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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7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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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히나 이야기 +3

아이콘 구미
댓글: 3 개
조회: 2053
2016-09-21 21: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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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방프로젝트의 설정, 배경, 인물을 가져온 2차 창작입니다.

*매일 10시 경 업로드 예정입니다.


 

  “... 그렇게 환상향은 바깥 세계와의 큰 결계를 통해 환상들, 요괴들을 지키기 위한 공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어루만지듯 손으로 역사서의 글자를 쓸어 담아 읽어주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지친 얼굴들이었다. 코마치의 말이 다시 떠오른 그녀는 책을 덮고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머리나 손목에는 오늘 만든 리본이나 매듭이 아기자기하게 묶여있었다.

 

  “음, 고생 많으셨어요. 이번 주말 소풍 꼭 부모님에게 말씀드리고, 요괴 어른들을 만났을때는 꼭 인사를 하세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요.”

 

  “네에!!”


 

 안 그랬다는 듯 수업 마무리부터 표정이 급속도로 풀리더니 다시 원래의 기운을 찾은 아이들이었다. 남자아이도 여자아이도 자기나 친구가 만든 리본을 이야기하며 교실을 나가고 가정방문이 있는 히나는 천천히 가방을 싸며 선생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케이네는 아쉬운 듯 역사서를 다시 펼쳐서 글자를 쓸어내리다가 덮은 후 말했다.


  “지금 바로 집으로 갈까?”

 

  “아, 네.”

 

 

 

 하교 길은 아침에도 그렇고 비가 오려는지 구름이 끼고 있었다. 여흥을 즐기기 위해 나온 요괴들이 옷을 가다듬고 학생들은 요리조리 어른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서로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케이네는 인파 속에서 히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혹시나 이 연약한 몸이 휘말리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것 같아서였다. 다시 보이지 않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 히나는 한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어림도 없이 많은 소리들이 반대쪽으로 들렸다. 케이네 선생님을 믿고 눈을 꼭 감은 채 걸었다.

 


 서로가 서로의 물건을 팔고 사는 인간마을의 중심지를 지나자 소리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히나의 질끈 감은 눈과 꼭 쥐고 있던 한 손도 풀리기 시작했다. 케이네가 쥐던 손의 힘도 풀렸다. 푸르고 빳빳한 벼가 자라는 논과 햇빛을 받아 연신 반짝거리는 강둑이 보였다. 그녀는 긴장했던 마음이 풀렸고 ‘이 복잡한 거리에서 빨리 나가자’는 생각이 빠지자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케이네는 긴장을 풀기 위해 말을 걸었다. 소재는 히나의 리본이었다. 긴 뒷머리를 양갈래로 모아 앞에서 리본으로 끝을 묶은 독특한 모양이었다.

 

  “어머, 리본 귀엽네요. 오늘 히나가 직접 만든 건가요?”

 

  “아, 아니요. 다찌가 쉬는 시간에 만들어줬어요.”


 

 리본이 혹시나 풀릴까 겉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히나였다. 케이네는 아직 집까지 남은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질문을 더 했다. 오늘 일도 그렇고 신비스런 히나에 대해 직접 물어서 알고 싶었다.

 

  “그렇구나. 매일 같이 다니는 도깨비 같은 아이가 다찌 맞죠?”

 


 도깨비란 단어를 듣자 그녀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생각해보니 뛰어다니고 방방 뛰고 크게 웃는 게 이야기 속 도깨비와 닮아서였다.

 

  “푸흡, 네. 맞아요. 유우다치에서 다찌. 친하니까 그렇게 불러달랬어요. 저는 히나나.”


  “봄에 자기소개를 했을 때부터 친해졌나요?”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그때를 떠올렸다. 대뜸 가지조림을 좋아한다고 소리쳐서 웃음바다를 만든 유우다치, 나이도 확 자라는 나이라 그런지 여자친구를 사귀어보고 싶다던 다나카, 모두가 귀엽고 서툰 자기소개였다. 히나가 그때 어떤 걸 했는지 떠올려보았다. 워낙 행동이 작은 아이라 기억이 잘 안 났기 때문이다.

 

  “음, 그때 히나가 어떻게 소개를 했었더라...”

 

  “...선생님.”


 

 그녀의 파란 치맛자락을 잡고 있는 히나를 보았다. 표정은 평소 표정 그대로였지만 시선이 달랐다. 가만히 히나를 바라보았다. 걱정들이 눈앞을 막아서 시선이 어두웠다. 고민거리가 있지만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아마 이건 반쪽 요괴의 감보다는 어른의 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히나 앞에 앉아서 눈높이를 맞춘 후 말했다.

 

  “어떤 고민을 그렇게 하고 있나요?”

 

  “아...”

 

  “선생님에게 말 할 수 있으면, 저만 듣게 귓속말로 이야기해주세요. 네?”


 

 그리고 다음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돌려 그녀는 하늘빛 머리카락 사이에 가려져있던 동글동글한 귀를 히나한테 보여주었다. 히나는 무서웠다. 혼자 숨겨왔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피해왔지만 점점 감추기도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선생님에게 알려준다면 그것이 해결책이 될지 알 수가 없어서 섣불리 입이 안 열렸다.

 

 대신 히나는 두 귀를 막았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도 귓속말을 하지 않아 히나를 바라 본 그녀는 그 행동을 보고 아쉬운 듯 웃었다. 보통 아이였으면 입을 두 손으로 막았을 건데, 여러모로 신기한 아이라서 지금 가는 가정방문은 꽤 기대가 컸다. 일어서서 그녀는 히나의 까만 머리를 쓰다듬은 후 팔 한 쪽을 잡고 지는 햇빛에 별처럼 반짝이는 강둑을 천천히 걸어갔다. 리본과 매듭 머리띠를 한 곳에 둔 채 아이들이 강가에서 물을 튀기며 놀고 있었다.

 

  “어어? 돌머리 선생님이다!”

 


 흙에서 방금 꺼낸 양파처럼 더벅머리를 위로 묶고 물살을 가장 크게 일으키던 유우다치가 둘을 바라보고 말했다. 어찌 목소리가 그리 크던지 자연스럽게 옆에서 물장구를 튀기며 놀던 물풀의 요정이 놀라서 물 아래로 숨어버리고, 아이들은 물장구를 멈추고 유우다치를 바라본 후 그녀가 말을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네는 부끄러워서 말했다.

 

  “아니에요!”

 

  “돌머리 선생님~~돌머리 선생니임~~”

 


 약이 오른 그녀의 모습에 재미가 들렸는지 거기서 놀던 아이들이 모두 함께 케이네의 별명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왼쪽 이마가 다시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앓는 소리만 내자 아이들은 꺄르르 웃으면서 옆 친구에게 물장구를 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물풀의 요정이 다시 그들과 노는 동안 유우다치는 어느덧 히나의 옆까지 달려와 있었다.

 


 두 손으로 귀를 꼭 막고 있는 히나였다. 그리고 유우다치는 히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속삭였다. 아까와는 달리 그녀만을 위한 굉장히 작은 소리였다.

 

  “히나나~.”

 


 여전히 그녀는 귀를 막고 있었다. 다시 같은 방법으로 그녀의 별명을 속삭였다.

 

  “히나나~.”

 


 자물쇠를 여는 것 같았다. 서서히 손이 풀리기 시작했고 표정도 같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유우다치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잇몸이 다 보이도록 크게 웃는 다찌였다.

 

  “히나나,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응.”

 

  “아쉽네.. 오늘은 물풀의 요정도 놀고 있어서 진짜 재미있는데. 내일 같이 놀자.”

 

  “그래.. 고마워.”

 


 살짝이나마 그녀는 유우다치가 웃으면 같이 웃고 있었다. 짧은 대화를 마친 후 유우다치는 그녀를 껴안으려고 했지만 민물 비린내가 자기한테도 날 정도로 흠뻑 젖어서 대신에 짧게 손만 흔들고 다시 물에 빠져들었다. 케이네는 줄곧 그 쪽만 바라보는 히나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린 후 다시 집으로 길을 향했다.


 

 술도가 겸 주점을 하고 있는 카기야마 술도가가 조용한 것도 인간 마을에선 의외의 일 중 하나였다. 늘 시끌벅적하고 술과 안주가 섞인 독특한 냄새와 누룩이 조용히 익어가는 냄새가 멀리서도 술꾼들의 코를 건드리는 곳이었는데, 오늘은 누룩 냄새만 은은히 나고 있었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팔짱을 끼고 있는 히나의 아빠와 일어서서 케이네와 히나를 맞이하는 엄마가 있었다. 케이네는 히나에게 말했다.

 

  “히나는 여기서 같이 이야기를 할까요? 아니면 방에 가서 있을까요?”

 

  “히나는 올라가.”

 

 아빠가 짧게 말했다. 보통이면 엄마가 ‘저 고집하고는. 애한테 말 좀 부드럽게 해주지.’라고 말하겠으나 가족 외에 선생님도 있어서 가볍게 웃고 히나의 등을 부드럽게 밀면서 위로 보냈다. 히나는 같이 있던 혼자 있던 들리는 건 똑같겠지만 일단은 아빠가 눈으로 번개를 쏘아대고 있어서 계단을 올라 자기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어디에 있던 오늘은 안 보이는 소리들이 아침보다 더 잘 들렸지만 침대가 가장 편한 자리였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히나 자체가 작은 소리통이 된 것 마냥 ‘미안해’같이 보이지 않는 소리들 사이에 얇은 벽 너머 세 사람의 보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갔지?”

 


 여전히 팔짱을 풀지 않은 아빠가 말했다. 그런 아빠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엄마는 아무 이유없이 케이네를 보고 웃고 잛게 고개를 숙인 후 말했다.

 

  “히나는 학교에서 어떤가요?”

 

  “점잖고, 성실한 아이에요. 다른 아이에게도 모범으로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요.”

 

 

 혹시나 하는 걱정이 그녀의 말에 사르르 녹은 엄마는 그제야 진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칭찬은 별 탈 없이 모범적인 것이니까. 자연스럽게 차를 건네는 잔을 받아들이고 그녀는 일찍 학교를 나오던 이야기나, 열심히 역사 공부를 하는 모습 등 학교에서 히나가 잘 했던 일들을 풀어주었다.

 


 엄마는 곧장이라도 히나에게 달려가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표정으로 만족에 가득 차 있었고 아빠는 아직까지 팔짱을 낀 채 콧방귀를 픽 뀌었다. 부리부리한 시선은 지나가는 벌레를 태울 정도로 강해서 그녀는 그 사람과 눈이 안 마주치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딸, 참 착하게 자라줬군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집이 술집이라서 혹시나 히나가 나쁜 걸 보고 배우고 자라서 나쁜 아이가 됐진 않았을까 걱정했고.. 늘 사는 곳이 좋지 않은 게 미안했거든요.”

 

  “이 마누라가 걱정은...”

 

  “아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안 그래도 히나 귀 밝은 걸 알면서. 술 마시고 욕하고, 토하고, 더러운 농담하고.. 때때로는 히나가 귀엽다고 술 멕이려는 놈들도 있었는데 걱정이 안 되고 미안하지도 않아요?”


 

 안광을 내뿜을듯한 시선이 아내를 향해 갔다. 그녀만 아니었으면 언성이 높아지고 과거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부부싸움을 했을 법한 분위기라 그녀는 계면쩍게 웃으면서 둘의 거리를 억지로 벌렸다.

 

  “아하하.. 저기 싸우진 마시구요. 그런데 히나가 귀가 밝은 편인가요?”

 


 답답했는지 냉수를 벌컥거리며 마시고 입을 닦은 후 아빠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에잉, 내가 하도 울고불고해서 용한 퇴마사한테 소리를 덜 듣게 하는 부적도 사서 붙였더만... 그 말이 사실이요. 히나는 엄~청 잘 듣지.”

 

  “너무 듣는 게 많아서 도리어 주변의 소리를 잘 못 듣기도 했어요. 지금도 그런가요?”

 


 케이네는 아침의 일을 떠올렸다. 그 의미가 그 의미였다는 걸 직접적으로 깨달았다.

 

  “아아. 네, 그렇더군요. 그래도 좋은 친구도 있고, 원만한 생활과 면학에 힘쓰고 있어요.”

 


 친구라는 단어에 귀가 솔깃해진 부모였다. 줄곧 아내에게 등을 보이며 자신의 심기를 드러내던 아빠도, 히나의 학교생활 이야기를 듣는 것에 푹 빠진 엄마도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떤 친구인가, 나쁜 친구는 아닐까, 좋은 친구 면은 어디에 사는 누구일까 궁금함이 가득한 네 개의 눈동자였다. 잠깐 그 시선에 부담을 느끼던 케이네는 뜸을 들이고 이야기했다.

 

  “히나가 끌려 다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늘 같이 다니고 재미있어하는 아이가 있어요. 사토 유우다치라고..”

 

  “아, 우리 집의 가지조림을 떨어질 때 마다 가져가는 아이였군요.”

 

  “아하하... 아?”

 


 생각보다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시선이 돌아가고 자세가 풀린 부모였다. 그만큼 익숙하고 친해질 가능성이 높았고, 이 좁은 인간 마을에서 도깨비마냥 날뛰는 유우다치를 모르면 환상들이 한 외부인이었으니까. 머리를 긁은 후 엄마가 말했다.

 

  “그 아이. 술안주인데 가지 조림을 엄청 좋아하더군요. 언제 사토 씨랑 같이 와서 밥을 먹은 후에는 바구니를 받는 대신 주고 있어요. 히나도 고기만 먹지 말고 그것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네? 히나는 자기소개 때 가지조림을 가장 좋아한다고...”

 

  “예?”

 


 두 사람의 대화의 방향이 어긋나자 서로 상대방의 말을 다시 훑어보며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찾느라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짧지만 긴 고요함이었다. 말을 아끼던 아빠는 일어서서 자리를 뜨며 말했다.

 

  “그 아이, 거짓말을 한 거요.”


 

 그리고 문이 닫혔다.


 

 엄마는 그녀에게 아빠의 무례한 태도에 대한 사과를 했다. 평생 술만 담고 살아와서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른다는 말을 혹시나 듣지 않게 살살 말하면서 히나에 대한 이야기를 더하기 시작했다.

 

  “매일 이런 집 위에서 키우는 것도 미안하지만, 어릴 적에 잘못 가르친 게 하나 있어요. 8살 즈음이었나.. 히나가 옆에서 농사를 짓는 스즈키 씨의 거짓말을 들었었어요. 카기야마 집에 주는 쌀은 묵혔던 쌀을 반 정도 섞어서 준다는 걸. 딱 어릴 때, 알아낸 건 무조건 자랑하고 싶어 하던 히나는 그걸 아빠에게 알려줬죠. 불같은 저이의 성격 상 듣자마자 주먹다짐을 하기 시작했죠.. 놀랐던 히나는 저를 꼭 붙잡고 있었고요. 그때.. 왜 저는 평생 히나가 이런 많은 거짓말들과 험담을 들을 걸 알면서, 이런 건 알아도 넘어가는 게 필요하다는 무지한 말을 했을까요.”


 

 한숨을 푹 쉬었다. 이 요괴와 인간의 불안한 균형 속에서 습격을 주기적으로 해오는 이 환상향 속에서, 인간끼리 뭉쳐야 한다는 그 마음이 먼저 앞섰던 것일까. 케이네는 생각했다.

 

  “그걸 시작으로 히나는 말수가 적어진 건가요?”

 

  “아마도요.. 정말, 지금은 그래도 잘 지내지만 늘 풀이 죽어있고 귀를 막고 있던 히나를 보면 도와주진 못 할망정 대화의 길마저 막은 게 미안해요.. 미안한 거가 너무 많아요.”

 

 울먹이는 그녀에게 격려를 해주는 케이네였다.

 


 히나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었지만 그만큼 뒷맛이 씁쓸한 가정방문이었다.

 



3.

 

 시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흙먼지가 가득한 황천, 피안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본 광경은 여전히 북적였지만 사신과 염마의 감으로 느끼기에는 뭔가 걸리는 것들이 있었다. 이쪽으로 오는 사람들은 늘어나지만 재판을 받고 나가는 사람들이 없으니 뒤숭숭한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시키 님. 지금 분위기가 약간 이상한 것 같지?”

 

  “네, 아마 누구처럼 땡땡이를 친 제 탓이겠죠.”

 


 평소 같으면 마음에 찔려서 웃음을 지으며 넘어가려 했지만 뺨 끝에 뾰족뾰족하게 다가오는 이상한 기운과, 인간 마을에서 산 ‘국화꽃 차’를 손에 아름드리 안고 고개를 살짝 숙여 코를 킁킁거리는 시키님한테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그저 그녀는 머리만 긁을 뿐이었다. 그때, 저 중유의 길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염마 님!”


 

 어디서 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외형을 보면 낫을 들고 있고, 눈이 붉은 색이니, 사신이었다. 목소리를 들은 시키는 그녀가 보기 전에 염마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빠르게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코마치에게 밀었다. 가볍게 웃으면서 그 물건을 받아주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던 사신은 그녀들 앞에 서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등을 수고했다는 의미로 코마치는 물건을 안 들고 있는 손으로 살살 어루만져줬다. 시키는 회오의 봉을 바로 잡고 모자를 고쳐 쓴 후 말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하아. 그게. 아. 죄송합니다! 중유의 길에서 치안 관리를 하는 사신, 아이카라고 합니다. 하아. 망령으로 변하려는 생령을 묶어두었습니다. 하아. 판결을..”

 


 그 말을 듣자 시키와 코마치 모두 소름이 확 끼쳤다. 급하게 그녀를 따라갔다. 중유의 길이 끝나는 곳과 삼도천이 시작하는 길 사이 고요한 곳에 몇몇 사신들과 문제의 생령이 포박되어서 줄을 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마치 물이 끓어오르듯 생령 안에 있던 액들이 끓어올라 온 몸을 뒤덮으려 하고 있었고 눈은 이미 검붉은 빛으로 잠겨있었다. 사람의 말 사이에 가래가 끓는 소리가 났다.

 


 코마치는 동료 사신들에게 손을 흔든 후, 시키가 건넸던 물건을 잠시 구석에 두고 생령의 상태를 보면서 말했다.

 

  “이 생령, 중유의 길에서 며칠을 있었던 거지?”

 

  “아마 50일에서 51일 정도로 봅니다.”

 


 고개를 집어 입 안을 보았다. 점점 검붉게 변해서 마치 피가 나는 것 같았다. 아직 인간성은 살아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말을 걸어보았다.

 

  “끄응.. 이미 기한이 지났긴 했네.. 어이, 정신 차려. 흉금을 터놓는 곳에서 이게 무슨 추태야? 적당히 해.”

 

  “... 화가.. 난다고.. 싫다고.. 괴롭다고.. 미안하다고..”

 


 부정적인 말에 공명하듯이 생령의 가슴에 들어있던 액이 말을 할 때 마다 온 몸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마 현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내세에서 미련을 푸는 과정마저 현세에 남은 것들에 대해 미안하다 생각해 액이 들끓었나보다. 미련했다. 코마치는 그렇게 생각했다. 더 이상 그것이 말을 못하게 그녀는 옆에서 경계하고 있던 사신에게 머리 묶는 천을 빌려 그것의 입에 재갈처럼 물렸다. 부정적인 말들은 다른 생령들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었다.

 

  “자, 시키 님. 누추하지만 생령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재판을 해줘야할 것 같아.”

 

  “알겠습니다.”

 


 시키는 회오의 봉에 딱히 무언가를 적지 않고 위로 들어올렸다. 잠시 봉을 감싸던 나무의 빛이 흑백으로 변했다.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정도의 능력’이 봉을 통해서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초록빛 눈으로 뒤틀리는 그 생령을 보며 그녀는 말했다.

 

  “이 생령은 옳지 않습니...”

 

  “아아아악!”


 

 큰 목소리와 기운이 생령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젠 망령이라 불러도 괜찮을 정도로 괴성을 내뱉고 있었다. 강풍처럼 몰아치는 부정적인 기운에 시키는 뒤로 물러서다가 회오의 봉에 있던 기운을 다시 감춰버렸고 사신들도 주변에 주저앉거나 귀를 막고 있었다. 강력한 기운 가운데 마치 독사마냥 무거운 액들이 바닥을 기어서 주변을 물들이려고 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과 중유의 길을 바라본 후, 코마치는 옆에 쓰러져 있던 사신의 낫을 들고 말했다.

 

  “적당히.. 하라고!”

 


 순식간이었다. 

 

 몰아치던 기운이 가라앉고, 괴성이 사라지고. 낫이 한 바퀴 돌아 망령을 베어버리는 시간은 정말 짧았다. 한 바퀴 돌면서 생긴 땅의 흙먼지 자국만이 낫으로 망령을 베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갈라진 영혼은 잘려진 부위를 다시 붙이기 위해 각자의 의지로 달라붙었지만 말끔하게 사신의 낫에 베여버린 단면은 붙여지지가 않았다. 절단면 사이로 망령이 그간 쌓아오던 액과 공이 황천에 부는 흙먼지 속으로 갈기갈기 찢어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망령의 모든 것이 멸하는 과정을 본 코마치는 한숨을 크게 쉬고 주변에 주저앉은 사신을 일으켜세웠다. 공포라고 해야 할지, 누구나 공감 가능한 액들에 자기들도 공명해 버린 건지 어린 사신들은 다리를 떨고 있었다. 코마치는 시키의 상태를 보고 사신들에게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도 정신 차려! 우리 사신 종족이 해야 하는 일은 재판 받기 직전 까지 생령을 미련 없이 순수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거야! 뱃사공 역할을 하는 사신들을 모두 치안 쪽으로 돌려서 중유의 길에서 액이 들끓으려는 생령들은 즉시 생령들 주변에서 떨어뜨리도록 해.”

 

 시키는 덧붙였다.

 


  “후우, 이 중유의 길에서 생긴 망령은 연약한 생령들의 가슴을 쉽게 파고들어 망령으로 만드니, 제가 딱히 판결을 내리지 않아도 휴정기간동안 생기는 망령들은 그 자리에서 멸해도 옳은 걸로 하겠습니다.”

 

  “중유의 길에 보내는 술과 음식을 만드는 사신들은 삼도천의 물을 더 사용하도록 해, 맛은 더 떨어지겠지만 잠시 동안이야.”


 

 쩌렁쩌렁한 코마치의 목소리에 주변의 사신들은 정신을 차리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런 모습만 보면 참 좋은 아이인데 일을 제대로 안 하고 노는 걸 좋아하는 게 안타깝다고 시키는 생각했다. 사신들이 거의 각자 할 일을 향해 가는 중인 걸 확인 한 후, 코마치는 자세와 표정을 풀었다.

 

  “갔지? 아으으. 역시 나한테 이런 건 안 어울려. 손이 다 저리다니까.”

 

  “코마치~ 당신도 사신이니, 당신이 해야할 일은 뭔가요~?”

 


 자기가 안아 가고 싶었는지 나무 곁에 둔 국화꽃 차를 들고 그녀에게 독기를 빼고 가볍게 말했다. 가장 놀기 좋아하고 땡땡이를 밥 먹듯이 치는 그녀에게 보내는 작은 복수였다. 약점을 찔렸는지 너털웃음을 짓던 그녀는 머리 묶는 천을 못 쓰게 된 사신에게 대신 자기의 빨간 방울 머리끈 중 하나를 주고 말했다.

 

  “아하하, 나? 나는 이제 시키 님이랑 차 마시러...”

 


 시키는 방긋 웃었다. 그리고 회오의 봉을 들었다. 기운이 실려 있진 않지만 무게가 꽤 나가고 각이 곧게 진 나무 막대기였다. 정확하게 직선을 그어 그녀의 머리를 내려쳤다.

 

  “컁!”

 

 독특한 신음소리였다.

 

 


*

 

 둘이서 한 몸이라지만 요괴의 기운이 충만한 보름달의 시간동안 백택으로 변해 적어둔 수십 권의 역사서의 내용은 참 난잡하고 바쁜 기색이 가득한 글자였다. 자기가 적었는데 못 알아볼 정도면 한 달 즈음의 역사를 기록하기에 보름달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은 정말 뿔과 털이 가득한 괴수, 백택을 닮은 괴이한 역사였다.

 

  ‘나도 참.. 이렇게 난잡하게 적어두면 도대체 어느 부분을 없애라는 거야. 그렇다고 그냥 두는 것도 역사라고 부를 수는 없고...’

 


 이전에도 역사를 없애는 일 즈음이야 해왔지만, 서당을 세우고, 인간 마을에서의 교류가 크게 늘어나고, 코마치가 했던 말이 지겨워서 졸아버리는 학생들의 얼굴과 겹치니 훨씬 더 없애기가 어려웠다. 잠시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 들고 온 역사책을 보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는 케이네였다.


 

 그때, 누군가 교정에 서서 역사책을 읽으며 표정을 찌푸리고 있는 그녀의 허리를 손가락으로 콕콕 건드렸다. 유우다치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워낙 날뛰던 아이가 얌전하게 있으니 당황스러웠다. 콕콕 찌르고는 그 자리에서 눈을 마주치고 있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유우다치,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면 건드리지 말고 말을 해주세요. 저는 마음을 읽는 사토리 요괴가 아니랍니다.”

 

  “저기...”

 


 유우다치는 말 대신에 짧게 문 밖을 가리켰다. 혼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보다 싶어서 그녀는 이해하고 손을 잡아 문 밖으로 나갔다. 히나와 관련된 일인가 싶어 케이네는 나가면서 히나를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더 잘 들리는 날인지 두 귀를 손으로 막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돌.. 아니, 케이네 선생님.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래요..”

 


 케이네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다니! 이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 그녀는 생각했다. 풀이 죽은 유우다치를 보니 신기하면서도 걱정이 크게 들었다. 케이네는 몸을 숙여 그녀와 눈을 맞추며 말을 걸었다. 반쯤 있는 요괴의 기운일까? 눈을 마주보면 더 솔직한 대화가 가능했었다.

 

  “유우다치가 이렇게 예절 바르다니. 어떤 게 궁금한가요?”

 

  “히나나는., 저를 싫어하나요?”

 

  “응?”

 


 그 말을 하면서 유우다치는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히나와 관련된 질문인건 평소 관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전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되물어보았다.

 

  “음.. 왜 유우다치는 히나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나요?”

 

  “어제는 아파서 쉬고.. 오늘.. 쉬는 시간에는 귀만 막고 있고.. 점심도 같이 안 먹고.. 이야기도 안 하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어가며 이야기하는 유우다치였다. 케이네는 그 이야기를 듣자 가정 방문 때 히나 부모님과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마 그 이야기를 다 히나가 들었다면.. 얼추 지금 이야기와 들어맞았다. 어제 아프다고 쉰 진짜 이유는 그녀만 알지만 말이다.

 

  ‘유우다치에게 거짓말 한 게 미안해서 그런 건가..’

 

  “그리고.. 모르겠어요. 히나나는.. 제가 하는 건 다 좋다고 해요. 히나나를 전 모르겠어요.”

 


 그녀는 자세를 고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유우다치가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전 일 까지 이야기하는 걸 보면 조금씩 쌓이던 게 오늘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그렇게 있자 유우다치는 살짝 눈치를 보더니 계속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히나나랑 진짜로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가르쳐줄 수 있나요?”


 

 의심. 아직 자기들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벅차서 손짓 발짓을 쓰거나, 괜히 좋아하는 아이를 틱틱 괴롭히는 것처럼 반대로 행동하는 서투른 아이들에게는 아직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케이네는 잠시 고민이 들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도 그걸 유우다치에게 맞는 단어로 설명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생각 공장을 열심히 돌리고 있는 케이네를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미 수업 시작 시간이 지났었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의 수업이 짧아지는 지금 시간을 수근 거리며 즐기고 있었고 히나는 여전히 엎드려서 귀를 막고 있었다.

 

  “으으음... 선생님은 친구란 걸 서로가 서로를 아는 거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이 같다면 쉽게 친해질 거고, 다르다면 서로 챙겨주고. 싫어하는 것이 다르다면 서로 피해주고..”


 “...가지조림을 저도 히나나도 좋아해요.”

 


 뜨끔했다. 유우다치가 언급한 건 교묘하게 빼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도 친구가 있어요. 비슷하게 무언가를 쓰는 걸 좋아하고, 역사를 서로 좋아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시간이 금방 가요. 하지만, 서로 싫어할 만한 이야기는 피하거나, 아니면, 확실히 꺼내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거기서 끝내버려요.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기억나죠? 그러면 유우다치는 오늘 히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 히나가 좋아하는 걸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더 깊고 복잡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유우다치에게 필요할 만한 내용만 가공해서 들려주었다. 싫어하는 걸 서로 묻는 건 아직 곱게 자랄 아이들에겐 어려울 것 같아 빼고 이야기하니 유우다치도 눈을 감고 이야기를 소화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히나와 유우다치가 친한 친구인 건 모두가 알고 있어요. 이번 일로 더 친해져서 막역지우가 되길 바라요.”

 


 삐죽빼죽한 단발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억센 머리털이 따끔따끔했지만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있을 일을 상상하며 씨익 웃는 유우다치를 보니 안심이 되는 그녀였다. 소탈하게, 혹은 순수하게 웃는다는 것이 이런 모습임을 깨달았다. 교실로 들어가자 아쉬운 소리가 구석에서 나왔고 그걸 깔끔하게 무시 한 후 수업을 시작하는 케이네였다.

 


 교실 앞문이 열리자 겨우 고개를 일으킨 히나는 최대한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유우다치의 시선을 피하면서 수업을 들을 준비를 했다. 이제껏 들은 소리들 중 가장 이질적인 소리가 그녀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소리의 방향을 알 수 없는 소리들이 그녀를 뚫고 갔지만 이번에는 먹잇감을 옥죄는 뱀처럼 ‘미안하다’는 말이 그녀를 묶고 있었다. 만약 거짓말이었단 걸 이야기하면 일어날 것 같은 부정적인 상황은 그 목소리를 더 키웠다.

 


 의식하고 들으니 소리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기분이었다. 마음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면 그 목소리는 더 커졌고 안에서 자라나 온 몸을 짓누르듯이 괴로웠다. 어제는 도저히 이질감을 견딜 수가 없어서 학교를 쉬었고 오늘은 수업을 듣기 위해 왔지만,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 유우다치의 눈빛에 쪼이고 계속 피하다 보니 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어지러웠다. 히나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다른 손으로 붓을 집었다.

 

 

  

 

  “...자, 그렇게해서 하쿠레이 신사가 탄생하게 되었어요.”

 

  “하아...”


 

 역시나 모든 걸 짚고 넘어가니 양도 많고 그녀의 수업 방식도 경직되어있어서 수업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유우다치와 히나를 바라보았다. 평소에 모범적이던 모습은 어디가고 많이 아픈지 누워있는 히나와, 그녀에게서 시선을 끊지 않는 유우다치가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묻도록 하고 오늘은 유우다치의 가정 방문과 내일 소풍 준비를 해야 하니 몸이 벌써 바빴다.

 

  “아직 마무리 안 끝났어요. 집중~. 내일은 소풍 가는 날이에요. 모이는 장소는 같은 서당이고 마을 뒤의 작은 숲에 갈 예정이에요. 점심 도시락이랑 간식을 꼭 챙겨와 주세요. 오늘도 수업 듣느라 수고 많았어요.”

 


 소풍이란 단어가 들리자 아이들의 목소리들이 밝아졌다. 일전에 요괴와 요정들에게 허락과 주의를 받고 하루 정도 빌린 공간이었다. ‘기계’란 것에 푹 빠진 캇파가 아닌 이상 자신이 사는 자연을 훼손시키는 일은 없고 그렇게 보존된 공간은 아이들에게 꽤 좋은 가르침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다들 가방이나 보따리를 들고 가는 걸 보면서 그녀도 책에 깃털을 책갈피로 꼽고 유우다치와 히나를 보았다.

 

  “히나나...”

 


 히나는 느리게 일어났다. 안 그래도 새하얗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있었다. 초록빛이 약간 감도는 검은 머리와 대조되어 마치 인형 같았다. 천천히 가방을 메고 유우다치의 시선을 피하며 그녀는 말했다.

 

  “다찌... 미안.. 아니, 오늘 혼자 갈게. 몸이 안 좋아.”

 

  “잠깐, 하고 싶은 말이..”

 

  “미안.”

 


 발소리도 안 들릴 만큼 고개를 땅에 떨어뜨리고 빠르게 걸어가는 히나를 막을 수 없었던 그녀였다. 그리고 의심은 확실하게 변했다. 그녀를 히나가 피하고 있는 걸.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의문과 자신을 피하는 태도, 그리고 차라리 매듭이었으면 좋을 정도로 복잡해진 마음이 그녀를 답답하게 했다. 케이네는 씁쓸한 표정으로 유우다치를 데리고 교실을 나왔다.

 


 그제와 달리 인간 마을의 중심가는 고요한 편이었다. 각자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고 마을 중심가를 소리 지르며 뛰놀아서 인지도가 높은 유우다치를 볼 때마다 상가 사람들과 일부 요괴들까지 인사를 건넸다. 평소 같으면 큰 소리로 인사를 꾸벅 했겠지만 오늘은 히나처럼 고개만 살짝 숙이는 정도였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당황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기 일이 더 바쁘기 때문에 누구도 유우다치에게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그런 유우다치를 잡는 손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그녀였다. 어떤 말을 해야 도움이 될까 궁금했다. 


 얼마 정도 걸었을까, 저 가까이 사토 씨의 바구니 가게가 보이는 길목 즈음에서 케이네는 말했다.

 

  “저기...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히나는 자기가 아파서 유우다치와 거리를 두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선생님.”

 

  “응?”

 


 케이네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표정이 굳어있었다.

 

  “이제까진 제가 좋아하는 걸 히나랑 같이 했으니, 다음부턴 히나가 좋아하는 걸 제가 같이 하면 더 친해질까요?”

 

  “음.. 네.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박치기 한 번 만 해주세요.”

 

  “으으응?”

 


 당황스러운 부탁이었다. 유우다치는 두 손으로 헝클어진 앞머리를 위로 들어 올려 이마를 드러냈다. 아마도 불안한 마음을 시원하게 정리하고 싶었는데 그게 자기와의 박치기라는 게 참... 거절하려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이마를 그녀 앞으로 댔다.

 

  “끄으응. 알겠어요.”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한 후 ‘이건 부탁한 거다’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몸을 젖혔다. 흡! 하는 소리와 함께 박치기에 부딪힌 유우다치는 균형을 유지하는가 싶더니 이내 풀썩 주저앉았다. 얕은 흙먼지가 일어났다. 케이네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고 손으로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미안해요. 미안. 괜찮아요?”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던 유우다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생각이 시원해진 듯 두 눈이 반짝였다. 싱긋 웃으며 유우다치는 말했다.


 

  “역시. 선생님은 돌머리 맞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유우다치는 케이네가 손으로 털어주던 걸 막은 후 인사를 하며 집과는 반대쪽으로 뛰어갔다. 대충 목적지는 케이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어떤 방향으로 돌아갈지, 평소와 같은 관계로 내일 소풍에는 올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두 사람은 학기 초부터 친했으니까.. 잘 해내겠지. 아마.’

 

  “아야야...”


 

 잊었던 왼쪽 이마의 쓰라림이 다시 되돌아온 그녀였다. 아프긴 했지만 자기도 기분이 좀 시원해진 것 같았다. 인파 속으로 사라진 그녀를 보고 방향을 돌려 유우다치의 집으로 향했다. 바구니나 빗자루 같은 소도구나 공예품을 파는 잡화점이었다. 쌓여있는 바구니와 매달려있는 도구들이 누가 봐도 잡화점 같았다. 이쪽도 미리 이야기를 했었는지 손님이 없어 조용한 편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오늘 장사 안.. 아, 케이네 씨군요. 반갑습니다. 제가 그 사토 유우다치의 아버지입니다.”


 

 문을 열자 선량하게 보이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직업이 사람을 닮는지, 사람이 천성으로 자기 직업을 찾아가는지 얼굴을 수놓은 주름이 가을밭 같이 푸근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손에는 갓난아기가 열심히 온 힘을 다해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사토 씨의 마지막 말은 그만큼 유우다치가 이 마을에선 모르면 외부인일 정도로 유명한 말괄량이여서 그랬다.

 

  “귀여운 아기네요. 특별히 아픈 곳은 없나요?”

 

  “애기가 배고파서 이렇게 방문을 맞이하는 건 죄송합니다. 아하하. 돌을 넘기고 나니까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고 운다니까요. 건강하게 위기를 넘긴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우유를 마시는 소리가 힘찼다. 이 짙게 깔린 요괴의 기운에 짓눌리지 않고 견뎌낸 자신에게 주는 상 같았다. 온 몸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고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 모습에 빠져있자 같이 아기를 바라보며 웃던 그는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그 아이, 아직 밖에서 놀고 있죠?”

 

  “아.. 아, 네.”

 

 

 오늘은 다른 일이 있었지만 차마 거기까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아이를 돌보시는 선생님도 참 고생이 많으시네요. 워낙 자기 즐거운 대로 다니는 아이라서.”

 

  “아니에요. 도리어 그런 성격이 교실 분위기를 띄우고 모아줘서 참 좋은 아이에요.”

 


 그는 아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 이야기는 진행되다가 끊기고, 다시 진행되다가 끊기는 걸 반복했지만 사이사이에 아기의 작지만 큰 행동들을 보거나 우는 소리에 당황하는 그 사람의 행동이 그 사이를 메워주었다. 잔잔하고 고요한 밤이 다가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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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시 즈음 도서관에서 나와 짧게 쉰 후 재편집을 하고, 중간 그림을 만든 후 완료가 되는 대로 올리는 지라 업로드 시간이 정확히 10시가 아닌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Lv79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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