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짜 괴물 정글러 '클리드' 김태민

인터뷰 | 유희은, 남기백 기자 | 댓글: 92개 |



'부진을 기회로, 나락을 반등으로'

2019 롤챔스 섬머 SKT T1, 9위였던 팀이다. 시즌 초만 해도 말이다. '드림팀'이란 네이밍으로 한 해를 시작했던 그들이다. 탑과 미드 그리고 서포터에서 최정상을 찍은 적이 있던 '칸', '페이커', '마타'. 2년간 몸담았던 진에어 그린윙스에서 성적과 별개로 스스로의 가치를 보여준 '테디'. LPL 최고 정글 유망주로 LCK에 처음 발을 내딛은 '클리드'까지. 스프링에서 '역시 SKT' 소리가 절로 나오게 했던 그들은 우승 이후 MSI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더니 이내 5연패, 한 번 더 패배했을 경우 팀 창단 이래 최다 연패를 기록할 뻔하기도 했다.

부족한 휴식과 성적에 대한 비난의 결과 였을까? 섬머의 시작은 미약했다. 삐걱거렸다. 이대로 '드림팀'의 여름은 끝이 나는가 싶었다. 답답한 경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시작된 연승. 그것도 무려 아홉 번. 소년 만화의 주인공처럼 일어섰다. 와일드카드전에선 곡예 타기를 하더니 이어지는 플레이오프와 결승전에선 팬들로 하여금 과거 SKT 전성기를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올해 두 번의 결승전이 있었고, SKT는 두 번의 우승컵을 차지했다. 모든 선수가 유수와 같은 플레이를 보였지만 그 중심엔 '클리드' 김태민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5연패는 큰 시련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2018년을 흘려보낸, 2019년을 '드림팀'으로 시작한 SKT에겐 5연패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선 안 된다.

'클리드' 김태민은 5연패가 반등의 기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LCK에서 두 시즌을 마친 그리고 이제 본 무대가 될 첫 롤드컵을 앞두고 있는 '클리드'는 이제 전초전을 마쳤다. 또다시 증명을 앞두고 있다.





자신이 있을 것 같았다. 스스로의 실력에 대해. 지난 국제 대회에서 꽤 오랫동안 LPL에 패한 LCK는 유독 공격적인 정글러에 목말라 있었고, '클리드'는 '벵기' 이후 몇 시즌 간 이렇다 할 정글러를 배출하지 못한다는 평을 듣던 SKT에서 정규시즌을 선발로 모든 경기를 소화한 유일한 정글러였다. 첫 LCK 도전에 바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로열로더가 된 기분은 어땠을지.

"데뷔한 지는 꽤 됐지만, 저를 모르시는 분들도 많았고 또 LCK에 도전하는 입장이었잖아요. 그런데 운 좋게 스프링에서 우승을 했어요. 첫 우승이어서 그런지 다른 느낌보단 기쁜 감정만 있었고요. 로열로더 같은 건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그냥 우승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제 실력에 대한 자신감은... 사실 모든 경기마다 있었어요. 열심히 했고, 저 스스로 실력에 대한 믿음도 있었거든요. 국제 대회 전까지 계속 자신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국제 대회 얘기를 하자면 정말 아쉬워요. 아쉽다는 얘기밖에 할 게 없어요. 롤챔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모든 경기가 좋게 흘러가지만은 않았으니까요. MSI 우승컵을 놓치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기억이에요. 저의 첫 국제 대회였는데... 다시 하면 우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많이 아쉽고 분했어요"






철옹성 같던 그리핀과의 스프링 결승전에서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으며 3:0 우승, 최고의 폼을 보여주던 SKT T1이 LCK 대표로 MSI에 진출했다. 많은 LCK 팬들이 SKT T1이 오랜만에 LCK가 국제 무대 우승컵을 가져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G2와의 4강 대결에서 풀세트 대결 끝 패배. 경기력 또한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곧이어 시작된 롤챔스 섬머는 진에어의 개막전에서 2:1로 승리하긴 했지만 내리 5연패를 했다. 9등의 성적. 스프링 우승과는 별개로 롤드컵이 걸린 중요한 시즌이었다.

전 시즌 우승팀의 부진, MSI 패배의 영향이었을까. 기자실에서든 사적으로든 당시 SKT T1의 부진에 대한 질문을 끝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조금 더 편안한 이유를 듣고 싶었다.

"섬머 시즌 초반 부진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던 거 같아요. 또 MSI 패배의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순 없어요. 꽤 상심이 컸거든요. 또 롤챔스 섬머 시작했을 때부터 느낌이 좋진 않았어요. 연습 과정에서 확실히 불안한 점도 많았고요. 그래서 자신감이 많이 없었어요. 팀원들 모두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래도 가장 큰 부진의 이유를 꼽아보면, 그때 당시 팀원 간의 불신이 있었어요. 서로 원하는 게 많았거든요. 개인마다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고, 콜이 많이 갈렸어요"


개인적인 부분으로 힘든 건 없었을까?

"개인적으로 힘든 부분을 말하면 핑계겠죠. 그래도 MSI 기간 이후 연습 기간이 짧은 건 확실했고, 촬영이나 방송 같은 게 많았기 때문에 외적으로도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게임을 지니까 심적으로 힘들었던 거 같아요. 사실 이기면 아무 상관 없는 거긴 하죠. 이기기만 하면 돼요"





하늘에서 서사를 내려주는 팀이구나 싶었다. 5연패였다. 무려 모든 팀의 경기력이 상향 평준화가 되었다는 평가를 듣던 섬머 시즌 초반에. 그리고 KT전 2:0 승리 후, 기세를 타더니 9연승을 해버렸다. 스포츠 팀의 부진은 시즌 내내 팀을 부식시켜버리기도 하는 반면 감기처럼 빠르게 아무는 경우가 있다. SKT의 경우 후자였다. '클리드'는 부진이 짧을 수 있던 원인으로 김정균 감독을 꼽았다.

"김정균 감독님은 제가 처음 한국에 오자마자 만난 감독님이에요. 감독님에 대한 신뢰감이 아주 커요. 감독님이 픽 밴에 참여하면서 저희 팀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연패를 할 때 감독님이 하시던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결과를 책임질 테니까 끝까지 열심히 하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열심히 했고, 절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팀원들도 저도 더는 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연패로 인해 각자 많이 힘들기도 했고요. 저랑 진성이('테디')를 제외하곤 다들 형들인데, 저희 둘이 묵묵히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형들도 잘 따라와 줬고 어느 순간 순조롭게 잘 해결됐던 거 같아요"






다사다난했던 정규시즌이 마무리됐다. 시즌 초반의 5연패와 막바지 패배로 인해 와일드카드 마지막 티켓을 거머쥘 수밖에 없었다. 와일드카드전에서 만난 아프리카와, 샌드박스, 담원을 만난 플레이오프를 지나 그리고 그리핀과의 리벤지 결승전까지 '클리드'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와일드카드전부터 결승전까지의 얘기를 담담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와일드카드전부터 결승전까지 모든 경기 통틀어 아프리카와의 와일드카드전 3세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왜냐하면 그때 무조건 이겨야 하는 판이었고, 연습을 별로 안한 픽을 했거든요. 운이 잘 따라줬다고 생각해요. 정말 다행이죠"

"와일드카드전부터 올라가서 그런지 결승전에서 긴장이 별로 안 되더라고요. 의자에 앉기 전엔 좀 긴장됐었는데, 준비하다보니까 긴장이 풀렸어요. 제가 원래 긴장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음... 뭔가 특별히 기억을 더 해서 말하고 싶은데, 제가 멀티를 잘 못 하는 스타일이에요. 하나에 아주 집중하거든요. 게임 자체가 혼잡하고 생각할 게 아주 많아서 당시 상황이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네요. 우승해서 아주 좋았던 거 정도(웃음)."

"스프링 결승전에 그리핀이 조커 카드를 많이 준비해서, 이번 결승전에도 그 점이 가장 걱정됐었고요. 무난하게 가다 보니 저희도 운 좋게 우승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팀원들이 도와줘서 역시나 저도 운 좋게 MVP까지 받을 수 있었고요"


'타잔'에 대한 생각 또한 궁금했다. LCK 대표 정글러 소리를 듣는 둘이다. 이 얘기를 당연하게 생각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굉장히 수줍어했다.

"그런 얘기 듣는 게 어색해요(웃음). 사람들이 각자 다른 시점으로 보잖아요. 몇몇 사람들은 제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생각하는 게 다를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칭찬이니까 좋아요"

"'타잔' 선수와 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저는 싸움 유도를 많이 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플레이를 주로 해요. 리스크가 큰 거죠. 반면 '타잔' 선수는 저보다 더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플레이 스타일의 차이가 있어요"






2019 SKT T1, 10명의 훌륭한 선수가 모였다. 각자의 플레이가 빛난 경우도 많았지만 유독 미드, 정글의 호흡이 눈에 띄었다. 지난 SKT를 좋아하던 팬들은 과거 '페이커-벵기' 듀오가 생각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거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저도 그 얘기를 본 적이 있거든요. 저희는 아직 세계 대회를 별로 경험하지 않았어요. MSI와 리프트 라이벌즈 뿐이죠. 감사한 평가지만 저와 상혁이 형이 '페벵' 듀오 정돈 아닌 거 같아요. 물론 그렇게 되고 싶고 계속 더 맞춰가고 있어요. 연습을 꾸준히 하고 경기를 하다 보니 감이 많이 살아나고 있긴 해요"

"팀에 오기 전 SKT T1의 경기를 보면 상혁이('페이커') 형이 라인 손해 보는 걸 안 좋아하는 거 같더라고요. 제가 정글러로서 그런 점이 불편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서로 의견을 많이 들어주다 보니까 그런 게 없어졌어요"

"팀 얘기를 더 해보자면, 결승전만 해도 저희가 바텀에 힘을 싣는 경우보단 상체에서 주로 끝났잖아요. 저희 바텀이 웬만하면 갱을 필요로 안 해도 알아서 잘하다 보니까요. 라이너들이 저한테 많이 맞춰주는 스타일이에요. 제가 정글링을 하고 싶다고 하면 정글링을 하라고 하고, 꼬아서 갱을 가고 싶다고 하면 라이너들이 그런 요구를 많이 들어주는 편이라서 갱각이나 동선 같은 걸 팀원들이 많이 배려해줘요"

"저희 팀 상체에 대한 칭찬이 유독 많은데, 게임을 그쪽에서 많이 풀어나가다 보니까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고 있는 거 같아요. 실제로 동하('칸') 형하고 상혁이 형이 굉장히 잘해주기도 하고요"

"원거리 딜러의 퀘스트인 안 죽고 딜을 잘하는... 음... 이게 사실 되게 어려운데 대회에서나 연습 경기에서 진성이가 이 역할을 정말 잘해줘요. 고평가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진성이가 가장 잘하는 원딜러인 거 같아요 "

"상호('에포트')는 한타나 콜에서 필요한 정보를 확실히 주는 편이고, 세형이('마타') 형은 라인전 단계에서부터 말을 많이 해요. 둘 다 게임 방면으로 도움이 많이 되죠. 또 세형이 형 같은 경우 피드백에 있어서 저희 팀에 코치가 한명 더 있다고 봐도 될 거 같아요. 게임 지식도 워낙 많고요. 상대 팀 선수에 대한 분석이나 오브젝트 관한 것들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줘서 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어요"


중요한 경기에서는 김정균 감독과 '페이커'의 경험과 결단력이 빛난다고 한다.

"다전제나 큰 경기에서 김정균 감독님과 상혁이 형의 경험이 확실히 돋보여요. 결단력이 있어요. 다음 경기 방향과 어떤 부분에서 어떤 식으로 힘을 줘야 할지에 대한 피드백이 명확해요. 모든 선수들이 특정 장면과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히 설명을 해주세요. 개인적으로 그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건 경험이 있어야 해요. 아무나 할 수 없는거죠"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한 해의 마지막, 이제 2019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만이 남았다. 올해 두 번의 정상에 오른 SKT T1.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기 전 숨 고르기 중이라고 한다. 짧은 휴가 동안 부족한 잠도 자고, 다른 게임은 하고 싶지 않아 그저 LoL 내에서 TFT를 몇 번 즐겼을 뿐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승에 대한 자신감은 어느 정도인지.

"저희가 스프링, 섬머 모두 우승하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세계 대회 우승이 없었어요. 저도 간절하지만 팬분들 입장에서도 세계 대회 우승이 간절하실 거예요. 롤드컵이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회잖아요. 섬머 시작했을 때 5연패였는데... 제가 팬의 입장이라면 짜증 날 거 같아요. 그래도 이겨내고 우승했으니까 롤드컵에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우승까지 갔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론 LCK가 우승할 확률이 저번보다 높아졌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저희 팀이 잘하는 게 최우선이에요. 같은 리그이긴 하지만요"

"좋은 상상, 우승하고 난 다음의 상상은 안 하려고 해요. 설레발이기도 하고... 언젠가 '루키' 선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우승하기 전까지는 우승 스킨이나 그 외의 부가적인 생각은 안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맞는 거 같아요. 아직 아무것도 시작된 게 없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클리드' 김태민은 다시 한번 증명하는 자리에 섰다. 롤챔스와 MSI가 전초전이었다면, 롤드컵은 본 무대다. 첫 롤드컵에 설레는 마음도 있겠지만, MSI 때와 같은 실패에 대한 걱정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이란 본래 실수의 반복을 두려워하지 않나.

"아니요. 두렵진 않아요. 그냥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어요. 계속 말하지만, MSI가 정말 아쉬웠어요. 이번 세계 대회 롤드컵에선 아쉬운 거보단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어서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다시 저희 팀을 증명하고 보여드릴 수 있는 자리니까요. 저희 팀은 계속 더 잘하고 싶어 해요. 그리고 더 잘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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