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VR의 또 다른 가능성을 만났다

칼럼 | 박광석 기자 | 댓글: 2개 |



지난 6일 MBC에서 방영된 VR 휴먼다큐멘터리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너를 만났다'는 지병을 앓고 있던 딸을 떠나보낸 어머니가 VR 기술을 통해 딸을 다시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반년 이상의 촬영 기간과 1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이 TV를 통해 방영된 지 벌써 1주일도 더 지났지만, 세간의 뜨거운 관심은 쉽게 식을 줄 모르는 모습이다. 어머니가 VR 기술로 재현된 딸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을 편집한 클립 영상은 어느새 조회수 1,400만 회를 넘어섰고, 방송 출연자들은 물론 방송에 사용된 VR 기술과 그 기술을 만든 개발자들까지 함께 주목받고 있다.

방송을 지켜본 이들의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매번 좀비를 잡거나 총을 쏘는 등의 뻔하고 식상한 VR 게임에서 탈피한 것이 좋다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심리 치료' 측면에서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의견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오히려 허무할 것 같다거나,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이를 통해 불편을 겪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눈에 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방송을 바라보는 시선은 둘로 나뉘었지만, 이 모든 것이 VR 기술에 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비트세이버'와 같은 몇몇 인기 VR 타이틀을 제외하면 사실상 0에 수렴할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VR이, 방송을 계기로 커뮤니티 전반에서 계속 회자된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 방송에 관한 관심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평소 VR 업계의 변화 과정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기에, 이번 방송이 국내 VR 업계에 가져다줄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VR 기술을 활용한 더 다양한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이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봐 주는 대중의 시선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려의 마음도 지울 수 없었다. 크게 뜬 하나의 콘텐츠를 그대로 복제하는 형태의 콘텐츠 양산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비트 세이버'의 큰 성공 이후에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형태의 VR 게임이 줄줄이 등장한 바 있다.

실제 업계인들의 의견도 비슷한 양상이다. 취재 도중에 만날 수 있었던 VR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VR 콘텐츠 개발사인 비브스튜디오스가 '너를 만났다'를 통해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시도를 보여준 것은 분명하나, 이후엔 예산을 따내기 위해 선례를 베끼는 수준에 머무르는 VR 개발사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물론 비슷한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너를 만났다' 방송을 예로 들어보자. 해당 방송은 1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사용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고가의 VR 장비들이 등장할 뿐, VR 속 인물과는 별다른 상호작용을 할 수 없는 단순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그쳤다. 편집을 통해 마치 가상현실 속 아이와 부모가 서로 소통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해냈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데에는 충분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것이 일회성 콘텐츠에 그친다는 점에는 부정할 길이 없다.

만약 고가의 기기를 들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 있는 추억들을 VR로 재현해낼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한다면, 이것은 '너를 만났다'의 그것을 넘어설 정도의 의미있는 VR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더욱 창의적이고 개선된 기술이 계속 더해질 수 있도록 항상 엄격한 잣대로 바라보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 과학기술정통부가 발표한 '2020 디지털콘텐츠산업육성 투자계획'

과학기술정통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지난 1월, 2020년도 디지털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한 추진 계획안을 발표했다. 이 계획안에는 VR·AR과 같은 실감콘텐츠의 본격적인 확산을 위한 디지털콘텐츠 산업 육성에 총 1,9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5세대 이동통신의 대표적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VR과 AR 콘텐츠 제작 지원, 그리고 산업 인프라 조성에는 이중 659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디지털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해 작년의 1,462억 원보다 약 30% 증가한 1,900억 원의 예산 투입이 예고된 지금, 올해에도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진 수많은 VR 개발사들이 편성된 예산을 차지하기 위해 VR 콘텐츠 개발에 뛰어들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 쉽고 편한 모방의 길보다 어렵고 고된 길인 '창조의 영역'을 바라보며 도전하는 VR 개발사들이 정당한 대가를 얻고, VR의 선진화를 위해 일조하는 긍정적인 선순환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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