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박정무식 소통법, 유저 마음 열었다

칼럼 | 박태학 기자 | 댓글: 93개 |
4월 1일, 만우절이다. 일 년에 단 하루, 짓궂은 거짓말도 허허 웃어넘길 수 있는 날. 속이려는 자와 안 속으려는 자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날. 그리고 게임사는 지금까지 숨겨왔던 유머 감각을 게이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매년 3월 말 때쯤 '이번엔 업체들이 뭘 준비할까'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다. 블리자드, 워게이밍은 개그 욕심이 넘쳤고 넥슨, 넷마블 같은 국내 게임사들도 크고 작은 만우절 이벤트를 열며 나름대로 축제 분위기 연출에 신경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걸로 욕을 먹는 일은 드물었다. '만우절 특수'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이날은 게이머들 역시 분노 밸브 잠깐 잠그고 각자 커뮤니티에서 이벤트를 공유하며 키득거리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며 올라갔던 게이머들의 입꼬리는 현재 다시 내려간 상태다. 굳이 이유 설명이 필요할까. 확률형 아이템 이슈로 게이머와 게임사 간 거리가 어느 때보다 멀어진 지금, '이것 좀 보세요! 재밌지 않아요?'라며 실없는 농담을 건네는 게임사는 소수에 불과하다. 크고 작은 이슈로 얼룩진 게임에서 만우절 이벤트가 나올 경우, '눈치 없다'는 말 듣기 딱 좋은 시기다.

그런 지금, 피파온라인4는 개발진의 얼굴마담 격인 박정무 그룹장을 전면으로 내세워 만우절을 '즐기고' 있다. 그냥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꽤 많이 준비한 티가 난다. 게임에서 실사용 가능한 박정무 선수 카드를 선보였고, 본인의 별명인 '박정무어'에서 따온 소소한 카드팩도 모든 유저에게 선물했다.

일회성 성격이 짙은 만우절 이벤트인 만큼, 실제 유저들의 구단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칠 가능성은 낮다. '박정무 선수'는 전반적으로 높은 능력치를 자랑하지만, 만료일이 지정된 임대 선수 신분이라 영원히 사용할 수는 없다. 박정무어 카드팩에선 실제 이름에 '무어'란 단어가 포함된 선수만 나오는데, 보비 무어 고강 카드가 나오지 않는 이상 실효성을 띤다고 보긴 어렵다. 즉, 피식 웃고 넘길 농담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런데도 피파온라인4 유저들은 박정무식 유머에 말 그대로 '빵' 터졌다. 1일 공개된 만우절 기념 영상엔 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대부분 정말 순수한 의미의 칭찬 글이다. 피파온라인4 전문 BJ와 프로게이머들도 댓글을 남기며 유저들과 함께 어깨춤을 췄다. 약 1년 전 'LH 클래스' 출시로 넥슨에서 가장 욕 많이 먹는 게임 중 하나였던 피파온라인4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었을까.

▶ '박정무짱짱짱' 프로젝트 영상 보기

운영 이슈로 골머리를 앓는 게임사라면 웃돈 줘서라도 알고 싶은 그 비결은 의외로 단순했다. 피파온라인4는 서비스 초기부터 여러 문제로 비판을 받았지만, 박정무 그룹장과 개발진은 이를 회피하지 않았다. 욕먹을 거 뻔히 알면서도 유저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뻔뻔하다는 삿대질 앞에서도 본인들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말뿐인 사과가 아닌 명확한 개선 결과를 함께 보여줬고, 덕분에 차갑게 닫힌 유저들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놓인 오아시스처럼, 피파온라인4는 2021년 만우절을 즐기는... 아니 즐길 자격이 있는 극소수의 게임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박정무 그룹장은 오늘 가장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게이머들이 원하는 개발진의 모습이 특별한 게 아니란 걸 피파온라인4는 증명했다. 내년 만우절에 이런 모습을 더 많이 보길 원하는 사람이 기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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