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주 칼럼] 게임과 심리학 (1) - "게임중독? 과몰입? 둘 다 틀렸다!"

칼럼 | 이장주 박사 기자 | 댓글: 361개 |




인벤에서는 '게임하기의 심리학적 고찰'을 키워드로 한 사회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님의 기고를 소개해드립니다. 이번 기고의 주제는 중독과 몰입의 심리적 경험 차이입니다.

이장주 박사님은 현재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겸임교수이자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에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독과 몰입의 심리적 경험 차이, 시작하기에 앞서...


칼럼을 시작하면서 약간의 내 소개와 칼럼 방향을 소개하는 것이 예의일 듯하다.

나는 노는 것에 관심이 아주 많은 문화심리학자다.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반드시 해야만 되는 것을 하는게 일이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는게 놀이다." '캬~!' 소리가 절로 나오는 기막힌 정의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는 것, 나쁜 말로 '잉여'고 좋은 말로 '창의성'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놀이를 할 수 있는 인류의 탄생은 중요한 문화사적 성취다. 과학기술과 문화의 발달을 빼 놓고 놀이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위대한 성취에 대해 요즘 많은 비난과 비하들이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나는 앞으로 칼럼을 통해 이런 놀이가 얼마나 위대한 능력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지 문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특히 놀이 중 백미인 게임을 중심으로 말이다. 이 칼럼은 안 읽어도 세상 사는데 아무 지장 없다. 하지만 읽으면 세상이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어찌 믿느냐고? 에이~ 세상 속고만 사셨나?!

게임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게임은 차세대 문화이고 산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간에 극명한 차이는 용어를 통해 나타난다. 전자는 ‘중독’이라고 게임하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후자는 ‘(과)몰입’이라고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근데 그런 차이가 무엇인지 쉽게 설명해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세계 최초(?)로 중독과 몰입에 대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중독에 대해서 - "중독은 매우 엄격하게 사용해야 하는 개념"


중독(Addiction)의 핵심적인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 주변에서 경험할 수 있는 대표적 중독인 알콜 중독을 들어보자. 알콜 중독은 술(알콜)을 많이, 자주 마시기는 하지만, 그것이 핵심특징은 아니다. 오히려 알콜 중독의 핵심 특징은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 드러난다.

알콜중독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발이 떨리고, 땀이 나거나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잠도 못자는 신체적 증상과 헛것이 보이거나, 작은 벌레가 피부에 기어다니는 듯한 환각이나 망상 등의 정신적 장애가 발생한다. 이런 현상을 '금단현상'이라고 부른다. 알콜중독은 마시지 않으면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이런 심각한 문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알콜 중독자들은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게 되는데, 그 양이 점점 증가한다. 이런 것을 '내성'이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의 근원에는 오피오이드 수용체(Opioid Receptor)라는 것이 관여되는데, 우리 몸에서 진통완화와 관련된 역할을 한다. 술을 자주 마시고 많이 마실수록 오피오이드 수용체는 술의 지배를 받게 된다. 술이 없어지면 오피오이드 수용체가 감소되며, 이 과정에서 갈망이 생기고 불안감이 생긴다. 이런 기제는 마약(모르핀) 중독과 같은 이치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특징이 있다. 이런 알콜 중독이 장기간 지속되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도덕적인 문제, 법적인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되며, 종국에는 본인의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통제를 할 수 없다는 점이 중독의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하겠다.

참고로 알콜 중독자는 술을 많이 마셔 간질환으로 죽을 것 같은데 그런 경우는 아주 축복받은 경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체로 이런 환자들은 밥을 먹지 않기 때문에 영양실조와 관련된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사망에 이르기까지 뇌 신경 손상으로 인한 알콜성 치매나 발작증상이 나타나며, 혀가 굳거나 걸을 수 없는 신체적 기능손상이 나타나는 등 아주 최악으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폐인'이라는 말이 정말 딱 맞는 표현이다.



중독의 특징은 금단현상과 통제불능
※ 이미지 출처 : PIXABAY

약물 중독과 조금 다른 형태로 '행위 중독'이라는 개념이 최근에 나타났다. 이런 행위 중독으로 WHO에서 유일하게 공인 받은 것은 도박 중독(Pathological Gambling)이다. 도박 중독의 기전도 알콜 중독과 매우 유사하다. 핵심은 도박을 해서 돈을 따게 되면 도파민 등의 쾌감중추가 활성화되는데, 이런 쾌감의 기분을 못 잊어서 지속적으로 도박을 하게 되며, 결국 자신의 경제적 손실을 넘어 가족의 재산까지 탕진하는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만, 스스로 이것을 멈출 수 없기에 병리 현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결국 중독을 요약하면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뚜렷하게 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스스로 이것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치료라는 이름의 개인의 판단과 자율성을 통제하는 행위가 정당화되는 현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인권이 존중되어야 하는 민주주의 시대에 중독이라는 개념은 매우 제한적이고 엄격하게 사용해야만 한다.



몰입에 대해서 - "중독과 몰입은 엄연히 다르다"


중독과 유사한 개념으로 '몰입'(Flow)이 있다. 칙센미하이(Csikszentmihalyi)라는 헝가리 태생 미국 심리학자는 창의적인 화가들을 관찰하게 되는데, 이들은 허기와 피로도 잊은 채 휴식도 취하지 않으면 작업에 몰두하는 현상 관찰을 통해 '몰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간단히 말하면, 몰입의 경험은 '무언가에 흠뻑 빠져 있는 심리적 상태'를 지칭한다. 그래서 이런 활동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상적으로만 볼 때 중독과 같은 현상으로 오해될 수 있다.

또한, 몰입은 지적 활동과 관련된 좌뇌의 활동 수준이 낮아지고, 공간지각과 심미적 경험을 관장하는 우뇌가 활성화되기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이 어렵다. 즉, 누군가가 그런 것을 왜 하냐고 물어볼 때 설득력 있는, 똑부러진 대답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중독과 유사한 특성 중 하나다.

영국의 유명한 등반가 조지 말로리(Georgy Mallory)는 왜 등산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산이 거기 있어서 산에 오른다'라는 멋진 답을 했다. 전형적인 몰입반응이다. 과연 '게임이 내 눈앞에 있어 게임을 한다'라고 답하면 무슨 반응이 나올까?



'게임이 내 눈앞에 있어 게임을 한다'고 답하면?

몰입은 중독과 본질적으로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몰입은 자기목적적 경험(Autotelic Experience)이다. 이 말의 뜻은 무언가를 위한 도구로서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행위를 뜻한다. 그냥 행복한 경험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런 차이는 도박과 비교해보면 극명하다. 도박은 행위 자체에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도박을 통해 큰 돈을 따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그림 그리기나 악기 연주는 결과라기보다는 행위 자체가 매력적이기에 반복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돈을 잃어도 상관없는 큰 부자나, 소액이라면 모르겠지만, 도박은 결과물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몰입의 본질적 개념과 어울리지 않는 현상이다.

두 번째, 몰입은 생산적 에너지(Eudaimonia)를 증대시킨다. 신체적 쾌감을 주로 하는 재미들은 심리적 엔트로피(Entropy), 즉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를 증가시킨다. 예를 들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더라도 많이 먹으면 질리게 되어 한동안 아이스크림 생각이 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몰입은 말초적 쾌감과 달리 생산적 에너지를 증대시킨다. 그래서 밤을 새워 무언가를 하고나서 신체적으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눈을 떴을 때 다시 그것을 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면 그게 바로 몰입이다.

세 번째, 몰입은 숙련을 요구한다. 즉, 노력없이 극도의 몰입감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쉬운 것을 재미있어 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몰입은 쾌감을 넘어 숙련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통조차도 즐겁게 느끼도록 해준다. 즉 몰입은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 사람은 어려울수록, 실패할수록 매력을 느끼는 이상한 동물이다.

네 번째, 몰입은 사회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몰입은 그 자체의 경험뿐 아니라 그것의 중요성을 느낌으로 인해 세상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열정적 관여(Vital Engagement)를 하게 된다. 즉, 몰입의 결과물은 자신 뿐 아니라 누군가와 반드시 연관된다는 의미다. 반면 중독은 세상에 분리감과 이질감을 느끼며 거리를 두고 소극적으로 임하는 소외(Alienation)와 대비되는 현상이다.

마지막, 고난도의 몰입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초보적인 수준의 몰입은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볼 때, 혹은 누군가와 재미있는 대화를 할 때 쉽게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수다가 재미있다고 해서 몇날 며칠을 떠들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고도의 몰입으로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노력과 시련 끝에 일어나는 고도의 몰입은 내가 세상과 하나가 되어 세상을 좌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강한 행복감을 느끼게 만들어주고 또 이런 경험이 우리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서 본인이 지향하고 싶은 삶의 이정표를 세우기도 한다. 즉 최고 수준의 몰입은 '나다운 나를 경험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몰입은 자신의 성향에 맞는 대상을 찾아 노력의 결과로 경험하게 되는 대표적인 행복 경험이다. 이런 몰입은 사회적 활동과 성장 그리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생산적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파괴적인 중독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발생된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중독과는 다르다



게임 중독? 게임 과몰입? 둘 다 아니다! - "차라리 심취라고 불렀으면"


게임은 중독 대상이 될 수 없다. 단적인 예로 중독 물질과 행위를 제공하는 담배 회사, 술 만드는 회사, 도박장, 마약상이 경영이 어렵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유명한 온라인 게임 메이커들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당장의 경영도 어렵다는 말이 들려온다. 물론 사업하는 사람들의 엄살이 없지는 않겠지만, 수치로 드러나는 현상이 예사롭지 않다. 과연 이들 회사가 중독을 일으키는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이런 현상이 발생했겠는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외부로부터 유발된 재미는 중독과 반대의 성향을 지닌다.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질린다. 비슷하게 재미있는 영화도 2편, 3편까지는 갈 수 있지만 4편을 넘어서 재미를 주기는 어렵다(최근 트랜스포머4를 보면서 절감한 개인적 경험이다).

이런 점에서 게임은 얼마동안의 최고점의 재미를 경험하고 나면 재미가 지속적으로 감소된다. 그것은 유저의 자발적 이탈로 나타난다. 알콜, 마약, 도박중독자가 자발적으로 중단했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과 대비할 때 이것은 게임이 중독 물질 뿐 아니라 행위와 비교할 수 없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물론 게임이 개인이나 사회적 생존을 위협하지도 않는 다는 것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패스!

'과몰입'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중독'이란 단어보다 더 학술적인 근거가 없다. Over Flow라는 말은 IT 기술용어로, 심리학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유사한 개념으로 Abuse가 있는데, 이것은 '남용'이고, Overuse와 뜻이 통하기는 한데, 만일 그렇다면 '과용'이라는 말이 있으니 이도 아니다. 용어에서 뜻이 전달되지 않다보니 게임과몰입 상담치료센터 홈페이지에는 '병적 과몰입'이라는 말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과몰입은 괜찮고 병적 과몰입은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 허허, 중독이라는 개념을 피하려다 스스로 발이 걸려 넘어진 형상이 바로 '과몰입'이라는 용어에서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몰입(Flow)이라는 개념은 행복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데, 정말 과다한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설령 존재한다면 그것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적어도 나는 이런 설명을 할 능력도 자신도 없다. 차라리 자본주의 시대에 과도한 돈벌이가 심리학적으로 어떤 문제를 발생시키는지를 설명하라면 그건 좀 할 수 있겠다.

행복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게임을 예술의 범주에 넣자는 최근 김광진 의원의 입법활동은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적절해 보인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게임 이용이 예술활동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렇다면 음악을 하루 종일 듣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그림을 몇날며칠 그리는 화가들을 과몰입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냥 심취다. 음악에 심취해있는 것이고, 그림에 심취해있는 것이다. 나는 게임도 그냥 심취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너무 게임에 심취하지 말게!', '게임에만 심취하지 말고, 공부도 신경 써라!'



게임에는 '심취'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그럼, 게임은 무죄인가? - "본질적인 경험의 질을 높여야"


여기에 대한 답은 정말 게임 유저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고, 이런 몰입의 결과 생산적인 에너지가 나오고 미래에 자신이 무엇을 할지에 대한 영감을 주며,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과 적극적인 개입을 만들어 냈는가 여부로 결정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 게임은 위대한 예술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냉정하게 지금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들이 수준 높은 몰입 경험을 제공하는가 자문할 필요가 있다. 게임 업계가 지금 어려운 것은 과도한 규제도 있겠지만 더 근원적인 것은 게임이 본질적으로 제공하는 경험의 질 문제에서 더 큰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정말 내 안의 나를 깨우는 듯한 그런 게임! 그래서 자랑스럽게 나는 이 게임에 심취했었노라고 고백하는 게임! 시대가 흘러도 고전으로 기억되는 게임! 그런 게임 메이커는 절대로 유저들이 망하게 그냥 둘 까닭이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중한 경험과 삶이 망가지는 것을 그냥 지켜볼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날이 온다면 핏대 높여 싸우던 중독 논쟁도 역사 속의 해프닝으로 기록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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