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저가 직접 써내려가는 진화의 역사, '앤세스터: 인류의 여정'

인터뷰 | 허재민 기자 | 댓글: 16개 |


▲파나쉬 디지털 게임즈의 파트리스 데질레(Patrice Désilets) 대표

처음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모두 그들이 생존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파나쉬 디지털 게임즈의 첫 게임, '앤세스터(내용수정: 21시 59분): 인류의 여정(Ancestors: The Humankind Odyssey 이하 앤세스터)'는 인류의 첫 시작을 다루는 3인칭 오픈월드 서바이벌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인류의 근원이었던 유인원에서 시작해 직접 탐험하고 체험하며 진화해나간다.

소재는 특이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플레이하는 게임일까.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가지고 파나쉬 디지털 게임즈의 파트리스 데질레(Patrice Desilets) 대표를 만났다. 그는 유비소프트에서 '어쌔신 크리드', '어쌔신 크리드 2' 등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개발을 이끌었으며, '페르시아 왕자: 시간의 모래' 개발에 참여한 바 있다.

어떻게 진화할지, 멀리 떠나볼지, 안전하게 지낼지, 버섯을 먹어볼지, 진화를 언제 할지, 아니면 아예 진화하지 않고 안주할지. '앤세스터'는 플레이어가 직접 써내려가는 서사시다. 파트리스 데질레 대표는 '앤세스터'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인터뷰를 통해 게임플레이부터 그의 개발 철학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어쌔신 크리드' 디렉터가 본 역사의 시작
'진화'라는 소재를 다루게 된 계기는?


'앤세스터'는 소재가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는데. 진화라는 소재를 다루게 된 계기가 있나.

파트리스 데질레 : 파나쉬 디지털 게임즈를 설립하고, 정해져 있었던 것은 재미있는 3인칭 오픈월드 게임을 만들자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먼저 그럴듯한 3D 환경과 게임 메커니즘을 구상해나가기 시작했다. 근데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더라. "넌 역사를 다뤄왔던 사람이잖아. 역사를 다루는 어쌔신 크리드를 만들어왔잖아. 이번에도 역사를 기반으로 해봐!"라고.

말이 쉽지, 역사를 다루려면 당시 시대와 문명까지 얼마나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다가 갑자기 불현듯 떠올랐다. 선사시대. 광활한 자연에서 우리 스스로 살아남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아주, 아주, 시작의 이야기를 다루자고 생각했다. 나무를 타던 우리가 어느 순간 내려와 두 다리로 걷게 되는, 거의 마법과 같은 이야기를. 그렇게 파나쉬 디지털 게임즈의 35명의 팀원들이 '앤세스터'를 개발하게 됐다.



개발 규모가 크지 않은데, 이전에 대형 게임사에서 개발을 해왔던 만큼 힘든 점은 없었나.

파트리스 데질레 : 어떤 면에서는 힘들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니었다. 힘든 부분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앤세스터'에는 대단한 전투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종족을 만나지도 않으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구현하고 싶었지만.

작은 팀에서 작업해본 경험이 없는 건 아니라서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다.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를 개발할 때 당시 팀 규모는 40명뿐이었으니까.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무엇보다도 모두가 함께 게임을 개발한다는 점이 좋다. 누가 보스고, 누가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오히려 작은 팀이라서 쉬운 것 같다.





'앤세스터'의 부족처럼, 함께 진화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파트리스 데질레 : 하하. 맞다. 하나의 클랜처럼, 우리 팀은 점점 나아지고 있고,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렇게 쇼파에 앉아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노트북으로 받아적는 것 모두, 이 멋진 선조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니까.


갑자기 이 모든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파트리스 데질레 : 그치(웃음)?


사전 조사 단계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땠나.

파트리스 데질레 : 2년정도 걸렸다. 그땐 팀 자체도 훨씬 작아서 6명 정도였는데. 처음 게임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면서, 정말 과학에 맞는 게임으로 구상했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게임이 정말 지루하더라. 그래서 조사한 자료들은 한쪽에 치워버렸다. 기본적으로 이해했고, 굳이 얽매일 필요는 없으니까.

중요한 것은 게임이다. 게임으로서 재미있는가. 난 학자도, 인류학 교수도 아니다. 게이머들을 대학 강의실로 데리고 오려는 것도 아니고, 게이머들이 공부를 하려고 게임을 켠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게임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워가는 것은 가능하다. 어떤 유저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전에는 어땠어, 이때는 이랬어, 라며 이야기하기도 할 것이고.



어이, 호모 사피엔스. 살아남을 수 있겠어?
플레이어의 행동은 모두 진화에 반영된다




실제로 어떻게 플레이하는 것인지 궁금한데, '앤세스터'의 게임플레이를 소개하자면?

파트리스 데질레 : '앤세스터'는 3인칭 오픈월드 서바이벌 게임으로,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한 무리를 플레이하게 된다. 무리의 구성원들을 바꿔가면서 플레이할 수 있는데, 실질적으로 게임 플레이는 캐릭터 하나를 조종하는 방식이다. '앤세스터'는 한 명의 히어로가 모두를 구하는 식의 게임이 아니다. 진화를 해나가는 종족의 이야기다.

플레이어는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전투도 하면서 세계를 탐험해나가고, 게임은 이러한 플레이어의 행동을 분석한다. 이를 토대로 플레이어는 캐릭터와 종족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고, 자손을 낳아 번식하면 진화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다.



진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파트리스 데질레 : 실제와 똑같이,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되고, 어른은 늙어서 노인이 되고, 노인은 언젠가 사망한다. 그 기본적 사이클에 진화라는 새로운 레이어를 추가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진화를 통해서 아예 다른 종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행동을 하다 보면 미션을 클리어하게 된다. 특수한 버섯을 발견했다던가, 뱀의 공격을 회피했다던가, 도마뱀을 사냥했다던가. 각 미션을 수행하면 일정한 시간을 획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버섯을 발견하면 10만 년을 받을 수 있고, 사냥을 하면 25만 년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어느정도 진행하고 나면 다음 종족으로 진화할 수 있게 되고, 진화하면 전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종족으로 시작하게 된다. 수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같은 무리를 플레이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나(웃음). 진화 후에는 새로운 종족을 플레이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능력들을 찾아 나가게 된다. 사냥, 채집할 수 있는 요소들도 달라진다.



뇌의 뉴런으로 구성된 스킬트리가 인상적이었다. 행동을 하면 이 스킬트리가 해금되는 방식인가.

파트리스 데질레 : 그렇다. 행동에 맞춰서 뇌의 뉴런 시스템을 성장시켜나갈 수 있다. 게임을 디자인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 게임 속 스킬트리의 구조가 뉴런 구조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화의 시점은 플레이어가 결정할 수 있는 건가? 그전 종족에서 더 많은 스킬을 해금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을 수도 있는데.

파트리스 데질레 : 물론이다. 진화의 미션 중 하나만 클리어하면 진화는 언제든 할 수 있다. 진화를 하게 되면 장소부터 종족까지 바뀌게 되므로, 이점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한다. 변화가 싫다면 진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 '앤세스터'는 정해져 있는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게임이다.

그리고 묻고 싶다. "어이, 호모 사피엔스. 네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네 조상들이 해냈던 것처럼?"



음, 나는 못할 것 같다.

파트리스 데질레 : 재미있는게, 이렇게 물어보면 다들 못한다고 답하더라. 난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사실 생존본능은 우리에게 아직 숨겨져 있다. 이걸 해도 괜찮을까, 이렇게 해도 죽지 않을까.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면서 배워나간다. 물론 때때로 독버섯을 먹고 치료제를 찾지 못해서 죽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말이다(웃음).

앞서 말했듯, '앤세스터'는 플레이어가 만들어가는 게임이다. 부족의 어린아이를 플레이할 수도 있고, 노인을 플레이할 수도 있다. 혼자 무리에서 벗어나 멀리 떠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행동 속에는 '두려움'이 동반한다.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도파민만 일정하게 유지해준다면 이겨낼 수 있을 거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언급해서 궁금하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게임에서는 맵을 보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 않나.

파트리스 데질레 : '앤세스터'에는 미니맵이 없다. 아예. 이전에 플레이 테스트를 했을 때 어떤 유저가 코멘트를 남겨줬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게임을 하다가 길을 잃어버렸다. 근데, 내 잘못이다." 왜냐면 현실에서는 아무도 정글 한복판을 대책 없이 달려나가지 않으니까. 길을 잃는 게 당연하다. '앤세스터'를 통해서 그들이 겪었던 모든 것들을 유저들이 함께 겪어보길 바랐기 때문에, 이렇게 구성하게 됐다.


생존에 필요한 요소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앞서 도파민을 언급했는데.

파트리스 데질레 : 몇가지 요소가 있다. 기본적으로 먹고, 자고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고. 생명력은 얼마나 있는지, 무리에는 몇 명이 남아있는지, 기분 상태는 어떤지, 모두 HUD에 나와 있기는 한데,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앤세스터'를 제일 잘하는 플레이어일 텐데, 자주 HUD를 꺼놓고 플레이하곤 한다.


우리는 어떻게 진화할까
파트리스 데질레 디렉터가 본 인류의 미래




유저의 플레이가 어떻게 진화하느냐에 영향을 주기도 할까?

파트리스 데질레 : 영향을 준다. 하지만 갑자기 팔이 네 개가 된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앤세스터'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이야기니까.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서 어떤 스킬은 발전하고, 어떤 스킬은 도태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높이지 않는다면 그냥 힘만 센 동물일 뿐이니까. 인간은 신체적으로 특별히 뛰어난 부분이 딱히 없지만, 그렇게 진화해왔다. 아, 하나는 잘한다더라. 장거리 달리기.

어... 여전히 개인적으로는 모르겠다. 한 3분 뛰다 보면 앉아야 하는 사람이라.

파트리스 데질레 : 하하. 나도 흡연자라서 이해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보다는 오래 달릴 수 있다더라. 현대의 인간 이전까지는 그게 우리의 강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고, 함께 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앤세스터'가 한 사람이 아닌 무리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화를 진행하기 전에 자손을 번식하고 늙어가는 사이클에서도 조금씩 변화해간다는 것을 볼 수 있을까?

파트리스 데질레 : 물론이다. 때때로 아기들은 새로운 특징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전까지는 달걀을 먹으면 역겨워했는데, 날계란을 먹고도 역겨워하지 않는 아이들이 생겨난다든가. 어떤 아이들은 더운 곳에서도 잘 행동할 수 있다든가.




특정한 엔딩이 정해져 있나?

파트리스 데질레 : 있다. 마지막 종족까지 진화를 마무리하고 나면 끝나는 방식이다. '앤세스터'는 총 3부작으로 되어있으며, 언젠가 우리의 모습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번 작품은 그중 가장 첫 번째 부분인 1000만 년 전부터 200만 년 전까지를 다루고 있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시'에 이르면 마무리된다.


3부작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한데, 미래의 모습, 우리가 앞으로 변해갈 모습을 다뤄볼 생각은 없나.

파트리스 데질레 : 흥미롭기는 하지만, 없다. 지금까지의 수십억 년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울뿐더러, 진화가 이루어지려면 아주, 아주 긴 시간이 걸리니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했던 종은 호모 에렉투스로, 대략 230만 년을 살아남았다. 우리는 고작 20만 년 정도 됐다. 앞으로 수백만 년이나 더 가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가 사는 지구를 파괴하지만 않는다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게임과 무관하게, 지금으로부터 수백만년 후 인류가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파트리스 데질레 : 후, 사실 모르겠다. 생존해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구인으로서 슬프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동안 지구를 파괴해왔으니까.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시작됐을 때부터 우리는 지구를 파괴해왔다. 이전까지는 거대한 고릴라도, 캥거루도 지구 상에 존재했다. 하지만 느렸기 때문에 인간들에 의해 사냥당했고, 멸종해버렸다.

그때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고 했다.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가.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앤세스터'를 구상하면서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 중 하나도 이와 연관되어있다. 우리는 결국 동물이고, 아주 처음부터 진화해왔고, 모두 자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그만큼 중요하다고. 물론, 개인적으로 희망은 품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적응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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