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위정현 학회장 "질병코드는 문화에 대한 탄압, 이젠 게이머가 나설 때다"

인터뷰 | 윤홍만 기자 | 댓글: 24개 |
지난 6월 19일,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질병코드 도입 반대와 게임의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한 첫 번째 행동으로 게임스파르타 300 운동을 본격화할 것임을 선언했다. 게임스파르타 300 운동은 300명의 다양한 분야의 게임인으로 구성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조금씩이지만 착실하게 게임의 인식 개선을 위해 나서는 걸 목적으로 한 풀뿌리 운동의 일환이다.

이러한 행보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좋은 취지였으나, 너무 늦게 전개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 공대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듣기 위해 공대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위정현 학회장을 만났다. 과연 공대위가 게임의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한 첫 번째 행동으로 게임스파르타 300 운동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 위정현 중앙대학교 교수 겸 한국게임학회장


Q. 회사 오너들의 직접 참여할 것 같진 않다. 분위기를 반전시킬만한 인물들이 다수 필요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게임스파르타 300은 기획 의도부터 몇몇 거물에 의존하거나 당장에 큰 울림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 그걸 목적으로 했다면 처음부터 질문한 대로 거물을 영입하려고 했거나 애초부터 많은 사람들을 모집했을 거다.

게임스파르타 300은 풀뿌리 운동의 일환이다. 큰 목소리를 내서 단숨에 분위기를 전환하는 게 아닌 현재 게임이 가진 부정적인 인식을 게이머, 대중을 통해 아래에서부터 느리지만, 착실히 바꾸는 게 목적이다.


Q. 게임에 대한 인식개선이 목표라고 했는데 너무 늦은 건 아닌가 걱정된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과거 게임업계와 학계가 놓친 게 대중적인 기반을 다지지 못한 부분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게임장애 찬성 측은 이런 작업을 잘한 것 같다. 게임에 대한 공격, 게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그런 시민단체나 학부모가 늘지 않았나. 지난 몇 년간의 행적을 조사해보니 물밑에서 이런 작업을 했던 거 같다. 나름의 증거도 찾았고. 그래서 우리도 더 늦기 전에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번 게임스파르타 300을 통해 대중적인 기반을 다질 생각이다.


Q. 현재 분위기가 다소 찬성 측에 유리한 것 같은데 다시 뒤집을 수 있을까?

공대위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게 생각보다 분위기가 그렇게 궤멸적인 건 아니란 거였다. 아마 찬성 측이 우리를 너무 쉽게 본 거 같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는 찬성측이 전체적으로 허술하다는 거다.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학부모가 많다 보니 WHO가 게임이용장애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면 국내도 WHO를 따라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도 도입하고 그대로 끝날 것으로 본 거다.

그런데 공대위 활동을 하면서 몇 차례 마주치곤 했는데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찬성 측의 통계나 주장에는 어설픈 부분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는 우리 반대 측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지 않나 싶다.

두 번째는 문체부가 강경한 대응을 보여준 게 우리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전 정부처럼 소극적으로 대응했으면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예측하기 어려웠을 거다. 그런데 문체부가 강경하게 반대 입장을 보이면서 보건복지부도 당황한 것 같다. 정부 내에서도 의견충돌이 발생하니 강행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세 번째는 자화자찬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현재도 공대위에 참여하는 단체가 늘어나고 있다는 부분이다. 그것도 게임 협의체뿐 아니라 학계, 산업체 전체가 관심을 보여주고 있어서 든든한 상황이다. 아무래도 게임 협의체만 모였다면 ‘어차피 너희들 먹거리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고 공격을 받을 수도 있을 텐데 여러 단체가 연합을 하니 우리의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여기에 지난 100분 토론을 보고 20~30대 젊은 층이 분노해줘서 우리의 의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 됐다. 이런 여러 정황을 보면 분위기가 썩 불리하진 않다고 본다. 작년에는 학회 중심이어서 정말 비관적이었는데 그것과 비교하면 지금은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정도다.



▲ 게임 중독을 다룬 100분 토론은 게이머들을 중독자로 몰아 분노케 했다


Q. 학생, 학부모, 교사 등으로 이뤄진 아카데믹 길드와 업계 종사자로 구성된 크리에이티브 길드로 구분되는데 이렇게 나눈 특별한 이유가 있나? 또한, 서로 다른 분야에서 시너지를 낳을 거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시너지를 낼까 궁금하다.

한 쪽은 만들고, 다른 한 쪽은 이용하는 쪽이어서 게임을 바라보는 견해가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각의 특성에 따라 나눴다.

크리에이티브 길드의 경우 개발자 중심이기에 자신들이 게임을 개발하면서 어떤 점들이 좋았는지 얘기할 수 있고, 아카데믹 길드에서는 게임이라는 문화의 수용자 차원에서 게임의 순기능을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 게임이라는 하나의 요소를 두고 개발자와 이용자 양쪽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에 공대위의 주장에 설득력이 더해지지 않을까 싶다.


무작정 게임은 좋다, 훌륭하다 이래선 안 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 근거를 게임스파르타 300을 통해 만들 생각이다.


Q. 아카데믹 길드와 크리에이티브 길드 비율은 어떻게 나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아무래도 학부모 입장에서 게임은 좋게 보려야 보기 힘들 텐데, 어떻게 생각하나?

비율은 정하지 않았다. 아카데믹 길드 인원이 더 많을 수도, 더 적을 수도 있다. 한편, 우리 의견에 찬성해주는 학부모님이 적을 거란 건 우리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대신 게임을 직접 이용하는 젊은 층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길 바란다.


Q. 게임질병코드 때문에 최근 화제긴 하다. 매주 2~3개씩 포럼이라거나 토론회가 개최되는데 영양가가 없는 거 같다. 구체적인 행보, 방도에 대해 얘기하기 보다는 결과적으로 업계가 힘을 모으자 하고 끝이다.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면 좀 더 일치단결하지 않을까?

공대위로 모여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명령을 내릴 입장은 아니다. 게임장애 등재 반대를 위해 뭉쳤지만, 각자의 의견이 있지 않나. 그리고 오히려 이런 다양성과 논쟁을 하면서 내부적으로도 의견이 풍부해질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분명히 있다. 바로, 양비론이다. 공대위에 참여하지 않은 일부 단체에서는 현재 사태가 일어난 원인에 대해서 양비론을 거론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도, 공대위 입장으로서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면 찬성 측에 빌미를 줄 수 있다. 게임 단체를 표방하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그런 발언을 하는 부분에 대해선 아쉽게 생각한다.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 (90개 단체)

학회, 공공기관, 협단체 57개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영화학회,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차세대융합콘텐츠산업협회, 한국애니메이션학회, 청년문화포럼 청년정책위원회, 한국VRAR산업협회, 한국VRAR콘텐츠진흥협회,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게임문화재단,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한국모바일게임협회, 문화산업정책협의회, 한국문화콘텐츠라이센싱협회, 한국블록체인콘텐츠협회,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 청년문화포럼 문화예술위원회, 게임인연대, 한국웹툰협회,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문화연대, 한국캐릭터학회, 한국컴퓨터그래픽산업협의회, 한국문화경제학회, 한국e스포츠협회, 부산영화영상산업협회, 부산애니메이션협회, 부산게임협회, 부산정보기술협회, 한국임상게임놀이학회, 콘텐츠경영연구소,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한국문화콘텐츠기술학회, 문화민주주의 실천연대,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부산정보산업진흥원, 가상현실콘텐츠산업협회, 오픈넷, 한국경영정보학회, 데브코리아, 스마트폰게임개발자그룹, 한국생산성학회, 한국정보사회학회, 한국미디어경영학회, 국제지역학회, 한국인디게임협회,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SG길드, 게임물관리위원회, 성남산업진흥원, 게임이용자보호센터, 서울산업진흥원

대학 33개
경희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계원예술대학교 게임미디어과, 공주대학교 게임디자인학과, 동부산대학교 게임컨설팅과, 동서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부, 동서울대학교 게임콘텐츠학과,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동의대학교 디지털콘텐츠 게임애니메이션공학부 게임애니메이션전공, 배제대학교 게임공학과, 상명대학교 게임학과, 서강대학교 게임&평생교육원, 예원예술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 용인송담대학교 컴퓨터게임과, 전주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기술학과, 중앙대학교 게임&인터렉티브미디어 융합전공, 한국IT전문학교 게임스쿨, 호서대학교 컴퓨터정보공학부, 홍익대학교 게임학부, 나사렛대학교 방송영상콘텐츠학과, 전남과학대학교 게임제작과, 명지전문대학교 소프트웨어콘텐츠과, 전주대학교 게임콘텐츠학과, 아현산업정보학교, 가천대학교 게임대학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게임콘텐츠스쿨, 광운대학교 스마트융합대학원 게임학과, 서울예술대학교 디지털아트전공, 강동대학교 만화애니케이션콘텐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인천대학교 컴퓨터공학부,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게임공학부, 부산경상대학교 IT콘텐츠계열, 두원공과대학교 스마트IT학과
▲ 공개된 공대위 참여 단체. 비게임 분야 단체들도 눈에 띄며 나날이 늘고 있다


Q. 게임스파르타 300의 활동 기간은 언제까지로 예정돼 있나?

정해지지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질병코드 이슈가 계속되는 한 게임스파르타 300도 활동할 거다. 만약, 이 이슈가 사라진다면 그때는 내부에서 추후 행보에 대해 논의하지 않을까 싶다. 단체도 그렇지만 이런 활동이라는 게 만들기는 쉽지만 없애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무작정 공대위의 판단만으로 없애는 게 옳지도 않고. 아마 마무리할 시기가 오면 참가자들을 모아 총회를 여는 식이 될 거다.


Q. 풀뿌리 운동이 효과를 본 사례가 있을까?

과거 민주주의 시위의 근간을 찾아보면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 학생들이 서로에게 알려주면서 민주주의가 뭔지 전파했고 그게 축적돼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스파르타 300을 통해서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닌, 오락이고 문화라는 게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Q. 끝으로 게임스파르타 300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게이머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게이머들이 질병코드 도입에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표현에 대한 탄압, 자유에 대한 탄압인데 왜 그렇게 안 보는지 모르겠다. 게임이 지금처럼 주류가 아니었던 시절이라고 이런 오락에 빠지는 사람이 없던 건 아니다. 당구장에서 밤새는 사람이 수두룩했고 낚시에 빠져서 처자식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갖고 누구도 중독, 장애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 것과 비교하면 평일에 1~2시간 하고 주말에 5~6시간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닌데 부모들은 또 왜 그렇게 난리인지, 하지 말라고 사회가 강요하는지 답답하다.

이번 질병코드 이슈는 한편으론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억압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젊은 층이 분노해야 하는데 의외로 그런 게 없어서 의아하다. 개인적으로는 촛불 혁명처럼 게이머들이 전부 들고일어나서 그런 걸 해야 했는데 왜 그러지 않는지 묻고 싶다. 권리를 뺏는 건데 왜들 인터넷에서만 활발하고 직접 나서지 않는지….

질병코드 이슈는 현재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은 게이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게 없어서 나서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이후에는 검열이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 게이머들도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서길 바란다.



▲ 위정현 학회장은 게이머들이 행동에 나서길 촉구하며 인터뷰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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