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승호 칼럼] 게임하는 아이 들여다보기

칼럼 | 이두현 기자 | 댓글: 9개 |
방승호 선생(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관)은 아이들과 게임을 한다. 그는 게임을 통한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활동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리그 오브 레전드'를 활용해 비대면 학생 특별활동을 추진하기도 했다. 단순히 게임을 시켜주는 게 아닌, 게임을 계기로 아이들이 일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끈다. 저서로는 '게임에 빠진 아이들', '마음의 반창고', '기적의 모험놀이' 등이 있다.

* 기고 글에 등장하는 학생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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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라는 꿈과 어설픈 공부 중간에 낀 성진이

중학생인 성진이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한다. 담임은 성진이가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상담을 의뢰했다. 성진이는 공부에 관심이 없는 것 빼고는 학교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점점 게임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게 되었고 성적도 중간고사보다 10점 정도 내려가 평균 60점대로 떨어져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성진이는 공손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듬성듬성 있고 착해 보였다. 아이들을 처음 만나서 어색함을 풀어주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다 나름의 사연이 있어서다. 그런데 이런 사연들을 말로 설명하려고 분위기를 잡으면 어이들이 더 긴장한다. 잘못하면 마음을 꽁꽁 닫아 버리고 만다.

그동안 주변으로부터 많은 부정적인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말보다는 몸을 사용하는 것이 긴장을 풀어주는 좋은 방법이다. 팔씨름은 가장 간단한 놀이 중 하나이다. 아이들이 어색해하지 않는지 궁금하다는 분들이 많다. "팔씨름해 볼래?” 하고 싶냐?" 등의 의향을 묻게 되면 어색함이 흐른다. 따라서 빠르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그냥 팔을 내밀면서 "팔씨름하자"고 하면 된다.

사람에게는 팔씨름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어색해하면서도 손을 내민다. 첫판은 선생님이 하자니까 하는 시늉만 하면서 힘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째 판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인간의 본능이 솟구쳐 이기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는지 아이는 온 힘을 다하여 팔씨름한다.

긴장했던 성진이 입에서도 힘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팔씨름이 끝나자 하얀 이를 보이며 웃었다. 웃음은 아이들이 '이제 말하고 싶어요'라고 무언의 답을 주는 것과 같다. 마음을 풀기 위해 한 가지 놀이를 더 하기로 했다. 안대를 하고 출발선과 목적지를 정해 놓고 이동하는 놀이다. 바닥에 인형이나 간단한 물건을 여러 개 놔둔다. 인형과 물건은 장애물이다. 안대를 안 한 사람이 안대를 해서 앞아 보이지 않는 친구를 이동시키는데 장애물을 피해서 가야 한다. 성진이가 안내하고 내가 안대를 했다. 인형을 밟으려고 할 때마다 큰 소리로 멈추라고 했다가 방향을 바꿔 다시 앞으로 이동하게 했다. 성진이는 끝까지 차분하면서 안전하게 나를 목적지에 안내했다.

"지금 기분이 어때?"
"느긋해서 좋아요"

놀이를 마치고 지금 기분을 물었다. 수줍어하면서도 자신감 있게 의사표현 하기 시작했다. 앉아 있는 모습이 여유 있어진 성진이와 '느긋했던' 순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학 때와 집에 혼자 있을 때도 편하고 좋다고 했다. 시험이 끝날 때도 느긋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느긋함'의 반대는 무엇이냐고 묻자 '답답함'이라고 했다. 지금 감정과 반대되는 느낌의 단어는 새로운 세계로 여행할 기회를 찾게 해 준다. 성진이에게 어떤 경우에 답답한지 물으니 부모님과 말이 안 통할 때 답답하다고 했다. 팀과 게임을 할 때 의사소통이 안 되어 게임이 내가 원하는 그림대로 안 나올 때도 답답하다고 했다. 성진이는 답답한 게임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게임을 더 잘하고 싶다고 했다.

"게임을 잘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데?"
"통쾌해요. 나를 무시하는 아이들을 이길 때 정말 통쾌하고 재맜어요"

마치 그 상황을 보고 있는 것처럼 기분 좋게 웃었다. 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으니, 말을 많이 해야 하며 개인 기량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 팀과도 호흡을 잘 맞추어야 하고, 욱하는 성격을 줄여야 하며, 다른 팀의 전략을 잘 분석해서 작전을 짜야 한다고 했다.

성진이가 게임과 관련된 이야기에 말이 많아지며 집중하기에 게임을 하게 된 스토리를 들어보자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처음 게임을 접했을 때는 단순히 1시간 정도 재미로 게임을 했는데, 중학교에 올라와서 게임하는 시간이 늘어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게임을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고 했다. 또 공부가 정말 하기 싫다고 했다. 요즘 고등학교를 어떤 학교로 가야 할지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앞으로 게임으로 살아남고 싶다고도 하였다.

자신이 이야기를 해보니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물었다. 자신을 되돌아본 시간이 된 것 같다고 하였다. 또한 자신의 행동 중에 고쳐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특히 낮에 잠자는 버릇을 줄이고 밤에 잠을 자야겠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으면서 아이들은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면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찾아가려는 의지가 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만일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게임은 취미로 하고 공부나 다른 게임제작, 운동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서 미래로 떠나 보았다. 30대로 성장한 성진이를 그려 보게 했다.

다음은 성진이가 미래의 자신에게 쓴 내용이다.

성공하기까지 힘든 과정이지만 잘 버텨 주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말이 잘 통하는 여자와 단독 주택에서 좋은 차를 타고 게임 방송국으로 출근하고 싶다.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며 하루 일정을 깔끔하게 마치고 집에 들어가 가족과 함께 편하게 식사하고 자고 싶다.

성진이가 품고 있는 미래는 가상임에도 생각보다 소박하고 행복을 원했다. 상담을 마치면서 오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던 같아서 기분이 좋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하였다.

성진이의 모든 이야기 끝은 게임이었다. 꿈을 갖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다. 그런데 왜 프로게이머 라는 꿈을 갖는다는 이유가 상담 거리가 될까? 성진이 본인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다른 것을 한 번 생각해 보고 싶다는 속내를 보이기도 했다. 게임이 대부분 현실에서 회피나 결핍감을 채우는데 사용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게임을 끝낸 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고 한다. 마음으로는 게임 대신 다른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행동은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눈초리에 위축되기도 하고, 항상 학교 성적 때문에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수록 점점 게임에서 위안을 찾게 된다고 한다.

성진이와는 다음 시간에 프로게이머를 만나 직접 게임 실력을 테스트해보자고 약속하고 상담을 마쳤다.

대한민국 대부분 아이와 부모님들 역시 성진이의 경우와 비슷한 고민거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특별한 해결책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그래서 역발상으로 게임의 문제를 게임으로 풀어보는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게임과 관련된 내용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한 것이다. 중학생 과몰입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말에 3시간씩 게임을 지도하고 9회기 중에 3회기부터는 게임영어를 시도해 보았다. 아이들은 게임 관련 영어를 배우니 만족스러워했고, 막상 게임을 제대로 해보니 프로가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이 게임을 과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먼저 자가 진단을 한 번 해보길 권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사이트에 가면 측정 할 수 있다. 자가 진단 후에 조용한 장소에서 자신과 대화를 해 본다. 8살인 과거 나와 30대의 미래의 나와 만남을 시도해 본다. 가능성 있는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은 하지말라는 말보다 아이가 왜 게임을 하는지 이유를 알아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당연히 아이와 관계 회복이 선행됨은 물론이다. 아이와 대화 전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팔씨름 등 놀이를 강력히 추천한다.

무조건 게임을 안 된다고 만류하면 오히려 더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학업 성적과 친구관계 등 주변의 관계를 잘 살펴보고 문제점이 나타나면 아이 입장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억지로 결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이의 꿈은 아직 크지 않은 작은 씨앗이며, 그 꿈이 마치 미운오리새끼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억제된 꿈은 아이의 그림자로 남아 고통으로 남을 수 있다. 시인 윌리엄 메러디스는 이런 말을 했다. "그 사람은 아무 일에도 관심이 없다"가 가장 큰 욕이라고 했다. 무언가 관심 있다는 것은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꿈은 관심에서 시작되며, 가장 기초가 되는 영양소인 격려를 받을 때 다양하게 자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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