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심상치 않은 배틀로얄, '콜오브듀티: 워존'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41개 |

'배틀로얄'은 이미 총 쏘는 게임 좀 만든다 싶은 개발사들이 한번쯤은 다 달려든 트렌드다. 이 말은 곧, 배틀로얄에서 쓴맛을 본 개발사가 한둘이 아니란 뜻이다. 현재까지 배틀로얄, 그리고 그 비스무리한 장르 군집에서 살아남았다 할 수 있는 게임은 총 네 종. '배그'와 '포트나이트', '에이펙스 레전드', 그리고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정도다.

콜오브듀티 시리즈를 통해 FPS 장르의 강자가 된 액티비전 또한 시도는 했었다. 지난 2018년, 액티비전은 당시 최신 게임이던 '콜오브듀티: 블랙옵스4'에 '블랙아웃'이란 배틀로얄 모드를 추가했고, 콜오브듀티 시리즈 특유의 게임 감각과 서구권 시장에서의 영향력으로 우뚝 서고자 했다. 어디까지나, 시도는 좋았다.



▲ 나쁘지도, 별다를 것도 없었던 '블랙아웃'

시리즈 특유의 감각과 배틀로얄이라는 장르적 특성의 융합은 썩 나쁘지 않았지만, 내부적 반응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트레이아크는 블랙아웃 모드에 대한 사후지원 업데이트가 없을 거라 빠르게 못박았고, 그렇게 액티비전은 '배틀로얄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바로 지금, '콜오브듀티: 워존(이하 워존)'을 출시하기 전까지 말이다.

출시 직후, 워존은 맹렬한 기세로 지표를 갱신했다. 에이펙스 레전드가 출시 후 하루만에 250만 유저를 유치하며 대기록을 세웠던 것이 무색하게, 워존은 24시간 만에 6백만의 유저 수를 돌파하며 전세계 게임 산업 씬에서도 보기드문 스타트를 보여주었다.

어디 플레이뿐일까?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에서도 워존은 강자들에게만 자리를 내준다는 '저스트 채팅'을 거의 두 배 가까운 숫자로 누르며 시청자수 1위로 우뚝 섰다. 모든 게임이 출시 시점에서는 일종의 '버프'에 가까운 관심을 받게 되지만, 이 정도 수치라면 단순히 출시 반짝 효과라고 하기도 어렵다.



▲ 3월 12일 오전 기준의 트위치 시청자 집계

'워존'은 "배틀로얄 시장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느냐?"라는 시장의 질문에 액티비전이 고민 끝에 내놓은 답변이다. 배그도, 에이펙스 레전드도, 포트나이트도 모두 나름의 답을 지니고 있기에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궁금한 것은 그 답의 내용이다. '워존'은 무엇으로 시장의 돌파를 꾀했을까?


액티비전의 답: 달러 시스템

웬만한 게이머라면 '배그' 정도는 플레이해봤을 것이다. 배틀로얄 장르의 부흥을 불러온 게임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정통의 느낌을 강하게 주는 게임이다. 배경 음악을 생략하고 총소리와 비명만으로 가득 채운 사운드. 야생 느낌의 거친 전장, 그리고 죽는 순간 끝이 나는 절대 법칙. 타 게임에 비해 특별한 점은 없지만, 이렇듯 여러 요소가 모여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의 선을 유지한다. 익숙지 않은 시기에는 저도 모르게 손발이 떨릴 정도. 이 전통적 긴장감은 배그만이 가진 강력한 무기다.

'배그'뿐 아니라, 성공한 모든 게임은 이런 '나름의 게임성'을 지니고 있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독특한 전투 흐름을 가지고 있으며,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는 경쟁이 아닌 생존에 주안을 둔 디자인과 리얼함이 무기다. 포트나이트도 마찬가지. 게임 중 바벨탑을 쌓아가며 공중전을 벌일 수 있는 유일한 게임일 것이다.



▲ 유려한 그래픽도 무기라면 무기다.

이렇듯, 다른 게임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그 게임만의 고유한 맛이 바로 시장의 요구에 대한 그들의 답이다. 액티비전의 첫 시도였던 '블랙아웃'은 솔직히 이런 나름의 맛은 거의 없었다. 어떤 부분은 이 게임같고, 또 다른 부분은 저 게임같은, 장점을 믹스하려다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무언가였다.

이에 대한 액티비전의 고민과 그 결론이 '워존' 안에 그대로 녹아 있다. 워존은 '달러' 시스템을 도입해 기존의 배틀로얄 법칙에 여러가지 변수를 두었다. 기본적으로 맨몸으로 내려와 장비를 파밍하고, 좁혀지는 전장 안에서 살아남아 가는 과정은 똑같지만, 파밍 과정에서 장비와 별개로 현금을 입수할 수 있다.



▲ 현금 다발 휘날리며 FLEX 해버리기

이 현금은 게임 내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데, 아군을 살리거나, 고가의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일반 멀티플레이에서 미리 세팅해둔 별도의 로드아웃을 불러오는 것도 가능하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거나 배틀로얄에 유용한 장비로 미리 로드아웃을 지정해둘 경우 이를 그대로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이 '달러'는 워존의 또다른 모드인 '약탈'에서는 핵심 기능으로 작용한다. 30분 동안 부활 제한 없이 진행되는 이 게임모드에서는 제한 시간이 다 되거나 100만 달러 송금을 달성하는 순간 게임이 마무리된다. 약탈에서는 상대를 사살하는 것 보다 더 많은 돈을 모으고, 안전하게 송금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게임 양상도 판이하게 달라진다.

액티비전이 내놓은 답이 이 '달러'의 개념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냥 인게임 자원이 하나 더 추가된 정도이지만, 이 시스템은 생각보다 더 많은 파생 재미와 게임성을 가져온다.



▲ 장비는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다.


'달러'의 의미: 스토리라인의 파생


"배틀로얄 장르가 왜 인기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근원적으로 접근하면, 배틀로얄이라는 장르가 매 판 색다른 스토리라인을 부여하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 판 단위로 게임이 끊어지는 MOBA의 경우, 탑 뷰 시점으로 나 뿐이 아닌 모든 캐릭터를 관찰할 수 있지만, 배틀로얄은 '나'를 투영하는 하나의 캐릭터를 죽거나, 승리할 때까지 바라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스토리가 생긴다. 저질의 장비로 시작해 인내 끝에 1위를 거머쥐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처음부터 격렬한 전투 끝에 동료를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아 생존해가는 생존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게임 내적 이야기의 흐름은 플레이어의 의도에 따라 결정된다. 게이머라면, 배틀로얄 게임을 플레이할 때 이번 판은 어떤 식으로 플레이할지 흐름을 정할 것이다. 버티면서 승부를 본다거나, 처음부터 전투를 치르며 값진 장비를 얻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 끊임없는 선택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게 배틀로얄 장르의 핵심

하지만, 그 가짓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혼자서 살아남는 경우 아무리 장비를 좋게 갖춰도 결국 혼자 생존해가는 이야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여기서, '달러'가 변수를 만든다. 일반적인 배틀로얄 장르의 경우, 혼자 장비를 잘 파밍했다고 해도 취할 수 있는 행동에 한계가 있지만, 워존은 달러만 있다면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

아군을 되살린다거나, 일반적으로는 쓸 수 없는 특전까지 달린 로드아웃을 소환한다거나, 공중 폭격을 뿌리는 등. 돈만 충분하다면 충분히 상황을 역전하고 다시 재기할 수 있다. 현금의 경우 바닥에 내려놓아 아군에게 증여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아군을 부활시킨 후, 돈을 나눠 로드아웃과 방어구를 모두 갖춘 후 다시 전투에 나설 수도 있다. 달러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 중에는 자가 부활이나, 제한된 영역인 '가스 존'안에서 일정 기간 버틸 수 있는 방독면도 있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전략적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



▲ 열화상 조준경을 들고 가는 것도 가능하다

이 점이 다른 배틀로얄에서는 불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떻게든 혼자 살아남아 돈을 긁어모은 후 팀원들을 부활시키거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모든 현금을 한 사람에게 몰아 탈출시키고 두 사람이 시간을 벌어 다음 기회를 노리는 전략을 사용할 수도 있다.

매 판마다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 배틀로얄 장르의 매력이지만, 그마저도 수백, 수천판을 거치면 어느 정도 비슷한 흐름이 생긴다. '달러'는 이 이야기의 흐름을 비틀 수 있는 변수가 되어 일반 배틀로얄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의 파생'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지표로 보는 결과: 답은 통했다

이런 '달러' 시스템의 도입은 여러모로 긍정적 지표를 만들어냈다.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역시 인터넷 방송. 일반적으로 배틀로얄 장르의 게임방송은 꽤 인기가 높은 편이다. 게임 자체가 깊은 몰입과 집중, 긴장을 추구하는 만큼, 시청자 입장에서도 스트리머의 플레이에 감정 이입이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플레이를 보다 다채롭게 만드는 '달러 시스템'의 효과는 이미 시청자의 수로 입증이 되었다.



▲ 무료 게임이라는 점도 한 몫 했다

보는 재미 뿐만 아니라 '직접 하는 재미'도 마찬가지. 워존에서의 플레이는 본작인 '콜오브듀티: 모던 워페어'의 멀티플레이 진행 진척도에도 반영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많은 동기부여를 가지고 있으며, 서브 모드인 '약탈'의 경우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제한 없이 부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한 긴장이 싫어 배틀로얄 장르를 피하는 게이머들도 어렵지 않게 플레이를 시도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액티비전의 답은 성공이라는 허들을 통과하기엔 충분했다. '역대급'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 6백만의 게이머 모집도 그 답이 될 것이다. 물론 그 배후에는 그간 콜오브듀티 시리즈가 쌓아온 많은 팬들과 개발 노하우가 버티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런 지표를 기록할 수 없다는 건 이미 '블랙아웃'이 한 차례 증명했다.



▲ 고민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일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장르의 유행에만 따라가서는 그냥 그 장르의 많은 게임 중 하나가 될 뿐이란 것. 액티비전이 선택한 열쇠는 '달러 시스템'이었지만, 게임에 독창적인 게임성을 부여할 수 있는 장치나 시스템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수많은 것 중 무엇 하나도 공짜로 얻을 수는 없다. 액티비전 정도 급의 거대한 개발사조차 한 차례의 고배와 고민 끝에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건, 하나를 만들더라도 이전과는 다르게 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민과 참오가 따라야 한다는 게임 산업의 절대 법칙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끔 만드는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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