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 방의 승부, 극사실 대전 액션 '헬리쉬 쿼트'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3개 |

우리는 그동안 칼을 너무 우습게 본 것 아닐까...?


'헬리쉬 쿼트(Hellish Quart)'는 지난 2월 17일, 얼리 억세스 딱지를 달고 세상에 모습을 보였습니다. 온갖 게임 장르 중에서도 이젠 꽤 매니악해져버린 대전 액션 게임이면서, 동시에 '극사실주의 검술'이라는 흥행과는 영 먼 거리에 있는 컨셉을 달고 나타났죠. 영상을 봤을 때 까지만 해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주의를 표방한 게임 치고 대중적 재미까지 휘어잡은 게임은 지극히 드무니 말이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 이거 생각보다 더 재밌습니다?



게임명 : 헬리쉬 쿼트
장르명 : 대전 액션
출시일 : 2021.02.17.
개발사 : 쿠볼드
서비스 : 쿠볼드
플랫폼 : PC(스팀)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칼은 공평하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헬리쉬 쿼트는 극사실주의를 표방합니다. 체력 바 따위는 없습니다. 세상 어느 싸움에 체력 바가 있겠습니까? 집에서 석달 열흘을 자다 나온 사람도 잘못 맞으면 주먹 한 방에 뻗습니다. 애초에, 이 게임은 체력바가 필요 없습니다. 등장 인물 모두가 사실적인 '인간'들이고, 이들이 쥐고 있는 칼도 장난감이 아니니까요.

헬리쉬 쿼트는 짧게는 한 방에 승부가 갈립니다. 내가 공격한 부위, 공격 당할 시 상대방의 움직임, 공격 방향 등에 의해 결과가 조금씩 달라지긴 합니다만, 제대로 카운터가 터지면 찌르기 한방에 상대가 누워 버립니다. 엄청난 쾌감이죠. 물론, 반대로 그 한 방에 내가 누울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허망함이죠.



▲ 베었지만 베였다...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대전 액션 게임인 '모탈 컴뱃'을 봅시다. 각종 신체 부위가 뎅겅뎅겅 날아다니는 게임이지만, 모탈 컴뱃의 등장인물들은 웬만한 초인보다 더 엄청난 내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기 두세개쯤 파열되도 잽싸게 움직이고, 무릎뼈가 아작이 나도 발차기를 날립니다. 모탈 컴뱃의 페이탈리티가 잔인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정도로 상대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분명 다시 일어나서 덤빌 테니까요.

반면 헬리쉬 쿼트의 등장인물들은 개복치가 따로 없습니다. 현실을 기준으로 하면 얕은 칼 몇 대 정도는 맞고도 몸으로 때우는 용감한 이들입니다. 하지만 공중 콤보를 두들겨 맞아도 다시 일어나고, 몸이 반으로 접혀도 입 한번 쓱 닦고 다시 자세를 잡으며, 불에 태워지고 전기 찜질을 당해도 멀쩡하게 일어나는 다른 대전 액션의 캐릭터를 생각하면 이런 하루살이가 따로 없습니다.



▲ 하단이 약한 친구구먼



▲ 어이쿠...ㅠㅁㅠ

게다가 칼질은 또 얼마나 휘적휘적하는지, 다른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칼부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초라함이 있습니다. 저 휘적거림이 실제로는 엄청나게 정교한 검술이며, 인류 역사의 위대한 싸움꾼들이 쌓아올린 금자탑이란 건 머리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잖아요. 게임에서는 그냥 휘적거림으로 보일 뿐입니다.

굳이 게임을 하지 않아도, 영상으로만 봐도 이 정도는 보입니다. 한 방 맞으면 지는 게임이고, 검술 또한 사실주의로 만들어져 뭔가 안 멋진 게임. 그 때문에, 사실 많은 이들에게 어필하긴 힘들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1500개가 넘는 리뷰 중 95%를 넘는 리뷰가 이 게임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눈으로만 봐서는 보이지 않는 재미가 분명 있다는 뜻이죠. 지금부터 설명할 부분이 바로 그 '재미'입니다.



▲ 영상보단 스크린샷의 박진감이 더 강한 묘한 게임



대전 액션의 '근본'으로

'모르면 맞아야지'

대전 액션에 입문하는 게이머들이, 자신을 꼬신 고인물들한테 두들겨 맞으면서 그만 하라고 애원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두들겨 맞는 말이죠. 숱한 게이머에게 공포를 심어준 게임 '철권'을 예로 들어 봅시다.

'철권7' 기준으로 캐릭터가 50종입니다. 각 캐릭터가 적게는 60개부터 많게는 150개가 넘는 기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기술에는 애니메이션과 피격, 방어 딜레이 프레임이 있습니다. 내 공격을 적이 막았을 때 발생하는 빈틈, 맞았을 때 발생하는 빈틈이 있죠. 반대로, 기술을 헛쳤을 때는 내 캐릭터에 딜레이 프레임이 발생합니다.



▲ 헬리쉬 쿼트의 기술은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이걸 잡아채는 딜레이 캐치 기술들이 있습니다. 발동이 빠른 기술은 10프레임, 0.17초만에 발동되며, 캐릭터마다 11프레임, 12프레임, 13프레임 등 상대의 헛점을 노릴 기술들이 있습니다. 운이 좋아서 상대가 공중에 뜨면? 이 때는 빡세게 외운 공중 콤보를 써야 합니다. 운이 더 좋아서 상대가 벽으로 몰리면? 벽 콤보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알아야 할 게 많은데 모르면 맞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복잡함을 근본까지 파고들면 결국 가위바위보입니다. 공격이냐, 방어냐, 헛점을 노리고 반격이냐의 반복이죠. '헬리쉬 쿼트'는 이 근본을 강조합니다. 상대를 공격하지 않을 땐, 상대의 공격을 알아서 방어합니다. 내가 공격할 때는 빈틈이 드러나며, 상대의 방어가 어느 쪽에 집중되는지를 살피면 상대의 빈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격은 방향별로 나뉘며, 커맨드 입력에 따라 기본 공격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공격하는 기술들이 있습니다.



▲ 은근 발로 차고 잡아서 베고 꽤 복잡하게 싸우긴 합니다



▲ 그리고 잘못 맞으면 험한 꼴을 볼 수도 있고요...

기술의 수는 20가지를 조금 넘을 뿐입니다. 그리고 기술을 모른다 할지라도 기본기를 제대로 맞으면 게임은 한 방에 끝이 납니다. 한방에 끝이 나기에 전투 시간이 짧고, 전투 시간이 짧기에 헬리쉬 쿼트의 게이머들은 짧은 시간 안에 집중력을 폭발시킵니다. 상대의 미묘한 움직임까지 살피며, 상대가 어디를 공격할지, 나는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해야 하죠.

이 집중의 순간에, 헬리쉬 쿼트의 재미가 다가옵니다. 철권이든, KOF든, 대다수의 대전 액션 게임은 일정 수준에 이르기 전까진 게임을 얼마나 잘 '하느냐'보다 얼마나 잘 '아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모르면 맞는 거죠. 하지만 헬리쉬 쿼트는 이 '알아가는 시간'을 최소화했습니다.



▲ 언제, 어디서 공격하느냐?



▲ 그걸 모르면 콧잔등이 터진다.

게임 시작 후 30분이면 모든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이 때부터는 얼마나 게임을 잘 아느냐가 아닌, 누가 더 본능적으로 싸움을 잘 하느냐가 승패를 가릅니다. 그리고 내 본능과 상대의 본능이 충돌하는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웬만한 게임에서 느끼기 힘든 진한 풍미를 머금고 있습니다. '이 맛에 게임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 과정에서, 실력이 점점 늘어나는게 느껴집니다. 게임 조작이 퍽 간단한 편이기에 새로운 기술을 알아간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기술을 쓰는가?'가 아닌, '언제 기술을 써야 하는가?'를 알아가는 기분이 들죠. 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재고, 상대의 주력기를 파악한 후 벼락같이 빈틈을 노려 승리를 따낼 때의 기분은 다른 대전 액션 게임보다 훨씬 강렬한 승리감을 줍니다. 피하고, 막고, 공격하기. 대전 액션의 '근본'입니다.



▲ 덤비시면 죽습니다.



▲ 말씀드렸잖아요?




다만, 여기까지가 지금의 '헬리쉬 쿼트'가 가진 모든 것입니다. 얼리 억세스 상태이기에 스토리 모드는 영상밖에 존재하지 않고, 캐릭터는 다섯 뿐이며, 캐릭터 별 커맨드 리스트도 아직 미비합니다. 게다가 온라인 멀티 플레이도 외부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할 정도죠. 그만큼 가격이 싸긴 하지만, 혼자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에겐 딱히 메리트가 없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정식 출시가 이뤄져 온라인 매칭이 가능해진다면 분명 지금의 값어치 이상은 할 게임입니다. 헬리쉬 쿼트는 게임 실력보단, 싸움 실력을 겨루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온라인 매칭이 열린다면 게임상의 내가 아닌, 날것의 내가 어느정도의 싸움 실력을 지녔는지 알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 영상으로만 존재하는 스토리 모드



▲ 멀티 플레이는 외부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합니다. 2021년인데...
  • 깔끔한 그래픽과 사실적 검술 묘사
  • 낮은 진입 장벽, 훌륭한 조작감
  • 비교적 싼 가격
  • 얼리 억세스 기준으로도 부족한 콘텐츠
  • 온라인 멀티플레이의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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