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인간, 공룡, 자연... '야생의 땅: 듀랑고'에 가다

리뷰 | 이현수 기자 | 댓글: 61개 |
듀랑고의 가장 큰 목적은 생존이다. 생존하기 위해 움직이고 뭉쳐야 한다. 혹은 갈라서야 한다. 기존 모바일 게임에서는 볼 수 없던 전개와 연출이 놀라웠다. 생각지도 못한 카테고리와 속성 분류에 의한 제작은 매우 인상 깊었다. 다만 피로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협동이 필수임에도 커뮤니케이션이 용이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번 베타는 '리미티드 베타'였다. 체험해 볼 수 있는 인원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평가보다는 플레이하지 못한 사람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고자 있는 그대로의 게임 시스템과 내가 겪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 주부, 취업 준비생, 농부 등 다양한 배경이 있지만, 커스터마이징에서는 모두 다 평등.




<생존> "채집, 수렵, 제작"


나는 '끓는 지부티'섬 출신 사냥꾼이다. 사실 이곳 출신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어디서 왔고 내가 누구였는지는 모른다. 기차를 타고 가던 도중 말로만 듣던 공룡 세계에 떨어졌다. 내 이름도 모른다. 이 세상에 떨어졌는지 며칠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평평하고 탁 트인 땅에 서 있다. 단단한 흙으로 된 평지다. 내 주위에는 덤불과 나무 그리고 바닷물뿐이다. 그 너머는 가파른 내리막이거나 심지어 절벽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절차적 생성기법에 의해 만들어지는 지형이기에 내 앞에는 무엇이 있을지 아무것도 모른다. 인적이 없는 거로 봐서 불안정 처녀지인 것 같다. 탐험하며 재료와 물을 구해야 한다. 운이 좋으면 현대 시대에서 워프해온 택배 상자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택배 상자에는 생존에 유용한 갖가지 물품이 있다.

불안정섬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강한 동물들이 있으나 한정된 양의 귀한 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자원에 의해 세력 간의 경쟁이 유도되기도 한다. 일단은 나 혼자 인 것 같으니 차분히 섬을 돌아봐야겠다.



▲ 어디로 가볼까나.

우선 굶주린 배를 채우기로 했다. 배가 고프면 피로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피로도가 올라가면 행동의 제약이 생기고 끝내는 사망한다. 그 외에도 수분을 섭취해주지 않거나, 몸을 씻지 않아도 피로도가 오른다. 물에 들어가 몸이 젖어도 피로도가 오른다. 먹으면 안되는 것을 먹어도 피로도가 오른다. 타오르는 갈증에 바닷물을 먹고 복통에 걸리는 사람을 본 적 있다. 일단 지금 나에겐 사냥 도구가 없으니 채집을 해야겠다.

피로도는 모닥불로 회복할 수 있는데 모닥불을 설치하려면 당연하게도 땔감이 필요하다. 어차피 덤불이나 나무에서 열매를 따면서 나뭇가지를 얻을 수 있으니 어서 움직여야 한다. 나뭇가지는 '불에 탐'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잘 탄다. 나뭇가지가 아니라도 '불에 탐' 속성만 있으면 된다.



▲ 속성을 잘 보면 된다.

모닥불에서는 요리도 할 수 있다. 가장 간단한 요리는 역시 직화구이다. '식용' 속성에 꼬치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도구가 나무가지인지 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뚫어서 고정할 수만 있으면 된다. 혼자서 중얼거렸더니 더 배가 고파졌다. 그러니까 어서 채집해야겠다.

듀랑고의 UI는 직관적이다. 행동할 수 있는 위치 근처로 가면 원이 표시되고 원을 터치하면 할 수 있는 행동이 나온다. 덤불의 열매는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먹거리다. 과즙이 약간의 갈증도 해결해준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한동안은 불쾌한 탈수 증상을 느끼며 활동할 수 있겠지만, 더 오래되면 아주 무력한 상태로 전락한 다음 며칠 못 가서 죽을 것이다.



▲ 원 안을 탭 하면 된다. 그럼 메뉴가 뜬다. 간단하다.

나는 혹 물의 흔적이 없는지 계속 살펴보며 걷는다. 물이 있는 곳에는 물고기와 갈대가 있을 것이다. 갈대는 끈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나뭇가지와 돌 그리고 갈대가 있으면 투박한 돌도끼를 만들 수 있다. 듀랑고의 아이템들은 모두 '속성'을 가진다. 각각의 속성을 고려해 조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큰 물고기 같은 경우 그 덩치가 거대하다 보니 둔기 속성을 지니는데 꼬치에 꽂아 구우면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고기들도 마찬가지다. 고기 망치를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다. 찰떡찰떡, 철퍽철퍽 살이 맞붙는 소리, 참 찰진 무기다.

가공하면 속성이 변하기도 한다. 원래는 먹을 수 없는 것도 삶거나 말리면 먹을 수 있도록 변하기도 한다. 나는 가죽 장화를 먹고 싶었다. 삶아서. 그런데 가죽 장화를 얻지를 못했다.

어쨌든 물을 찾기 위해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간다. 숲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고, 참나무 틈틈이 다른 종의 나무들이 보인다. 그리고 나를 먼저 선제공격할지도 모르는 육식 공룡들 뒤로는 보급품들이 있다. 내 손길을 기다리는 보급품들을 보니, 너무나, 너무나도 유혹적이다. 그리고 내가 손에 넣지 않으면 다른 탐험가 손에 들어가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 현대에서 워프를 타고 넘어오는 물품도 있다. 양동이라거나 표지판이라거나.

달렸다. 새끼 공룡이 내 앞을 막아선다. 돌도끼를 꽂아 넣자 공룡이 기침하며 내 얼굴에 피를 흩뿌린다. 뜨뜻하고 끈적한 피를 덮어쓴 탓에 메스꺼워진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새끼 공룡은 부들거리며 마지막 피를 토해냈다. 그제야 나는 새끼 공룡의 목에 꽂힌 돌도끼를 바라본다. 내구도가 다했다. 듀랑고의 모든 아이템은 내구도를 가지고 있다. 사용할 때마다 내구도가 떨어진다.

황망하게 내구도가 다한 돌도끼를 바라보니 공룡 떼가 괴성을 지르며 나를 향해 달려온다. 듀랑고의 공룡들은 밀집성향이 강하다. 그렇기에 보통 활을 쏴 무리에서 빼 오거나 무한으로 회피해 틈을 노리는 게 정석이다. 활을 들고나오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 명중률은 캣니스 에버딘급 이지만, 활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듀랑고의 전투는 기본적으로 자동으로 진행된다. 나는 굴러서 회피하거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근접 공격의 경우 정면에서 혹은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다. 활의 경우 거리를 두고 쏘거나 제자리에서 쏠 수 있다. 도망갈 수도 있고. 나는 전장 이탈을 선택했다.

전투 중에는 하나의 대상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다른 생물이 난입하면 대응하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랩터와 같이 많은 수가 무리를 지으면서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까지 빠른 생물들이 난입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랩터들의 먹이가 된다. 따라서 사냥을 하는 동안에는 항상 미니맵을 주시하여 주변에 다른 생물들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난입을 막지 못했다면 빠르게 전장을 이탈하는 것이 좋다.



▲ 무기마다 사용할 수 있는 특수 액션이 다르다.

공룡들이 다가오자 내가 느껴왔던 온갖 종류의 공포가 저 공룡, 몇 초안에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포식자에 대한 직접적인 공포로 압축된다.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다. 공룡에게서 급하게 갈무리한 생고기와 다리뼈를 어깨 한쪽에 걸쳐 메고 숲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린다. 물론 보급품에서 획득한 양동이도 들고 간다.

위급상황에서 갈무리해서인가, 도축 레벨이 상승했다. 듀랑고의 레벨 시스템은 캐릭터 레벨과 별도로 특성 레벨이 존재한다. 나는 사냥꾼이기에 사냥레벨과 도축레벨을 가지고 있다. 사냥도 한 손, 양손, 활에 따라 스킬 트리가 따로 존재한다. 무기가 손에 익게 하려면 쭉 같은 계통의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쪽이 생존에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 일종의 잡레벨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배낭을 내려놓고 풀썩 주저앉는다. 밤이 되기 전에 모닥불을 피워서 고기를 구워 먹고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고기 뷔페 프렌차이즈가 아닌 진짜 공룡고기를 먹어야 살 수 있다.

가방을 열어 내가 어떤 것들을 써먹을 수 있을지 봤다. 목 안과 입이 건조하고 입술이 갈라졌음을 깨닫는다. 나는 온종일 움직였다. 날은 더웠고 땀도 많이 흘렸다. 얼굴에 말라붙은 피를 손톱으로 긁어낸다. 더러움 상태에서는 피로도가 상승한다. 씻고 싶다.



▲ 씻어야겠다.

갈증과 더러움 때문에 피로도는 더욱 빠르게 올라간다. 우선 씻어야겠다. 운이 좋게도 도망쳐 온 곳 지척에 작은 개울이 있다. 물을 마신다. 천막을 설치하고 몸을 씻는다. 천막은 기둥으로 사용할 나무만 있으면 된다. 양동이에 물을 받아놓고, 탐험 중에 획득한 비닐봉지에도 물을 담는다. 내일 먹을 거다.

개울에 통발을 설치하고 모닥불을 피운다. 듀랑고의 공룡들은 불을 좋아하지 않는다. "뜨거워!"라고 외치며 불과 거리를 두기에 이 불이 내가 자는 동안 생명줄이 될 것이다. 일어나면 통발에 물고기들이 잡혀있을 것이다. 물고기로 꼬치구이를 만들어 배를 든든히 하고 섬을 탐험해야 한다. 하지만 우선은 높아진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 자야만 한다.



▲ 이 불이 꺼지면 나도 꺼지겠지... (출처: 듀랑고 인벤 도란님)





<협동> "혹은 반목"


지지직. 무전기에 희미하게 잡히는 사람 소리에 잠에서 깬다. 얼마나 잔 거지? 네 시간? 다섯 시간? 다시 한 번 지직거린다. 이번엔 또렷하다. 내 친구들의 무전이다. 안정섬에 있던 친구들이 나를 찾아 내가 발견한 불안정섬으로 온 것이다. 듀랑고 세계에서 항해는 항구에서 이뤄지는데, 항구에는 실시간으로 친구가 발견한 불안정섬 리스트가 뜬다. 친구가 있는 섬으로 탐험을 갈 수도, 나처럼 150 티스톤을 내고 처녀지에 발을 내디딜 수도 있다.



▲ 서버가 막 열렸을 때는 섬이 별로 없었다.

친구들은 내가 걱정되어 섬으로 왔다고 한다. 강인하게 생긴 이 친구는 모험가다. 주로 채집을 담당한다. 내가 캘 수 없는 각종 재료를 수집할 수 있다. 야리야리하게 생긴 이 친구는 정착가다. 농경할 수가 있으며 도구를 제작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나는 이들에게 고기와 뼈를 제공한다. 채집가는 농경에 필요한 진흙 등 다양한 재료를 제공한다. 정착가는 여러 재료를 활용해 도구를 만들거나 농사를 짓는다. 나는 정착가가 재배한 농작물로 배를 채우고 더 멀리 사냥을 나간다. 그게 우리가 사는 방법이다. 우리는 공동체다.

다른 게임에서 볼 수 있는 개인 창고는 없다. 바구니를 만들어서 모두 공유한다. 넣어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간다.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적의식이 있다. 협동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모두 다 알고 있다. 세 직군이 조화롭게 어울려야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다.



▲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면 힘들다.

정착가는 나에게 새로운 활을 내밀었다. 경험 많은 모험가가 채집한 높은 레벨의 재료로 만든 활이다. 재료의 레벨이 높을수록 결과물도 레벨이 높다. 때에 따라 좋은 속성이 붙기도 한다. 활을 내민 정착가는 바로 안정섬의 집으로 귀환을 시전한다. 버튼 클릭 한 번이면 지정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매우 편리한 기능이다. 심고 온 옥수수 종자에 물을 주는 것을 깜빡 잊었다고 허겁지겁 돌아갔다.

모험가와 함께 어제 탐험하지 못한 곳을 탐험을 해보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처음 도착한 섬은 모두 검은색으로 표시된다. 개척하면 미니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간혹 미니맵상 빨간색으로 표시되는 지역에서는 퀘스트를 받을 수 있는데 이를 달성하면 경험치와 티스톤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꽤 쏠쏠하다.




어제 보급 상자에서 얻은 양동이에 물을 받고 출발했다. 모양이 투구 같아 쓸 수 있을 것 같아 써봤더니 정말로 장비가 됐다. 물도 차있는 상태라 급수도 된다. 이제 갈증이 날 일은 없어 보인다. 참 어제 설치한 통발은 누군가가 가져갔다. 사유지 설정을 해놓지 않은 통발은 누구라도 가져갈 수 있다. 그 물고기 먹고 설사나 했으면 좋겠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사람이 보인다. 모닥불과 작업대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건조대. 내가 첫 발견자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입도할 수는 있으니까. 아마 반대편 항구로 들어온 사람인가 보다. 가까이 가서 인사를 건넸다. 듀랑고는 혼자서 하기에 힘든 게임이기에 보통은 서로 환영해주는 분위기다. 웃는 이모티콘을 사용하면 응원 효과도 발생한다. 구·신석기 시대 인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다. 우리가 지금 무전기와 언어가 있을 뿐이지, 그 때와 매우 흡사하다.



▲ 이쯤되면 통발이 아니라 가두리 양식장이다.

모닥불을 빌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듀랑고의 사유지는 선포한 사람이 권한을 설정할 수 있다. 자신만 사용하게 하거나, 친구도 사용하게 하거나. 혹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말이다. 사유지의 주인은 잠시 후 설정 권한을 바꿔 모닥불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줬다. 모험가와 사유지의 주인은 이 섬의 생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안드로이드도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이폰 버전에서는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면 그대로 타이핑이 된다. 듀랑고를 처음 실행하면 마이크 근접 권한을 물어오는데 아마 이런 것 때문에 물어 본 것 같다. 한결 의사소통이 편해졌다.



▲ 황태 덕장이 생각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조장

두 명이 섬에 대한 정보를 나눌 때 나는 작업대에서 칼을 만들었다. 특정 도구들은 작업대가 있어야만 제작할 수 있다. 돌을 날카롭게 갈아서 돌날을 만들고 거기에 동물 뼈로 손잡이를 만들어 갈대를 끈 삼아 묶었더니 훌륭한 칼을 만들 수 있었다. 또, 나뭇가지와 끈을 이어 활을 만들었다. 정착가의 활보다는 급이 떨어지지만, 여분으로 만들어놨다. 내구도가 있으니까.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나의 친구 모험가가 사유지 주인의 물고기 꼬치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거대 꼬치는 둔기 속성을 가진다. 사유지 주인은 원하는 정보를 획득하자 경쟁을 막기 위해 모험가를 죽인 거 같다. 혹은 이 사람이 우리 통발 도둑이던지. 당황하고 있는 찰라 그의 서슬 퍼런 교통 표지판의 날은 나를 향했다.



▲ 레벨 20이 넘으면 PK도 가능하다. 야 이자식아.

듀랑고에서는 죽으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귀환지로 설정한 곳에서 부활하거나 근처의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부활하면 가방에서 일정량의 아이템을 떨어트린다. 모험가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도와주면 보상으로 줄 아이템을 설정하고 말이다.

나는 일정 거리를 두고 활을 쏘았다. 그러나 그의 교통 표지판 공격이 더 빨랐다. 내 입에서 새된 비명이 튀어나왔다. 화살을 들고 있기가 힘들어진다. 겨우 거리를 벌리고 활을 쏠 채비를 마치자 그가 내 사정거리 밖으로 도망간다.

활을 들고 뒤쫓는다. 근육이 심하게 당겨져서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 같다. 나는 이를 부서져라 악물고 있다. 상대는 아마 모험가가 가르쳐준 택배 상자 쪽으로 간 것 같다. 주위를 살폈다. 들리는 소리는 내 귀에 울리는 심장 뛰는 소리뿐이다. 놓친 것 같다. 좌표를 기록해둔다. 이 불안정 섬이 없어지기 전에 다시 돌아오리라 다짐하면서.



▲ 표지판은 긴 막대와 한손 둔기 속성을 가진 양손 무기다.

모험가에게 심장마사지를 해주니 그는 다시 살아났다. 우리는 이 섬을 떠나기로 했다. 근처에 항구를 찾아 안정섬이자 우리의 촌락이 있는 '끓는 지부티'로 돌아가기로 했다. 주위에 채집할 수 있는 재료의 레벨은 낮아도 안정적인 곳이다. 물이 있고 식량이 있고 잡기 쉬운 공룡들도 있다. 무엇보다 농경지가 있다.



▲ 도움을 주면 보상품을 받을 수있다.

모험가는 아직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에게 쪽지를 하나 건냈다. 쪽지는 듀랑고 노트 86이었다. 로딩 화면 중에 노출되는 이 듀랑고 노트는 세계관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뭐하나 직접 알려주는 것은 없지만 여러 정보를 모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가끔 무전기를 통해 들리는 이상한 목소리와 노트를 보면 내가 떨어진 이 세계에 대해서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노트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내 형은 진짜 운이 나빠. 워프 때 배가 침몰하는데도 빠져나왔고 전염병도 버텼고 전쟁에서도 적에게 추격당하면서도 살아남았는데. 결혼을 하게 됐대." 나는 울었다. 하늘도 울었다. 결혼이라는 무덤에 들어가다니.



▲ 노트를 통해 세계관을 유추할 수 있다.





<부동산> "살아야 한다."


비는 옥수수 종자 성장에 많은 도움을 줬다. 옥수수는 잘 자랐다. 모험가는 잘 익은 옥수수를 먹고 더 멀리 나가 진흙을 캐오고 돌을 캐왔고 나는 옥수수를 먹고 더 큰 공룡 고기들을 가져왔다. 옥수수와 고기를 먹은 우리는 더 멀리 나갈 수 있게 됐고 더 많은 보급품과 재료를 모을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해 나가자 우리 섬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리에게 합류해왔다. 더 많은 사람이 재료를 모으고 도구를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이 합동 사냥을 했다. 더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었고, 우리 집단의 부양력은 더 높아졌다. 더 많은 사유지에서 더 많은 경작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제 거대 공룡들도 함부로 우리 집단을 건드리지 못한다. 집단이라는 말보다 촌락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러 가자'가 얼마나 현실성 없는 이야기인지 알게 됐다.

깬석기에서 간석기로 넘어갔고 더욱 정교한 물품들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모험도 사냥도 더 활발하게 이뤄졌다. 우리 촌락은 좀 더 세밀한 공동체로 발전해나갔다. 잉여 생산품이 생겼고 잉여 생산품을 팔아 티스톤을 만들게 됐다. 부양력은 계속해 올라갔다. 이제 곧 우리는 부자가 될 거다. 집단을 지휘하는 지도자도 나타났다.

듀랑고는 하나의 세계다.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상황. 사람이 있고 사람이 만들고 사람에 의해 돌아간다. 이 세계를 만든 사람들은 하나의 방향을 지정하지 않았다. 사람이 만드는 과정. 말 그대로 온라인 행태다. 각 개체가 사람이기에.



▲ 잉여 생산품이 부양력 향상을 이끈다.

섬에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 발생한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싸운다. 거기에 자연이 끼어든다. 비가 오고 덥고 춥다. 물이 없을 수도 있을 수도 주워 먹을 식량이 없을 수도 있다. 자연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역동적인 변수를 준다. 반복 플레이 성이 높아진다. 내가 계속 불안정섬으로 안정섬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유다.

우리는 상당히 이른 시간에 끓는 지부티 섬에 공동체를 형성했다. 항구가 가깝고, 민물이 가까우며 주위에 숲과 덤불이 있는 곳이다. 조금만 걸어나가면 사냥터도 있다.

문제는 지리적 경직성이다. 만약 우리 공동체 옆에 이상한 이웃이 온다든지, 세력간의 분쟁지역이 되어 버린다든지 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생존을 위한 울타리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이 촌락에 큰 투자를 했다. 점점 사람이 많아지면 어떡해야 할지 벌써 고민이 된다. 또 초창기 마을은 결국 자원이 다 떨어질 텐데 언제 어디로 이주하느냐도 문제다. 이주할 때는 혼자 해왔지만, 이제 우리는 혼자 움직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 일단 요충지에 깃발을 박았다. 정식 출시 이후엔 더 경쟁이 심할텐데...

듣기로 어떤 섬은 갈등이 계속해서 적층되어 결국 한 사람이 지배하는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역사책에서 본 청동기 시대로 발전하는 과정과 비슷한 거 같다. 처음 요충지를, 좋은 부동산을, 지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미리 선점해 격차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민이 된다.

결국, 문제는 부동산으로 귀결된다. 듀랑고는 절차적 생성을 통해 여러 가지 크기와 특성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혼자서 편히 즐길 수 있는 '독립 섬',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코옵 섬',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PvP가 만연하고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이 일어나는 '서바이벌 섬' 등이 생성된다고 한다. 어떤 섬에 살지 중요해진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섬이 연결되는 만큼, 탐험가와 사냥꾼의 공존이 이뤄진다. 탐험가는 새로운 지역을 찾아내고 나 같은 사냥꾼은 이득을 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항구가 일종의 이동 허브이자, 인스턴스 던전으로 이어지는 입구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로비- 던전 구조가 된다. 더욱 자연스럽게 협동이 생긴다.



▲ 내 고기를 사겠소?

물리적인 위치로 제약되어 각각의 지역의 가치가 천차만별인 다른 게임과 달리, 듀랑고의 세계에서는 논리적으로 대등하게 이어져 있으므로 위치에 따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섬 자체의 가치가 나에게, 우리 공동체 마음에 드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리미티드 베타' 5일간 아직 제대로 된 마을을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거대한 사냥을 꿈꾸고 있다. 정착가들이 재배한 식량을 먹고 탐험가가 수집한 질 좋은 재료로 만든 무기를 이용해 사냥할 생각이다.

거대한 공룡을 탐험가들이 발견한 계곡 같은 지형 안으로 밀어 넣고 많은 사냥꾼이 일제 사격을 할 거다. 계곡 입구엔 정착가가 만든 덫을 설치하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근접 사냥꾼들이 그들을 지킬 것이다. 거대 고기를 도축해 촌락에서 잔치를 열 것이다. 듀랑고에서 가장 크고 멋진 모닥불을 피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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