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GOTY 경쟁에 뛰어든 서커 펀치의 강력한 한 방, '고스트 오브 쓰시마'

리뷰 | 윤홍만 기자 | 댓글: 32개 |

흔히들 그 나라의 문화는 그 나라의 사람이 가장 잘 안다고들 생각한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이 로마 제국사를 공부하고 이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강론한들 유럽권 전문가보단 못하리라 여겼다. 우리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치관을 비롯해 언어, 생활양식 대부분이 다르니 완벽하게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머리로는 이해했을지언정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해야 할까. 게임 역시 그렇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견은 서커 펀치의 신작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하자 산산이 부서졌다.

그간 일본을 배경으로 한 게임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으레 그렇듯이 일본 게임사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자국의 역사를 소재로 한 만큼, 누구보다도 잘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스트 오브 쓰시마' 역시 처음에는 그저 일본의 역사를 잘 흉내 낸 게임으로만 생각했다.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닌 와패니즘에 입각한 사무라이나 닌자가 나오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직접 해보자 이런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몽골 제국에 맞서는 쓰시마 섬의 이야기를 그저 담담히 그려냈다. 사무라이는 최강의 무사로 묘사되지 않고 전투 역시 세밀하고도 사실적이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일본을, 사무라이를 소재로 한 게임 중 이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한 게임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자, 게임에 대한 소회는 이쯤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고스트 오브 쓰시마'에 대해 얘기해보자. 아트 스타일과 액션, 그리고 서사를 통해 서커 펀치가 어떻게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세계를 완성했는지 말이다.

※ 본 리뷰는 PS4 Pro로 플레이했으며, 신체 훼손 등 잔인한 표현이 있기에 주의 바랍니다.


더 없이 사실적이면서 더 없이 몽환적인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아트 스타일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아트 스타일에 관해 얘기하기에 앞서 먼저 서커 펀치의 전작인 '인퍼머스 세컨드 선'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인퍼머스 세컨드 선'은 사실적이면서도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했다. 네온 능력을 쓸라치면 파티클이 화면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캐릭터의 묘사, 주변 오브젝트 등은 더 없이 사실적이었나 게임적 연출의 허용치 역시 그만큼 높았던 셈이다. 그렇기에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다.

하지만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달랐다. 파티클이나 화려한 액션 연출 등 게이머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던 그런 화려함의 게임적 허용치를 최대한 끌어내렸다. 다만, 그렇다고 그저 담백한 게임이기만 하다는 건 아니다. 화려한 연출을 대신해 게임은 몽환적인 아트 스타일을 더함으로써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되, 보여줄 거리 역시 분명히 한 것이다.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이라고 하니 얼핏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초반에 갈 수 있는 황금숲과 황금사찰을 본다면 서커 펀치가 보여주고자 하는 아트 스타일이 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금박을 입힌 것도 아니건만, 황금사찰은 정말 황금빛으로 번뜩인다. 황금숲이라고 불리는 만개한 은행나무가 흐드러진 숲이 장엄함을 연출할 뿐 아니라 황금 같은 광채를 자랑하는 것이다. 황금빛을 품은 숲은 분명 게임적 허용이겠건만, 앞서 말한 것처럼 과장됐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어딘지 모르게 몽환적이라고 여겨질 뿐.



▲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세계는 사실적이면서도 어딘지 몽환적이다



▲ 포토 모드로 하지 않고 그냥 찍어도 이런 고퀄리티의 스샷이 찍힌다

비단 황금숲만 이런 게 아니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세계는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연출이 여기저기 혼재되어 있다. 외따로이 산 정상에 마련된 신사는 신이 사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토리이 때문인지 어딘지 비현실적이고 억새밭은 덧없는 느낌과 함께 몽골 제국에 패배한 사무라이가 처한 상황을 상기시켜줘 처량하기까지 하다. 운무가 깔린 수풀을 말을 타고 가로지르는 모습은 환상적이기까지 할 정도다.

사실적이면서 몽환적인 아트 스타일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그래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UI와 UX 역시 최대한 사실적으로 녹여냈다. 그 흔한 미니맵도 없을뿐더러 UI는 필요할 때만 화면 외곽에 작게 표시된다. 게임의 세계관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한 안배랄 수 있다.



▲ 자연과의 균형과 조화를 내포한 동양의 미, 그 디테일을 오롯이 담아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은 게이머에게 불편을 강제하지 않는다. 미니맵이 없는 대신 바람의 흐름이 게이머를 인도한다. 단순히 미니맵과 추적 시스템을 대체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 역시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아트 시스템의 핵심을 철저히 따르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의 흐름이란 게 어디 눈에 보이는 요소던가. 억새밭이라거나 수풀이 우거진 곳이라면 어느 정도 그 흐름이 보이겠지만, 원래라면 보일리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억지스럽지 않고 게임에 잘 어울린다. 기본적으로 몽환적이라는 아트 스타일이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근간에 깔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임을 하면서 바람의 흐름을 보면 부자연스럽다기보다 자연의 인도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 바람의 흐름은 게이머가 가야 할 길의 이정표가 되어 준다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는 동시에 UI를 대체하는 시스템은 이뿐만이 아니다. 멀리 피어오르는 전화(戰火)나 연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동물들도 게이머를 이끈다. 금빛 새는 주변의 특정 지역으로 인도하며, 여우는 신사로 이끈다. 다소 작위적이라고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이조차도 썩 어울린다. 일본이라는 문화의 향취가 느껴지면서도 과하지 않다. 억지로 이게 일본 문화라고 강조하는 게 아닌, 자연스럽게 뇌리에 각인시킨다. 서커 펀치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 연기들은 단순한 이펙트가 아니다. 구해야 할 마을, 가야 할 장소다


화려함 대신 미려함과 진중함을 선택한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액션

일본의 문화라고 하면 역시 사무라이와 닌자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다만, 이마저도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철저하게 현실에 집중했다. 일본의 요괴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본도 만능설을 채택한 것도 아니다. 쓰시마를 배경으로 몽골 제국과 이에 대항하는 이들의 현실에 말이다. 그렇기에 액션 역시 최대한 절제했다. 적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지도 않고 화면을 가득 메우는 화려한 칼부림이 펼쳐지지도 않는다. 몇 합 만에 승부가 결정 나는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검극은 다른 게임과 비교하면 정적일 정도다.

▲ 사실성을 극대화한 걸까? 그 흔한 록온마저도 없다

다만 그렇다고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서사에 집중한, 액션이 지루한 게임이란 건 아니다. 게임은 액션을 제한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절제했을 뿐이다. 화려한 액션 대신 미려하고 진중한 액션을 선택한 것으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언뜻 사실적인 액션이라고 하면 얼핏 지루한 액션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기자 역시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하고 약 10분 정도가 지났을 즈음해서 그래픽에 감탄한 반면, 액션에는 실망했다. 예상했던 그런 액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액션은 철저하게 정적이고 사실적이었다. 얼마나 사실적인지 그 흔한 록온마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편하기까지 한 이런 전투 시스템에 당황했고 섣부르게 결론을 내렸다. 록온도 없을뿐더러 액션도 정적인 만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액션의 비중이 낮은 대신 서사에 집중한 무늬만 액션 게임이라고 지레짐작했다.

▲ 물론, 발도술처럼 미디어를 통해 과장된 연출도 있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런 생각이 얼마나 섣부른 판단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록온이 없기에 불편한 건 사실이다. 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을 받아들이자 그제야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추구한 사실적인 액션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자동으로 적을 추적하지 않기에 적을 찾아야 하며, 여럿을 상대할라치면 실제 검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적을 한 명씩 상대하기 위해 거리를 벌려야 한다. 불편하다고 여겼지만, 록온이 사라지자 불편하다고만 여긴 전투 자체가 더욱 사실적이고 전략적으로 변한 것이다.

▲ 사실적이라고 해서 그저 단조롭기만 한 건 아니다
병종에 따라 자세를 바꿔가며 전투를 치를 때는 뭇 액션 게임 못지않은 손맛을 보여준다

물론,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추구하는 전투의 재미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적이라고 했지만, 그저 무턱대고 사실적이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어디까지나 과한 게임적 허용을 배제한 것에 가깝다. 검기가 나가고 주변의 적을 한 번에 휩쓰는 그런 검술 말이다. 미려하고 진중하지만, 그렇다고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전투가 그저 담백하기만 한 건 아니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액션 역시 나름의 깊이가 있고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자세 시스템을 들 수 있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에는 기본적으로 네 개의 자세가 있으며, 주인공인 사카이 진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자세를 배우게 된다. 자세는 다양한 병종에 대응하기에 손에 익으면 병종에 따라 자세를 바꿔가며, 물 흐르듯 적들을 베어 넘기는 것 역시 가능해진다. 포위된 상태에서도 서너 명 정도는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미려하고 진중한 가운데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는 게임들 못지않은 짜릿한 손맛을 선사한다.



이러한 '고스트 오브 쓰시마' 특유의 액션은 보스전에서 정점에 이른다. 보스전에선 말 그대로 지금까지 익힌 모든 기술을 동원해야 한다.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있고 막을 수 없는 공격이 있다. 공격을 이어나가야 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자연스럽게 적의 행동에 예의주시해야 하고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게이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한 명의 사무라이를 오롯이 체험할 수 있다.

▲ 연출, 액션, 구도 흠잡을 데 없는 보스전

아, 이쯤에서 혹시나 록온이 없고 정교한 액션이 특징이라고 걱정할 게이머가 있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전하고 싶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액션을 어려워하는 게이머들을 위한 안배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투가 부담스럽다면 은밀하게 적을 암살하는 망령 스타일로 플레이해도 되고, 암살 플레이조차 번거롭다면 도구의 힘을 빌리면 된다.

쿠나이와 연막탄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적 다수를 한껏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런 장비들은 전투 후 금세 보급할 수 있는 만큼, 아껴가며 쓸 필요도 없다. 전투의 난이도를 대폭 줄여주니 전투가 어렵다면 거리낌 없이 써보길 바란다.


사카이 진의 이야기, 쓰시마 모두의 이야기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서사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매력은 아트 스타일과 액션만이 아니다. 서사마저도 색다르다. 일반적으로 이런 오픈월드 액션 게임은 여러 NPC가 다양한 서브 퀘스트를 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거저 주지 않는다. 메인이 되는 건 사카이 진의 이야기다. 몽골 제국에 복수하고자 하는 그 일념을 그리고 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들은 그가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진의 이야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기에 서브 퀘스트를 하기 위해선 직접 발로 뛰며 피난민을 비롯한 여러 NPC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서브 퀘스트는 단순히 경험치를 준다거나 보상을 주는 것 외에도 서사를 확장시킴으로써 게이머를 더욱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세계에 몰입하도록 도와준다. 단순히 적과 싸우는 것이 전부가 아닌, 전란의 화마를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이를 진이 도와줌으로써 진이 어떤 인물인지 다시금 게이머에게 각인시킨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서사 기법은 게이머를 더욱 진이라는 인물에 몰입하도록 도와준다. 누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어디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진은 알지 못한다. 아는 거라곤 자신들은 패배했고 이제 힘을 모아 몽골 제국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뿐. 당연히 누가 힘이 돼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대화해야 한다.

천천히 서사를 확장시켜나가고 게이머를 진에 몰입시키는 것 외에도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가진 서사의 장점은 또 있다. 서사 확장에 따른 피로감이 덜하다는 것이다. 오픈월드 게임들은 대부분 방대한 콘텐츠를 포함하고 있기에 그만큼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좀 다르다. 방대한 콘텐츠를 내포하고 있지만, 필요한 만큼만 준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할 것들을 제공하는 게 아닌, 딱 필요한 만큼만 주고 나머지는 대화 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유추하도록 도와준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세계를 천천히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게이머가 콘텐츠의 홍수에 휘말리지 않게 완급을 준 셈이다.


GOTY 경쟁에 뛰어든 서커 펀치의 강력한 한 방
디테일, 서사, 액션의 삼박자 모두 갖췄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사커 펀치의 전작들은 아쉽게도 GOTY와는 항상 거리가 있었다. 슬라이 쿠퍼 시리즈는 PS2의 간판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으나 역대급이란 찬사와는 거리가 있었고 인퍼머스 시리즈 역시 준수한 평가와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그저 할만한 게임에 그쳤다.

하지만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다르다. PS4의 황혼기를 장식하는 타이틀답게 여느 게임 못지않은 퀄리티를 보여줄뿐더러 시스템의 완성도 역시 높다. 액션 역시 비교적 정적이라고 했지만, 순간의 박력만큼은 여느 게임 못지않다. 화려하고 복잡한 액션 대신 진중하고 깊이 있는 액션을 보여준다. 소울본 시리즈, 어쌔신크리드 시리즈 누구와도 다른 그런 액션 말이다.

결론적으로,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GOTY를 노리는 여러 대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충분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디테일은 흠잡을 데 없으며, 탄탄한 스토리에 액션 게임으로서의 오락성 역시 확실하다. 게임이 흥행하기 위한 세 가지 요소인 디테일, 스토리, 액션 삼박자를 두루 갖췄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일본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정도인데 이마저도 역사 왜곡 요소가 담긴 건 아닌 만큼, 사실상 단점이라고 하긴 뭣하다. 어디까지나 조금 불편한 정도다.

출시일 연기, 컬렉터스 에디션 발매 취소라는 연이은 악재에 현재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바라보는 게이머들의 시선은 다소 싸늘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게임은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일본 역사라는 선입견만 넘어서면 올 한해를 책임질 최고의 액션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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