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배려의 '색깔'

칼럼 | 양영석 기자 | 댓글: 7개 |



얼마 전, 정확히는 대략 한 달 전쯤 일 것이다. 친구와 같이 게임을 하던 중 의아한 현상을 겪었다. 친구가 계속 같은 패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했고, 수차례 자신은 제대로 플레이했다고 주장했다. 뻔뻔하게 실수를 하고도 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친구가 아니었기에, 다소 심각하게 우리가 공략을 잘못 알고 있는지 진행을 멈추고 논의를 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 틀리지 않았다. 개발사가 오답이라고 한 플레이를 했지만 오답이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색'이었다. 친구는 선천적으로 색약을 앓고 있었고 이로 인해 적색과 녹색의 구분이 힘들었다. 때문에 적색에 맞춰야 할 패턴에 녹색의 기믹을 수행하거나 이를 반대로 진행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과거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할 때, 다른 장르의 게임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적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겪지 못해 알지 못하는 불편함을 겪는 플레이어들이 있다는 점에, 깊게 생각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잘 모르겠지만, 화면 너머에서 함께 게임을 즐기고 있는 누군가는 나와 환경이 다를 수 있다.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변화로 컨트롤하는 방식이 다르거나, 인식하고 있는 세계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의 콘텐츠나, 모든 게임들은 대부분 비슷한 환경과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제작된다. 적색과 녹색의 구분이 힘든 게이머들도, 게임을 조작하는 방법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도 말이다.



▲ 색약의 경우, 게임속에서도 구분하기 힘든 것들이 존재한다.

서울대학교 아산병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남성은 약 5.9%, 여성은 0.44%가 선천적 색각 이상(색약)을 앓고 있다. 2020년 통계청이 발표한 총 인구 5,178만 명(남성 2,595만 명, 여성 2,583만 명)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남성 색각이상자는 153만 명, 여성 색각이상자는 10만 명으로 총 163만 명에 달한다. 인구를 넘어, 전체 게이머 인구의 약 6% 이상은 선천적 색각 이상을 앓고 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만큼 색각 이상은 비교적 인구가 많은 편에 속하는 질환이고 많은 사례가 보고 된다. 이전부터 훨씬 많은 요청이 있기에, 현재도 제법 많은 게임들에서는 '색약 모드'를 도입했다. 색약 모드 역시 많은 연구와 사례를 통해 발전했다. 대표적으로 도형을 이용하여 구분을 쉽게 하거나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굳이 '색'이 아니어도 핵심적인 부분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러한 색약 모드는 발전이 빠르게 된 편에 속하고, 오히려 특정 게임에서는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해 일부러 색약 모드로 플레이하는 게이머들도 있는 수준까지 보급됐다.

색약뿐 아니라 더 큰 시각 장애를 위한 장치도 마련된 게임도 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는 출시 이전부터 너티독의 로버트 크레켈 오디오 리더가 사운드 옵션을 통해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밝혔고, 기본적인 문자 음성 변환을 함께 제공했다. 이러한 장치 자체는 접근성을 높이는 일환이자 노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러한 색약 모드 혹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콘텐츠의 제공은, 게임 내적으로 콘텐츠의 제공과 접근성을 높이는 과정이자 개선 사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게임사 스스로 게이머들의 다양한 접근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 XAC는 '확장'을 고려해 만들어진 새로운 컨트롤러다.

그러나 색약만 생각해 볼 일이 아니다. '조작'을 하는 경험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물론 이는 단순히 게임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컨트롤러'를 생산하는 업체 혼자서도 해결할 수 없다. 이는 제작자, 사용자가 모두 심도 있게 연구와 개발, 피드백을 통해 개선을 하면서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조작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다행히도, 이런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낸 기업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작한 XAC(Xbox Adaptive Controller), 적응형 컨트롤러는 모두가 칭찬할 수 있는 결과물이다. 일단 게이밍 하드웨어 제조사에서, 장애인 게이머의 요구를 직접 해결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는 단순한 조작을 할 수 있게 제작하고, 높은 확장성을 갖도록 만들어 장애를 가진 게이머들이 직접 자신의 환경에 맞춰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처음부터 이런 컨트롤러가 없던 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장애인 게이머들을 위한 컨트롤러는 일종의 의료기기로 분류되었고, 이에 접근성이 매우 떨어졌다. 제한이 되는 부분도 많았고 확장도 잘 안됐지만, 가격은 고가에 형성되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XAC는 이 종합적인 어려움을 스스로 개선에 나선 쪽에 가깝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XBOX 라인업의 기기들과 맞춘 일관성 있는 디자인으로 '기타 기기'로 분류되지 않는 느낌을 주도록 신경을 썼고, 게이머라면 모두가 설레는 '언박싱'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박스 디자인과 구조를 연구했다. 결론적으로 '게이머'가 느낄 즐거운 경험을,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확대한 셈이다.



▲ SFL 팀 인페르노. 왼쪽부터 Brolylegs, JB, Punk.

이러한 콘텐츠 개선과 장비의 개발로 보조한다 해도, 개발팀이 의도한 게임 플레이 기획의 100%를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하기는 한다. 이를 최대한으로 배려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이들의 취향, 성향, 사상, 생각 모두를 이해하며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는 존재하지 않는다. 탄생 이래 아직도 모발과 모근이 사라지는 현상을 극복하지 못한 인류가 모든 장애를 단시간에 극복할 수 있을 리도 없으니 명확한 현실적 한계라고 하겠다.

앞서 소개한 색약 모드, 문자 음성 변환, 그리고 어댑티브 컨트롤러와 같은 요소들은 이러한 차이로 인해 불편함을 겪는 플레이어들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확대하려는 노력에 가깝다. 그만큼 모두에게 게임 고유의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개발팀의 노력이자, 이를 지원하지 않는 게임사들도 본받을만한 부분이랄까. 마이크로소프트의 XAC뿐만 아니라, EA스포츠도 '접근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지원과 개발 및 연구를 맡은 개발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로 힘을 쏟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기존 콘텐츠에 '추가'하는 부분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콘텐츠나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부터 계획되어야 한다. 기획과 개발 과정에서 인식하기 쉬운 도형, 혹은 방향으로 명확하게 색이 아닌 '시각적 구분'을 할 수 있는 디자인을 채용하거나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등의 방식,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핑' 시스템의 심화 등으로 말이다. 공연, 영화, 관람 등 여러 문화 콘텐츠에서도 '배리어 프리(barrier-free)'는 이제 단순히 '배려'가 아니라 시대적 흐름에 가깝다. 게이머 역시 과거보다 훨씬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인 지금, 게임에서도 '배리어 프리'가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이런 '경험의 확장'을 고려하고 개발하는 게임도 많지만, 현재도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나 국내 게임들은 색약 모드를 지원하는 게임 자체가 매우 드물며, 몇 년째 거의 걸음마 단계에 가깝다. 최근에는 이를 고려하는 움직임과 개선, '접근성 옵션'의 확대에 대한 언급과 개발 사례가 몇 차례 보이긴 하지만 앞으로 더 많아져야 한다.



▲ '퍼즐앤드래곤'의 색약 지원 모드.



▲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다양한 색약 모드를 지원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류가 선천적과 후천적 장애를 단기간 내로 모두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완벽하게 모두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게임도 없을 것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장애를 가진 게이머들도 스스로 노력하면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스트리트파이터5의 'BrolyLegs'도 EVO 대회에도 꾸준히 참가했고, 그랜드 마스터 등급을 달성하고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있고, 최근에는 국내 게임에서도 청각 장애인 게이머를 도운 일반 게이머 집단도 있다. 여전히 우리가 신경 쓰지 못한 곳에서도 이들은 계속해서 게임을 즐기고 있고, 이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고 즐거움을 나누고자하는 게이머들의 관심도 있다. 물론 이들에 대한 관심도 더욱 많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지라도, 더 나은 경험을 위해서 콘텐츠와 환경을 개선하고 정비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장애를 가진 게이머들이 더 나은 경험을 느낄 수 있도록 연구와 개선이 지속되어야 한다. 콘텐츠나 기능들에 대해서도 고민과 연구를 멈추지 말고, 사용자와 제작자 모두 소통하며 더 나은 접근성 옵션들을 찾아나가야 한다. 이런 활동이 단순한 사회공헌차원과 브랜드 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진정한 경험의 확장'이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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