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주 칼럼] 게임과 심리학 (7) - "게임이 바뀔 차례다"

칼럼 | 이장주 박사 | 댓글: 28개 |



인벤에서는 '게임하기의 심리학적 고찰'을 키워드로 한 사회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님의 기고를 소개해드립니다. 이번 기고의 주제는 '게임이 바뀔 차례다'입니다.

게임이 유해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논란은 비단 국내 게임 산업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게임 업계에서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항상 일관된 태도를 고수해왔습니다. 그게 좋든, 그렇지 않든 말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바꾸는 게 이런 논란을 잠재우는데 효과적일까요? 이번 칼럼을 통해 알려드립니다.

이장주 박사님은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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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실수하는 것은 그 사람 탓이지만, 많은 사람이 실수를 하면 그건 디자이너의 탓이다. 그건 실수가 아니라 인간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UX연구의 대부로 알려진 도널드 노먼(Donald A. Norman)이 그의 저서 <디자인과 인간심리>에서 주장한 말이다. 잊고 지내던 그의 말이 떠오른 것은 여성부 장관후보자 청문회에서 나온 ‘셧다운제’ 찬성 발언을 접하면서다.



▲인간의 특성을 이해해야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

‘셧다운제’는 형식논리적인 측면이나 실용적인 측면에서 효과가 없다. 단적으로 우리 집만 봐도 그렇다. 주말 12시가 넘어도 우리 집 신데델라는 더욱 화려해질 뿐이다. 클래시로얄의 진군 나팔소리가 울리고, 유튜브에서는 BJ들이 저렴하지만 재미있는 입담으로 게임전략을 펼친다. 다른 방에서는 주사위가 또르륵 구르더니 ‘라인 독점’이라며 팡파레가 요란하다. 물론 평일 날에도 가끔 이런 경우가 있긴 하지만 셧다운의 존재나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고 산다. 딱 한 사람, 아내만 제외하고 말이다. 아이들이 자지 않으니 맘 편하게 자지 못하는 짜증과 더불어 오만 걱정이 밀려온다. “밤에 잠 못 자고 낮에 낮잠 자고 그렇게 뒤죽박죽 살다가...” 아마 대부분의 가정에서 부모들이 겪는 게임관련 불안의 메커니즘은 우리 집과 비슷할 것이다.

재미와 불안이 싸운다고 치면 재미는 백전 백패다. 왜냐하면 재밋거리는 놓치면 다음 기회가 있지만, 불안거리를 잘못 다루면 다음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9가지가 긍정적이고 1가지가 불안하더라도 절대로 안심하지 못하도록 사람이 진화되어왔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부정성 효과(negativity effect)라고 부른다.

셧다운제 논란에 대한 게임계의 대처법은 단순했다. 셧다운제 효과 없다. 산업이 위축된다. 아이들 인권침해다. 게임도 학습에 도움 된다. 이 정도의 논리를 순서대로 혹은 혼합하여 부모들의 불안에 대응하였다. 클래시로얄에서 해골군대가 쪽수 믿고 마법사에게 덤비는 상황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충분할 듯하지만, 실제 붙으면 상대가 안 되는 그런 조합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던가? 다른 것을 시도해야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제 대응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거기에는 세 가지 큰 이유가 있다. 첫째 불안은 논리적 이해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생존반응이다. 뇌의 생리구조로 접근하면, 불안을 다루는 변연계는 논리적 사고를 다루는 전두피질보다 훨씬 더 먼저 생기고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전두피질은 종뇌(終腦, end-brain)에 포함된다. 종뇌의 ‘종’은 종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뇌의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신입 뇌라는 뜻이다. 반면 불안을 관장하는 변연계는 원피질(原皮質), 고피질(古皮質)을 포함하는 고참 영역이다. 즉 불안을 논리로 제압하겠다는 것은 신참이 고참을 훈계하는 것만큼이나 확률이 희박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방법이다. 종뇌의 논리가 아니라 변연계의 논리로 전환해야 한다.



▲ 생존과 관련된 불안을 논리로 제압한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다

두 번째, 어느 나라가 되었든 부모들은 그 사회 정치, 경제, 사회의 주인공이다. 파워가 막강하다. 이들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모욕을 주는 것은 앞으로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모들을 내 새끼만 아는 무지렁이로, 눈앞만 보는 근시안으로 만들어서 도대체 무슨 이득이 생길까? 게임문화가 활성화되고 산업이 융성하려면 강력한 영향력 집단인 부모와 같은 편에 서야 한다. 부모들을 게임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부모들 곁으로 가야 한다. 그게 장사의 순리에도 맞을 뿐 아니라 노먼이 말한 서비스 디자인에도 합당하기 때문이다.

셋째, 방법론적으로 나를 바꾸는 것이 상대를 바꾸는 것보다 쉽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직구가 안되면 커브로 바꾸어 던지는 것은 당연한 상식에 속한다. 커브와 직구를 섞어 던지면 전에 듣지 않던 직구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맞든 말든 무작정 직구만 구사하는 그런 투수는 스스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승부사라고 자평할지 모르지만, 상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 변연계에 적절한 대응방식은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풍부하게 제공해준다. 행동경제학은 사람을 이성적이며, 이상적인 존재로 가정하는 대신 이성과 비이성이 섞인 현실적인 인간의 행동으로 경제학을 설명한다.

그 전략의 첫 번째로 ‘통계 대 사례’의 위력이다. 일반적으로 다수의 표본을 통해 산출한 통계가 하나의 사례보다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준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지만, 실제 사람들은 통계보다 사례를 더 믿는 경향이 있다. 수많은 학생들이 평가한 강의평가 점수를 믿기보다는 먼저 들었던 친구의 말이 수강신청에 더 솔깃해지는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90퍼센트 이상 대다수는 멀쩡하더라도 소수의 중독사례는 대다수의 통계치를 압도한다. 대다수는 수치로 존재하기에 뚜렷한 인상을 주지 못하는 반면, 소수의 중독현상은 뉴스에 나오는 선명한 인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독이 소수이고, 그마저도 공존질환이 의심된다는 증거를 제시해도 진화의 알고리즘 때문에 소용이 없다.



▲ 소수의 사례는 대다수의 통계를 압도한다 (출처: KBS2)

그렇다면 역으로 접근해서 성공한 사람의 게임을 보여주는 것이 공포심을 중화시키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온라인 게임 만렙 변호사, 의사 혹은 명사, IVY리그에 진학한 챌린저 티어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게임의 사회적 인식은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 전략은 정보제공 전략이다. 불안은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오는 불안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 주스를 따라주면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은 다른 아이의 컵과 자신의 컵을 비교하는 행위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시험 점수를 받아오면 그 점수보다 다른 아이들의 점수가 몹시 궁금해진다.

바로 이런 비교를 통해 내가 얼마나 안전한 상황인지를 모니터링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정보의 부재 자체가 불안을 일으킨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다들 게임을 한다던데, 우리 아이만 유독 너무 많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이 내재되어 있다. 설령 조금 많이 하더라도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그 불안의 정도가 낮아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몇 시간, 얼마를 과금했다는 것에 추가하여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평균적으로 얼마의 시간을 게임하고 얼마나 과금하는지를 알려주면 그 자체로 불안감을 낮추어주는 효과가 있다.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부모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나아가 연령대마다 많이 하는 게임의 종류를 안내하고, 이것들의 특성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게임관련 게임물관리위원회나 콘텐츠진흥원같은 공적기관이 수행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적어도 어떤 게임을 하고, 그 게임의 특성이 뭔지를 아는 부모가 하는 말과 모르고 하는 말의 효과는 천지 차이라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다.

세 번째로는 우리 편 연대 전략이다. 청소년 게이머의 미래와 안전한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에 대해 반대할 부모들은 없으리라. 이런 점에서 청소년 게임유저의 성공을 함께 지원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면 배틀그라운드나 롤의 상위랭커가 유명 대학에 들어가면 입학금, 등록금 지원같은 사업을 들 수 있다. 이런 종류에 쓰는 돈은 중독예방 사업에 사용하는 돈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효과가 남는 투자라고 나는 믿는다.

조금 더 나아가 온라인의 즐거움 뿐 아니라 오프라인의 즐거움까지 책임지는 사회적 역할을 게임사가 수행했으면 금상첨화지 싶다. 예를 들면, 안전한 놀이터 만들기 사업같이 넷마블이 ‘모두의 마블’을 바닥에 그린 ‘모두의 놀이터’를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보급하는 사업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뿐만 아니라 학교 앞 횡단보도 안전시설에 투자하는 게임사는 돈만 챙기는 기업이미지를 탈피하는데 묵직한 메시지를 남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출처 : NC 다이노스 공식 홈페이지

한국 온라인 게임이 이제 스무살을 훌쩍 넘은 성인이 되었다. 그만큼 사회적인 책임과 스스로의 사명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사춘기 청소년처럼 왜 내 말을 못 알아주냐고 불평하기보다는 다른 사회 구성원이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메시지를 가다듬고 바꾸려는 세련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게 어른스런 행동이고, 그게 진짜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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