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년에서 남자로, 전설에서 감독으로' KT 롤스터 이지훈 감독

인터뷰 | 서동용 기자 | 댓글: 109개 |
이지훈 감독, KT 롤스터를 7년째 이끌고 있습니다. 깔끔하고 잘 생긴 외모, 재치있는 입담으로 잘 알려졌죠. 그런데 혹시 알고 계셨나요? 이지훈 감독은 프로게이머 출신입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아닌, 피파 프로게이머였습니다. 게다가 전설적이었죠. 승률이 무려 93%입니다. 열 번 하면 9번 이상 이겼다는 얘기고요, KT 롤스터 로고에 달려 있는 별(우승 횟수를 말합니다)의 반 이상을 이지훈 감독 혼자서 채웠습니다.

이지훈 감독은 선수에서, 코치, 감독까지 총 14년을 KT 롤스터에서 충성하고 있습니다. 한 직장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있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죠. 선수 시절부터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감독! KT 롤스터 연습실에서 만난 이지훈 감독은 편안하게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먼저 인벤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e스포츠에 남은 감독 중에 가장 오래된(웃음), 최장수 감독인 이지훈 감독입니다. 예전에는 여러 종목을 담당하다가, 현재는 LoL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선수 출신의 감독은 많지만, 피파 선수 출신 감독은 유일해요. 피파 프로게이머 시절 얘기를 좀 해주세요.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피파라는 게임을 접했죠. 처음엔 대회에 참가할 생각은 없었어요. 재미로 대회에 나갔는데, 8강을 갔어요. 첫 대회였는데 말이죠. 피파 게임이 저한테 잘 맞았는지, 잘하는 선수들을 이겼어요.

그다음 대회는 우승했어요. 그때부터 13개 대회 정도를 연속으로 우승했죠. 그러던 중 'n016'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어요. 그때부터 KT 소속이 된 셈이죠. 선수, 코치, 감독을 하면서 KT에서 14년 동안 지낸 셈이네요. 긴 세월 한 팀에 소속된 사람은 아마, 저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때 피파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나요?

인기 있었죠. 대회도 많았고요. 하루 만에 끝나는 단발 토너먼트도 많았어요. 2002년까지는 인기가 좋았죠.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축구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면서 피파도 자연스럽게 인기가 줄어들었어요.

2004년 말에 선수 은퇴를 했어요. 그다음 해인 2005년에 입대를 했죠. 제대하고 나서 KT에서 제안이 왔어요. 코치제안요. 사실 제안을 받았을 땐 코치 생각이 없었어요. 제가 인하대 체육교육학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체육 선생이 되고 싶었어요.

교육 과정에서 KTF 스포츠단 인턴쉽 자리를 봤죠. 경력을 쌓기 위해 거기서 두 달 정도 일하다 보니 e스포츠에서 일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불행하게도 그때, KT 롤스터 팀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코치 제안을 수락하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어요.





코치에서 굉장히 빠르게 감독이 되신 걸로 알아요. 어떻게 된 거죠?

2008년 3월에 코치를 시작해서, 8월에 감독이 됐어요. 그때 팀이 많이 힘들었거든요. 스타크래프트1 프로리그 플레이오프도 2년 정도 못 갔어요. 뭐, 어떻게 보면 절 감독으로 기용한 건 도박이죠. 사무국도 반신반의했을 거예요.

그래도 제가 어리고, (홍)진호, (박)정석이, (강)민이, (조)용호랑 모두 절친했기 때문에 시너지효과가 생길 거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스타크래프트가 아닌 다른 종목의 선수 출신이잖아요? 게임단 자체가 다종목을 원해서 타 게임 프로게이머인 저를 기용한 것 같아요.



KT에서 LoL 프로게임단을 창단했는데, 사실 다른 팀들에 비해 시기가 늦어졌어요.

네. 사실이에요. 2012년 10월에 LoL 팀을 만들었거든요. 사실 스페셜포스 프로리그를 KT에서 후원했잖아요. 스페셜포스 리그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저희 스페셜포스 팀도 해체했어요. 자연스럽게 LoL 팀이 그 빈자리를 채운 셈이었죠.



선수들 모집에 애를 먹었을 것 같은데요?

오창종 코치가 5개월 전부터 스카우터 및 코치로 선임된 상태였어요. 선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죠.

사실 한 팀만 만들기로 예정했었는데, 그때 분위기가 형제팀을 만드는 분위기였어요. 형제팀이 없으면 훈련이 힘들었어요. LoL에서 후발주잔데, 따라잡으려면 연습이라도 강하게 해야 길이 보일 것 같았죠. 회사에 말해서 두 팀으로 진행했어요.





KT 롤스터, 특히 불리츠 팀은 성적은 좋았는데, 우승은 못 했어요. 욕심은 없나요?

첫 시즌 3위도 엄청난 성적 아닌가요?(웃음) 팀 창단을 할 때, 2013 섬머 시즌을 기준으로 잡았어요. 계획대로 됐죠. 짧은 시간에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가 노력해서 결과를 만들었다고 봐요.(당시 KT 불리츠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1년도 안 됐는데, 준우승을 거뒀다는 거에 만족해요. 하지만 섬머 시즌 결승은 아픔이 있긴 했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애로우즈, 불리츠 모두 리빌딩을 하면서도, 당장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생각은 적어요. 선수들이 손발을 맞출 시간도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그중에 IEM 우승도 하고, 애로우즈는 SKT T1 K를 잡기도 했어요. 선수들에게 고맙죠.



KT 애로우즈는 지난 시즌까지 롤챔스 본선에서 보지 못했어요. 오프라인 예선도 떨어지고, 아픔이 많았는데요?

네. 그렇죠. 선수 교체도 많았어요. 막눈이라는 초강수도 뒀어요. '카카오' 이병권도 팀을 옮기고 그랬죠. 그래도 그 과정이 좋은 팀을 만드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진 좋았는데, 만족스럽진 않았어요. 팀 호흡에서 조금 안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번 애로우즈는 톱니바퀴가 잘 맞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애로우' 노동현이 팀과 융화가 잘 됐죠. 성실한 선수예요.

'루키' 송의진도 아마추어 시절부터 '허접성' 아이디로 유명했어요. 오창종 코치가 계속 원했어요. 센스도 있고 괜찮을 것 같다고. 그래서 한 번 만나봤죠. 그런데 웃는 모습도 너무 예쁘고, 성격이 너무 밝았어요. 단번에 발탁했죠. 라이벌이자, 롤모델인 SKT T1 K를 보면서 많이 느꼈어요. 특히 '페이커' 이상혁. 좋은 말로 생각이 없어요. 게임에 대한 생각만 하고, 뒤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였죠.

애로우즈 팀을 만들 때 그런 선수로 구성했어요. 생각 없이 막 들이대는 패기 있는 팀요. '썸데이' 김찬호, '카카오' 이병권, '루키' 송의진이 중심을 잡아주고 있고, '하차니' 하승찬이 든든하게 서포터해주고 있어요. 지금까진 잘 되는 것 같아요.



애로우즈, 불리츠, 리빌딩 그 중심에는 '제로' 윤경섭이 있어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KT 롤스터는 리빌딩에 대해선 칼이에요. 선수들이 소모품이냐고 하는 얘기도 들었죠. 하지만 사실은 다르거든요. 모든 선수의 영입과 탈퇴는 합의로 이루어져요.

'제로' 윤경섭은, 실력이 있으니까 데리고 있는 겁니다. 가진 능력치, 잠재력은 있어요. 하지만 프로는 '독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좀 모자라요. 애로우즈에서 있을 땐 그게 모자라서 루키에게 밀렸어요.

그래서 불리츠 팀으로 갔어요. 정글러 공백이 있었는데, 제로가 가진 능력을 믿었어요. 선수들과 친분도 크고 시너지를 잘 낼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연습 때는 정말 잘했어요. '벵기' 배성웅도 이기고, '와치' 조재걸도 이겼어요.

사실 제로가 정글러로 대회 경기에서 단 한 차례 경기했잖아요? 그때 불리츠 팀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아서, 비난의 화살이 모두 제로에게 몰린 것 같아요. 본인도 힘들겠죠. 많이 미안해요. 하지만 제로한테 거는 기대도 있으니까, 스스로 이겨냈으면 해요. 저는 가능성을 믿고 있어요. 인터뷰 보시는 독자분들도 너무 비난만 하지 마셨으면 해요. '잘한다, 잘한다.' 하면, 정말 잘하는 여린 친구예요.



사실 '제로' 윤경섭만 포지션 이동이 있었던 건 아니잖아요. 불리츠 팀의 '인섹' 최인석도 포지션 변경이 잦았어요.

'인섹' 최인석의 탑 전향은 성공적이었죠. 섬머 시즌 준우승도 하고요. 하지만 탑 솔로 라이너로서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었죠. 인섹이 노력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최정상급 탑 라이너가 되기 위해선 시간이 조금 모자랐어요.

LoL, 특히 롤챔스라는게 길게 볼 수만은 없잖아요. 인섹과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본인이 잘할 수 있는 포지션이 무엇일까에 대해서요. 인섹이 잘 맞는 포지션이 정글러라고 얘기했고, 의견을 존중해 줬죠. '인섹' 최인석은 팀을 위해서 정글러로 다시 돌아온 거죠.





팀을 관리하거나 지도할 때 철학이 있나요? 아무래도 오랜 시간 감독으로 일했다면, 뭔가 지켜야 할 것이 있을 거로 생각하는데요?

'즐기자'입니다. KT 롤스터는 항상 즐기고, 긍정적입니다. 특히 저는 그래요. 선수들을 보면 항상 나를 본받으라는 얘기를 해요. 저는 굉장히 긍정적이거든요.

선수들은 어린 나이에 많은 관심을 받아요. 성적에 대한 고민도 크죠. 한 번 실수하면 수많은 화살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죠. 그만큼 관심과 비난을 동시에 받다 보니, 선수들의 감정이 기량에까지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선수들에게 항상 하는 말은, 편하게 하라는 것이에요. 뒤는 내가 책임질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후회하지 않는 경기를 하라고 말해요.

애로우즈가 SKT T1 K와 상대하기 전에 "이미 상은 차려졌다. 너희가 저들을 꺾는다면 얼마나 재밌는 일들이 생길까 상상을 해봐라." "모든 시선이 너희한테 가지 않겠나. 저들은 롤챔스를 전승으로 우승한 팀이다. 너희가 진다고 해서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어요. 경기 시작 5분 전에요. 웃으면서 들어가더라고요. 부스 안에서도 웃고요.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죠. SKT T1 K를 꺾었잖아요.



감독으로서 목표는 어떤 건가요?

저번 시즌은 롤드컵이 손에 잡혔다가 날아갔잖아요? 선수들도 허탈했어요. 박탈감도 느꼈죠. 다행히 윈터 시즌에서 불리츠가 3위를 하고, 애로우즈도 이번 시즌 좋으면서 팀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어요. 스프링 시즌 목표는 두 팀 모두 8강이었어요. 선수들이 상향 평준화되고, 팀의 리빌딩이 되면서 애초에 기대치를 크게 잡진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제 두 팀 모두 8강이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서킷 포인트도 좀 땄으면 좋겠어요. 애로우즈는 4강까지만 갔으면 좋겠어요. 경기를 많이 하게 하고 싶거든요. 4강에 간다면 3, 4위전도 하니까요.

불리츠는 최근 조금 부진하긴 한데, 호흡을 맞춰가는 단계에요. 8강에서 더 맞추고, 4강에서 더 교정한다면 결승까지 갈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스프링 시즌 스타트는 불안했지만, 선수들도 성장하는 걸 보니까 욕심이 생겨요. 불리츠는 강팀으로 평가받지만, 우승 경험이 없잖아요.



KT 불리츠가 리빌딩을 할 때 논란이 많이 일었습니다. SKT T1 K 다음 팀을 왜 건드냐는 식이었어요. 어떻게 리빌딩을 하게 됐죠?

아시겠지만, KT 롤스터는 스포츠 구단입니다. 라이벌 구단이 잘 되는 걸 항상 볼 수만은 없어요. 2위에 만족할 수 없잖아요. 저도 그렇게 선수 생활을 하지 않았고, 지도하지도 않았어요.

SKT T1 K에게 불리츠가 3번 연속 지면서, 그동안 노력했던 게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떻게든 SKT T1 K를 잡고 우승해야겠는 생각하에, 리빌딩을 결정했어요.

성적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겠지만, 기대하는 바가 있어요. 팀 내에서도 희망이 보이기 때문에 이런 리빌딩을 진행한 겁니다. 믿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인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애로우즈, 불리츠 두 팀다 열심히 합니다. 각 팀들간의 우애도 좋고요. 선수들은 인벤을 많이 봅니다. 팬들의 생각을 의식해요. 어린 친구들은, 성적에 대해서 압박을 많이 받아요. 큰 스트레스를 안고 하루하루 연습에 매진하죠.

선수들의 노력 자체를 낮게 보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됩니다. 선수들에게 응원이나 격려를 많이 해주세요. 꼭 보답하는 친구들입니다. 그런 따뜻한 눈으로 KT 롤스터를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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