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포켓몬스터 20년, 포덕 17년' 제 1부 - 포켓몬의 시작 그리고 황금기

기획기사 | 정필권 기자 | 댓글: 114개 |

오는 2월 27일 닌텐도의 RPG 시리즈 '포켓몬스터'가 세상에 선보인 지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한다. 어린이가 성인이 될 정도의 긴 시간. 이제 포켓몬스터라는 IP는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어렸을 때의 포켓몬 팬은 이제 부모가 되기 시작했고, 그들의 자식세대 또한 포켓몬스터를 보며 성장하고 있다.

이렇듯 세대를 뛰어넘는 '포켓몬스터'라는 게임의 20주년을 기념하며, 포켓몬의 역사를 정리해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긴 시간 동안 포켓몬스터라는 게임에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게임 외적인 마케팅과 미디어 믹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17년 차 포덕 '어른이'의 입장에서 과거를 되돌아 봤다.

대한민국에 있는 수많은 '포덕'들과 비교하자면 명함을 내밀기는 조금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포켓몬스터 20년의 역사와 함께 대한민국 포켓몬스터의 역사도 함께 정리해보려 했다.






■ 1996년 ~ 1999년 - "모든 것의 시작, 1세대"

1996년 2월 27일.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포켓몬스터 적(赤), 녹(綠)이 일본에 발매됐다. 닌텐도가 1989년 4월 21일 출시한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의 데뷔 7년 차. 휴대용 게임기로서는 후속 기종을 바라보던 시점이었다.




출시 초기, 광고와 입소문 등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게임으로 인식되던 포켓몬스터는 일대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매체들을 통해서 "몬스터 전부 150마리"라고 광고했었으나, 유저들 사이에서는 "숨겨진 151번째의 포켓몬이 있다."는 소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게임 플레이 도중 발생한 버그나 통신 교환 도중 오류가 발생했을 때에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포켓몬이 눈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존재할 리 없는 포켓몬'에 대한 소문은 제작진을 당황케 하기 충분했고, 소문의 진실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확인 결과, '존재할 리 없는 포켓몬'이 실제로 게임 내에 남겨져 있음이 드러난다. 여기서 발견된 포켓몬이 바로 '뮤'다.

▲ 당시 포켓몬스터 적/녹의 TV 광고.
"몬스터 전부 150마리 수록"이라는 카피는 뮤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증거

제작진 중 한 명인 '모리모토 시게키'가 일종의 이스터 에그로 집어넣은 것이 151번째의 포켓몬 '뮤'라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가 반쯤은 장난삼아 만들었던 '뮤'가 버그 때문에 제품 판에 등장하게 됐고, 게임프리크는 해당 버그를 수정했다.

그럼에도 환상의 포켓몬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질 줄을 몰랐다. 애초에 소수의 몇몇 사람만이 얻을 수 있었던 포켓몬인데다가, 버그 수정 이후 제품부터는 아예 얻을 가능성조차 사라졌다. 오로지 이전에 뮤를 얻은 사람과 교환을 통해서만 도감의 151번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이다.

통신 교환이 가능했던 포켓몬 시리즈에게 있어서, '제작진도 모르고 있었던 포켓몬, 뮤'라는 존재는 호재로 작용했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들은 '포켓몬스터 시리즈'가 상업적 성공을 이루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 우연의 산물이 흥행을 가져다준 셈이다.

이후 일본의 잡지인 '코로코로 코믹스'와 협업, '닌텐도 스페이스 월드' 등으로 '뮤의 배포'가 이루어지며 일반적인 게임 플레이로는 얻을 수 없는 '환상의 포켓몬'으로 자리 잡았다. 유저들에게서 나오던 소문이 작품의 성공과 IP의 성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렇게 배포로만 얻을 수 있는 '환상의 포켓몬'이라는 개념은 이후 시리즈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게임의 성공과 관심에 힘입어, 다음 해인 1997년 4월부터 포켓몬스터의 첫 TV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 방영을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이 점차 인기를 얻으면서 덩달아 게임의 판매량도 증가하는 시너지를 일으켰다. 이로인해 적/녹 버전 이후 출시한 '포켓몬스터 청(블루)' 까지 합해 일본 내에서만 1,023만 장이 판매되는 쾌거를 올렸다.

일본 내에서 큰 성공을 거둔 포켓몬스터는 1998년부터 북미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98년 E3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공개했고, 같은 해 9월 28일 '포켓몬스터 레드 / 블루' 버전을 정식으로 출시했다. 포켓몬 애니메이션은 게임 출시보다 조금 앞선 9월 5일 첫 방송을 시작해 게임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저작권 및 판권이 한 곳으로 정리된 것도 이 시기다. 포켓몬 게임 및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다양한 상품들의 판권을 한 곳에서 관리하기 위해, 닌텐도, 게임프리크, 크리쳐스 3사의 공동출자를 통해 '포켓몬센터주식회사 (지금의 The Pokémon Company)'가 설립됐다.

포켓몬센터주식회사는 도쿄 시내에 '포켓몬센터'라는 이름의 매장을 열고, 포켓몬 관련 상품들을 모두 취급하는 오프라인 창구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2016년 현재까지 포켓몬센터는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일본 내 주요 관광지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 공식 굿즈들을 판매하고, 새 타이틀을 예약 판매하기도 한다.

98년이 게임 및 애니메이션의 성장과 판권의 정리를 노린 한 해였다면, 1999년은 여러 방면에서 포켓몬스터의 이름을 알리려는 구체적인 시도들이 있었다. 1월에 '포켓몬 TCG'가 출시된 것을 시작으로, 닌텐도 64로 발매된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에 피카츄가 참전하는 등 닌텐도를 대표하는 한 캐릭터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또한,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늘어나며 '피카츄'를 메인 포켓몬으로 내세운 '포켓몬스터 피카츄' 버전이 출시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출시된 포켓몬 시리즈 중, 스타팅 포켓몬이 아닌 다른 포켓몬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유일한 버전이다. 게임보이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게임보이 컬러'를 부분이나마 활용하고 피카츄와 교감할 수 있는 시스템 등을 추가하여 차별성을 뒀다.

첫 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 '뮤츠의 역습'이 개봉된 것도 1999년이다. 7월 18일 일본에서 개봉하여 관객 수 약 650만 명, 흥행수익 75억 엔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99년 일본 영화 흥행 수익 2위에 이르는 금액이다. 첫 번째 극장판의 성공으로 매년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게임과 연계하여 마케팅을 펼치는 등 다양한 프로모션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 1999년은 애니메이션이 궤도에 오르고, 다양한 플랫폼으로 게임이 출시된 시기다.

이렇듯, 1세대 포켓몬스터의 폭발적인 인기와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은 포켓몬을 단순한 게임이 아닌 '문화'로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게임 내적으로는 이후 후속작들까지 이어지는 기본적인 시스템들을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타인과의 교환을 권장하는 시스템, 2개의 메인 시리즈와 확장팩을 추가 발매하는 구조, 포켓몬 배틀, 환상의 포켓몬이라는 개념 등은 전부 1세대에서 등장한 것들이다.

게임 외적인 마케팅 전략, 관련 상품의 출시도 전부 이 시기에 확립됐다. 매년 제작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게임 출시에 맞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포켓몬컴퍼니로 취합된 판권 구조까지. 사업 분야의 기본적인 틀이 마련되었고 이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세대 포켓몬스터와 게임 외적인 상품들의 성공을 반영하여 게임프리크는 후속작 제작에 들어가, 1999년 가을에 그 결과물을 내놓는다. 게임 보이의 업그레이드 기기, '게임보이 컬러'를 통해 말이다.



▲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많은 이들이 추억하는 2세대.



■ 1999년 ~ 2002년 - "2세대의 '시스템 완성'이 포켓몬스터를 명작으로 올리다."

1998년 10월 21일 출시한 '게임보이 컬러'는 이전의 게임보이의 성능이 개선된 후계 기종이라 할 수 있다. 지금보면 투박하기 그지없는 화면이지만, 흑백화면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색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카트리지의 최대 용량도 1MB에서 8MB로 증가했고, 적외선 통신을 지원하는 등 기술적인 개선이 이뤄졌다.

상승한 기기 스펙은 또 다른 혁신을 부르기 마련. 얼마 지나지 않아 1세대 포켓몬스터의 정식 후속작, '포켓몬스터 금·은'이 1999년 11월 21일 발매됐다. 블루 버전과 피카츄 버전도 나름대로 게임이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2세대의 외관과 시스템은 '포켓몬스터라는 게임의 완성'이라는 찬사를 듣기에 충분했다. 포켓몬들의 도트가 깔끔해진 것은 물론이고 100마리의 새로운 포켓몬이 추가됐다. 게다가 엔딩 후에는 1세대의 무대인 '관동지방'까지 방문할 수 있었으니, 전작을 플레이했던 사람이라면 비주얼 / 콘텐츠 면에서도 충분히 감탄할 만한 수준이었다.



▲ 2세대의 컬러 화면은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 (일본, 영문판은 게임보이 / 게임보이 컬러로 출시)

게임 콘텐츠도 1세대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먼저, '강철'과 '악' 타입이 추가되어 게임의 밸런스가 변화했다. 새로운 타입의 포켓몬을 포함하여 총 100마리의 신규 포켓몬이 추가된 것은 물론이고, 몇몇 1세대 포켓몬들의 타입이 재분류됐다. 2세대에서 정립된 17개의 타입이 6세대가 출시된 2013년까지 변경 점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약 10년 이상 유지되는 기틀이 여기서 구축되었다 할 수 있다.

요일과 시간에 따라 등장 포켓몬이 달라지거나, 포켓몬에게 아이템을 맡길 수 있는 시스템들도 선보였다. 현실 시간에 따라서 게임의 시간이 달라졌고, 등장하는 포켓몬 또한 차이가 있었다. 이외에도 1세대에서 '특수'로만 표기되었던 능력치는 '특수 공격과 특수 방어'로 재분류하여 포켓몬들의 사용처를 다양화시켰다.

이후 시리즈에서 유용하게 활용하는 '교배 시스템'도 처음으로 등장했다. 포켓몬들의 성별이 추가되었고, 알 그룹으로 분류하여 포켓몬의 알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부모의 능력치(개체값)이나 기술 중 일부를 자식 포켓몬에게 부여할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타입의 포켓몬을 만들어내는 유저들이 증가했다.



▲ 1세대는 시리즈의 기틀을, 2세대는 시리즈의 지속성을 늘렸다.

1세대의 장점은 확실히 취하면서도 시스템적으로 혁신을 보여줬던 2세대. 시리즈 중에서 가장 접하기 쉽고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인지, "포켓몬은 2세대까지가 가장 좋았어..."라는 한탄이 지금까지 종종 보이기도 한다. 십수 년 전 게임을 아름답게 추억할 정도로 포켓몬스터 2세대는 1세대의 시스템을 발전시켰고, 이는 시리즈가 지속할 수 있는 내실을 다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국내에서 포켓몬스터의 인기가 가장 높았던 것도 이 시기였다. 1999년 7월 4일 포켓몬스터의 TV 애니메이션이 처음으로 지상파를 통해 방영되었으며, '포켓몬 붐'이라고 할 만큼의 인기를 구가했다. 운동화부터 빵, 심지어 짱딱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상품이 출시되었고, 날개 달린 듯이 팔려나갔다.

특히, 삼립식품의 '샤니 포켓몬 빵'이 당시의 어린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빵 안쪽에 들어 있는 스티커를 전부 모으려는 어린이들이 전국 각지에 있었으니 말이다. 스티커을 모으기 위해 매장에 있는 빵을 뒤적여 확인하거나, 심지어 '안에 있는 스티커만 가지고 빵은 버리는' 현상이 지상파 뉴스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포켓몬 관련 상품은 '포켓몬 빵'이 아니었을까?

당시 국내의 포켓몬스터 열기가 대단했기 때문이었는지, 닌텐도는 포켓몬스터 2세대의 한국어화를 결정한다. 이때 포켓몬스터의 국내 판권을 가지고 있던 '대원씨아이'를 통해, 포켓몬스터 시리즈 최초이자 닌텐도의 첫 한국어화 게임인 '포켓몬스터 금·은'이 2002년 4월 24일 국내에 정식 발매됐다.

닌텐도의 첫 한국어화 소프트라는 점에서 아주 큰 의미가 있으나, 국내 출시가 너무 늦었다는 것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이미 일본에서 출시된 지 2년 5개월여가 지난 시점이었던 데다가, 'PC 에뮬레이터로 즐길 사람들은 이미 다 즐기고 난 뒤'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후 3세대 포켓몬스터인 '루비'와 '사파이어' 버전의 한국어화 출시가 이뤄지지 않았고, 다른 나라보다 1세대 정도 늦은 발매 시기는 국내 포켓몬스터의 인기가 식어가는 이유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켓몬스터 금·은 한글판은 발매 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판매되었고, 1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달성하는 것에 성공했다.



▲ 닌텐도의 첫 한국어화 타이틀이기도 하다. 국내에선 10만 장이 넘게 판매됐다.

1세대에서 확립한 게임 시스템과 이를 훌륭히 발전시킨 2세대는 게임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한국어화를 거쳐 발매된 2세대는 국내 게이머들에게 닌텐도사의 게임들이 한글화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2000년 초까지 절정의 인기를 구사한 포켓몬스터는 2001년 출시된 후속 기종 '게임보이 어드밴스'에서 전환기를 맞이한다. 2세대 포켓몬스터를 마지막으로 '게임보이' 계열 기기에서 포켓몬스터 시리즈가 발매되는 일은 없었고, 상승한 기기 성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대의 포켓몬스터가 개발에 들어갔다.

국내에는 2세대가 정식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바다가 많은 땅, '호연 지방'을 무대로 포켓몬스터의 새로운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포켓몬의 첫 리부트이자 이후 세대와의 차별점이 드러난 '호연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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