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추천/소감

10추글

모바일 상단 메뉴

본문 페이지

[E&H의 대탈출] 나락에 처박힌 미치광이의 대탈출

콤네노스
댓글: 6 개
조회: 10393
추천: 7
2013-10-29 01:35:46

(E&H Soundtrack - Kindheit
재생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두려운 일입니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저 사람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이 세가지의 의문은 언제나 저희를 지독하게 따라다니며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헝클어놓습니다. 그렇게 머리가 복잡해지면 간단한 일도 참 복잡하게 꼬이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저희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냅니다. 그 기준은 어떤 행동이 좋고 어떤 행동이 나쁜지를 정의하며 납득 가능한 행동과 납득 가능하지 않은 행동을 규정합니다. 그럼 저희는 그 기준에 맞춰서 한 사람의 인격을 냉혹하게 '채점'하고 점수를 매겨서 도장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 도장이 정확함을 의심치 않으며 그 도장에 맞춰서 반응을 합니다. 도장이 안 좋게 찍혔으면 그 사람은 안 좋습니다. 좋게 찍혔으면 그 사람은 좋습니다. 도장에 찍힌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는 조금도 생각 하지 않으며, 그저 저희의 알량한 주관적 경험만으로 한 사람의 인격 수준을 규정하는 참으로 가학적인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 도장찍기에 의존한다면 사람과의 소통이 참으로 편해집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저 사람이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둘다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아주 명확하게 기준이 생기고 그 기준은 의사소통이라는 두려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해줍니다. 그러다보면 시간이 흐르며 찍어놓은 도장의 숫자가 하나 둘씩 쌓입니다. 그 도장의 숫자는 무게로 변해 저희를 끊임없이 짓누릅니다. 그 무게는 저희가 새로운 도장을 더 무겁게 찍도록 강요합니다. 저희는 도장을 절대자처럼 신봉하며 절벽 끝에 몰린 사람을 주저없이 밀어버렸고, 바닥에 처박혀 울부짖지도 못하는 사람을 '저 사람은 원래 그래' 라며 당연하다는듯 받아들였습니다. 만약 도장이 틀렸다면, 저희가 지금까지 찍어왔던 도장이 틀렸다면, 그 도장에 의존해 타인에게 가해왔던 그 지독한 고통, 절망과 무이해는 모두 저희의 책임이 됩니다. 저희가 그 누구보다 사악하고 추악하며 뒤틀린 인간이 됩니다. 저희의 연약한 정신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두려운 진실이지요. 그래서 저희는 계속 도장을 '찍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저희의 인간관계와 사회구조는 도장 찍어 희생시키고 나락에 처박아야할 나약한 희생양을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누군가가 약점을 잠시라도 드러낸다면 저희는 몰이해와 무관심으로 무장한 후 약점을 처참하게 후벼파고 뒤집어놓아 가장 깊숙한 나락에 처박습니다. 저희 모두가 이기적으로 내뱉은 증오, 분노, 공포, 좌절, 그 모든 인간 정신의 지독한 쓰레기는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희생양에게 버려져 희생양 위에 겹겹히 쌓입니다. 결국 희생양은 남들이 버린 쓰레기에 뒤덮혀 다시 일어날 힘도 되찾지 못한채 자신의 것도 아닌 추악한 감정에 사로잡혀 끔찍한 삶을 살게 됩니다. 저희는 그런 사람들을 범죄자, 인간쓰레기, 정신병자, 폐인이라 부릅니다. 당연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끔찍히 낮은 점수의 도장을 찍습니다.

E&H, 에드나 & 하비의 대탈출(Edna & Harvey The Breakout)은 그런 정신병자들을 다룬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잠시 약점을 드러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락에 처박혀 이리저리 떠돌다 정신병동에 모이게 됬습니다. 그들은 정신병동에서 그들만의 방법으로 세상에게 울부짖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현대사회의 그림자에 가려진 추악한 쓰레기장을 유쾌하고 씁쓸하게 다룬 어드벤쳐 게임, 에드나 & 하비의 대탈출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작사 : 다이달리크 엔터테인먼트(Daedalic Entertainment)
제작년도 : 2008
메타크리틱 점수 : 56(독어 버젼은 80~90)
장르 :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Point and Click Adventure)


에드나 & 하비의 대탈출은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다이달리크 엔터테인먼트가 2008년도에 발표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입니다. 어드벤쳐 시장의 본좌들중 하나인 다이달리크 엔터테인먼트를 현재의 위치로 올려놓아준 처녀작이지요. 2007년도에 함부르크에서 창립 된 다이달리크 엔터테인먼트는 최초로 발표한 이 게임이 대성공을 거둔 덕분에 수많은 인디 게임회사들을 멸망시켜온 대중의 무관심과 제작비 부족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E&H는 에드나(Edna)라는 여자가 하비(Harvey)라는 상상 속 친구와 함께 정신병동을 탈출하는 내용의 게임입니다. 에드나는 어째서인지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채 이리저리 떠돌지만 하비와 함께 무의식 속에 숨겨진 기억들을 발굴해내며 서서히 길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에드나는 다양한 이유와 증상을 보이는 미치광이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이용해가며 정신병동으로부터 탈출하려합니다.

게임은 나름 독특한 주제를 무리없이 소화해냈습니다. 게임은 특유의 독특한 아트워크와 유쾌씁쓸한 스토리를 통해 에드나와 하비가 정신병동에서 어떻게 탈출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플레이어는 우스꽝스러운 대사에 실실 웃기도 하고, 유쾌하지만 어째 가슴 속 한 구석은 씁쓸하기만한 모습을 보며 혼란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 때 잘나가던 금융업자인 브루스는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정말 단 한 순간, 단 한 순간 아주 사소한 실수를 하나 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요. 잘 나가던 브루스의 인생이 순간 휘청인 것입니다. 브루스는 좌절에 빠졌고 고통과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브루커는 정신병동에 갇혀 단 한 순간도 전화기를 손에서 때어놓지 않게 됬습니다.

브루스는 태어나면서 그냥 미치광이로 태어났을까요? 브루스는 그냥 원래 그런 놈이라 정신병동에 갇히게 됬나요? 아니요, 브루스는 정상적인 가장으로서 정상적인 가정을 가지고 있었고 잘 나가는 삶을 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순간의 실수로 무너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은 그로부터 등을 돌렸고, 그 어느 때보다도 타인의 도움을 간절하게 갈망하는 브루스의 손길은 매몰차게 거절당했습니다. 왜냐면 브루스가 실패한 바로 그 순간, 브루스는 완전히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였고 굳이 브루스를 도와줄 필요가 조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몰락은 브루스가 견디기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브루스는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케이블 끊어진 전화기 너머의 상상 속 동업자와 함께 위대한 투자를 얘기합니다.

그런 브루스에게 에드나는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한마디를 할 수 있습니다. 그 한마디는 순식간에 브루스의 환상을 뒤틀어놓으며 행복한 번영의 환상을 끔찍한 몰락의 환상으로 뒤바꿔놓습니다. 그렇게 브루스는 이미 한참 전 일인 처절한 몰락을 다시 한번 생생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브루스의 무의식 가장 깊숙한 곳에 그 끔찍한 고통이 흉측한 흉터를 남겼다는 증거입니다. 단지 아무도 브루스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누구못지않게 행복한 삶을 살 자격이 있는 브루스라는 인간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하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평생동안 간직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브루스라는 인간이 나락에 처박히도록 방관한 자들은, 브루스가 나락에 처박혀 그 나락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비정상적인 발버둥을 치게된다면 '아 저놈은 원래 저런 놈이였구나' 라며 냉혹하게 도장을 찍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E&H 같은 명작 또한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E&H는 어드벤쳐 게임 특유의 그 괴이한 해결방법을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 휴식실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방법이 너무 괴이하고 상호작용해야하는 물건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괜히 공략 링크를 걸어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아트워크는 독특하지만 조잡합니다. 딱 봐도 처녀작이란 것이 보이는 아트워크는 독특한 풍미를 가지고 있지만 더 훌륭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2011년도에 만든 후속작인 하비의 새로운 눈(Harvey's New Eyes)는 E&H의 독특한 아트워크를 섬세하게 다듬어 풍미를 살리며 어색함을 없앴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E&H는 게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중 하나인 캐릭터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관심을 기울여주지 못했습니다. 플레이어는 원하는 만큼 그들에 대해서 알 수 없으며, 캐릭터는 그저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 이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 캐릭터들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어쩌다 그렇게 됬는지를 더 섬세하게 다루었다면 제 생각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뛰어난 명작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라운지의 제왕 아드리안은 참 흥미로운 캐릭터이지만, 전 이 캐릭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E&H의 다양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라는 고전 장르를 현대에 걸맞게 재해석해냈다는 업적만으로도 기립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과거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장르는 게임시장을 거의 독주에 가까운 패기로 점거한 적 있었지만, 그 장르가 내재하고 있는 고질적인 단점들에 패배해 게임시장의 30년 역사 속에 모습을 감췄습니다. 한 때 시장을 지배했던 제왕의 초라한 퇴장인 셈입니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는 아저씨들의 추억놀음에나 가끔 튀어나오는 이름이 됬었습니다.

그러던 2008년, E&H가 나왔습니다. E&H는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라는 고전이 내재한 수많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미를 간직하고 있음을 혁신적인 시스템과 함께 증명해냈습니다. E&H는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장르가 가지는 온갖 괴상한 진행방식들을 버렸고 불편한 것을 자랑거리로 삼던 고전 게임들과는 달리 플레이어의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나타난다, 이것은 정말 혁명적이였지요. 다이달리크 엔터테인먼트가 혁명적인 개혁을 통해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의 고름을 짜내고 그 풍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내 E&H란 이름으로 멋들어지게 한접시 내놓은 것입니다. 시장은 재해석 된 고전 장르에 열광했습니다.

전 다이달리크 엔터테인먼트가 해낸 이 고전의 재해석이 현대창작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들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문명의 역사 어느덧 일만년, 그동안 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이 살았고 수많은 걸작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그중 대다수는 단순히 '고전'이라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었고, 그 뛰어난 풍미는 역사속에 사라졌습니다. 먼지더미 속으로 다이빙 한번 해 잊혀진 명작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 후 현대에 걸맞게 적당히 가공하는 작업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우며 수많은 자극에 길들여져 권태로움에 빠진 시장에게 색다른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본디 창작이라는 것은 무작정 공터에 벽돌을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며 이미 잘 짜여진 기반 위에 단단히 서야 대중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걸작이 나올 수 있는 법입니다. 과거의 잊혀진 걸작들은 그런 '잘 짜여진 기반'이 되어 다양한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줄 수 있습니다.






E&H 대탈출은 오래전에 죽어버린 장르를 포기하는 대신 분석하고 이해해내 결국 되살려낸 다이달리크 엔터테인먼트의 처녀작이자 불후의 역작입니다. 사회에서 소외받은 자들의 우스꽝스럽지만 씁쓸한 이야기는 저희의 하루하루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과연 나도 삶을 살며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나락에 밀어넣지 않았을까?'

안타깝지만, 당당하게 '난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과연 있긴 있을지 의문이네요.

하지만 에드나는 결국 세상이 그녀에게 토해내는 증오를 이겨냅니다. 그 고통을 피해 도망치기도 하고 무찌르기도 하며 에드나는 꿋꿋이 그녀의 길을 걸어갑니다. 과연 그녀는 인간으로서 그녀가 응당 누려야할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과연 저 미치광이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인 것 같습니다. 

'과연 저희가 알게 모르게 나락에 밀어넣은 사람들은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을까요?'

하지만 너무 스스로를 탓하지는 마세요. 여러분은 그저 세상이 여러분께 가르친대로 자연스레 행동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알게 모르게 저지른 추악한 행위는, 여러분이 추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 추악함을 어찌 다뤄야할지 몰라서 그랬던 것일 뿐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추악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추악함을 건강하게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그 후에 여유가 좀 남으시면, 벼랑 끝에 몰린 사람도 좀 도와주세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였느냐가 아니라 지금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스스로를 추악하다 여긴다해도, 여러분 또한 사람다운 행복을 누리며 사람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는 한명의 당당한 사람입니다.

퀸의 명곡 'Under Pressure'의 가사를 읊으며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Why can't we give love

'Cause love's such an old fashioned word

and love dares you to care for the people on the edge of the night

and love dares you to change our way of caring about ourselves

왜 저희는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건 사랑이 참 낡아빠진 구닥다리 단어이기 때문이고

사랑은 저희로서 어두컴컴한 절망의 끄트머리에 몰려버린 자들을 돌보도록 하기 때문이고

사랑은 저희 스스로를 사랑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Lv4 콤네노스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지금 뜨는 인벤

더보기+
  • 검색된 게시글이 없습니다.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글쓰기

모바일 게시판 페이징

최근 HOT한 콘텐츠

  • 견적
  • 게임
  • IT
  • 유머
  •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