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C2020] 게임의 '접근성'은 어떻게 높일까? - 보더랜드3의 사례

게임뉴스 | 김규만 기자 | 댓글: 2개 |



시설, 교통, 제품, 서비스, 권리, 정보통신망 등의 환경을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정도를 뜻하는 접근성(accessibility)은 게임에서도 그 중요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개발자들의 고민은 인디게임부터 대형 게임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EA의 경우 접근성만을 위한 전담 부서를 두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GDC 2020 버추얼 토크를 통해 보더랜드3 속 접근성 요소에 대한 발표를 맡은 기어박스 소프트웨어의 앤드류 베어(Andrew Bair)리드 프로그래머는 게임 개발 초기부터 접근성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개발팀 전체가 노력해야 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이야기하며 강연을 이어나갔다.

지난해 출시된 기어박스의 신작, 보더랜드3는 단지 색맹, 색약자를 위한 색상 설정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접근성 관련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앤드류 베어 리드 프로그래머는 이번 강연을 통해 폐쇄자막(Closed Caption, 청각 장애인을 위해 실시간으로 모든 음성 내용을 문자로 방송해 주는 서비스) 및 아이템 레어도 인식을 높이기 위한 기능, 머리 움직임 조절 기능 등을 사례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접근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보다 더 많은 게이머들이 자신의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접근성은 꼭 생각해야만 하는 요소입니다. 자신이 디자이너라면 UX를 높이기 위한 고민을 할 테고, 비즈니스와 관계된 직종에 있다면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함일 수 있겠죠. 저 같은 프로그래머들은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는 기능을 게임에 추가하고 싶을 겁니다"

앤드류 베어 리드 프로그래머는 유비소프트의 FPS '파크라이 뉴 던'의 플레이어 중 97%가 자막 기능을 켜고 게임을 했다는 통계를 들며 접근성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와 함께, 보더랜드3를 처음 개발하기 시작하며 접근성 요소를 더 많이 추가하고자 한 계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나갔다.

보더랜드3와 접근성의 여정은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인 2017년에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기어박스 소프트웨어의 개발자들은 새로운 엔진에 적응하기 위해 시달리고 있었는데, 특히 UI를 개발하는 디자이너들이 기존에 어도비 툴에서 작업하던 프로젝트를 UMG(Unreal Motion Graphics UI Designer)로 옮기는 데서 많은 어려움을 표했다.

이처럼 새로운 엔진에 대한 적응 과정이 계속 길어진다면 도저히 출시 일정을 맞출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한 기어박스는 2017년 6월이 되던 때에 차라리 보더랜드3의 UI를 백지상태에서 처음부터 만들기로 결정했다. 시리즈로는 3편인 후속작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UI를 제작할 때는 기반이 되는 코드도, 기존 작업물도 없이 시작한 것이다. 앤드류 베어 프로그래머는 "보더랜드1 이후 보더랜드2를 만들 때 걸리는 시간보다 9개월 가량 적은 시간을 들여 UI를 만들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전편들보다 더욱 많고, 세밀함을 자랑했다. 보더랜드3를 통틀어 약 60여 개의 HUD 위젯과 33개의 메뉴가 들어갔는데, 1편과 2편에 각각 HUD 위젯이 30~40개 정도, 메뉴가 약 12개 정도 사용된 것과 비교하면 양적으로도 차이를 보인 셈이다. 게다가, 시리즈 사상 가장 복잡한 스킬 트리 시스템과 인벤토리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스플릿스크린과 4인 코옵 기능을 성공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



▲ 가장 먼저, 접근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하다

보더랜드3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장치를 도입한 가장 첫 번째 단계로, 앤드류 베어 프로그래머는 "언제나 소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컸다"고 조언했다. 이미 촉박한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게임이었던 만큼, 접근성 옵션을 추가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만큼 개발 과정에 포함된 모든 이들의 공감을 얻고,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접근성이라는 단어를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기어박스는 직원이라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채팅방을 개설했다. 앤드류 베어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그 채팅방에서는 정말 아무런 이야기나 나눌 수 있었으며, 잡담도 많았지만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가능한 한 빨리, 가능한 많이 이야기할수록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직급과 직책에 상관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자, 어느새 접근성 개선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테스트 플레이를 하면 꼭 멀미를 하는 QA의 요청이었는데, 게임 내 캐릭터인 '모즈'가 아이언 베어에 탑승했을 때 화면의 흔들림이 너무 심해 멀미가 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피드백을 전달받은 애니메이션 팀은 멀미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실험을 거쳐 지금의 옵션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보더랜드3에서는 머리 움직임과 같은 옵션을 조절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캐릭터가 걸을 때마다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가 흔들리는 정도를 바꿀 수 있다. 3D 멀미를 하는 플레이어라면 머리 움직임 옵션을 완전히 끄는 것도 가능하다.




수천 개의 총기가 바닥에 쏟아지는 것은 보더랜드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나 다름이 없는데, 문제는 너무 많이 쏟아지기 때문에 일부 게이머들의 눈에는 잘 인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있었다.

앤드류 베어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처음 개발팀은 플레이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템의 가시거리나 아이템 정보를 어느 정도로 표시해야 할 것이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되도록이면 이전 시리즈와 비슷하게 하거나, 미니맵에 아이콘을 통해 표시하는 방법 등 여러가지 아이디어 회의를 거쳤지만 마땅히 좋은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현재 보더랜드3에 들어간 레어도에 따라 광선이 올라가는 효과를 달리하는 방법이 사용됐는데, 이 또한 전체 직원들이 꾸준히 의견 개진을 한 효과였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아이템들은 그 희귀도에 따라 표시되는 광선의 크기와 파티클 개수가 다른데, 가장 흔한 흰색 아이템은 광선의 길이도 가장 짧고, 전설 아이템은 광선의 길이도 크며 반짝이는 효과 또한 다른 아이템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결합하기도 한다. 앤드류 베어 프로그래머는 레어도에 따라 달라지는 광선을 본 사운드 팀의 한 개발자가 전설 아이템이 등장했을 때 나오는 효과음을 추가로 만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보더랜드3에 사용된 폐쇄자막 기능을 사례로 들며, 실제 플레이어들에게 테스트를 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할 때 보는 자막과 달리, 폐쇄자막은 청각 장애인을 위해 모든 음성 내용을 문자로 보여주는 자막을 일컫는다. 다만, 게임의 경우 실시간으로 여러 가지 상황이 빠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폐쇄자막을 통해 게임 속 상황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게임의 경험을 저하시킬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이는 보더랜드3 개발에 참여한 이들도 마찬가지로 느꼈던 문제다.

실제로 보더랜드3에 사용된 폐쇄자막의 사례를 살펴보면, 불이 붙은 드럼통이 터지거나 터지기 직전에 자막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알려주는 것이 있으며, 적 몬스터가 공격을 위해 특정 행동을 취할 때에도 자막을 통해 알 수 있도록 표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앤드류 베어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보더랜드3에서 폐쇄자막을 사용한 청각 장애인 게이머들은 해당 기능에 그다지 높은 평가를 주지 않았다. 알려줘야 할 모든 곳에서 자막이 누락되어 좋은 게임플레이 경험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또한, 실제 청각 장애인들은 감정 전달이나 효과음 또한 폐쇄 자막으로 표시하는 것을 선호했다.

앤드류 베어 프로그래머는 "개인적으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테스트에 참여시키고, 그 피드백을 받는 기회가 많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며 폐쇄자막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반대 의견을 존중하자




마지막으로 그는 "언제나 반대 의견에 대한 여유를 남겨 두는 것이 중요하다"며, 때로는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개발 구성원과의 논의를 통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앤드류 베어 프로그래머는 "실제로 위 사례 중 하나인 머리 움직임의 정도를 조절하는 옵션을 개발할 때, 개발팀은 내부적으로 아주 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며, "때문에 접근성을 위한 옵션을 추가적으로 개발하는 것 자체에 대해 납득하지 못한 개발자들도 더러 존재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에 따르면 해당 기능을 추가로 구현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그 기능을 추가한다는 것에 대해서만 인지하고, 거기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받지 못한 이들이었다. 반대 의견을 가진 개발자들 중 하나는 급기야 공공연한 채팅방을 통해 적나라하게 그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는데, 앤드류 베어 프로그래머는 개인적으로 덕분에 논의가 활성화 될 수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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