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심리학자 이장주 박사, "게임중독? 기성세대의 심리적 소화불량 현상"

인터뷰 | 이종훈 기자 | 댓글: 89개 |
게임, 그리고 심리.

묻고 싶은 게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선뜻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밀접한 듯 하면서 동시에 이질적인 느낌도 드는 두 단어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도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질문 거리들을 고를 때도, 지극히 개인적인 궁금증인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물었습니다.

약 두 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 긴 시간을 의도한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간단한 화제만을 예상하고 갔거든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몇몇 법안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여러 의견들. 이에 대한 심리학자로서의 관점을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게임에 빠져들게 되는 심리적 원인'으로 시작된 이야기. 그리고 이런저런 키워드에 따른 내용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뻗어나가 다음 화제를 만들어냈습니다. 듣다보니, 이건 통째로 담아낼 만한 의미가 있겠다 싶더군요. 게임에 관련 내,외적인 화제까지 넓은 범위는 물론,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넘나들었으니 말입니다.

한 학자로서의 의견과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논리적 배경,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한 예제까지 담아내다보니 분량이 꽤 많습니다. 이 점 감안하시고, 편안하게 보셨으면 합니다.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겸임교수,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이장주 박사



테마 1. 인간은 왜 게임에 빠져드는가?




게임 자체에 대한 심리적인 요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게임에 빠져드는 것이 사회적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례가 많이 있으니까요.

이는 근본적으로 게임이 재미를 추구하는 미디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으니 계속 하고 싶고, 그러다보니 몰입하게 된다는 건데요. '재미'라는 것에는 심리학적으로 어떤 원리가 작용되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음... 다른 인터뷰들을 보니까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학자들의 이론을 인용하는 게 그럴듯 하더라고요(웃음).

에드워드 L. 디씨(Edward L. Deci)와 리차드 M. 라이언(Richard M. Ryan)이 이야기한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이라는 게 있습니다. 여기 보면 '재미를 느끼도록 하는 세 가지 요소'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요약하자면, '재미있다'는 느낌은 자기 스스로 결정해야하는 것이지, 누군가 만들어줄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세 가지 요소의 첫 번째로, '유능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면 할 수록 스스로 실력이 늘거나 성장하는, 즉 보다 능숙해져 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두 번째는 '관계성'입니다. 점점 능숙해져가는 것뿐 아니라, 내 성취와 비교한다거나 할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을 주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욕구가 여기에 속합니다.

세 번째 요소가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바로 '자율성'입니다. 무엇이든간에 스스로 해야지, 누가 시켜서 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공부가 재미없다고 하는 건, 누군가 시켜서 하기 때문이에요. 기자님도 앞으로 살면서 꼭 기억해 두세요. 취미로 즐기던 것이 직업이 되면 재미가 없는 법입니다.



직업에는 대개 자율성이 배제된 경우가 많다.



네, 맞는 말씀입니다. 요즘 주변에서도 종종 듣고 있습니다. 가끔 스스로도 느낄 때도 있고요. 그게 자율성이라는 측면과 연관되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맞습니다. 직업은 돈을 받고 하는 일이잖아요. 만약 내가 즐거워 하는 일이 온전히 취미로 남기를 원한다면 그것과 관련해 결코 돈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단 조금이라도 돈을 내면서 해야죠. 돈은 인간에게서 자율성을 빼앗을 수 있는 가장 주된 원인입니다.

자율성이라는 건, 누군가 나를 방해하려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본능입니다. 별 것 아닌 것도 '금지'라고 하면 어기고 싶어지는 게 사람입니다. 자율성에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금지된 것을 어기는 순간, 스릴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청소년 이용불가 표시인 19금 마크 아시죠? 그게 19세 미만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표면적으로는 당연히 "보면 안 된다"는 사인입니다만, 동시에 "아, 저거 재미있겠네"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본능을 자극하는 거죠.

굳이 막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놔두면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금지 팻말을 거는 순간, 오히려 '저것은 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부추기게 되죠.

온라인 게임은 앞서 말한 세 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이유죠. 플레이할수록 성장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그리고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으니까 더 하고 싶고,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희열을 느끼게 되죠.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게임이 재미있다'고 느끼게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심리.
물론 좌절은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긴 시간 게임을 플레이 하는 사례들이 '과도한 몰입을 유발한다'는 비판의 근거로 활용되곤 합니다. 이런 경우에도 말씀하신 '재미'의 원리와 연관이 있을까요? 혹은 또다른 관련 요소가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물론 관계가 없지는 않겠습니다만,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의지력'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의지력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게 마련입니다. 마치 휴대폰 배터리처럼 말이죠. 물론 사람마다 격차는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일정 시간 동안 뭔가에 집중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의지력이 떨어집니다. 재미를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죠. 일정 시간 즐기고 나면 다소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며칠 밤을 새고 굉장히 피곤해지면 '잠을 자고 싶다'는 본능이 발동하게 되고, 12시간 혹은 24시간을 잘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나면 잠에 대한 의지력이 떨어지죠. 36시간, 72시간 계속 자라고 해도 그렇게 하기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몇 끼니를 계속 걸러서 배가 몹시 고픈 상태라면 밥 두 그릇, 세 그릇도 먹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덟 그릇, 열 그릇 먹을 수는 없죠.

온라인 게임을 과도해 보일 정도로 오랜 시간 플레이한다면 그건 다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게임 자체가 재미있어서라기 보다는 그 안에서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에 몰입한다고 보는 편이 그럴 듯합니다.

만약 온라인이 아닌 싱글 게임을 앉은 자리에서 며칠 동안 계속 할 수 있다면, 저는 오히려 그 집중력을 칭찬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거 쉬운 일 아니거든요.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심심한 것을 잘 참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뭔가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가지에 대한 의지력이 떨어지고 나면 느끼는 재미도 줄어듭니다.

게임에 빠져든다? 그 많았던 WoW 유저들이 지금은 왜 그렇게 많이 빠져나갔을까요? 그건 자신이 그 게임에서 느끼는 재미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엇이든 지겨우면 안 하게 되거든요. 그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아무리 재미있다고 한들 그 '재미' 하나만 가지고 게임을 하루종일, 며칠 내내 하기는 어렵습니다. 게임에 중독이라는 말이 매치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건 중독 아니라 중독 할아버지라도 안 되는 거예요. 대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멍~ 해지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거든요.



의지력이 떨어지고 나면 아무리 재미있던 것도 시들해지게 마련



흠, 사회적 관계라는 건 게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닌데요. 그럼 게임 외에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줄 것이 충분하다면 게임에 몰입하는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겠네요.

재미의 요소 중 자율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을 고안해 제공하든지, 아니면 자율성에 있어 충분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배가 부르면 밥을 달라고 하지 않는 법입니다. 아이들의 심리적인 허기를 채워주지 못한 상태에서 자꾸 막으려 하니 지금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또, 의지력이 발현될 수 있는 시간에 중요한,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뭔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물론 성인들이야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거고요.



법안에서 주로 화두로 삼고 있는 사례들을 보면 청소년 계층, 특히 남학생의 사례가 많습니다. 수많은 사례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환경이 갖춰져 있다 해도 의지력을 자발적으로 활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심리학 분야를 보면 '여성심리'가 있고 '아동심리'는 있는데, '남성심리'는 없습니다. 왜 그런줄 아세요? 남성심리는 아동심리랑 똑같거든요(웃음).

여자들의 경우 13세를 넘으면 '사람 이외의 것'과 잘 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비중이 크다는 겁니다. 하지만 남자는 달라요. 나이가 몇 살이든 관계없이 무엇을 가지고도 잘 놉니다. 게임도 그 중 하나죠.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경쟁심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게임 안에서 사람들과 경쟁하고 겨루는 사회적 행위 자체가 큰 재미를 줍니다.

그리고 이 테스토스테론이 가장 왕성하게 나오는 시절이 청소년기입니다. 20대 후반 정도까지가 가장 왕성한 때고, 그 이후로 줄어들죠. 저처럼 아저씨가 되고 나면 게임이 별로 재미가 없어요. 사람의 자연스러운 발달 순서에 해당하는 이야깁니다.

삶의 어느 순간에는 게임이 미친듯이 재미있어서 매달리는 시절이 있습니다. 그게 지나면 자연스럽게 수그러들게 마련이죠. 어른 중에 게임 때문에 문제가 되는 사례는 비율로 따지면 지극히 미미합니다. 있다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건 게임이 문제라기 보다는 개인 성격이나 환경 등이 문제인 경우가 많죠.

심리학자로서 요즘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에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샘플을 쉽게 채집할 수 있는 편이고, 이를 분석해보면 반드시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주제들과 관계있는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이러한 배경에 관련된 노력은 국회보다는 게임사 차원에서 먼저 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우리 게임을 이용하는 유저들의 성향을 더욱 심도 있게 분석하려는 자세를 가져달라는 겁니다. '컨텐츠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게임에 재미를 느끼는 것도 성장 발달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갖춰야.



테마 2. 그렇다면, 지금 어긋난 것은 무엇인가?




지난 3월 있었던 한국게임법학회 창립 심포지움에서 잠시 인사를 드렸었는데요. 그때 정부와 업계 모두 어긋난 대응을 하고 있다는 식의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문제로 한정지을 수 없다는 의미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어떤 사회에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이 나타났을 때, 불안감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건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한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아요. 인간의 뇌 깊숙한 곳에 자리한 본능이 발현되는 현상이거든요.

부모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것에 아이들이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있으니 불안한 겁니다. 이것을 접함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를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불안해지는 겁니다.



그 불안감이라는 건, 흔히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이네요. 그럼 실마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에, 첫 단추는 업계가 먼저 꿰려고 시도해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나타난 이 불안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달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불안이라는 것은 심리적인 소화불량과 같습니다. 이걸 해소할 방안이 필요합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반대하는 사람들을 배제하려 하지 말고 같은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 테면, 캐주얼 게임들을 활용해 서로 교집합을 이룰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하는 방법이 있겠네요.

'게임으로 멋진 엄마 되기'와 같은 움직임이 확산될 수 있다면, 불안감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겁니다. 아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말이죠. 실체를 모르던 게임이라는 녀석이 어떤 건지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니 그만큼 불안이 덜어지는 겁니다.

만약 이러한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채 계속 중첩되면, 어느 순간 "몰라, 나는 몰라. 나는 싫고 그냥 못하게 막아줘"라는 태도로 일관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언로가 닫혀버리게 되죠.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라는 생각이 들면 불안감은 함께 피어나게 마련



완전한 어둠보다는 단 한 줄기라도 빛을 비춰주는 편이 낫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렇다면 최근 업계에서 보이고 있는 대응방법에 대해서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의견의 핵심은, 양동작전이 필요하다는 건데요. 논리적인 반박을 마련하는 것만큼이나 감정적으로 달래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정확히는 감정적으로 달래주는 것이 조금 더 중요하죠.

상대방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해서 '쟤 뭐라는 거야'라고 소통을 닫아버리지 말고, 더 당당하게 맞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느냐'고 먼저 묻고 절충점을 찾아가는 편이 낫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서로 이야기를 들으려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적대감은 훨씬 사라지게 마련이니까요.

게임업계 쪽에 우호적인 의견을 가진 분들도 상당히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건, 그 분들이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완전히 적대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분법적 논리가 아닌 보다 창의적인 접근방식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오류는 아니라고 하셨으니, 정치계나 정부의 대응에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실 듯합니다.

업계가 먼저 나서야 한다고 이야기하긴 했습니다만, 사실 이런 일련의 책임을 특정 기업 하나가 짊어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진흥원 같은 기관들을 주체로 세워 이런 일들을 함께 추진하도록 장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된 담론을 만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사례들 중 긍정적인 것, 적합한 것들을 찾는 일들 말이죠. 만약 없다면 앞으로 하나씩 만들어가는 작업도 필요할 테고요.

이런 것들이 갖춰졌다는 가정 하에 아까 말씀드렸던 '불안해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볼까요. "누구네 집은 이렇게 하더라고요. 참고해보시고 그래도 문제가 되면 여기를 찾아가보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그냥 "문제가 생기셨나요? 여기로 가보세요"라고 하는 건 분명히 다릅니다. 이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나가자는 겁니다.

가장 간단한 원리로, 내 편이 많으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의견이 합치될 수 있다면 내 편으로 끌어 안으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서로 다 알만큼 아는 사람들인데, "그쪽은 ~~을 몰라서 그렇습니다"라고 하면 당연히 반발심부터 생기게 마련이죠. '이 자식 이거 웃긴 놈일세'라는 생각으로 출발하면 원만한 합의를 얻기 힘듭니다.

'어느 측면에서는 당신들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이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접근하자는 겁니다. 그게 학자의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 게임 포럼에서 발언하실 때는 "지금 사회는 게임에 대한 게임"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비유에 대해 좀 더 부연해주신다면요.

그 비유를 전체적으로 보자면, '게임 개발과 서비스가 갖는 가치'를 놓고 긍정적인 세력과 부정적인 세력이 게임을 벌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방어에만 치중하고 있어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질 가능성이 높은 전략을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

법으로 명시된 조항을 근거로 반박을 해나가는 건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방어입니다. 그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죠. 방어와 동시에 특공대를 투입하든 해서 공격도 병행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더불어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내다보고 그를 고려한 전략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죠. 장기적으로는 그 편이 업계에 더 보탬이 될 거라고 봅니다.



혼자서 해나갈 수는 없기에 아군/우군이 많을수록 좋다



테마 3. 사회문화심리의 관점으로 바라본 게임의 과거와 미래




지금까지 말씀을 들어보면 박사님께서는 중립적인 견해를 상당수 가지고 계신데요. 한편으로는 게임에 대한 애정도 꽤 느껴집니다.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제가 게임에 관심을 갖는 건, 앞으로의 여가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게임이 힘을 잃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이토록 쉽게 접할 수 있는 여가도 흔치 않은데요. 그러니 답답한 겁니다.

제가 2003년도에 사회문화심리학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는데요. 이게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상담심리하고는 좀 다릅니다. 사람들이 좀 더 즐겁고 활기차게 살 수 있는 부분을 고려하는 긍정의 심리학(Positive Psychology) 분야라고 할 수 있죠.

어디 보자... 그러니까, 주 5일제 근무제 분위기가 생겨난 게 2005년부터인데요. 그때 사회문화심리학의 필요성도 같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주 5일제가 되면 여가 시간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비슷한 시기에 e스포츠가 슬슬 붐이 되고 있었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콘텐츠로서 e스포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주 5일 근무는 사실 아직도 완벽하게 정착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야근이나 초과업무는 빈번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적지 않죠. 여가, 이른바 '노는 시간'을 준다는 건 산업의 생산성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만,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 건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몰려 있는 채로 돌지를 않아서 문제가 되는 거죠.

그 해결을 위한 바탕에 여가가 있습니다. 노는 시간을 줘야 돈을 쓰게 마련입니다. 한 가족을 단위로 봤을 때, 그 구성원들이 여가를 위해 사용하는 돈은 상당합니다. 각자가 사용하는 것은 물론, 가족여행 등 다함께 쓰는 것까지 포함하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죠. 그런데 바로 그 '돈 쓸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 돈은 어딘가에 계속 고여있게 됩니다. 내수가 돌지를 않게 되는 거죠.

저는 돈을 쓰는 것을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안 쓰면 안 되는 돈'입니다. 먹는 것이나 병원 치료비 등으로 사용하는 것들이죠. '최소한의 삶의 수준'을 유지하는 비용이고, 이런 것들은 네거티브한 소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도록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이죠.

나머지 하나가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데 쓰는 돈'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품위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도록 하는 행위에 소비하는 것이 이에 해당하죠. 생활 수준 유지에 돈을 써서 0을 만들었다면, 이러한 소비로 플러스(+)를 만듭니다.

여가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수단은 보다 다양해져야 하고, 저는 게임이 그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가'는 재충전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
게임 역시 여가의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는 수단이다.



사회문화심리학의 측면에서 게임이 잠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의견인 듯 한데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신 논리적 배경이 궁금합니다.

사회문화심리학에서는 큰 흐름을 봅니다. 1~2년, 2~3년이 아니라 100년, 200년, 300년의 긴 시간 동안 나타나는 문화현상의 트렌드에 주목하는 학문이죠. 짧은 시간으로 나눠서 보면 눈에 띄지 않았던 혁신적 변화들은 보다 큰 범위에서 봤을 때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문화현상의 변화는 인간사회의 심리기제나 사고방식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대개 어떤 혁신이라 할 수 있는 발전 혹은 발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죠.

한 예로, 시계의 보급을 들 수 있습니다. 시계의 크기가 작아지고 너도나도 하나씩 가지고 다니게 되면서 사람들은 시간에 좀 더 민감해지고 보다 딱딱 계획된 삶을 살게 됐습니다. 시간을 지키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짧은 시간에 일을 해내는 것이 능력의 기준이 되는 것도 시계 기술의 발달과 보급이 만들어낸 문화현상의 흐름입니다.

산업시대의 주력은 제조업이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빠른 시간 내에 많은 물건을 만드는데 힘을 쏟았죠. 일단 물건을 잘 만들어놓기만 하면 잘 팔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예전에 비하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풍족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잘 만든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소비자들이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가 자신에게 무언가 감동을 주는 물건을 사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고방식이 만들어진 겁니다.

사회문화심리학에서는 이런 식으로 문화현상의 커다란 흐름과 그 바탕이 되는 원인을 봅니다. 어떤 문화적 현상이 나타나고 보편화됨으로써 인간사회의 기저에 깔리는 심리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캐치하는 거죠.



문화현상의 흐름이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할 만한 예제가 또 있을까요?

세상을 바꿨다고 말할 수 있는 여러 혁명적 사례들을 모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보자면 기계, 그러니까 하드웨어적인 것을 고안해 낸 사람들은 사실 금전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만든 건 포드지만, 자동차가 발달하고 보편화됨으로써 부자가 된 사람은 석유재벌 록펠러입니다. 이 사람이 어느 정도였냐면, 미국 GDP의 2%를 혼자서 차지한 적이 있었습니다. 국가의 생산량을 100으로 봤을 때 그 중 2개가 '단 한 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이래가지고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죠. 미국에서 독점금지법(반독점법, Anti-trust Law)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 사례와 연관이 있습니다.

* 독점금지법 (Anti-Trust Law) : 1890년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인 존 셔먼이 스탠더드 오일(록펠러가 1870년 설립한 석유회사)을 겨냥해 제정한 셔먼법을 시작으로 함. 셔먼법은 동종 업종의 '카르텔'(기업연합)과 '트러스트'(기업합병)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함. 이후 1914년 클레이턴 법, 연방거래위원회 법 등 3개 법령과 관련된 판례로 구성되어 있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조금 궤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사례로, 빌 게이츠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도록 해준 건 컴퓨터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을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운영체제 윈도우, 즉 소프트웨어 콘텐츠였죠.

좀 더 최근의 사례 중에서 찾아보자면, 이런 게 있겠네요. 게임을 TV와 연결해 큰 화면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처음 그 방식을 생각해냈을 당시에는 어땠을까요. 정말 혁신적인 생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익숙한 보편적 개념입니다. 너도나도 이 기술을 활용하고 있고, 그것 이상의 가치와 경험을 창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시니 이해하기가 좀 더 수월하네요. 그렇다면 게임이 언급해주신 예제들에서처럼 인류 문화의 흐름에서 어떤 혁신을 일으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사례들을 이야기하다가 잠시 딴 데로 샜습니다만, 앞서 하던 이야기들과 연관 짓자면 중요한 건 이겁니다. 게임이라는 강력한 콘텐츠를 이미 가지고 있는데, 굳이 그것에 제약을 걸 필요가 있냐는 겁니다. 더 폭넓게, 제대로 이용하려 해야죠.

이를 테면, 차 안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냉장고를 게임처럼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이런 식으로 게임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의 근본 원리가 재미에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재미와 관련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찾는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구상하는데 가장 민감하고 촉이 좋은 사람들은 바로 게임 개발자고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일 겁니다. 그들이 주축이 되서 앞으로 게임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어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흔히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게임보다 훨씬 넓은 의미로 바라보고 계신 듯합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실 듯 한데요. 기능성 게임이나 게이미피케이션 같은 개념들에 대해 '게임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로, 쓰레기 분리수거함에서 불빛이 들어올 때 쓰레기를 넣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리켜 '분리수거를 게임처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사례'라고 소개한 것이 있죠. 이에 대해 "그게 무슨 게임이냐"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발상"이라는 의견이 있었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보수적인 마인드가 아닐까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구요? "내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좋은 발상인 것 같다"라는 관점으로 받아들여야죠.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게임에 우호적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꼭 엄청난 서버 규모가 있어야,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그래픽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게임인가요? 안 그래도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스스로 소수라고 느끼는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게임에 우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굳이 서로 편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런 아이디어를 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거기서 뭔가를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게 왜 재미있는지 등을 파악해 다른 게임을 만들 때 '기본적인 재미 요소'로 활용할 수도 있겠죠.

'메이저', 또는 '주류'라는 위치는 세상이, 그리고 세월이 만들어주는게 아닙니다.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죠.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고, 지금까지의 게임은 어느 정도 잘 헤쳐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변화의 기류를 잘 탄다면 게임은 더욱 넓은 범위로 승승장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재미있어한다면 왜 그런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테마 4. 게임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런 사회문화적인 흐름에서 볼 때 현재 게임의 위상은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처럼 부작용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게임이 잠재적 가치를 지니는 건 기존까지 없던 특성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의 사회통념에서 중요시 했던 건 규칙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안정된 사회'였죠. 털끝 하나도 오차가 없는, 용납되지 않는 사회. 그 관념에서 봤을 때 게임은 그야말로 무법천지나 다름 없습니다. 기존에 용납되지 않던 변칙이나 오차가 게임 안에서는 무수히 발생하니까요.

실제로 '게임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임 안에도 물론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만, 대개 '잘하는 사람'들은 그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룰, 또는 전략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꾸준히 이 세계를 관찰하다보니 그 사이의 허점이 보이는 거고, 그것을 캐치해내는 것이 곧 능력으로 인정됩니다. 절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추구하는 관념 속에서 이런 시스템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트렌드가 주욱 바뀌고 있고, 게임산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넓은 관점에서 봤을 때, 게임이라는 것이 생겨난 이래로 지금처럼 넓은 저변을 가졌던 적이 없습니다. 성별, 연령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게임을 즐깁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온라인 게임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야 합니다. 또 다른 말로 보자면, 그간 게임업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온 회사들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죠.

제 솔직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지금의 게임은 분명 새로운 미디어입니다만 동시에 이미 어느 정도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시대 발전의 트렌드를 발 빠르게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사는 시대입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각종 웨어러블 컴퓨팅 기술도 늘어나고 있죠. '전기놀이' 아시죠? 정확한 명칭이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불 덮어놓고 그 안에서 서로 손을 잡아가며 누구인지를 맞추는 놀이 말입니다.

이대로 가면 언젠가 네트워크로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 안에서 수십만의 사람들이 '전기놀이'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면대면으로만 할 수 있던 놀이를 현실이 아닌 공간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하게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너무 멀리까지 이야기한 경향이 있습니다만, 문화현상의 패턴은 시시각각 꾸준히 바뀌고 있고, 그 흐름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웃음).



과거, 현재, 미래... 트렌드는 시시각각 변한다



트렌드의 흐름에 주목하고 계시다고 했으니, 게임업계의 향방에 대한 의견도 가지고 계실 듯합니다.

이제는 공급자의 시점이 아닌 소비자의 시점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사가 아닌 게임 이용자들을 주체로 봐야한다는 겁니다. 게임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위해 소비하는 콘텐츠의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형식에 고정시키기보다는, 이용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무엇이든 시도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인간은 심심한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많은 행위를 합니다. 그게 꼭 게임이라는 법은 없죠. '심심하지 않기 위해 하는 모든 것'들, 그리고 나아가 생활의 모든 요소들을 보다 재미있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정말 간단하게 예를 들어, 건강과 자기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운동, 심지어 식사 준비를 위해 냉장고를 왔다갔다하는 행위까지도 더욱 재미있게 만든다면 어떨까요?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하나, 게임은 이제까지 상당히 '저렴한 모델'을 지향해 왔습니다. 이제는 '멘탈 모델'(Mental Model)이라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감정과 연관된 수익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은 단순히 '위장을 채우기 위한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그 곳의 음식들은 어떻게 생각해봐도 단 한 끼 식사를 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하기에 싼 가격이 아니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가서 식사를 합니다.

이들 업체는 '보다 즐거운 식사'와 같은 멘탈 모델을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비싼 비용을 요구함에도 여기서 식사를 하면 그에 상응하는 심리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저 단순히 배고픈 상태를 해소하고자 한다면 구내식당 같은 저렴한 식당에서도 얼마든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죠.

쉽게 설명하고자 예를 들었습니다만, 이런 것들이 바로 심리학적인 접근의 한 방향입니다. 그런데 요즘 게임들을 보면 여전히 공학적인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개발기간이 얼마인지, 개발비용이 얼마가 투입됐는지에 무게를 둡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 얼마만큼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배가 고프니 배를 채워야한다는 식이 아니라, '모두가 배가 고프지만은 않은 세상에서 식사는 어때야 하는가'라는 의문. 이런 식의 고민이 바로 새로운 방향의 발전 모델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 됩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시도하는 주체가 게임사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예를 들자면, '우리 게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앞으로 다가올 사회에서 요구되는 하나의 가설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겁니다.

게임사들에게 "무엇에 투자해라, 어디에 돈을 들여야 한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권유는 콘텐츠진흥원과 같은 곳에서 해야할 일이죠. 저는 온라인 세상 안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어떤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은 이런 방법들을 통해 얼마든지 재조합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누군가 시켜주기만 한다면 GM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웃음). 온라인 게임은 사회의 축소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안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많은 현상들 대부분이 현실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나 바로잡아야 할 것들을 투사하고 있다는 생각이고,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것.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넓은 범위를 넘나들며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정리하는 차원에서 게임업계와 관련된 현안에 대해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그러지요. 이야기가 너무 장황하긴 했는데, 핵심만 간추리자면 이렇습니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기존에 없던 무언가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바로 그러한 변화의 흐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요.

지금 시점에서 게임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표준 가치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기존에 게임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심리적 소화불량에 걸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셧다운제나 중독관리법, 매출강제징수법 등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일련의 정책들은 이런 '기존 세대'들의 심리적 소화불량이 빚어낸 현상들이라고 봅니다.

게임은 인류문화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산물의 하나입니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을 너무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부작용으로 진통을 겪으며 발전해가는 과정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설령 정말 문제가 된다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잘 모르는 것이라고 제대로 접해보지도 않고 불안함을 감추지 않는 모습으로 지금과 같은 포지션을 취한다면 언젠가 시간이 지났을 때 법안을 낸 사람 스스로도 창피해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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