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득한 하늘의 달빛을 쫒아, 오리엔탈 판타지 '천애명월도' 체험기

리뷰 | 원동현 기자 | 댓글: 111개 |

사실 중국 게임을 얕봤다. 개인적으로 중국에서 오랜 기간 살아왔지만, 인상깊은 중국 온라인 게임을 발견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당시 주변 사람들은 한국 온라인 게임을 더욱 즐겨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천애명월도'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드라마 제목으로 얼핏 들어본 기억은 있지만, 작가가 누구인지 어떤 스토리인지 정확한 지식은 없었다. 그냥 "중국에서 만든 무협 게임이구나" 정도의 인상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중국 게임 산업'에 대한 내 기억과 이미지는 10년 전에 머물고 있었다. 이번 CBT를 통해 '천애명월도'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중국 게임 산업의 놀라운 발전 속도와 오리엔탈 판타지의 정수를 보여줬으며, '고룡' 원작 소설 '천애명월도'의 맛을 구현해냈다.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는 중국의 유명 무협 소설가 '고룡'이 1974년도에 내놓은 작품으로 '아득한 하늘의 달빛 검'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정확하게는 '아득한 하늘 속에서 빛나는 달을 쫒는 검객(부홍설)'을 의미한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굉장히 서정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당시 자극적이고 화려한 전투 묘사에 치중해있던 무협 소설계에 혁명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천애명월도' 온라인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섬세한 커스터마이징과 '무협스러운 전투'
"약간은 아쉬운 조작감"



▲ 커스터마이징의 자유도는 상당한 편

천애명월도는 오픈 전부터 특유의 미려한 그래픽과 커스터마이징을 강조해왔다. 실제로 체험해본 결과 커스터마이징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자유도를 갖추고 있었다. 세세하게 나눠진 얼굴 각 부위를 X,Y,Z 축으로 조정할 수 있었으며 이외에 각종 기능으로 상당히 다채롭게 캐릭터를 꾸밀 수 있었다. 하지만 얼굴을 제외한 다른 신체 부위는 커스터마이징이 불가능해 아쉬움을 남겼다.

커스터마이징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체험해보았다. 로딩이 끝나고 처음으로 캐릭터를 조작하는 그 순간, 일순간 당혹감이 몰려왔다. 조작감이 상당히 어색했다. 횡이동이 자유롭게 이뤄지지 않고, 캐릭터가 굉장히 직선적으로 움직여서 익숙해지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 저레벨 구간에서도 손맛이 나쁘지 않다

전투는 상대적으로 쾌적했다. 타격감이 다소 아쉬웠지만, 스킬의 연계성과 무협 특유의 화려함이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적들이 무리 지어 나오고 상당히 쉽게 제압할 수 있어 '핵앤슬래쉬' 장르의 쾌감 역시 느껴진다.

다만, 스킬의 활용도와 판정들이 명확히 와닿지 않고 특유의 뻣뻣함 때문에 회피 동작 역시 매끄럽지 못하다. 무협 특유의 모션을 강조한 탓인지 스킬을 사용할 때 적과 '채널링'되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전투의 속도감이 떨어지며 간혹 이해할 수 없는 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

강조하고 또 강조한 '스토리'
"오랜만에 느낀 스토리의 중요성"


천애명월도를 플레이하며 가장 크게 놀란 부분은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각종 시네마틱 영상과 스토리 연출이 준비돼있고, 핵심적인 부분은 그 흔한 스킵 기능마저 제공하지 않는다. 유저들에게 스토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개발진의 열의와 고집이 느껴졌다.

앞서 말했듯 '천애명월도'는 '고룡'의 무협소설을 기반으로 한다. 북송시대를 배경으로 삼으며 '청룡회'와 '천하사맹' 그리고 '8대 문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플레이어는 8대 문파 중 한 곳을 선택하여 플레이하게 되며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원작의 주인공인 '부홍설'을 만나 '천애명월도'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하지만 낯설다. 좋은 소재와 연출을 보여줬지만, 플레이하는 내내 모종의 어색함이 느껴진다. 무협 특유의 난해한 용어, 그리고 과장된 표현, 이 두 가지 요소가 몰입을 방해한다. 원작이 원작인 만큼 어느 정도의 난해함은 감수해야겠지만, 보다 순화되고 정돈된 모습이 필요해 보인다.



▲ 용어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무협의 정수를 담아낸 배경과 '경공'
"아름다운 배경 속을 날아다니다"


크고 아름답다. 천애명월도에 대한 첫 감상이다. 중국의 실제 지형을 기반으로 제작한 덕에 배경이 전반적으로 사실감이 있으며 동시에 중국다운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실제로 튜토리얼 초반 각 문파 본산을 방문하게 될 시, 일순간 배경 그래픽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천애명월도의 '경공'은 이러한 장점을 극대화시킨다. 중국의 '절경' 속을 새처럼 누빌 수 있다. 초반에도 중독성 있는 조작감과 속도감 덕에 애용하게 되지만, 일정 레벨 이후 문파별 '대경공'을 배우게 되면 또다른 신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어릴 적 무협소설을 읽으며 상상으로만 간직하던 그 화려한 경공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좋은 소재 '아쉬운 디테일'
"난해한 인터페이스와 용어"




천애명월도는 서사가 살아있다. 원작 소설을 십분 활용하여 세계관과 캐릭터 그리고 스토리에 생명력이 있다.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즐기게 되는 흐름이 좋았고, 강해지라고 보채지 않는 차분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숫자가 아닌 글을 봤다.

하지만 역시나 아쉬운 부분은 곳곳에 보였다. 앞서 말했듯, 무협 액션을 강조한 게임치고 조작감이 어색하다. 횡이동과 회피가 부자연스럽고, 무거운 모션과 불편한 인터페이스 때문에 게임에 몰입하기가 힘들다. 자연스럽게 손이 닿을 곳에 키가 위치하지 않았고, 특수 모션들의 단축키 역시 복잡하게 얽혀있어 의식적으로 손동작에 신경이 쓰인다.

또한, '고룡'의 유명 무협소설을 기반으로 했다지만 몇몇 용어와 대화의 흐름 역시 정돈이 필요하다. 거의 모든 오브젝트의 명칭이 한자로 되어있고, 인물 간의 대화에서도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표현들이 종종 보인다. 이런 사소한 부분들이 유저들에게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이렇듯 천애명월도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다. 좋은 소재를 갖췄고 잘 갈고닦았으나 끝자락의 디테일이 부족하다. 이는 다른 PC 온라인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분명 치명적인 단점이다. 하지만 '천애명월도'는 그 '소재'와 '모양새'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 하다. 오래동안 잊고 지냈던 스토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줬고, 어릴 적 꿈꾸던 무협의 세계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최근 몇 년간 침체기를 겪고 있는 PC 온라인 게임 시장에 '천애명월도'가 어떤 파문을 남길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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