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監督), 코지마 히데오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7개 |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 급진적이니까. 그럼에도 내가 몸담은 매체를 바꾼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히데오가 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영화 '매드 맥스' 시리즈로 오늘날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감독 조지 밀러는 코지마 히데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새로 시작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코지마의 그런 도전과 창의적 용기가 문화적 진화를 이끈다고 말이다.





챕터1: 작가주의
코지마 히데오는 게임 업계에서 감독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독특한 인물이다. 단순히 영어로 디렉터(Director)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監督, 영어로는 작가주의 감독을 의미하는 Auteur가 그의 이름에 따라붙는다.

여러 영화 부흥 운동과 사조의 변화에 따라 감독의 기술적 능력, 그 감독의 작품임을 구별할 수 있는 가치, 예술로서의 존재 등 여러 가지가 작가주의의 특징으로 꼽혔다. 그리고 현재의 작가주의는 영화에서 자신의 가치와 스타일을, 모든 통제권을 가진 감독(디렉터)의 역할에 맞춰 수행한다. 오늘날에는 영화감독만큼이나 촬영 감독의 역할과 영향력이 너무나 커져 이들이 진짜 작가주의의 주인공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든 작가주의는 감독 자신의 천재성이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그래서 게임과 작가주의는 정말 어울리지 못하는 단어의 조합이다. 특히 날이 갈수록 거대해지고, 큰 자본이 쏟아지는 주류 게임 시장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조합에 가깝다.

천장을 뚫고 이제는 블록버스터 영화 이상의 비용이 필요한 AAA 게임. 그 막대한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개발자보다는 플레이어에게 더 다가가야 하는 상업성. 그리고 그 상업성을 게임의 공개부터 부각하는 초대형 마케팅까지. 수십 개로 나눠진 팀이 각기 다른 일을 맡아서 담당하는 게임 개발에서 작가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감독으로 불리는 코지마 히데오는 신기하면서도 괴짜 같은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누구보다도 예술일 필요가 없는, 게임을 만들고자 한다. AAA 게임을 만들고, 상업적 성공을 달성한다. 그럼에도 그는 감독으로 불린다.

무엇이 코지마 히데오를 게임 업계 최초로 불리는 감독으로 만들었을까. 플레이스테이션 스튜디오는 여러 개발자와 영화감독, 평론가, 그리고 코지마 히데오 감독 자신의 이야기로 '데스 스트랜딩'의 개발 과정을 돌아봤다.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국내에도 전달이 시작된 'HIDEO KOJIMA: CONNECTING WORLDS'. 거기에 어렴풋이, 게임 개발자이면서 감독인 코지마가 비친다.





챕터2: 영화
다큐멘터리는 코지마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주변인들이 바라보는 코지마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오가며 이루어진다. 그런데 게임 개발자인 그를 평가하는 인물의 대다수는 게임이 아니라 영화와 관련된 인물들이다.

바이오하자드 4편까지 개발을 맡으며 시리즈의 기반을 쌓은 미카미 신지나 미즈구치 테츠야, 더 게임 어워드 호스트 제프 케일리 정도를 제외하면 게임 업계 인물은 요시이케 히로아키처럼 '데스 스트랜딩'을 함께 개발한 개발자 정도다.

오히려 코지마를 말하는 인물들은 조지 밀러, '철남 테츠오'로 일본 일본 컬트 무비의 대표적 인물인 츠카모토 신야, '드라이브'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니콜라스 빈딩 레픈,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 그리고 그와 절친한 기예르모 델 토로 등 영화 관련 인사들이 더 많다.

이러한 그의 주변 인물들의 구성은 그의 관심사와도 얽힌다. 영화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코지마는 영화에 흠뻑 취한 사람이다. 영화에 집착하고, 사랑하는 인물이다.

영화에 관한 코지마의 표현은 더 극적이다. 그에게 영화는 단순히 애정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생명 그 자체다. 태양과도 같은 영화의 빛이 세포를 자극하고, 그 자극이 영감이 되어 코지마의 새로운 창작물이 된다.

실제로 코지마는 인디 영화나 아트하우스(예술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곳) 작품을 즐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트윈 픽스'로 컬트 무비의 대부로 불리는 데이비드 린치나 호러 영화들로 필모그래피를 쌓으면서도 작가주의 감독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을 좋아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는 코지마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코지마는 작가주의 영화가 주는 영감을 흡수한다. 그것이 반영되고, 또 그걸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 '데스 스트랜딩2'에도 그 모습이 등장하는 조지 밀러


챕터3: 게임
코지마처럼 자신의 분야에 영화적 시각, 예술적 감각을 불어넣는 것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다만, 게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화는 사물의 움직임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에서 출발했고 나아가 그걸 상업성을 위한 재미, 혹은 예술적인 방향으로 풀어내는 데에서 그 가치가 생겼다. 하지만 게임은 오롯이 재미를 위해 만들어졌던 미디어다. 결국, 작품의 기반에 그 재미를 놓아서는 좋은 게임이 될 수 없다.

근래 작가주의를 표방한 몇몇 게임은 그래서 팬들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사회문제든, 인종이나 세대 갈등이든, 담고자 한 메시지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게임의 재미를 놓쳤다. 플레이어는 재미를 원한다.




하지만 그 재미가 꼭 플레이 그 자체에서 나오는 재미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게임 안에 담긴 서사는 영화나 소설 등 기존 미디어가 가진 서사의 가치만큼이나 높아졌다. 아예 게임 플레이 없이 소설을 읽어나가는 부류까지 게임으로 묶이는 시대다. 게임을 유희에 기반한 루돌로지로 볼지, 기성 미디어의 연장선에서 서사 중심으로 바라보는 내러톨로지로 볼지에 대한 싸움이 무의미해진지 오래다.

리더로서 팀원을 대하는 자세에서 여러 논란을 사긴 했지만, 켄 레빈은 '바이오쇼크' 안에 시리즈를 관통하는 연출적 미학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게임 자체가 가진 플레이로서의 재미, 스토리텔링의 흥미로움을 놓지 않았다. 메시지와 게임을 함께 담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챕터4: 회사 대표
코지마는 대중적 연출에 강한 인물이다. 그의 오늘을 만든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는 영화와도 같은 연출, 이벤트 씬의 분배 등으로 그를 마치 영화감독이 되고자 하는 인물인 양 설명했다.

하지만 이 '메탈 기어 솔리드'는 되려 코지마를 작가주의 감독이라고 평가하는 데 있어 큰 반박 사례로도 꼽힌다. 감각적이면서도 포르노그라피적 연출은 오히려 가장 대중성을 바라볼 때 나오는 결과물이라는 주장이다.

코지마의 대중적 연출은 어찌 보면 회사 아래서 게임을 총괄했던 코지마 히데오의 위치를 드러낸다. 그는 코나미 아래서 비교적 자유롭게 일하긴 했지만, 여전히 회사 브랜드, 이익을 버릴 수는 없었다고 회상했다. 분명 상업적 성과와 원하는 게임을 만들기는 비교적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래서 직접 원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코지마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그리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데스 스트랜딩'에 담았다.

여기서 예술성과 메시지만을 앞세운 게임과 코지마의 가치관의 차이가 드러난다. 코지마는 인디 영화와 아트하우스 작품을 좋아하지만, 그걸 넘어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코나미에서는 자신이 실패하면 직원들이 다른 부서로 옮겨가는 정도에 그쳤다. 월급도 계속 나왔다. 하지만 자기 이름을 딴 지금의 회사는 자신이 실수하면 다음 프로젝트가 나올 수 없다는 걸 안다.

'데스 스트랜딩'은 그래서 더욱 상업적인 성과를 그릴 AAA 타이틀에 소니의 지원을 받아 막대한 마케팅이 이루어졌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면서도 상업성을 가진, 게임을 만들었다.


챕터5: 데스 스트랜딩
그렇다고 '데스 스트랜딩'이 그저 상업성만을 노린 대중적 오픈 월드 게임이라고 평가할 수만은 없다. 그걸 게임이 출시된 지금은 모두 안다.

모호하게 세계를 그려내고 상황을 유추하도록 전개하지만, 가지고 있는, 전하는 메시지는 더없이 또렷하다.

게임을 플레이하면 서로 만날 수는 없지만, 흔적을 보면서 이곳에 존재하는 게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 상호작용과 소통을 자신의 방식대로 게임에 담은 연출은 2015년 말 게임 기획을 시작하면서부터 코지마가 느낀 현실에서 모습에서 나왔다.




코지마는 당시를 분열과 고립의 시대로 기억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경제 위기, 테러의 위협 등 세계는 분열의 길을 걸었다. 24시간 세상을 연결하는 인터넷은 발달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더 갈라졌다.

커다란 재앙에 국가가 분해된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데스 스트랜딩'은 반대로 현실의 분열을 극복할 '연결'을 말했다.

그 무엇보다도 코지마스럽다. 그리고 작품으로 알 수 있는 감독만의 특성, 그게 작가주의 관점에서 '데스 스트랜딩'을 바라보게 한다.

상업적 성과는 달성했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비대중적이다.


챕터6: 알고리즘
코지마는 메시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게임의 방식을 흔들었다. 의도한 바였다.

코지마가 생각한 인기 게임들의 특징은 할리우드의 감각이다. 액션, 총격전, 폭력이 주를 이루는 속도감 있는 게임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비슷했다. 특정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무슨 게임인지 알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데스 스트랜딩'의 플레이는 기존의 액션과 다르고, 스토리텔링은 서구에서 가지 않았던 길을 걷는다고 평가받는다.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은 이러한 근래 제작 분위기를 알고리즘에 의한 결과라고 칭했다. 독창적이기보다는 알고리즘에 의존해 만들어지는 게임. 그건 곧 창의성의 적이다. 그리고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서 경험한 이야기 구조와 그걸 만들어가는 관습이 담긴 장르적 특징을 지닌다.

'데스 스트랜딩'은 액션의 방향을 틀고 탐험의 방식을 꼬았다. 어느 부류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비장르적 특징을 지닌다.

이 비장르성과 비대중성은 작가주의 작품이 보여주는 특징이다.

실제로 게임의 주인공인 노먼 리더스를 비롯해 트로이 베이커도, 매즈 미켈슨도 직접 모션 인식 장치를 달고 코지마의 지휘 아래 몸을 써가며 연기했지만, 이야기의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다.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냐고 서로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쌓이고, 그걸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이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느끼게 됐다.




니콜라스 빈딩 레픈은 작품의 속도감과 극적인 감각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이런 코지마만의 감각이 곧 그 창의성을 만든 힘이라고 짚었다.


챕터7: 감독 코지마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러한 도전이 게임 개발, 특히 갈수록 상업적 기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더없이 어려운 도전이기도 하다.

미카미 신지는 자신이 처음 게임을 개발했을 때는 1억 엔 정도면 원하는 건 뭐든 만들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오늘날 한화로 11억 원이 채 되지 않는 돈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형 게임의 개발비는 수천만 달러를 넘어 억 단위의 미화가 필요하다. 수천억 원대의 개발비가 드는 셈이다.

혹시나 하는 실수가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만든다. 그래서 개발자들도 다각도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려 한다. 리메이크가 쏟아지는 것도 그런 부담을 덜고자 하는 이유가 크다. 니콜라스 빈딩 레픈은 상업적 기대치를 충족하면서도 자신의 비전에 충실하고, 게임을 전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작업을 총알 여섯 개로 하는 러시안룰렛이라고 비유했다.

코지마는 이런 도전적인 상황에서 게임을 만들 때 메시지를 담아내고자 한다. 그건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전투를 영웅주의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전쟁보다는 미래의 희망, SF적 요소에 더 관심을 뒀다. 극초기 잠입 액션으로서 그 틀을 제대로 구축했다고 평가 받는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특징은 어쩌면 그런 그의 성향이 없었다면 구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든 개발 과정에 코지마가 참여한다. 게임 속 오브젝트의 배치부터 출연 배우들의 연기를 디렉팅하고 기술적인 부문에도 관여한다. 때로는 꿈에서도 버그를 확인한다는 그의 말처럼 '데스 스트랜딩'은 모든 부분을 직접 지휘하는 감독 아래 완성됐다.





챕터8: 예언자
'데스 스트랜딩'은 연결을 말했다. 그리고 현실은 신기하게도 연결이 필요한, 게임 속 세상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기가 닥쳤던 것이다. 게임이 출시된 지 고작 3개월 정도가 됐을 때다.

이시기 코지마는 플레이어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게임은 봉쇄 기간 타인과 격리된 삶 속에서 그걸 극복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간접적으로나마 소통할 수 있었다며, 게임 덕분에 살아있다고 느꼈다며 감사를 전하는 목소리가 코지마에게 전달됐다.




1994년 작품인 '폴리스너츠'를 시작으로 '메탈기어 솔리드' 모든 작품을 코지마와 함께 개발한 신카와 요지 아트 디렉터 역시 코지마의 그런 예견 능력을 알아본 인물이다. 게임 출시마다 세상이 코지마가 쓴 시나리오를 따라 흘러간다면 그에게 예전자의 피가 흐른다는 농담 섞인 말도 남겼다.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광의 기질이 강조됐지만, 코지마는 어릴 적부터 무수한 미디어를 흡수했다. 나오는 신간은 모조리 읽고 영화는 물론 V시네마, 넷플릭스 같은 OTT 시리즈도 모조리 챙긴다. 누군가는 대체 잠은 제대로 자는 거냐며 그의 그런 노력을 신기해했다.

그런 노력은 과거를 보고, 시대를 읽으며, 미래를 그린다. 자신의 메시지를 적극 담는 코지마에게 그런 시선이 게임 속에 미래를 그리는 것일지 모른다.


챕터9: 미래
코지마의 나이는 이제 60이 됐다. 코로나19로 격리된 기간에는 몸이 좋지 않아 수술을 받기도 했고 죽음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더 게임을 만들 수 있을지에 확신할 수 없다. 전에는 없던 그런 두려움에 문득 사로잡히곤 한다.

그럼에도 도전을 계속한다. 이미 새로운 IP였던 '데스 스트랜딩'을 만들었고 이번에는 그걸 프랜차이즈화하려 한다. Xbox와는 클라우드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부류의 게임 'OD'를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이제는 팬들의 바람을 들어 자신이 하고 싶은 게임보다 팬들을 위한 작품, 잠입 액션 게임 '피진트'를 만든다. 물론 팬들이 원한 부류의 게임이지만, 가장 코지마다운 게임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영화 제작 제의에도 회사를 비울 수 없어 거절했다. 하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당신이 만드는 건 이미 영화니까 지금처럼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게임이지만 영화이기도 한 게임을 만든다.

코지마 히데오가 어디까지, 언제까지 작업을 이어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기간 그에게는 계속 감독이라는 칭호가 따라 붙을 것이라는 것은 안다. 그렇게 감독 코지마 히데오는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