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위쳐3: 와일드 헌트', "내가 인생 게임을 또 하나 찾았구나..."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138개 |




'기대와 의심의 혼재.'

아마 '위쳐3: 와일드 헌트(이하 위쳐3)'를 기다리는 내 마음이 그랬을 거다. 작년부터 시작된 대작 게임, 이른바 '트리플 A' 게임의 몰락은 기자이기 이전에 게이머인 나에게 참 힘든 1년을 주었다. '타이탄 폴'은 등장 전만 해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였지만, 등장 이후 내 심장을 차갑게 식혔다. '미들어스: 쉐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재미있게 즐기긴 했지만 50시간 가까이 오크들을 썰다 보니 멀리서 오는 오크의 모습만 보여도 다음 영상이 머릿속에 재생된다. 딱 그 정도 게임이었다. '이볼브'의 경우 4:1의 술래잡기는 꽤 매력적인 요소였지만, 플레이 시간이 30시간에 가까워지니 지겨움만 남았다. 그나마 '드래곤에이지: 인퀴지션' 정도가 이름값을 한 게임일 테다.

때문에 위쳐3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발매 전 정보만 융합해 보면, 그야말로 엄청난 게임이 따로 없었다. 위쳐 시리즈가 오롯이 내 취향에 맞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위쳐 시리즈 자체의 어둑한 분위기와 매력 터지는 캐릭터들은 좋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를 온전히 가져와서 오픈월드로 옮기고, 엄청난 양의 서브 퀘스트를 준비했다니 기대가 펌프질하듯 솟아오를 수밖에. 다만, 이 와중에도 의심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그간 대작들이 보여온 행보가 내 기대를 여지없이 꺾는 일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리라.

어렵게 게임을 시작했다. 'NDC2015'와 한글 패치로 인한 논란까지 겹쳐 제대로 즐기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내 기대를 얼마나 채워줄 것인지, 그리고 내 의심을 얼마나 풀어줄 것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패드를 잡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40시간이 지난 후, 난 자신 있게 리뷰를 쓴다고 했던 것을 후회해야 했다. 도대체 이 게임을 어떻게 하면 글 하나에 정리할 수 있을까?

※ 주의: 본문의 내용은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과관계', 그리고 '비극'의 연속




◆ 한 번의 선택이 만드는 나비효과

"형 퀘스트 그거 했어요?"
"응? 어제 한 거 같은데."
"와 그거 결말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난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줄 몰랐어."
"무슨 말이야? 퀘스트 초기에 내가 죽였는데? 아 넌 안 죽였냐??"

"아 그래요?

주인공인 '리비아의 게롤트'는 '위쳐'다. '위쳐'는 어릴 적부터 마법과 연금술로 신체를 개조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 완성되는 일종의 전투 병기다. 인간을 위협하는 괴물과 마법적 생물체들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 대가를 받으며 살아간다. '위쳐'가 된다는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니다. 완성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부작용으로 사망하고, 설사 완성된다 해도 뱀과 같은 눈, 엄청난 회복력 등으로 그들이 없애야 하는 괴물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지나가는 위쳐에게 침을 뱉고 경멸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그 '위쳐'가 된다.



▲ 눈을 보면 위쳐를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게롤트'의 행동 양식과 선택을 만드는 것은 오롯이 플레이어의 몫이다. 게롤트의 성격은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다. 오로지 선택과 결과만이 있을 뿐이다. 게임 도중 플레이어는 끝없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의뢰를 받아 만나게 된 적이 말한다. "도리어 내가 피해자이며, 그들의 악행을 막으려면 날 풀어 주어야 한다". 그 말을 믿고 풀어둔 적은, 그들을 모두 죽여 악행을 막았다. 그리고 죽은 이들 중에는, 선한 이들도 적지 않게 섞여 있었다.

내 한 번의 선택이 불러온 여파다. 게임을 플레이하던 지인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맞이했다. 그와 나의 선택의 차이가 완전히 다른 게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듯 플레이어는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에 따라 변하는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 선택의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 무엇이 옳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내가 이 게임을 하면서 느낀 건 말이야, 뭘 해도 이 세계는 시궁창이라는 거야." - 이명규 기자

위쳐3의 세계는 어둡다. 밝은 색채와 풍경, 그리고 그림에서나 나올 듯한 노을이 세계를 아름답게 비추지만, 그 속은 시커멓기 그지없다. 전쟁 때문에 정복당한 지역이라는 설정 상, 위쳐3의 주민은 다분히 이기적이고, 자신의 생존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 듣는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 이기적인 녀석

그러다 보니 플레이어는 수없이 많은 퀘스트 수행의 과정에서 '생존'과 '도덕' 사이에서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길을 가다 장정들에게 둘러싸여 린치당하고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그 사내는 해당 지역을 침공한 '닐프가드' 출신의 탈영병으로, 오로지 가족을 보기 위해, 전쟁 전 임신해 있던 아내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탈영했다. 반면 장정들은 닐프가드의 침공 때문에 가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은 남자들이다. 그들의 불타는 복수심은 설득으로 멈출 수가 없다.

사내를 돕자면 장정들을 모두 죽여야 하고, 내버려 두면 사내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죽게 된다. 이렇듯 위쳐3의 세계는 플레이어에게 때로는 잔혹할 정도의 선택을 강요한다. 퀘스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추악한 진실들과 어떤 선택을 해도 씁쓸함이 남는 상황들을 맞이하면서, 게임은 플레이어의 도덕적 기준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여운은, "내가 이 게임을 하면서 얼마나 더 많은 감정의 고양을 맛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으로 다시 돌아온다.



▲ 비극의 비중이 큰 건 호불호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완성도 높은 '세미 오픈 월드', 장르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다.




◆ 쳐낼 것은 쳐낸다.

'오픈월드'라는 단어가 게이머에게 주는 기대감은 상당히 크다. 그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열려 있는 세계에서 내 플레이를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게이머들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걸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넓은 무대, 콘텐츠의 확보, 그리고 현장감을 살릴 수 있는 섬세한 구성을 모두 챙긴 오픈 월드를 만드는 건 엄청난 작업량이 필요하다. 차라리 배경이 '도시 하나'라면 쉽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처럼 말이다.

'스카이림'에서도 오픈 월드는 완벽하지 않다. 넓은 필드에 높은 밀도로 퀘스트와 콘텐츠를 넣어둔 스카이림의 세계는 분명히 놀랍도록 잘 짜여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색한 구석도 눈에 띈다. 당장 대도시인 '화이트런'이나 '솔리튜드'의 규모를 보면 대도시라기보단 읍내에 가깝다. 스카이림이 비교적 야지에 가까운, 척박한 지역이라 해도 아쉬울 수밖에.



▲ 위쳐3의 경우 필드가 나뉘어져 있는 식

위쳐3의 세계 또한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대도시인 '비지마'에서 게임의 주 무대 중 하나인 '벨렌'으로 가는 길 자체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벨렌'이라는 대규모 필드가 존재하고, 그 주변으로 몇몇 소규모 필드가 존재하는 형식이다. 중제목에 '세미 오픈 월드'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위쳐3는 섬세함으로 해결했다. 북부 최고의 자유도시라는 '노비그라드'는 게임에서 구현할 수 있는 도시다운 도시의 풍채를 보여준다. (물론 실제 도시와 비교해보면 초라하긴 마찬가지지만.) 때문에 '세계 전체를 자유로이 여행한다'는 느낌은 다소 죽을 수밖에 없다. 갈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되어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 한정적인 공간 안에 빽빽할 정도로 배치된 객체, 그리고 마을 주민과 아무 생각 없이 대화하는 와중에 난데없이 팝업 되곤 하는 퀘스트 등이 모여 볼륨을 만들어냈다. '세미 오픈 월드'임에도 전혀 그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 도시는 진짜 도시다운 느낌이 난다.


◆ 급하지 않기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내 생애 최고의 노을을 이 게임 하다가 봤어." - 이현수 기자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오픈 월드 게임에 흔히 보이는 이동 편의 기능을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스카이림'의 경우 어디서나 빠른 이동 기능을 사용할 수 있고, 'GTA5'는 택시를 불러 어디서나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오픈 월드'가 일으키기 쉬운 '지루함'을 없애는 방법이다.



▲ 연두색 팻말들이 일종의 웨이 포인트

반면 위쳐3의 이동 편의 기능은 다분히 제한적이다. 빠른 이동은 곳곳에 세워진 팻말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목적지 역시 팻말로 제한된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웨이포인트'를 생각하면 편하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예상치 못한 장점을 만들어냈다. 위쳐3의 배경 묘사는 굉장한 수준이다. 디테일을 살펴보면 다른 게임들과 큰 차이가 없지만, (오히려 인물 묘사에서 정점을 찍고 있다.) 해와 달의 위치에 따른 엄청난 퀄리티의 광원 효과가 아름다움을 살려낸다.




짧은 거리이나마 석양을 등진 채 말을 타고 질주하면서, 플레이어는 위쳐3의 세계를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시각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을 주지만, 내면으로는 현실적인 추악함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세계에 대해 한 번 더 곱씹으며 말이다.





'액션'과 'RPG'의 균형을 잡다.




◆ 간편한 제작과 뛰어난 액션

RPG와 액션의 융합은 게이머들에게 이미 익숙한 개념이다. 다만, 그 중심을 제대로 잡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스카이림'의 경우 RPG로서의 가치는 충만하다 못해 차고 넘치지만, '액션'을 제대로 잡았느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수백 시간을 즐긴 유저들도 스카이림의 액션 수준이 타 게임과 비교하면 썩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2014년에 출시된 '미들어스: 쉐도우 오브 모르도르'의 경우 반대의 경우다. 이 게임 역시 캐릭터의 성장 요소와 이야기 전개를 갖춘 RPG이지만, 액션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다른 요소를 살리지 못했다. 그 '액션'이 너무나도 뛰어난지라 평가는 좋았지만 말이다.

타 게임들을 생각해보면, '위쳐3'의 경우 비교적 균형을 잘 잡아냈다고 볼 수 있다. 엄청나게 많은 재료가 등장하기 때문에 일견 불편해 보일 수 있는 소모품 제작 시스템은 일단 한번 만들어 두면 명상 때마다 일정 재료를 소모하며 알아서 보충되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 않다. 성장 시스템 또한 시스템이 직관적인 편은 아니지만, 유동적으로 투자해 자신만의 게롤트를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 나름 짜임새있는 성장 요소

'액션'의 경우도 모자람이 없는 편이다. 액션에 중점을 둔 작품에 비하면 연출 면에서 다소 부족함이 보이지만,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게롤트의 검술과 중간마다 편하게 섞어 쓸 수 있는 위쳐의 마법인 '사인', 그리고 원터치로 사용 가능한 소모품과 구르기, 회피, 막기로 구분되는 방어 시스템까지, 전투 자체의 퀄리티는 굉장히 훌륭하다. 손이 너무 바쁘거나 여유롭지도 않으며, 난이도 또한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렵지 않게 중심을 잡았다.



▲ 마무리 모션의 액션은 훌륭한 편


◆ '와일드 헌트'의 두 가지 뜻

'위쳐3'의 부제는 '와일드 헌트'다. 이 부제는 중의적인 뜻을 가지는데, 하나는 줄거리 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체 '와일드 헌트'를 뜻한다. 위쳐3의 메인 스토리가 '와일드 헌트'에게 쫓기는 '시리'를 찾는 게롤트의 이야기이니 이 정도면 말 다했다.



▲ 이놈들이 와일드 헌트

다른 하나의 뜻은 '사냥' 그 자체를 뜻한다. 그만큼 위쳐3에서 '사냥'은 중요한 콘텐츠다. 게롤트는 여행 도중 수많은 적과 마주하게 되고, 보통은 다대일 전투를 펼치게 된다. 떼로 덤벼드는 익사체나 도적, 그리고 구울 등과 싸우는 일은 그 자체로도 매우 재미있지만, 결국 질리게 된다. 그리고 그럴 즈음, 게롤트는 새로운 도전을 만나게 된다.

'위쳐 의뢰'나 '메인 퀘스트' 등을 통해 만나게 되는 거대한 괴물들이 바로 그 도전이다. 집채만 한 크기(현실감을 위해서인지 진짜 엄청난 크기는 아니고 그럭저럭 큰)의 괴물과의 일대일 대치는 그 어떤 전투보다도 숨 막히는 긴장과 쾌감을 준다. 그 대상을 사냥하기 위해 칼에 기름을 바르고, 소모품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전투에 돌입해 비행 중인 대상에게 석궁을 맞추고, 약점을 파악해 공략하는 그 과정은 위쳐3에서 가장 강렬한 액션 콘텐츠다.



▲ 그냥 덤볐다간 골로 가는 수가 있다.

이 '사냥'은 느긋한 컷신과 여유로운 진행으로 꾸며진 위쳐3가 플레이어에게 줄 수 있는 느슨함을 다시 바짝 조여주는 '액션'의 결정체다. 전체적인 게임의 흐름이 'RPG' 본연의 느낌을 전달한다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사냥은 '위쳐3'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액션 RPG로서의 균형을 다잡아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준다.



▲ 죽고 나면 나름 도움이 되는 녀석들





점프가 처음이라 죄송합니다.




◆ 이 조작감을 어이할꼬...

내가 위쳐3를 굉장히 즐겁게 플레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게임을 플레이하는 와중 연신 탄성을 내뱉고 있는 것도 맞다. 주관적인 관점에서 위쳐3는 내가 플레이해본 게임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게임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조작감'이다.

위쳐3의 조작감은 확실히 동류 게임들과 비교해 볼 때 떨어지는 편이다. (전투 시의 조작이 아닌, 그냥 돌아다닐 때나 상호작용 시)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동 시의 묘한 관성은 캐릭터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보이게끔 하지만, 조종하는 사람으로서는 속이 터진다. 마우스 시점 변환 시의 묘한 튕김 현상(뭐라 설명할 길이 없는데 화면이 덜렁대는 듯한 느낌?)은 멀미가 날 정도다. 도저히 키보드와 마우스로는 답이 없다고 판단되어 패드를 연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조작감의 난점은 '수영' 중에 더욱 두드러진다. 잠수와 부양에 키 하나씩을 배치하는 건 비슷한 게임에서 주로 쓰이는 방법이지만, 방향 키를 조작할 때 게롤트의 움직임이 괴상할 정도로 꼬이다 보니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물속에 있는 상자를 열려다가 실수로 지나쳐 돌아가려는데 몸을 회전시키지 않고 혼자 싱크로나이즈를 하는 게롤트를 보면 속이 타들어간다. 산소 게이지가 부족하거나 익사체들이 쇄도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 아직 그는 수영이 익숙치 않다.

더불어 새로 추가된 '점프'도 내 생각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않는다. 2편까지 점프를 하지 못하던 게롤트가 생전 처음 점프를 하면서 신이 났는지 엄청난 높이를 뛰어오르곤 하는데, 특정 위치에서 잘못 점프를 뛰면 버그처럼 엄청난 높이로 치솟는 게롤트를 볼 수 있다. 난 위쳐3를 하면서 난생처음 평지 점프로 인한 낙사를 체험했다.



▲ 3편이 되어서야 점프를 익힌 게롤트의 신명나는 뜀박질


◆ 그의 절망적인 시야

또 하나 문제 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절망적인 수준의 상호 작용 범위다. 게롤트가 만질 수 있는 부분은 묘하게 좁고, 한정되어 있어 아이템을 루팅할 때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 게다가 거리도 짧아 뻔히 보이는 아이템도 줍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발생한다. 내 경우 건물 처마 밑에 놓인 아이템을 주우러 갔다가 처마에 이마가 걸리는 바람에(...) 줍지 못한 일도 있었다.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안되길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이정도 각도면 루팅이 안된다.

오브젝트 앞에 꺼진 촛불이라도 있다면 이 문제는 더욱 심화된다. 꺼져 있는 불을 '이그니' 사인을 이용해 점화하는 버튼이 상호 작용 키랑 같은 버튼을 공유하다 보니 앞에 놓인 상자를 열어야 함에도 그 앞에 놓여 있는 양초를 껐다 켰다 반복하는 게롤트를 볼 수 있다. 상인과 말할 때 상인 앞에 놓인 촛불을 한 번쯤 켰다 꺼본 경험은 위쳐3를 플레이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해본 경험이리라.



▲ 게임 최고의 난적인 등불

다행인 건, 이 모든 단점이 게임의 근원에 결부되어 있지 않은, 수정할 수 있는 사항들이라는 점이다. 게임의 바탕을 이루는 시스템 자체가 틀려먹으면 고칠 수가 없다. 게임을 뜯어고치거나, 속편을 기대하는 수밖에. 하지만 위쳐3의 단점들은, 어디까지나 개선할 수 있다. 게다가 제작사인 'CDPR'은 그간 위쳐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항상 시스템을 개선한 '인핸스드 에디션'을 선보였다. 이번 작품 역시 인핸스드 에디션으로 업그레이드될 가능성이 크기에 개선에 대해 기대를 해도 될 듯싶다.





도덕적 잣대와 신념, 그리고 가치관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무대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처음 게임이 출시된 시점에 국내 위쳐 관련 커뮤니티는 광란의 도가니였다. 이유는 하나. 포함되기로 되어 있던 한국어 패치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내 경우 그다지 아쉬울 건 없었다. 취재 일정 때문에 게임을 할 시간이 비교적 적은 것도 있었고, 2일만 영어로 플레이하면 될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틀 동안 영문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난 유저들이 왜 그렇게 흥분하고 화가 나 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이런 젠장! 이런 좋은 게임을 70%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니….". 내가 분노한 이유였다. 엄청나게 좋은 육질의 쇠고기를 잘 구워놓기까지 했는데 바로 못 먹고 식은 걸 먹는 느낌이랄까? 게임을 하기 전엔 별생각이 없다가 하고 나니 불현듯 분노가 치미는 희한한 경험이었다.

위쳐3의 이야기는 기존의 판타지물이 지향하던 '정상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엄청나게 강력한 마법사나, 전설적인 검사가 등장하지도 않고, 권력층의 권력 투쟁이나 무지막지한 용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전쟁'은 미화되지 않으며, '마법사'는 주민에게 경멸받고, '군인'들은 탐욕에 가득 차 있다. 게롤트로 분한 플레이어는 거대하고 웅장한 판타지의 세계가 아닌 현실적인 세계를 바라본다.

신과 영웅이 등장하는 판타지가 아니다. 대신 위쳐3는 밑을 바라본다. 전쟁으로 신음하는 주민, 먹을 것이 없어 들개를 잡아 구워먹는 고아들의 이야기,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자살해버린 남자의 이야기까지, 기존의 판타지가 가진 주안점에서 빗겨간 '다른 이들의 이야기'다. 동시에 도덕적 딜레마를 품은 채 플레이어에게 던져지는 수많은 질문은, 점점 더 비이성적으로 변해가는 현시대의 상황에 조금씩 녹아들어 가며 게이머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새긴다.

위쳐3는 단언컨대 최고의 경험을 선사할 게임이다. 이는 이 게임이 엄청난 볼륨을 갖고 있고, 굉장한 그래픽을 선보여서가 아니라,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마주하게 될 선택의 과정에서 느끼게 될 갈등과 감정을 훌륭하게 풀어낼 무대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리라. '게임'의 장점 중 하나는 실제로 할 수 없는 것을 '체험'하는 것에 있다. 단순히 현실의 관습에 얽매여 체험할 수 없는 살인이나 파괴 등의 자극적 요소가 아닌, 개인의 도덕적 잣대와 신념, 그리고 가치관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무대라는 점에서, '위쳐3'는 최고의 게임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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