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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와키자카 따위 듣보잡을 어디 이순신 장군에 비빕니까

아이콘 럼자기
댓글: 14 개
조회: 6761
추천: 3
2020-05-30 08:15:03

와키자카 야스하루.

드라마로 역사를 배우면 곤란하다는 걸 이 인물 만큼 확실하게 증명하는 예도 드물죠.



바로 이 드라마 때문인데요.
사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그리 대단한 인물이 아닙니다.

시즈카타케 칠본창의 으뜸이라느니
일본 최고의 수군 무장이라는 소리가 있습니다만,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먼저 시즈카타케 칠본창.
얘들이 엄청 대단한 인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만,
실질적으로 얘들은 기본적으로 히데요시가 자기 휘하에서 좀 빠릿한 애들을 데려다
낙하산으로 꽂아넣기 위해 일부러 전공을 과장한 면이 있습니다.

히데요시는 출신이 미천해서
다른 쟁쟁한 영주 가문들과는 달리 휘하에 친위 세력이라고 할 만한 애들이 없었습니다.
이건 히데요시 정권 내내 약점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문제였고,
그래서 자기 친척 애들 중에서 그나마 좀 나은 애들을 끌어다가
낙하산으로 꽂아넣기 위해 만든 것이 이른바 시즈카타케 칠본창입니다.

이러한 칠본창 중에서도 와키자카는 듣보잡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가토나 이런 애들은 그나마 히데요시랑 사돈의 팔촌 식으로 어떻게든 혈연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와키자카는 어쩌다 보니 히데요시 밑으로 흘러들어가게 된 경우였거든요.
낙하산에도 등급이 있게 마련인데, 와키자카는 그 중에서도 숫자를 채워넣기 위한 인물이었던 셈이죠.
괜히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와키자카도 칠본창 됐다니까
내가 저런 놈이랑 동급이냐면서 화를 낸게 아닙니다.



자, 그런데 이런 듣보잡이 어쩌다가 한산도 대첩 당시 일본의 수군을 이끌게 된 걸까요.

듣보잡이라도 일단은 낙하산이고, 히데요시의 친위 세력으로 키운 애라서
와키자카 역시 히데요시의 근거지인 오사카 근처에 영지를 받게 됩니다.


그 영지가 바로 아와지시마입니다.

이전까지 와키자카는 수군을 운용해 본 적이 없었지만,
새로 받은 영지가 세토 내해에서도 오사카 코앞에 위치한 섬이었던 관계로
인근의 해적들을 통솔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 것이죠.

당시 왜는 기본적으로 중앙 집권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상태였고
당연히 조선처럼 상비군 형태의 수군 또한 없었습니다.

그럼 왜의 수군은 무엇이냐.
바로 저런 식으로 해적과 관련된 영주들을 모아서 배 태워 내보내면 그게 수군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비슷하게 수군을 통솔하게 된 경우가 바로 토도 다카토라인데요.
역시나 세토 내해의 영주가 된 토도 다카토라,
여기에 원래 오다 노부나가 시절부터 섬겼던 해적 영주인 구키 등과 함께
오다와라 성 공략 때부터 수군을 통솔하기 시작합니다.

그래봐야 제대로 된 해전을 치른 건 아니고 그저 해상 봉쇄 정도의 임무만을 맡았을 뿐이지만요.



그런데 이런 듣보잡이 왜 이순신 장군의 라이벌로 드라마에서 크게 부각된 걸까요.

이순신 장군은 존재 자체가 치트입니다.
같은 수군 가지고도 하지메 사토루(원균) 같은 놈은 참패를 면치 못했던 걸 생각하면
단순히 조선 수군의 장비나 전력이 강해서 해전에 이겼던 게 아니죠.

먼치킨이란 게, 통쾌하긴 합니다만 극적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있는 대로 표현하자니, 아무리 역사라도 이건 좀 너무한 거죠.

그래서 라이벌 구도를 만든답시고 부각시킨게 바로 와키자카입니다.
대충 한산도대첩때 상대 장수이기도 했고,
용인 전투에서 삼도 근왕군을 흩어놓은 일도 있고 하니까요.
뭐 용인 전투 때도 본래 왜군 장수들은 포위 섬멸을 생각했는데
와키자카가 뭣도 모르고 뛰쳐 나가서 흩어 놓은 바람에 이겨 놓고도 욕을 바가지로 처먹습니다만.




다시는 와키자카 따위 듣보잡을 이순신 장군님의 라이벌로 칭하는 경우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벤러

Lv67 럼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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