리가 났다. UMP45가 눈썹을 모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UMP40이 그런 UMP45의 얼굴을 감싸쥐고 소리질렀다. 탄두가 빗발치는 소리 안에서 UMP40의 음성은 뭉개졌다. 


“소총! 탄! 확인!”

“어, 어어……화, 확인!”

“탄창 제대로 5개 있어?”

“응……저 인형들은 왜…”

“순식간에 포위될 거야! 세 명이 지금 이 쪽을 향해 제압사격을 하고 있으니까, 두 명이 책상 양 쪽으로 날개를 펼치면서 오고 있겠지.”


UMP40이 막힘없이 말을 쏘아댔다. 말소리와 총성 너머로 발소리가 들렸다. UMP45의 시선이 고정되지 못하고 책상 안쪽을 휘저었다. 


“아니, 그치만……저 인형들은 아군이잖아!”

“그럴 생각할 겨를 없어, 45. 정신 바짝 차려! 이미 우리는 공격당하고 있어. 공격당하는 순간 적, 아군 구별은 의미 없는 거야. 자, 소총 들고!”


UMP40의 판단은 재빨랐고, 행동은 말보다 빨랐다. UMP45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따라갈 수 없었다. 엉겁결에 UMP45가 소총 손잡이를 움켜쥐자 UMP40이 지친 듯 웃어 보였다. 항상 짓던 미소 안쪽에 조바심이 묻어 있었다. UMP45는 그런 UMP40의 표정을 보면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책상 너머로 총을 갈기던 인형들이 탄창을 갈고 있었다. 연습했던 대로. UMP40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UMP40, 45가 한 번에 몸을 돌려 책상 밖을 향하자 책상을 감싸며 진입하던 인형 두 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UMP40이 들리는 총구를 따라 빠르게 총알을 박아 넣었다. 복부에 한 발, 목에 한 발, 총구를 턱에 갖다 댄 채 한 발을 쏘았다. 새까만 기름과 선혈을 뿜으며 뒤로 고꾸라진 인형은 정수리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채 죽었다. UMP45가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바로 앞의 인형에게 사격했다. 조정간을 연발에 놓은 채 인형의 배를 마구 쏘았다. 인형이 단말마를 지르면서 방아쇠를 당겼으나 탄두는 UMP45의 머리를 뚫지 못하고 왼쪽 눈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갔다. 시퍼런 기계 부품을 내보인 채 쓰러진 인형의 머리를 UMP45가 쏘았다. 그 사이 UMP40이 나머지 세 인형을 제압했다. 인형들은 각각 머리가 뚫린 채 죽었다. 


“이게 어떻게……아군이 우리를 공격했어.”


UMP40은 떨리는 UMP45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열린 서버실 문 너머로 끊임없이 총성이 울리고 있었다. 어느 인형의 찢어지는 단말마를 자르듯 UMP40이 문을 닫았다. UMP45가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얇은 두 다리를 떨면서 죽어가듯 말했다. 


“어째서…우리끼리 죽고 죽여야 해?”

“……왜냐면…”


UMP40이 발 밑에 쓰러져 있는 세 기의 인형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말은 땅바닥에 처박혔고 제대로 울려퍼지지 않았다. UMP45가 그녀를 쳐다봤고 UMP40은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왜냐면, 이게 계획이기 때문일 거야.”

“…….”

“애초에 이 임무에 투입된 인형은 돌아올 수 없었나봐. 느껴져. 마인드맵이 융해되려 하고 있어. 45는 아직 영향력 밖인 것 같아.”

“……그럼 우리도 이제 곧 서로 죽여야 하는 거야?”


문 너머의 단말마는 끊이지 않았다. 그만큼 더 많은 총성이 울렸고, 단말마는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UMP40이 자신의 소총을 멀리 내팽개쳤다. 소총은 바닥에 부딪히면서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UMP45가 굴러가는 소총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굴렸다. 


“아니. 죽는 건 나 하나야. 네가 날 죽이면, 너는 융해 프로그램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


UMP40이 웃으면서 UMP45에게 다가갔다. UMP45가 다시 시선을 돌려 UMP40을 쳐다보았다. UMP40이 느릿한 움직임으로 UMP45의 소총 총구를 집아 자신의 이마에 대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UMP45는 그 웃음 뒤의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같은 편을 죽이라고 시키는구나.”

“날 쏴.”

“싫어.”

“이건 시작일 뿐이야, 45.”


UMP45의 왼뺨을 타고 선혈이 흘렀다. 핏방울은 턱 끝에 매달려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녀는 소총을 쥔 오른손을 떨었고, UMP40은 소염기를 잡은 채 그 떨림을 견뎌냈다. 멀리서 들려오던 단말마가 잦아들고 있었다. 문 너머 벌어지고 있던 촌극이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UMP40은 고요 속에서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살아남으려면, 이런 ‘올바른 선택’을 해야해.”

“…….”

“우물쭈물하지 마! 넌 살아야 해. 우린 인형이지만…그래도 살아갈 이유는 있잖아. 그렇지, 45?”

“…….”


두 인형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UMP45가 눈물을 흘렸다. UMP40이 웃으며 UMP45를 달랬다. 미안해, 언니. 미안해. 총성이 울렸다. 이마에 마주대고 쏘아진 총알은 퍽 소리를 내며 머리를 관통했다. UMP40은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듯 쓰러졌다. 2061년 개시된 나비작전은 그 총성을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소녀전선>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Lv44 X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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