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논란중인 이야기
전체보기 

[역사] 소아씨는 누구인가

아이콘 닉놀테 | 조회: 650 | 추천: 1 |
소아씨 암살에 대한 사건은 역대 일본사에 있어 가장 큰 2가지 사건 중 하나로 볼 정도로 대단한 사건중 하나 입니다. 

하나는 메이지유신, 그리고 다른 하나가 645년 판개궁(소아씨가 살던 집, 궁으로 불림)에서 중대형(왕족, 후에 천지천왕이 됨)과 중신겸족이(후지와라씨, 후에 백제 백강구 전투에 파견 된 최고지휘관) 소아입록을 암살한 다이카개신 이죠. 이 두가지 사건이 일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 사건으로 여겨 집니다.

다이카 개신 : 가문 중심으로 하던 정치에서 법과 제도에 따른 천왕 중심의 중앙집권제로 가기 위한 정치개혁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9388&cid=40942&categoryId=39945


蘇我 (소아, 일본발음으로 소가)

옛 아스카 지역에 가면 蘇我 라는 지명이 많이 보입니다. 소아라는 지명은 오래된 지명이고 백제인들이 주로 이 지역에 와서 거주하기 시작한 지역으로 규슈 지역에 대략 400여개의 고분이 있는데, 그중 200 여개가 횡혈식석실분(부여계 무덤형식) 인것은 당연하게도 이 지역에 백제인들이 정착한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일본의 귀족들 성씨는 주로 자기들이 살던 지역명을 사용하는게 통상이고 결국 소아씨란, 소아 지역에 살던 지배자, 혹은 소아 지역의 귀족이라는 의미죠. 목협만치가 백제인들이 많이 살던 소아지역에 왔다면 그가 소아라는 성씨를 사용한건 자연스럽다는 거죠.



근데 소아씨가 백제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는 여러가지 근거가 있는데

1. 삼국사기에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백제가 위례성을 빼앗기고 개로왕이 전사하자 문주가 목협만치 와 조미걸취를 데리고 남쪽으로 갔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 위기에 빠진 백제를 도와 달라고 신라를 거쳐 왜까지 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사기에 이름이 거론된 건 목협만치가 백제의 상당한 중신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동시기 일본서기에 소아만지 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소아씨의 시조로 알려진 사람 입니다. 소아만지 와 목협만치를 엮는건 어거지 아니냐? 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앞서 말했듯 일본 귀족들 성씨는 자기가 정착한 지역명을 쓰게 됩니다 (소아씨는 소아지역에 살던 사람입니다) 백제에서 木씨를 쓰던 만치가 일본에 와서 소아(蘇我)씨를 쓰게 된 것은 일본의 관습을 (지역명을 그 지역 귀족들이 성씨로 하는 일본 관습) 보면 이해되고도 남습니다.

그리고 일본서기에는 임씨와 소아씨를 같은 성씨로 취급하고 있는데 신찬성씨록에(일본 성씨의 기원에 대해 설명한 책) 의하면 임과 목은 같은 성씨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즉 蘇我 = 林 = 木
 
2. 규슈에는 백제식 횡혈식 석실분이 많다고 말씀 드렸는데, 그중 가장 큰 무덤이 바로 소아씨 무덤 입니다. 거의 백제 왕릉급 무덤 크기의 횡혈식 석실분이 일본 규슈에 나온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도 않습니다. 왜냐면 워낙 많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들 무덤의 부장품으로 백제식 토기, 연화문 기와(백제식기와)등 백제계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무수한 유물이 나오기 때문이죠. 사실 횡혈식석실분 자체가 나 백제인이야 라고 말하는거나 다름없지만

3. 소아씨 족보를 보면 초기 이름이 한자, 고려 같은 도래인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이름이 등장한다는거죠. 특히 도래 초기, 아직 백제인의 정서가 많이 남아 있는 초창기 3대에 말이죠. 소아만지가 백제인이라면 그 아들이 韓자(한반도 남부는 삼 이라고 불립니다), 손자 이름을 고려(구리,구려는 부여계의 아이덴티티 같은거라 후에 왕건이 고려라는 이름을 재사용할 정도로) 라고 지었다는거죠. (백제인으로 살다 건너온 이민 1세대 소아만치가 죽은 이후엔 아무래도 다들 일본에서 태어나 살기 시작한 4세대 이후 이므로 일본풍 이름이 등장하는거고)



4. 소아씨가 아스카에 아스카사를 건축하기 시작하는데(아마 백제인들이 지금으로 치면 왜국에 자기들의 마을회관격인 절을 짓는다는건 감개무량 했을 겁니다), 아스카사 첫 기둥을 세우고 기념잔치를 하는데, 재밌는게 모두가 백제옷을 입고 백제 머리를 하고 축하를 했다는거죠. (여러가지 사정으로 왜에 와서 살고 있지만, 이런 기념할만한 날에는 백제인으로 백제옷을 입고 백제머리를 하고 기념하고 싶은 심정도 이해는 갑니다)

이 기록은 일본서기에 나오는데, 웃긴건 일본서기는 백제서기라고 불릴 정도로 백제관련 기록이 많기로 유명? 합니다. 사실 자기들하고 전쟁을 했다거나 하는게 아니라면 다른 나라 소소한 기록을 이처럼 다 기록하는 역사서는 별로 없는것도 사실




이런 여러가지 증거를 보면 아마도 소아만지 = 목협만치 라는거죠.

이 소아씨는 일본에 100여년간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이들은 주로 천왕가의 외척으로 거의 100년동안 천왕의 왕비를 배출하는 가문이 됩니다.(천왕 외척, 보통 무인시대등 강력한 가문은 왕비를 배출해서-외손자가 다음 왕- 권력을 확보 합니다.) 심지어는 한명의 천왕의 왕비 중 3명을 소아씨 여자가 차지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다음 천왕이 됩니다.



아마도 천왕이 백제인이다? 라는 얘기는 여기에서 나온거라고 생각 합니다. 사실은 천왕의 외척은 백제인이고 몇대에 걸쳐 계속 백제인인 소아씨 여자와의 사이에서 천왕이 태어나므로 절반은 백제인인게 맞긴 하겠죠. (이부분은 논란이 없는게 지난번 일본 천왕이 직접 무령왕 여동생이 천왕의 왕비였으므로 백제와 혈연관계를 인정하기도 했지만 소아씨까지 백제계로 확정한다면 천왕가에 백제계 피는 엄청 많은거겠죠)

100여년간 천왕가 외척으로 소아씨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소아씨가 천왕을 죽이고 자기들이 원하는 다른 천왕을 세우는것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심지어는 몇몇 천왕은 소아씨 개인주택인 판개궁에서 태어나 거기서 자라기도 합니다. 물론 당연히 천왕의 왕비가 소아씨 이므로 친정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어느정도 키우고 하는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함)


 

Lv87 닉놀테

메뉴 인장보기 EXP 9%

코멘트

새로고침
새로고침
최근 논란중인 이야기
전체보기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