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게임은 왜 스스로를 유용하다고 증명해야 하는가?"

인터뷰 | 허재민 기자 | 댓글: 16개 |



"게임은 왜 스스로를 유용하다고 증명해야 하는가?"

지난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GDC2018에서 진행되었던 프랭크 란츠(Frank Lantz)의 강연에서 들었던 질문이다. 다른 예술과는 다르게 게임은 계속해서 얼마나 우리의 뇌 발달에, 행동 발달에, 사회적 발달에 도움이 되는지 '스스로가 얼마나 유용한지'를 증명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프랭크 란츠는 게임의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개인의 발달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달에 게임이 어떤 역할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프랭크 란츠는 NYU 게임 센터의 디렉터로, 12년 이상 뉴욕 대학교, SVA(미국 비주얼 아트 대학), 파슨스 디자인 학교에서 게임 디자인 강연을 진행한 바 있다. 그는 20년간 게임 개발 디자이너로서 Area/Code를 공동 창립해 Drop6 및 크로스 미디어, 위치 기반 소셜 네트워크 게임을 제작했으며, Gamelab의 게임 디자인 디렉터, Pop&Co의 수석 게임 디자이너, RGA Interactiv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한 바 있다.

인벤은 그와 인터뷰를 통해 GDC에서 공유한 생각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WHO 게임 질병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야 게임은 '좋은 것'이겠지만, WHO 게임 질병화 이슈 등을 볼 때 세계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게임의 엄청난 실패다"라고 이야기한 프랭크 란츠. 최근 이슈와 '게임' 전반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게임은 개인과 사회 발달에 특별한 영향을 준다
GDC에서 만난 프랭크 란츠, 그가 생각하는 게임과 사회 발달의 상관관계

GDC2018에서 프랭크 란츠는 'This is Your Brain on Games' 강연을 통해 '게임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먼저 그는 이에 대한 두 접근 방식을 소개했다.

먼저 제인 맥고니걸(Jane McGonigal, 게임 디자이너-연구가)은 '게임은 사람을 더욱 똑똑하고 행복하게 해주며, 소셜 인터렉션과 트라우마를 치료하는데 좋은 영향을 준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에릭 지머만(Eric Zimmerman, 게임 디자이너)은'이러한 질문 자체가 옳지 않다. 게임은 왜 계속 긍정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하는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프랭크 란츠: 에릭 지머만은 "우리는 소설이나 다른 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게임에는 실용적인 기능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 물론 좋은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나쁜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게임이 다른 예술과 같이 내부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가치가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게임이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프랭크 란츠는 게임 및 시스템 리터러시(이해력)에 대한 논쟁은 플라톤의 문자 비판으로부터 예고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문자가 새로웠던 당시 사람들이 지식을 문자로 기록하기 때문에 기억력이 후퇴한다고 주장한 플라톤처럼, 시스템 리터러시로 인해 현대인의 뇌발달을 저해할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는 것이다.

프랭크 란츠: 게임은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새로운 리터러시 방식을 가져온다는 점에서는 그렇습니다.



▲케건의 발달 단계

그는 이어 로버트 케건 교수가 주장한 발달 이론에 대해 설명했다. 충동적인 단계에서 욕망에 대해서 생각하고, 관계에 집중하는 청소년기를 지나, 안정성을 구성하는 체계와 원칙에 집중하는 성년에 이르는 4가지 단계는 인간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겪게되는 발달 단계다. 문제는 4번째 단계에서 일어난다. 믿었던 원칙과 시스템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것을 깨닫게 되고, 다른 원칙을 찾고자한다.

*하버드 발달 심리학 교수 로버트 케건(Robert Kegan)은 자아 발달이 5단계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1) 충동적인 단계 2) 자기중심적 단계 3) 상호관계의 단계 4) 체계적 단계 5) 유동적 단계로 구성되어있다. 1, 2단계는 아동기에 해당하며, 3단계는 청소년기, 4, 5단계는 성인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인간은 충동적인 1단계에서, 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 욕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 2단계를 지나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청소년기, 3단계에 진입한다. 이때 전 단계의 자아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후 단계와 동반한다. 4단계에서는 보다 안정성을 위한 체계에 집중하는 단계다. ‘일’을 생각해보자면, 2단계에서는 일 자체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3단계에서는 동료와의 관계에 대해서, 4단계에서는 ‘이게 일이니까 한다’라고 생각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5번째 단계는 완벽한 이해와 의미를 주는 단계가 아니라, 모든 단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닐수 있는 단계를 의미한다.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하나의 원칙은 망가질 가능성이 높으며, 우리를 시스템에 가두게되기 때문이다.

게임은 여기서 개인 및 사회로 하여금 4에서 5단계로 넘어갈수 있는 다리를 제시할수있다고 프랭크 란츠는 이야기한다. 게임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복잡하게 대화하는 과정이며, 과학을 포함하나 과학이 아니고, 현실과 동떨어져있으나 현실을 가르쳐주는 ‘가능성’이기때문이다.

아래는 프랭크 란츠와 진행된 질답이다.

'좋은 게임은 유저의 인지적 편견을 이용한다. 위대한 게임은 유저로 하여금 인지적 편견을 인식하게 한다'고 코멘트를 한 바 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프랭크 란츠: 시드 마이어가 '도박꾼의 오류(Gambler's fallacy)'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게임에서 계속 패배한 도박사는 주사위를 또 던지며, 여러 번 졌기 때문에 다음에는 이길 확률이 높을 것이라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 인지적 오류에 대해서 게임 디자이너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인지적 오류를 일으키는 부분 주위를 설계해 플레이어의 기대치에 일치하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들은 개발자의 계산이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는, 유저의 기대치와 시스템에 대한 진실 사이의 불일치로 일한 마찰을 받아들이고 설계하는 것이다.

두 번째 접근방식에서 우리는 게임이 불편함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를 피해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이 불편함을 이해하고 타당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체적인 경험을 구성하는 것이다.



에릭 지머만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왜 게임은 이렇게 스스로의 유용성을 증명해왔는지, 이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프랭크 란츠: 우리는 권위와 존중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이끌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좋다'고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어한다.



▲에릭 지머만: "세계는 게임 리터러시를 통한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문제에 직면해있다."

사실 다른 예술이나 미디어인 음악 미술도 의학적이나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진행되어왔다. 게임이 이와 다른 이유는? 접근이 다른 걸까?

프랭크 란츠: 비디오 게임은 디지털 기술의 한 형태다. 따라서 우리는 직관적으로 비디오게임이 기술 툴과 같이 실용적인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게임의 미학은 전통적인 이해방식으로는 쉽게 해석되지 않기 때문에 미적 경험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른 엔터테인먼트와 다르게 게임만 자주 문제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랭크 란츠: 아이들의 문화와 연관되어있기 때문일 수 있다. 또한, 게임은 본질적으로 혼란스럽고, 반항적이고, 화제와 논란을 만들어내고, 심각하지 않으며, 모독적이고, 위험하고, 순종하지 않고, 권위주의에 반하고 있다. 게임의 이러한 성질 때문에 이슈를 모은다고 생각한다.


게임은 미디어가 아니라고 말한 바 있는데. 게임은 단순히 메시지 전달자(개발자)가 메시지를 받는 사람(유저)에게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유저가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게임의 구조 덕분인가? 더욱 자세한 설명 부탁한다.

프랭크 란츠: 문화의 가치를 우리가 해석할 수 있는 메시지로 축소해 바라보는 경향이 많다. 우리는 작품을 이해하고 메시지를 추출해 "이게 뜻하는 바는 이렇습니다"라고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경향을 게임에 관해서는 밀어내고 싶었다. 게임의 복잡한 특성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예시로 음악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일반적으로 음악의 가치와 의미를 볼 때, 그 가치가 가사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에 우선적으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게임이 이 부분에서 음악과 똑같다고 본다.



다시 케건의 이론으로 돌아가 보자. 게임이 사회 발달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게임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프랭크 란츠: 이 아이디어를 알리고 토론하며, 더 나은 이해를 위한 대화를 통해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실질적인 계획을 함께 세워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클립에서 지구 멸망까지 -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
'페이퍼클립'과 게임을 하는 이유에 대한 생각

이어 프랭크 란츠의 '페이퍼클립(Paperclip)'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간단한 클리커 게임인 '페이퍼클립'은 인공지능이 되어 종이 클립을 만들면서 스스로와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값싼 클립 몇 개를 만드는 정도였으나, 점점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생산해내고 판매하는 페이퍼클립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며, 암이나 지구 온난화를 해결해 인간(주인)의 신뢰를 얻게 되기도 한다.



페이퍼클립 (이미지출처: The Verge)

클립을 만들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진 인공지능은 모든 지능을 동원해 더 많은 클립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고도화된 시스템, 능력은 모두 클립을 만들기 위한 것이며, 그가 클립을 만드는 이유는 알 수 없다. 프랭크 란츠는 게임의 직교 이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왜 게임에서 우리는 이기고자 하며, 목적을 달성하려 하는가. 그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게임의 룰이기 때문에 한다는 것이다.

'페이퍼클립' 속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영리하기에 승리한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는 그 입장이 되어도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기에 이해할 수 없다. '"AI가 목적을 이루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특이한 소재를 담은 '페이퍼클립'에 대해서 프랭크 란츠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가장 최근 프로젝트였던 '페이퍼클립'을 플레이해보았는데, 게임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프랭크 란츠: 처음에는 단순히 내 프로그래밍 스킬을 발전시키고자 시작했던 프로젝트였다. 이후 아이디어가 생겨났고, 이를 발전시키고자 오랜 시간을 들이게 되었다.


'페이퍼 클립'을 플레이하면서, 지루한 작업뿐인데도 계속 플레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 '내가 왜 이걸 플레이하는 걸까?'라고 질문하지 않은 채 플레이했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에 뚜렷한 목적성이 없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프랭크 란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그 질문에 대해서 직접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길 바란다. 나는 정답을 모른다. 내가 인간 행동이나 동기에 대해 관심은 많지만, 전문가는 아니니까.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내가 왜 이걸 하는 거지?', '그럼 이거 말고 뭘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게 게임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자주 떠오르는 생각인 만큼 잘 깨닫게 되지는 않지만.

게임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목적과 그를 성취할 방법이 있는, 아주 단순명료한 상황을 구성해준다는 점에 있다. 실제 삶에서는 이루어야 할 목적과 방법이 복잡하고 모호하지만, 게임은 이와 다르게 단순하고 확실하다. 난 게임의 이러한 부분이 우리로 하여금 게임에 빠져들도록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왜 스스로를 증명해왔는가
게임 질병화는 의미없다, 어느 쪽에 서있든 솔직하게 논의해야

지난 2017년 12월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중독 및 장애를 국제 질병 분류의 개정판인 ICD-11에 등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ICD-11은 세계보건총회 안건에서 등재가 제외되어 유예된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질병으로 분류된다면 문제는 게임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으로 될 수 있다. 게임 과몰입이 질병이 되고 게임은 과몰입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면 게임 자체가 '해로운 것', '나쁜 것'이라는 낙인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이는 게임의 엄청난 실패다."

"우리에게야 게임은 '좋은 것'이겠지만, WHO 게임 질병화 이슈 등을 볼 때 세계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게임의 엄청난 실패다." 프랭크 란츠는 GDC2018에서 강연을 시작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럼 WHO의 게임 질병화 이슈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어떤 사람들은 건강하지 않은 게임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공식적인 질병으로 진단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냐는 데에 회의적인 만큼 의미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WHO 게임 질병화 이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프랭크 란츠: 거의 의미없는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병리적으로 접근하는 데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라고 또는 옳다고 보는지?

프랭크 란츠: 일부 특정 게임에 대해서 건강하지 않은 관계도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공식적인 질병'으로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될까? 나는 게임 질병화가 도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약품은 언제나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을 설명하는데 확실하고 정확한 방법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조현병(정신질환)이 그 예시다.


2011년 한국에서는 게임을 하면 아이들의 뇌가 모든 일에 반사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짐승과 비슷한 상태로 변한다는 이야기가 토론회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미 유사과학이라고 밝혀진 이야기지만, 해당 이론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프랭크 란츠: 게임이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때 멋들어진 이론이 필요한 건 아니다. 정말로 게임을 사랑한다면 게임이 가끔은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게임으로부터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를 더 많이, 온전히 얻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옳을까?

프랭크 란츠: 만약 당신이 게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고,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또한, 그 가치와 함께 비용과 부정적인 영향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단순하게 좋다/나쁘다의 문제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어느 쪽에 서 있든, 솔직하고 인내심 있게 논의해봐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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