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C2014] 기획자와 프로그래머, 서로를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시간'

게임뉴스 | 이종훈 기자 | 댓글: 39개 |


넥슨 하지훈 개발자

기획자와 프로그래머. 프로그래머와 기획자.

흔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사연들에서 두 직군은 거의 견원지간처럼 묘사되곤 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소통할 수 없는 관계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즐기는 수많은 게임들은 꽤 오래 전부터 명맥이 끊겨버렸을 테니까. 즉, 어떤 식으로든 두 직군을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는 것.

넥슨의 하지훈 개발자의 강연은 바로 그 방법을 짚어보고자 했다. 특히, 라이브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중점에 뒀다. 아직 개발 중에 있는 프로젝트와 실제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게임은 많은 부분에서 다른 상황을 만들기 때문.

그는 가장 먼저 프로그래머의 '안 된다 = 시간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기획자 입장에서는 간단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프로그래머 입장에서는 시스템 구조 등 훨씬 큰 부분까지 손대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만 쓸 겁니다', '나중에 정리할 시간을 드릴게요'와 같은 말. 물론 누군가는 '일시적인 속임수'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노력을 담아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도 있는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직군은 어쨌거나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서로의 입장이 다르고 소통하는 방식이 다를 수는 있지만 '재미있는 게임을 완벽하게 구현'하려는 목적은 같으니 말이다. 재미있게 들었던 강연인 만큼, 짤막하게나마 기자 개인의 소감을 남기자면 '한 발짝 물러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노력'이 핵심이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이는 무척이나 민감한 주제다.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해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하지훈 개발자가 NDC의 강연 주제로 이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사실상 '과감한 시도'라 할 만했다.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겠지만, 그는 나름대로 양측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풀어내려 했을 것이다.

그 의미를 가급적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강연에 사용된 거의 모든 슬라이드를 아래에 붙였다. 하지훈 개발자의 보다 자세한 의견은 슬라이드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본 이미지는 특정 게임과 전혀 무관합니다." by. 하지훈 개발자






부득이 계속 예제로 쓰게 되는 모 게임 이미지



갈등의 시작









흥정 아닌 흥정이 시작됩니다















3대 미덕을 모두 갖춘다? 포기하면 편합니다



마법을 가능하게 했던 키워드는 바로 '시간'.









대부분의 경우 항상 '시간'이 문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본 투 비 시스템 빌더















2~3일 걸린다고 했는데... 짜잔, 매직!



굳이 프로그래머가 아니라도 이해할 수 있을 쉬운 비유.
왼쪽보단 역시 오른쪽이죠.



골이 들어갈 줄 알았지만... 튕겨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









기획이 바뀐다 = 지금까지의 작업을 엎고 다시...









'가상의 예'입니다. 절대 디아블로와는 무관합니다





















습관이란 무서운 거거든요






속도전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단 하고 봐야죠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 잊지 마세요















저는 프로그래머가 아닌데도 저 비유는 확 와닿더군요






'이번에만' 쓸 겁니다. '나중에' 코드 수정할 시간을 드릴게요.


















일단 '하드코딩'을 이야기했을 때의 반응은 당연히 이렇게 나옵니다



하지만 같은 경우라도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
물론, 이야기한 것은 반드시 지켜져야겠죠.



이 요소들을 갖추면 하드코딩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 하지훈 개발자의 의견.



'기획자의 약속'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기획에는 언제나 '사각지대'가 존재하게 마련이죠



기획 단계에서 세세한 내용까지 정하기란 어려우니까요






























참고할 수 있는 짤방... 아니, 예제의 중요성.jpg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도 예방할 수 있지요.









프로그래머들의 유머코드를 표현한 이미지라고 하는데...
이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그냥 웃고 넘어가주시길.















비단 기획자와 프로그래머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뭔가를 뛰어나게 잘하면 뭔가는 부족할 수도 있으니까요.
둘 다 잘할 수도 있긴 합니다만...






재미있는 게임을 완벽하게 구현하고자 하는 같은 목표






될 겁니다. 아마.



문제가 발생한다는 건, 결국 둘 중의 한 사람은
'나쁘다'(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나만 잘하면 됩니다"
(...응?)



오해의 소지를 조금이라도 더 덜기 위해 강연 뒤 나왔던 Q&A 내용을 함께 전해드립니다.

Q. '이번만', '나중에'를 남발하다가 기획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요.

- 이런 문제는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문제라고 봅니다. "앞으로 계속 쓸 거야"라고 해놓고 안 쓰는 게 문제지, "이번에만 쓸 거야"라고 하고 나중에 또 쓰게 되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Q. 기획자가 프로그래머를 더욱 이해하기 쉬우려면 프로그래밍을 어느 수준으로 알아야 할까요?

- 엄밀히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기획자가 프로그래밍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알면 좋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기획자가 프로그래머 수준으로 프로그래밍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은 참 오묘합니다.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를 알고 있는 기획자는 차라리 0점인 기획자보다 못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잘못 이해하느니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고 할까요.

기획 과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프로그래밍을 알아두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래머를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프로그래밍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Q.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왜 못하냐"고 무조건 우기는 기획자는 어떻게 상대하는 게 좋을까요.

- 제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네, 그거 구현하려면 8개월 정도 걸립니다"라는 대답을 좋아합니다. "시간만 있으면 모든 걸 구현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도 좋아하죠.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뉘앙스랄까요.

다만, 알아두셔야 할 것은 프로그래머가 "안 된다"고 했을 때 그걸 '시간 문제'로 이해하는 기획자는 많지 않다는 겁니다. 때문에 반드시 시간이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해주는 편을 추천합니다.

또는, 말씀드렸던 '이번만', '나중에'를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먼저 요구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습니다.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가 "안돼 = 시간이 모자라"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Q. 프로그래머가 좋아하는 간식이나 선물을 추천해주세요.

- 프로그래머는... 음, 글쎄요. 제일 큰 선물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기획자가 "이번에 한 달 정도 비는 시간이 남으니 지난번에 못하고 지나갔던 것들 코드 정리할 시간을 드릴게요."라고 하는 것이 업무적으로 제일 큰 선물이죠. 업무에 투입 전에 시스템을 구축할 시간을 주는 게 가장 큰 선물인 셈입니다.

실물 중에서 찾자면 뭐... 미팅 주선 정도? 아, 참고로 저는 기혼입니다. 미팅 주선해주시면 안 돼요.


Q. 기획자가 제일 답답하게 느껴질 때는?

- 프로그래머가 봤을 때도 잘못된 기획인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제일 답답하죠. 프로그래머가 봤을 때 기획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보일 때. 그렇다고 기획 자체를 엎을 수도 없고, 구현하자니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릴 듯하다고 판단될 때. 이 정도가 되겠네요.

중요한 건, 어차피 양쪽 모두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기준으로 삼아 의견을 맞춰나가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Q. 프로그래머 본인의 작업 속도 때문에 일정 진행이 어려운 경우는 어떻게 하죠?

- 그런 경우에는 프로그래머의 작업 속도에 맞춰 일정을 잡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잘하는 사람은 빠르게 잘하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느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저는 속도가 느린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건, 속도가 느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주일 걸릴 작업을 3일 안에 하겠다고 큰소리 치는 경우죠. 이런 경우에는 기획자가 시간 조율에 관여하든지 하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Q. 프로그래머 출신이 기획자를 하면 업무 능률이 전체적으로 올라갈까요? 실제 그런 일이 자주 있는지?

- 저는 업무 능률이 전체적으로 올라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두 가지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고는 생각지 않거든요. 한 쪽은 기계와 대화하는데 특화되어 있고, 다른 한 쪽은 사람을 상대하는데 익숙합니다. 너무도 다른 두 가지를 완벽하게 소화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저는 두 가지 중 하나는 완벽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편이에요. 다만, 그런 사람이 팀에 포함되어 있다면 프로그래머와 기획자 사이에 트러블이 생겼을 때 그 사이를 중재하기가 훨씬 쉬워질 수는 있을 겁니다.

여담입니다만, 외국에서는 프로그래머가 기획자로 전직하는 사례가 많다고 들었습니다다. EA 쪽이었나, 아무튼 그쪽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프로그래머가 기획자로 전직한 사례는 있지만 기획자가 프로그래머로 전직하는 사례는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 사례를 보면 '프로그래머가 먼저 기획자를 이해하는 쪽이 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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